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이후 사이좋은 어벤저스   인워가 없는 세계관

※날조주의※






[토니피터] Minor Upgrade




 15






"대체 꼬맹이랑 장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참이나 말없이 턱 가를 만지며 서있던 토니가 꺼낸 첫 마디였다. 해피는 긴장의 침을 삼켰다. 대답하는 방법에 따라선 피터를 장관에게서 떼어내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벌써부터 그는 속으로 변명을 만들어내느라 바쁘다. 몇 번이고 아이를 라운지에서 데려나가기 위해 사투한 자신을 누가 알아줄까. 장관의 입에서 스파이더맨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로스가 돌아가고 나서도 토니는 굉장히 기분이 언짢음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거기다 피터까지 들먹였으니 그의 심기가 불편한 것도 당연했다.-토니의 눈이 집요하게 답을 바랐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 상황에서 최대한 피해 입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을 익혀낸 해피 호건은 여유롭게 눈썹을 까딱였다. 



"직접 보시지 그래요?"

"아니, 열만 받을 거 같아."

"또 모르죠."



해피는 토니에게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길 권했다. 아까 통화할 때도 그러더니 대체 뭐야? 토니는 해피가 풍겨대는 자신들끼리만 안다는 분위기가 영 기분에 거슬렸다. 프라이데이, 소리까지 같이 재생해. 업스테이트 내에선 음성이 함께 들리는 녹화 영상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곧 휴대전화 스크린 위로 그가 설정한 구간의 영상이 떴다. 정말 피터와 스콧은 얌전히 오렌지나 먹고 있었다. 그 뒤로 허둥지둥 해피가 뛰어 들어왔고 피터를 올려 보내기도 전에 장관이 라운지에 도착했다. 몇 번이고 피터를 끌어당기는 해피의 노고를 직접 확인했고-해피는 당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토니는 괜히 힘을 더 기르라는 둥 한마디 했다. 



'스타크 인턴십? 그 밑에서 배우니 알만하지. 아주 쏙 빼닮았어, 건방지고 상황도 못 가려. 미래가 참 유망하군.'



"이 노친네가 지금 뭐래?"



예상대로 성질만 긁는 발언들이 과연 로스였다. 국민의 안전이니 나라의 평화니 그전에 말하는 모양새 먼저 고쳐야 할 거다. 절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젠가 토니가 그렇게 말했더니 제임스의 반응은 미묘했다. 그걸 네가 말하는 거야? 대체 무슨 의미인지, 토니만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고 고로 열을 내는 쪽이 손해이기 때문에 일단은 소코비아협정 건으로 을의 입장인 토니는 어른답게 참아 넘길 생각이었지만 영상 속 꼬마는 그렇지 못한 듯했다. 정말 저러다가 장관을 한대 치는 게 아닌가 조금 긴장할 정도로 기세 좋게 피터는 해피를 뿌리치고-피터가 사실 그런 강심장이 못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는데 인간의 본능이 그랬다. 정녕 아이는 그 초인적인 힘도 잃었는데. 하지만 그가 건물 기둥 하나 그냥 부수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자라면 그 반사적인 긴장을 이해할 것이다-성큼성큼 다가가선 딱 한마디를 던진다. 왜 인지 해피가 뿌듯한 눈을 지었다.



'최고의 칭찬이네요. 스타크씨 같은 사람이 될게요, 장관님.'



"...."

"제법 잘 컸죠?"

"...크긴 무슨. 어른들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들어."



그러나 토니는 한순간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크흠, 손바닥으로 입가를 쓸어내리며-정확히는 감추며- 해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얘 지금 어디 있는데? 자기 방이요. 참, 헬스 트레이너 붙여줄게, 꼬맹이한테 힘으로 지면 곤란하잖아? 자신이 불리해질 성싶으면 말을 돌리는 건 토니의 버릇이었다. 기뻐서 웃은 게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해한다는 듯 해피가 오히려 온화한 미소를 띠자 토니는 한마디 덧붙였다. 난 진지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경호원이 그러면 쓰나. 그는 이내 영상을 지우며 라운지를 벗어났고 해피는 그 몰래 승리의 주먹을 쥐었다. 어쨌든 불똥 안 튀고 조용히 넘어간 것에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 후에 정말로 트레이너가 붙을 줄은 그도 몰랐지만.



