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IME

백현×경수





창밖을 보니 세상을 전부 잡아먹겠다 듯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추적추적 소나기처럼 얇은 줄기를 내릴 뿐이다. 찬열이 경수를 데리고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경수는 눈을 잠시 찌푸렸다.



엘레베이터에 올라타고 둘은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 찬열이 경수를 공원에서 데리고 올 때부터 서로 아무말도 건네지 않았었다. 저는 저대로 머리가 복잡했고, 찬열은 어쩌면 저를 배려해 아무말 안 하는 걸 수도 있다. 




경수는 찬열의 차를 차고 그의 집에 오는 길에 안정을 찾아 나왔던 꼬리랑 귀가 자연스레 들어갔다. 부디 다른 사람에겐 들키지 않았기를 바란다.


31층에 도착하자 오직 두 집만이 존재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찬열이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건넨 뒤 도어락을 열려다가 갑자기 그가 뒤를 돌아 저를 쳐다본다. 왜요? 머뭇거리던 찬열이 뜸들 들이며 그가 그의 뒷머리를 매만진다. 그.. 안에, 내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워.




그게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찬열을 쳐다보자 한숨을 푹 쉬고 그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다. 그게 걔 성격이.. 말을 잇기도 전에 찬열 집 내부에서 쿵쿵 소리가 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쿵쿵? 찬열에게 더 무어라 물어보려는 찰나에 벌컥 열리는 문의 인해 놀래서 경수는 두 눈만 크게 서너 번 껌뻑거렸다.









"야!!"








야? 고양이 키운다면서 웬 다 큰 성인 남성이 문을 열고 뛰어나와 그대로 찬열을 확 껴안았다. 껴안자마자 찬열의 목에다가 얼굴을 비비는 남성을 보면서 경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어딜 봐서 고양이야..









IN TIME
w.펭귄 브라더스










집안에 들어선 이후부터, 아니 들어서기 전부터 저 남성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머쩍은 표정을 지으며, 경수는 그저 소파에 앉은 채 양손을 고이 무릎 위에 올리고 눈동자만 양옆으로 굴리다가, 집을 천천히 구경했다. 집 진짜 크다.





찬열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서로 소개해 줄 테니 일단 쇼파에 앉아 기다리라고 말한 뒤 남성에게 다가가 무어라 귓속말을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싫어! 찬열의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는지, 소리를 빽 지르고 쇼파 반대편의 위치한 큰 티브이 옆에 있는 박스 안에 들어갔다.




"너 뭐야?"

"네?"

박스안이 엄청나게 안락한 듯 누워서 뜬금없이 질문을 뱉는 남성의 인해 경수는 그저 벙찐 채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뭔데, 찬열이 집에 와."

할말을 찾지 못하자 답을 얼버무리고 있을 때 때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찬열이 그런 남성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그저 멋쩍게 웃었다. 얘가 싸가지가 좀 없어서. 하하...




어색해서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선택한 경수는 계속해서 티격태격 대는 찬열과 남성을 번갈아가 가면서 보았다. 그 사이에 남성이 다시 한번 경수에게 너라고 지침 하며 무심한 듯 말을 툭 건넸다.



수인이구나?


남성의 질문에 경수는 놀란 채 큰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경수에겐 지금 나온 귀와 꼬리도 없었는데, 저 남자가 알아봤다.


"저..경수야."
"네."



"쟤 이름이 경수야?!"



"얘도 수인이야."
"..."



"아 왜, 네가 말해!!"




말을 끼어들면서 큰소리를 내는 남성이 익숙하다는 듯이 무시하고 말을 이은 찬열에 의해,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이나 놀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찬열이 왜 집에 들어서기 전에 집에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었는지 알 거 같다. 처음부터 수인이라고 말하긴 뭐 했을 것이다.




"..."
"미리 말 못해서 미안."


"아니에요."




"네가 뭐가 미안해!"

사과를 해오는 찬열에게 오히려 남성이 먼저 소리를 쳤다.





