위이잉

타다닥다닥-


가벼운 타자소리와 기계음이 조용히 가득 찬 이곳은 헉슬리의 공간이었다.

경관들이 보내오는 메일 알림음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인물들 확인하는 것은 헉슬리에겐 일도 아니었지만 문제는 오타였다.

경관들이 오프라인에서 확인하고 보내오는 것이기에 오타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건 생각보다 큰 골치거리였다. 방금 그는 92세 할아버지 이름을 확인하고 알파벳을 조합하고 있었다.


똑똑-


“네에.”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가 대답했고 문이 열렸다.


“헉슬리.”

“엘!”


눈에 띄게 반가워하는 헉슬리의 모습에 엘리자베스가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힘들지?”

“어? 아냐. 고마워. 할 만해.”


그녀의 미소에 덩달아 얼굴이 달아오른 헉슬리는 커피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혹시 짐작되는 인물 있어?”


그녀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물어오자 그는 들고 있던 커피를 책상 위에 놓고 다시 키보드를 잡았다.


“아직 확실치 않아. 일단 겹치는 인물은 8명 가량이야.”

“교수님께서는 그자가 망상장애에 환청이나 환시가 있을 확률이 있다고 하셨어.”

“정신과 기록이랑 교차 확인할게.”


엘리자베스에겐 알아보지 못하는 창들이 켜지고 빠르게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으음, 없는데.”

“괜찮아. 숨기고 치료 받지 않을 수도 있잖아.”


시무룩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다시 메일 도착 알람이 울렸다.

테일러 경사가 보낸 것이었다. 앞서 온 리스트들과 교차 확인한 헉슬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탐 우드. 이 사람 의심스러운데.”


피해자들이 방문한 레스토랑 3곳과 백화점 1곳에서 발렛 파킹 업무를 했었다.

헉슬리는 옆의 회의용 전화기로 곧장 테일러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방에 회의용 전화기를 비치한 것은 그가 주로 키보드로 작업하기에 손을 쓰지 않고 통화를 하기 위함이다.)


“경사님? 특수 수사대 전산 담당 헉슬리입니다.”

[아, 네!]

“방금 보내주신 리스트 받았는데 현재 탐 우드라는 자, 근무 중인가요?”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다시 그가 돌아왔다.


[아뇨, 삼일 전 하루만 근무했다고 합니다.]

“저기! 혹시 그날 발렛 파킹한 자동차 번호 확인 가능해요?”


옆에서 엘리자베스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상대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도 당황하지 않고 알아낸 번호를 불러주었다. 다행히 고급 레스토랑이라 발렛했던 자동차 번호 및 담당자까지 기록이 되어있었다.

총 5대 였고 헉슬리는 빠르게 차주를 검색해 범위를 좁혀갔다.

3명은 남성, 2명은 여성, 그리고 1명의 여성은 50대이니 제외.


“헉슬리 빨리!”

“응. 확인됐어. 27세 엠마 레이튼. 주소는 핸드폰으로 다 보냈어.”

“고마워!”


그녀가 그의 이마에 쪽 소리 나게 키스를 하고 뛰듯 방을 나섰다.

헉슬리의 얼굴은 한껏 달아올라 터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한동안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그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엘리자베스는 슈미츠에게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엠마의 직장에 연락을 해보았다. 제발 출근했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뇨, 어제부터 몸이 안 좋다고 안 나왔어요.]

“오 안돼.”

[네?]

“아뇨, 아닙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슈미츠는 팀원들을 긴급 소집해 엠마의 집으로 긴급 출동했다. 지원도 넣었지만 일단 그들이 먼저 도착할 것 같았다.


“꽉 잡아!”


슈미츠의 외침에 엘리자베스와 에리히가 벨트를 단단히 매었다.


“죽고 싶으시면 그냥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아직 벨트를 안맨 헨리의 모습에 에리히가 툴툴 대듯 말을 건넸다.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옆자리의 엘리자베스가 헨리의 허벅지를 때리며 빨리 매라고 재촉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그가 밸트를 완전히 매자 마자 차가 급출발했다.

그리고 헨리는 그들의 말에 공감했다. 벨트를 안 매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최소 30분 거리를 15분으로 주파한 그들은 평화로워 보이는 빌라 앞에 섰다.


“진입할까요?”


총기를 점검하며 에리히가 되물었다.