토니가 피터의 방으로 올라갔을 땐, 복도에서 스콧을 마주쳤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전화를 든 채 한숨을 쉬고 있었고 스피커를 켜놓지도 않은 전화에서 쩌렁쩌렁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벙긋 연 스콧은 복도에 삐딱하게 선 토니를 발견하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끊어요, 하고 상대의 동의도 없이 전화를 종료해버렸다. 



"그거 당해봐서 아는데, 후폭풍이 더 심할걸."

"이미 토네이도 급이라 달라질 건 없을 거야."



그것도 대형. 스콧이 익숙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성질머리는 여전한가 보군? 스콧은 통화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가 행크 핌 박사란 것을 추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글쎄, 호프 말로는 많이 죽었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 날 반죽음으로 만들 정도 밖에 안된다는데 왕년의 행크를 만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수트라면 내가 봐줄 수도 있어."

"오, 그것만은 그만둬. 난 천재 과학자들의 수준 높은 전쟁 따위 보고 싶지 않으니까...또는 목소리 크기 대결이라던가."



뭐든 내 승리겠지. 내가 더 똑똑하고 내가 더 젊고. 토니는 심드렁히 말했다. 행크가 스타크라는 이름 하나에 길길이 날뛰는 것에 반해 정녕 토니는 별다른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토니도 그리 행크를 마음에 들어 하진 않는 눈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악감정이 얽힌 사이도 아니니까 쉽게 말해 무관심이었다. 그래, 자기를 헐뜯으려 안달 난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 하지만 감히 아이언맨의 아머를 장난감으로 비유한 것을 안다면 토니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스콧은 행크의 수트를 입고 개미만큼 작아져 동굴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럴게, 그 두 사람을 무슨 수로 말리겠는가. 



곧 스콧의 시선이 피터의 방으로 꽂혔다. 잘 하면 스타크를 말려줄 한 명은 있을지도 모르겠네. 픽, 스콧은 웃었고 토니는 미간을 좁혔다. 왜 웃지? 아마 토니는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고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스콧은 빠르게 정정했다.



"그때 독일에서 꽤나 좋은 발차기를 한다 했더니 아주 훌륭한 아이더라."

"그럼, 누가 데려온 건데. 



그래도 아서, 그 말 듣고 더 나서려고 하면 나만 골치 아프니까. 토니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토니는 우연이든 아니든 오늘 일을 도와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했다. 스콧은 조금은 감격한 눈으로 토니를 바라보았고-스콧이 생각하는 토니 스타크란 인간은 그리 쉬이 감사를 표하지 않는 자였기 때문에-아주 짧게 악수를 한 토니는 부러 손을 탁탁 털었다.



"다음엔 저녁 식사에 초대할게, 개미 양반. 원한다면 작아지는 물약이나 커지는 케이크 정도는 준비해두지."

"난 하얀 토끼의 팬이야. 캐시가 참 좋아하거든."

"그런 건 안 키워. 웬 거미면 몰라도."



토니는 스콧의 어깨를 툭 두드리곤 돌아섰다. 때문에 그는 다소 놀란 스콧을 보지 못했다. 스콧은 어쩐지 토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그러니까 정말로 어디서나 평범히 자식 생각을 해버리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것은 스콧에게 있어선 행크의 꾸준한 스타크 가에 대한 세뇌에도 토니 스타크는 나름 좋은 사람이다,라고 조금 기울어버릴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다. 왜 그렇게 피터가 그를 따르는지도 이해되었다. 로스 장관이 돌아갈 때까지, 피터가 방 안에서 토니의 이야기만 주절거렸단 걸 그는 절대 모를 것이다. 상상대로 어벤저스는 참 좋은 곳이군! 오렌지도 비타민도 완전히 보충한 스콧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잖아, 토니 스타크! 속으로 웃으며 토니에게 엄지를 척 세운 후 가벼운 마음으로 본부를 떠났다. 다가올 후폭풍은 잠시 잊기로 하며.