"넌 좀 조용히 해."
"내가 뭘?"




둘이서 또 싸움을 시작하려는 것을 보아 경수는 저가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전 도경수에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몰라. 새침하게 얼굴만 팩 돌려 버린 채 질문을 무시한 채 박스안에서 그는 혼자 골골대기 시작한다. 남성의 행동이 민망했는지, 찬열은 아예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말을 한 뒤 경수가 앉아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마실 거라도 가져다줄까?


괜찮다고 말을 하고 경수는 손사래를 치지만, 찬열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아참.



"쟤 이름 세훈이야. 오세훈."


아무생각 없이 그저 듣다가 찬열이 덧붙여 얘기한다.


"성은 달라. 내 아들 아니거든."



성이 다른 게 웃긴지 아니면 저가 아들이라고 착각이라도 했을까 봐 인지 모르지만, 찬열은 갑자기 조소를 내비쳤다. 그런 찬열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세훈은 어느새 고양이로 변한 채, 그를 따라 주방 옆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다가, 조금 지났을까, 찬열이 연기가 나는 두 머그컵을 양손에 든 채 경수에게 다가갔다. 밀크티야, 괜찮지? 여기.

감사합니다. 말을 짧게 내비치고 머그컵을 건네받은 경수는 그대로 얼굴을 차를 향하고 미동이 없었다. 고된 하루다.






그저 오늘 하루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생각 중이다가 느닷없이 찬열이 몸을 꺾어, 그의 얼굴이 경수의 얼굴 앞으로 훅하고 다가와, 저를 빤히 쳐다봤다. 익숙해.





혼잣말을 내뱉는 찬열 때문에 몸을 뒤로 물렸다. 물론 쇼파에 앉아있어 그다지 많이 물리진 못했지만. 그런 경수를 찬열이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다 찬열이 손뼉을 한번 쳤다. 세훈은 계속 찬열이 미운지, 등에 매달려 울기만 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변백현을 보고 왜 놀랬던 거야.”



이제쯤이면 마음이 좀 가라 앉았을듯싶어 찬열은 참아왔던 질문을 던졌다. 경수의 눈이 처음에는 방황했다. 머리를 굴리다 든 생각은, 1구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찬열의 보여준 행동을 보아 하면 믿을만하지 않을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만약 찬열이 배신하면? 저를 타임키퍼한테 신고라도 한다면? 그런 경수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찬열이 어깨와 등 사이에 매달려 있던 세훈을 안아 들어 경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1구역 사람들은 수인이 멸종됐다고 생각해.”
“…”
“나도 얘 빼곤 그리 생각했거든. 왜냐면 알다시피 수인들은 다 12구역에 가게 되었었잖아.”





경수의 눈앞에 세훈을 안아 들었다가, 세훈이 몸부림을 치자 찬열은 그런 세훈을 무릎 위로 앉혀놨다.




찬열의 말이 맞다. 12구역에서는 매분 매초 사람이 죽어가는데, 시간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던 수인들은 오죽할까. 저도 12구역에서 남은 수인이라곤 혜진과 저뿐이었다. 의아함은, 세훈이 어떻게 1구역에 아직 남아있던 것이었을까다.




“세훈씨라고 불러야 할까요?”


“상관없어. 경수 편한대로. 얘 이래 보여도 카운트 바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아까 찬열에게 매달리 때 확실히 긴 팔을 입고 있지 않는 거에도 놀랐었고, 시계가 내비치는 색깔도 보지 못해 아리까리 했었다. 작동이 시작조차 안 했던 것이다.






“그럼 말 낮출게요.”

그래요 그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인 찬열은 나한테도 말 놔도 되는 데라고 덧붙였지만, 세훈이 찬열의 무릎을 계속 박박 긁자, 찬열은 험한 인상을 한채 세훈을 혼내기 시작했다. 내가 손님 있을때 그렇지 말라고 했지.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채, 세훈은 가뿐히 찬열의 무릎에서 내려와 자신의 박스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세훈이는, 12구역까지 가기 전에 새끼 길고양이 시절 때 1구역에서 버려졌던 걸 내가 주어왔던 거야.”