이들 중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이는 에리히와 슈미츠 둘 뿐이었다.

슈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은 아마 피해자와 가족 놀이를 하고 있기에 일반적인 방문객처럼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응대할 거다. 일단 그렇게 들어가서 최대한 설득하여 범인을 무장해제시킨다.”

“잠깐 그런 거라면 제가 낫지 않습니까?”


헨리였다.

잠시 그를 바라본 슈미츠는 약간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범인은 무장하고 있을 거다. 비무장인 당신을 들여보낼 수는 없어.”

“상대는 인질을 데리고 있습니다. 잘못 자극하면 파국입니다.”

“그래도 안돼. 여기서 대기하도록.”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헨리가 한숨을 쉬었다. 전에 없이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엘리자베스가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응시했다.

그 사이 슈미츠와 에리히는 총기를 잘 숨기고 작전을 논의했다.


“팀장님, 제가 친구라고 하고 앞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범인의 신경이 이쪽으로 쏠리면 뒷문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래. 조심해. 극도로 예민한 상태일거다.”


그녀는 에리히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뒤뜰로 돌아갔다.

몇 번 심호흡을 한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제 곧 그를 체포하고 인질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질은 두려움에 잘게 몸을 떠는 것 외에는 다 괜찮아 보였다. 혀도 있는 것 같았고.


“부모란 것들을 다 똑같아! 항상 입에 독을 물고 말하지!”

“진정해. 그들은 네가 잘못해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래서 난 혀를 잘라버린 거야! 크하하하! 그럼 이제 말을 못하잖아! 조용히 밥만 먹겠지?”


여전히 인질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 범인은 이제 자폭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서 진정시키지 못하면 다 망하는 거였다. 에리히는 마른침을 삼켰다.

뒤쪽 사각에서 슈미츠가 대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것으로 그녀가 발포하면 인질도 위험했다. 어떻게든 그가 범인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봐, 진정하고 내 말도 들어봐. 나도 똑같아! 부모가 하나 같이 날 방치했지. 이런 식탁에 앉아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어.”


그와 텐션을 맞추기 위해 에리히 그도 거칠게 말을 이었다.


“난 항상 그들이 그리웠지! 하지만 그들은 날 돌아보지도 않았어.”

“그래! 바로 그거야! 이런 것들은 벌을 받아도 싸!”


범인의 동조에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런 여자는 상관없잖아! 나라면, 내 부모를 벌주러 가겠어!”

“하, 하지만! 이 여자도 언젠가 부모가 될 거야, 그럴 거라고! 그럼 다 똑같아!”

“아니, 그건 그녀가 진짜 부모가 된 다음에 해야 해! 자 나와 더 이야기해보자고.”


그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에리히는 총을 천천히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 여자를 죽인다고?”

“그래. 너한테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한 이에게 그 잘못을 알려줘야지.”


대화를 듣고 있던 슈미츠는 미간을 구겼다. 위험했다. 설득을 시작한 것은 좋았지만,


‘범인이 너무 하이텐션이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살피며 뛰어들 타이밍을 쟀다.


“너도 그렇구나. 너도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어.”

“그래, 그러니 이제 저 쓸모 없는 여자는 놔버리고 나와 가자.”

“얼마나 삶이 지옥일지 알아. 끔찍하지.”


그는 드디어 인질을 내던지듯 놓았다. 뒤에 있던 슈미츠가 비틀거리는 인질을 부축해 안정시켰다. 자, 이제 그를 잡기만 하면,


“그래, 너에겐 내가 자비를 베풀지.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줄게.”


타앙-!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인질을 안정시키던 슈미츠는 경악하며 범인에게 발포했다. 그는 즉사했지만 에리히도 총상을 입은 후였다.


“에리히!”

“쿨럭-“


그녀는 곧장 무전기를 들어 구급차를 불렀다.


“제발, 제발 버텨.”

“팀장, 님.”

“그래. 나 여기 있어. 말하지 마.”


상처를 지혈하던 그녀는 자꾸 말하려는 에리히를 막으려 했지만 그는 아마 마지막이라고 느낀 듯 했다.


“당신이, 쿨럭, 제 양친이였음, 큭- 했, 습니다.”

“안돼. 에리히 안돼, 그런 건 나중에 말해!”

“할, 말이 끅, 많은데”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곧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그녀는 그들에게 에리히를 맡겼다.


그녀의 손은 에리히의 피로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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