"스타크씨! 언제 오셨어요?"

"방금."



스콧이 나간 후, 침대 위로 액체처럼 흐물흐물 늘어져 있던 피터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무언가를 두고 간 스콧이 아닌 토니인 것을 발견하고 오뚝이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에서 뒹군 건지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 위로 붙여 놓은 거즈가 덜렁거렸다. 굳이 일어설 필요 없다 제지하고 자신이 일전에 준비해준 소파에 털썩 앉아 소파의 팔을 툭툭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침대 끝에 정 자세로 걸터앉아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던 피터는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토니의 이름을 부른다.



"저..스타크씨."

"어어- 나 먼저."



토니는 손가락을 세워 피터의 말을 막았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턴 토니는 피터를 향해 꺼낼 첫 마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끝없이 주입식 교육을 펼쳤던 브루스나 나타샤 그리고 늘 착한 말을 따지던 스티브가 기뻐할 소식이었다. -토니, 고운 말 써야지. 오, 토니 제발. 좀 더 다른 방식이 있었을 텐데!



"로스 장관에 대해서 주의를 주지 않은 건 나지만, 해피가 말리면 얌전히 돌아갔어야지."

"죄송해요. 완다나 스타크씨를  나쁘게 말하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



아이는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사과했다. 그렇게 곧바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니 토니도 그 이상 잔소리를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원래도 이렇게 수월했던가. 그러니까 좀 더 티격 대지 않았던가. 며칠 전만 해도 나도 얘도 좀 더 유치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던가. 토니는 묘한 의문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러자 피터가  토니의 의문 가득한 얼굴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침대에서 기어코 엉덩이를 떼어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으, 혹시 저 때문에 스타크씨가 곤란해지셨나요?"

"..뭐? 아니. 별로. 그런 걸로 내가 곤란해질 리가 없잖아."



토니가 어색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피터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거봐, 이런 일로 혼자 이렇게 걱정하는 놈인데. 용케 그가 장관을 향해 큰 소리를 높였다 싶었다. 최대한 장관의 눈에 띠지 않길 바랐지만 결과적으론 로스에게 찍힌 꼴이었는데 그럼에도 토니는 피터를 다그치려는 마음보다도 뭐랄까, 장하다고 할까, 근질근질한 속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토니는 두 손을 맞잡으며 소파에서 일어섰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피터를 다시 침대에 앉혔다. 옆으로 좀 가봐, 앉을 거야. 처음 만난 그날처럼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은 모양새는 되었는데 토니의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꼬마야."

"네."

"..좋아, 그래, 인정할게.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어쨌든 정답이었어."

"..네?"

"그럼 정답이고 말고. 당연히 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누구야? 천재, 억만장자, 박애주의자, 플레이보이. 물론 마지막은 빼도록 하고. 네 미래를 위해, 이해하지?"

"엄..다른 부분도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물론 전 스타크씨를 존경해요!"

"그 꼰대 영감탱이나 정의밖에 모르는 왕 근육 군인보다야 내가 훨씬 롤 모델로 적합하단 거야."

"그런데 롤 모델 이야기는 갑자기 왜....헉, 설마...보셨어요?"



뒤늦게 눈치챈 피터가 입을 쩍 벌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토니는 휴대전화를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마치 캡틴 때처럼 놀려먹을 걸 발견했다는 듯 영상을 띄웠다. 



"오, 핕. 네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순간인데 놓칠 순 없지. 걱정 마, 영상으로 길이길이 남겨두고 네가 성인이 되는 날 비디오로 만들어줄게. 감성적인 자막까지 달아서."