“1구역에서는 길고양이도 존재하나요?”


“아니? 나도 놀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데리고 온 거지.”


찬열의 말의 의하면, 아마 세훈이의 부모님은 12구역을 미리 생각하시고 아마 1구역에서라도 누군가의 의해 살아남길 바라시면서 버리셨을 것이다. 자신이 없으셨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12구역 가서 하루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어쩌면 알았을 테니 말이다. 저랑 혜진은 그나마 아버지가 연구원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렇게까지 수인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해오는 찬열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기댈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




12구역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불과 며칠 전에.

운을 띄기 시작한 경수를 위해, 찬열은 좀 더 경수를 자세히 듣고 보기 위해 쇼파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경수의 반대편 땅바닥에 앉았다.





“아버지는 12구역에 버려지기 전부터 없으셨어요. 전 어렸을 때라 상황을 잘 몰랐고요. 어머니도 딱히 아버지의 얘기를 꺼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셔서, 기억해내기도 싫은 분이구나 하고 그저 막연히 넘어갔었고요. 그렇게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전전긍긍하면서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12구역에서는 흔한 일 이니깐요.”




경수의 말이 동의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듯이 찬열은 경수를 쳐다본다. 근데 1구역은 어떻게 온 거야? 12구역에서는 절대 1구역으로 넘어 올 수가 없다. 타임키퍼도 타임키퍼지만, 우선적으로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김우혁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자기가 제 아버지 동료였다면서. 그리고 저한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가르쳐 줄테니 같이 1구역에 가자 했어요, 시간까지 주면서...”





경수는 말을 흐린 채 뒤를 얼버무렸다. 찬열은 김우혁이 누군지 몰라했으니, 김우혁이 보였던 감정변화까지는 보여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변백현의 친구라고도 자기를 소개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김우혁이 보냈냐고 물어봤던 거구나. 근데 변백현은 왜? 도강욱씨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망설여진다. 만약에 변백현이 저도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 했던 제 아버지 이름을 알았다고 말한다면, 박찬열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변백현 친구여서 꺼려지면, 안 말해 줘도 돼. 하지만 확실한 건 난 네 편이 되어줄게.”


찬열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이 밝게 웃으며 경수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다. 당신이 왜. 경수는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는 찬열의 말에 의문이 더욱이 늘어날뿐더러, 자신을 왜 이렇게까지 챙겨주는지 모르겠다.






“왜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에요?”



“아까 낮에 식당에서 말했었잖아? 마음에 든다고. 그게 다야.”



박찬열은 엉뚱하다. 처음부터 이상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어머니 외에 친구라는 것도 사귀어 본 적도 없었고, 당연스레 제 편이라고는 어머니인 혜진이 다였다. 기뻐도, 행복해도, 슬퍼도 늘 제 곁엔 혜진이 다였는데, 찬열이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기 시작한 경수가 갑작스레 굵은 물방울들을 흘리기 시작하며 입을 꾹 다문 채 울었다. 12구역이랑 아까 공원에서 다 내보낸 줄 알았던 눈물들이 쉴 새 없이 다시한번 세차게 나온다. 경수를 보는 찬열마저 기분이 묘해졌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찬열의 안에서 맴돌았다. 아빠 다리를 하고 있던 찬열은,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숙인 채 경수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경수 네가 내 부모님을 죽인 원수만 아니라면, 난 무엇이든 네 편이야. 약속할게.”




일부로 장난스레 경수를 위해 웃으며 말을 건넨 찬열은 경수를 일으켜, 아무도 쓰지 않고 있던 손님방에 경수를 넣은 채 푹 쉬라고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힘들었겠지. 이해한다. 문을 닫고 나온 찬열은 그대로 방문에 등을 댄 채 천장을 바라본다. 하아. 처음에는찬열이 어릴 때 봤던 아이가 아른거려 경수의 옆에서 서성거리면서 재미를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호수 앞에서 울고 있던 경수를 보았을 땐, 찬열은 처음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먼저 우는 경수를 넋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듯이, 그리고 마음을 누르는 듯이. 그때 깨달았다, 어릴때 그 이름 모를 아이도 아닌 그저 경수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







박스안에 고롱 대던 세훈을 안아 들고 방 안에 들어가 찬열이 침대 끄트머리 쪽에 앉고, 옆에 세훈을 내려놨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찬열을 보고 세훈은 그대로 찬열의 뒤로 사뿐히 걸어가 사람으로 변해 찬열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너 아니지?”
“뭐가.”
“좋아하는 거. 쟤. 경수라는 애. 박찬열, 네 눈빛 이상해. 나 그런 거 싫어.”

졸음이 한껏 묻어난 목소리로 칭얼거리는 세훈의 목소리를 들은 찬열은, 그대로 손을 어깨 뒤로 뻗어 세훈의 머리를 애정이 어리게 만져준다. 그런거 아니야. 나른한 찬열의 목소리에 세훈은 계속 찬열의 등을 기댄채 얼굴을 끄덕인다. 그 말 지켜야 해. 말을 마친 세훈은 다시 고양이로 돌아와 킹사이즈인 침대 안쪽으로 들어가 그대로 잠을 잘 자세를 취했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대충 세훈이 잠자리로 간 걸 예상하고 찬열은 조심히 일어나 경수의 방문 앞에서 그가 잠들었는지 앞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안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에, 찬열은 경수가 다시 우는 줄 알고 문을 살포시 열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자면서 한쪽 손을 작게 뻗은 채 그저 흐느낄 뿐이였다. 마치 누군가의 손의 온기를 원한다는 듯이. 찬열은 작은 의자를 경수의 침대 옆에 놓고, 그대로 경수의 손을 잡아줬다. 언제 흐느꼈냐는 듯이, 찬열이 경수의 손을 잡자마자 숨소리는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찬열은 손을 잡은 채 경수를 내려보았다. 창문 밖이 푸르스름해 질 때까지.








--







찬열과 경수를 그대로 눈앞에서 멀어지는 걸 본채 욕을 내뱉고 차로 돌아온 백현은, 그대로 자신의 비서인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폰에는 김민석의 부재가 여러 개 띄어져 있었지만, 백현은 개의치 않았다.


“형, 사람 좀 알아봐 줘.”

“변백현! 호텔에서 그대로 뛰쳐나가더니, 혼자서 어딜 간 거야?!”



찬열이 경수를 뒤쫓아 가는 걸 보고, 자신 또한 빠르게 일어난 일에 당황스러워하다가 그대로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채 백현도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 아마도 기사가 떴을 것이다. 찬열은 백현이 어릴때 이후로 뛰는 걸 본적이 없었는데, 뛰었고, 백현 또한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으니 말이다.





백현은 호텔 밖으로 나와 찬열의 차를 뒤따라 가고 있을 시점부터 이미 비가 억세게 내리고 있어서,
차안에 우산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급한 대로 공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싸구려 우산을 사고 찬열을 따라갔을 땐, 이미 찬열은 도경수를 우산과 자신의 옷을 씌운 채 데려가고 있었다.





분한 마음에 욕지거리를 내뱉고 차 안으로 돌아와 클락션을 세게 여러 번 내리치듯 눌렀다. 도경수를 좋아하나? 아니다. 그럼 왜 자신은 찬열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났으며, 한번 보고 말 사이인 도경수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전화속에서 민석은 회사 이미지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잔소리를 시작했지만, 백현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참았다.




“형, 공과 사 구분하자.”




민석은 백현의 낮은 목소리를 듣자, 아차 하고 시정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누구를 찾을까요 하고 물어왔다. 민석이 백현과 안지는 어언 10년이 넘어갔지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하는 백현이기에, 민석 또한 일이 아니면 백현에게 조언을 잘 해줄 수 있는 형 같은 존재였지만, 일에 관련돼서는 칼 같았다.