"으아아, 안돼요!"



하지만 피터가 손으로 아무리 영상을 지운다 한들, 일시적으로 화질이 흐려질 뿐, 라운지의 모습은 그대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내 피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침대에서 상체를 푹 숙였다. 장난은 이쯤 하기로 하고 토니는 전화를 집어넣은 후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도 다시는 그러지 마. 그 영감이 얼마나 질긴 사람인 줄 알아? 싸구려 소고기보다도 더해."

"..스타크씨 고집보다도요?"

"어허? 누가 그러디?"

"비밀이에요."

"못된 것만 배워서는. 정말로 날 존경하긴 해?"

"100프로요."



샐쭉 웃는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 토니는 싱겁게 웃었다. 해피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참 아이들이란 금방 크네요. 안 그래요? 토니는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도 말이야 잘했지만 언제 이렇게 날 이겨먹으려 들었담. 토니는 손을 뻗어 떨어질 것 같은 아이의 거즈를 꾹 눌러 붙여주었다. 검은 눈동자가 손끝을 따라왔다. 이마를 한번 튕기자 피터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토니가 침대에서 일어섰고 매트리스가 가볍게 진동했다.



"일찍 자야 키 큰다."

"이제 해가 지는데요?"



피터가 작은 창문 밖을 가리켰다. 막 해가 지면서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각, 그럼에도 토니가 그런 말을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토니는 뚜벅뚜벅 피터의 방을 나가다 말고 다시 절반 정도 문을 열어 쑥 상반신을 밀어 넣곤 한쪽 눈을 빠르게 찡긋거렸다. 느리게 감기를 한 것처럼 토니의 입모양이 늘어졌다. 부드럽게 닫힌 문, 토니가 떠나버린 곳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피터는 한참 후에야 현실을 깨닫고 뒤늦은 대답을 내질렀다.



토니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턴 등교야, 파커군."





.





[뭐? 학교에 온다고?]

"응. 그런 거 같아..그래서 지금은 가방을 싸는 중이야."



피터는 목과 어깨 사이로 새 휴대전화를 끼고 분주히 가방으로 물건들을 밀어 넣었다. 액정이 완전히 나가는 바람에 정말로 고물이 된 피터의 구닥다리 폰을 대신해 토니는 해피를 통해 새로운 기종의 전화를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물론 해피의 손에서 던져진 건 휴대전화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가방부터 새로운 필기구 거기다 새로운 물통까지. 아니..제가 쓰던 가방은요? 랩실에 있던데..그러자 해피가 푹 인상을 구긴다. 사장님이 보자마자 질색을 하시면서 내다 버리셨어. 정말 이것들을 다 받아도 되는지 감탄이 섞인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예상한 듯 해피는 돌려줄 생각을 해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단호히 소리치곤 사라졌다.



[그럼 이제 몸은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그것도 잘 모르겠어. 똑같은 거 같은데. 벽을 다시 쳐볼까?"

[음..피터, 그건 그만두는 게 좋겠어. 그나저나 '다시'라니? 너 정말 벽을 치기라도 한 거야?]

"멍청하게 들리겠지만 그래."



피터는 토니가 나간 후 방으로 찾아온 의료팀이 다시 감아준 손의 붕대를 힐끗 보았다. 하지만 피터로썬 힘이 돌아왔다는 증거로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곤 정말로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일뿐이었는데, 전적이 있는 만큼 이곳의 어느 누구도 그 행위를 허락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스타크씨가 학교에 가도 된다 했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피터조차 불확실했으니 네드가  할 말은 따로 없었다. 그건 그래, 그 토니 스타크잖아. 대체로 토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네드의 반응은 이와 같았다. 



"근데 메이의 일은 어찌 된 거야?"

[친구, 인간이라면 긴 삶을 살다 보면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지. 난 그저 나의 베스트 프렌드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뻔한 거짓을 고할 수 없었어. 정직, 신뢰. 중요하잖아.]