“도경수라고 찾아봐. 1구역 사람인데 아닌 거 같기도 해.”



“신상만 알아오면 될까요?”




민석의 질문에 백현은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아니. 다 알아와. 걔 관련된 거는. 전부.”







--








햇빛이 얼굴을 내리쬐는 바람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경수는, 그대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을 땐 놀래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세훈이 경수의 배 위에 그대로 앉아 경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에 물고 있던 포스트잇을 경수의 가슴팍 앞까지 걸어와 내려놓고, 자기 일은 끝났다는 듯이 경수위에서 침대 아래로 폴짝 가뿐히 뛰어내려 그대로 방을 나섰다. 경수는 놀라 뒤로 다시 넘어갔던 상체를 일으켜 세훈이 가져다준 포스트잇을 보았다. 아침에 막 일어나 보려니 눈앞이 침침해 인상을 찌푸린 채 보았다.






경수야, 나는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봐야 해서 먼저 나갈게. 도움 필요하면 세훈이 시켜. 말은 해 놨으니깐. 밥도 식탁에 준비해 놨으니, 먹고 집안에서 편히 쉬어. 아무거나 건드려도 상관없으니 저녁쯤에 봐!







찬열이 열심히 눌러썼는지 포스트잇에 쓰여 있는 글자들에 힘이 들어가 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찬열의 음성이 지원되는 거 같았다. 작은 조소가 흘러나온 경수는 얼굴을 비빈 채 창밖을 보았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밖은 화창했다.





찬열이 내어준 게스트룸은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방안에서 준비를 마친 경수는 그대로 방 밖으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었지만, 둘이 사는 집 치고도 상당히 넓고 깨끗했다. 역시 1구역 사람인가. 천천히 발을 끌며 주방 쪽으로 갔을 때는 어느새 사람으로 변해있는 세훈이 다인용 식탁 의자에 앉아 가만히 턱을 괸 채 앉아 있었다. 뭐해? 안 먹어?

세훈의 반대쪽 의자를 꺼내 앉아, 경수는 세훈을 마주한 채 앉았다.




“고마워.”


“박찬열한테 고마워해야지.”


심드렁하게 대답한 세훈은 그대로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마 찬열이 세훈에게 저랑 밥 먹으라고 해놨겠지. 묵묵히 밥을 먹다 말고 세훈이 대뜸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넌 왜 나한테 반말해?”
“…?”





뜬금없는 세훈의 질문에 경수는 밥 먹다 말고 무슨 소리인가 하고 생각했다.




“찬열씨 말로는 아직 성체도 아니라고 들어서, 나보다 많이 어린 줄 알고 놨는데. 처음엔 존댓말 써줬잖아.”


“근데 찬열이한테는 존댓말 하잖아.”


“찬열씨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깐.”

성체처럼 보이지만, 아직 성체도 되지 않은 세훈은 카운트 바디시계도 시작조차 안 하여, 자연히 찬열에게 허락받아 말을 놨지만, 세훈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경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세훈은 밥먹다 말고 경수를 노려봤다. 경수는 그런 세훈을 신경 안 쓴 채 멈추었던 젓가락질을 다시 시작했다.



“나도 말 놓을 거야.”




질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은 세훈의 인해 경수는 처음으로 1구역에서 와서 제대로 웃기 시작했다. 경수가 웃자, 빈정상한 세훈은 그대로 왜!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경수는 계속해서 웃었다.




“귀여워서.”

“뭐가.”

짜증이 잔뜩 서린 말투로 세훈은 계속 틱틱 댔지만, 어린아이의 티를 확실히 벗어내진 못했다. 처음부터 야,  너 했으면서, 이제 와서 자기도 반말하겠다고 하니 안 웃을 수가 있나.



너 미워. 라고 말을 하고 다시 세훈은 열심히 수저 질을 시작했고, 경수는 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세훈이였어도 귀여웠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








밥을 먹고 나서 경수는 방안 책상 위에 준비해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경수가 도어락 쪽으로 다가가자, 세훈이 어느새 경수의 뒤에 왔다.



“어디가?”


“그냥 밖에 좀 둘러보려고.”


“집에 있어. 찬열이가 나가라고 옷 준비한 건 아니야.”

어딘가 날이 선 채 말을 잇는 세훈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경수는 세훈을 무심한 척 말을 내뱉었다. 너도 같이 가던가. 경수의 말에 세훈은 금세 눈에 띄게 밝아지며 자기는 가기 싫었지만 너를 위해 가준다는 둥 핑계를 대며 자신의 옷장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참 쉽다니깐.




예상밖으로 세훈이 옷을 바꿔 입으러 옷장쪽으로 간 줄 알았던 경수는 세훈의 손에는 달랑 모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세훈이 천천히 걸어와 갖고 온 모자를 경수 쪽으로 내밀었다.



“1구역 사람 아니라며. 여행객도 아닌거 들키면 위험하니깐 이거 써.”




무심한줄로만 알았는데 세세한 배려로 모자까지 챙겨준 세훈에게 고맙다고 말을 전하려던 찰날 세훈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고양이로 변해 있었다. 아마 1구역 사람들이 반려묘랑 산책 정도로 하는 거 처럼 보이게 한 걸 것이다. 세훈이 작아지면서 널브러진 옷들은 들어 집안에 갖다 놓은 채 다시 나왔다. 내색은 안 하지만 챙겨줄 거 다 챙겨주는 세훈이 덕분에 경수는 나름의 좋은 의미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지만, 오히려 할큄을 당할 뻔 했다.








세훈과 여유롭게 오피스텔 쪽 거리를 거닐다, 찬열의 집이 제가 머물려고 했던 호텔과 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수는 천천히 1구역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관찰하며 어떻게 하면 그들과 달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세훈은 열심히 그런 경수를 따랐다.






이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세훈과 경수는 저택가 쪽으로 걷고 있기 시작했다. 더 이상 멀어지면 돌아가기 힘들려나 생각이 들었지만, 세훈이 있어 그다지 문제가 없겠다 싶다. 주택가는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경수는 천천히 걷다가 문뜩 세훈이 힘들까 그를 쳐다봤지만, 세훈이는 아무렇지 않았는지, 그저 한번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고 앞으로 걸었다. 12구역에서는 절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집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러다 어느순간부터 주택가의 안쪽으로 들어오자 낯설었던 감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양옆으로 돌려가며 집들을 더 세세하게 보면서 경수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세훈이 다급하게 경수의 발치 앞에 섰다. 경수가 걸음을 멈추자, 세훈이 경수를 올려다보았지만, 흔들리는 경수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세훈은 지금 자신이 고양이의 모습이라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답답한 마음에 경수의 발 앞쪽을 다치지 않게 살살 긁었지만, 경수는 미동이 없었다.





세훈은 경수가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저 눈앞에는, 1구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주택이 있었다. 아, 어쩌면 주택은 흔했지만, 이렇게 큰집은 흔치 않아서 경수가 안 움직이나 싶기도 했다. 세훈은 경수가 1구역이 처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십몇 분을 가만히 서 있었을까, 경수의 뒤로 차가 온 지도 모르고 경수는 계속 문앞에 서 있었다. 세훈이 경수한테 차가 왔다고 알리고 싶어 계속해서 울어댔지만, 경수는 차에서 사람이 내릴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차에서 누군가가 내려서 경수쪽으로 다가왔다. 세훈은 경계태세를 취했지만, 정신이 멍하니 빠져있던 경수는 누군가의 인해 어깨가 돌려졌을 때야 뒤에 사람과 차가 와있었다는 걸 알았다.



“당신 뭡니까?”

정장차림을 한 남자는 날카롭게 물어왔다.

“…”

경수는 아무말 하지 못하고 쭈뼛대며 서있었다. 손님이 아니라고 생각한 남자는 그런 경수가 답답했는지 무력으로 경수를 옆으로 밀치자, 경수의 몸이 휘청이며 모자가 조금 벗겨졌다. 세훈은 놀래 경수의 발 쪽으로 다가가 지탱해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순간 차 쪽에서 달칵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내린채 성큼 경수에게 다가왔다.







“도경수?”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변백현이였다. 백현을 알고 있던 세훈은 놀래서 멀뚱히 그들을 쳐다보았고, 백현이 경수쪽으로 다가와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생각났다. 이 집.

그리고 변백현.








“도경수, 네가 왜 여기 있어.”

백현이 질문을 해오지만, 경수의 머리는 이미 무언가 하나씩 차곡차곡 기억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낯설지 않은 이 주택 앞이랑, 주택 안에 있는 큰 정원. 그리고 겨울이든 여름이든 상관없이 무성하게 피어 있던 파란 장미들. 변함없다.




백현이 한 걸음씩 더 다가오자, 경수는 그대로 뒤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있지, 내가 너에 대해 알아봤어. 근데 너에 대해서 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 말이 돼? 난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

"더군다나 1구역 사람이 아니면 그 많은 시간을 소지하기도 힘들텐데 말이야."




경수의 정신이 점점씩 또렷해졌지만, 앞에서 다가오는 백현으로 인해 다시 한번 눈앞이 흐려졌다.



또 그 눈이다. 계속해서 백현의 머릿속에서 아른거리던 경수의 눈빛이. 낯선 듯, 익숙한 듯.







“ 너 나 알아?”
 경수는 도리질했다.







“근데 난 왜 네가 익숙하지?”
괴롭다는 듯이 경수를 쳐다보는 백현은 더욱 더 경수에게 다가갔다.







정원의 문 앞쪽까지 도달한 경수는 더 이상 뒤로 갈 수 없다는걸 깨달았을 때, 백현의 얼굴이 한번에 경수의 앞으로 다가오자 놀래서 그대로 뒤로 한발자국을 더 내딛자, 정원의 문턱 때문에 뒤로 넘어졌다.








그 순간 백현이 경수의 앞으로 무릎 한쪽을 꿇은 채 앉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경수의 턱을 잡아 자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넌 내 집에 넘어왔어.”

백현은 경수의 눈에서 두려움이 읽혔다.











“그리고 넌 1구역 사람이 아니지.”

질문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런 경수는 왠지 백현의 다음 말이 알거 같았다.


“그러니, 이젠 너는 내 소유야.”






“도경수.”












너는 어쩜 예전이랑 다른게 없을까.


















--

으아아... 안녕하세요ㅠㅠㅠㅠㅠ 빨리 온다 해놓고 참 빨리온 펭귄입니다. 허허 ...허허...더 이상 미뤄두면 아예 4편을 평생 못 올리겠다는 생각에 새벽에 밤을 지새우며 썼습니다.. ㅠㅠ 다음엔 진짜 더 일찍 갖고 올게요..ㅠㅠㅠ 따흐ㅡ흐흑


그리고 찬세를 고민중인데 찬세를 이어갈까요. 아니면 럽라인을 그냥 백도 (찬)으로 끝낼까요.. 의견을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ㅠㅠㅠㅠ


+사족을 덧붙입니다.

아이스피치는 처음부터 나중에까지는 쭉 이어는 지는거에요.. 전개때문에 찬디를 뺄 수 가 없거든요ㅠㅠ 그렇다고 바로 찬세로 가는건 아니고 세훈이가 애정이냐 아니면 그 이상이냐를 정하는거에 고민이 있었던 거랍니다.ㅎㅎ (덧글 남겨주신분들 감사해요) 아이스피치는 계속 이어집니다!//




참..사랑과 피드백으로 먹고삽니다<3 마니마니 남겨주세요 '3'!!








구. w은연 입니다.

펭귄 브라더스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