"뭐, 됐어. 일단 해결은 됐으니까...아마 낮의 폭발사고 때문에 숙모의 머리에선 스타크 인턴십이고 뭐고 다 날아갔을 거야."



네드는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메이에게 털어놓은 것들을 실토했다. 하지만 정말로 A 타워의 사고 때문에 메이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린 덕에 당분간은 큰 의심을 받지 않을 듯했다-비록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나 걱정으로 가득 찬 그녀의 한탄을 장장 1시간 동안 들어야 했지만. 세상이 이렇게 위험해서야! 항상 조심해야 해, 알겠지, 아가? 



앞으로 비밀은 영원히 지킬게, 무덤까지 가져갈게. 이어지는 그의 근엄한 한마디에 피터는 대충대충 대답했다. 학교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스타크 인턴십을 핑계로 빠져먹었던 시험이나 과제들을 전부 해야 했다. MJ는 네가 보나 마나 만점일 거라며 화를 내더라. 피터는 그것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그런가? 열의 없이 대답했다. 며칠 만에 돌아가는 학교가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또 걱정도 되어 네드의 수다가 튕겨져나갔다. 만약 지난번처럼 학교에서 치타우리 파워를 닮은 폭탄이라도 발견을 한다면? 주변에서 오늘 같은 사고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아직 난 힘이 없는데. 



[듣고 있어, 피터?]

"어? 미안, 뭐라고 했어?"

[너 괜찮은 거 맞아? 영 목소리에 힘이 없어.]

"그냥..왜 학교에 그런 게 묻혀있었던 걸까 신경 쓰여서."



네드는 큰일이 나지 않았으니까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피터를 다독였다. 피터는 지이익 가방 지퍼를 닫았다. 내일 보자, 네드. 인사를 마지막으로 피터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직 휑한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비척비척 침대로 엎어졌다.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한 물체가 눌렸다. 얼굴을 이불 위에 박은 채로 피터는 손가락만 힘겹게 주머니로 찔러 넣었다. 손가락에 걸려 나온 예비 웹슈터를 의미 없이 몇 번 손바닥 안에서 굴렸다.



피터는 당연하게 하던 생활이 문득 그리웠다. 그러니까 특별 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별안간 피터는 마치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에 붙은 창문을 열었고 몸 하나가 통과할 크기의 창문 틀 사이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이젠 완전한 밤이 되어 보이는 것은 가로등과 불이 켜진 업스테이트 건물이었다. 제법 부는 사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피터는 바깥의 벽으로 거미줄을 쏘아 올렸다. 마치 줄에 매달려 암벽 등반을 하듯이 피터는 조심스럽게 창문에서 발을 떼어내 거미줄을 꽉 붙잡았다. 힘은 돌아오지 않았다. 팔 근육이 팽팽하게 당겼고 어깨 부근이 시큰거렸다. 오른손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며 힘을 내지 못했다. 건물 밖의 바람이 이렇게 위협적이었던가, 목덜미가 서늘했다. 그럼에도 피터는 몇 분간 거미줄에 매달린 채 버텼다. 숨이 찼고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돌아본 저 아래의 바닥은 멀다 못해 컴컴했다. 코 끝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손을 놓을 용기는 없었다. 



그는 다시 창틀에 발을 걸쳤고 매끄럽게 하반신을 넣은 후 그곳에 걸터앉았다. 밖의 거미줄을 떼어내고 맑은 공기를 크게 들어마신 후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 방안으로 머리를 옮겼다. 그럼과 동시에 딱 눈이 마주친 토니를 보고 화들짝 놀라 쿠당탕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토니는 팔짱을 낀 채, 아무말 없이 의미 없는 제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 언제 오셨어요?"



머리가 엉망이 되어선 바닥에 앉은 채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뭐 하는 거냐, 제정신이냐 쏟아질 줄 알았던 쓴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냥 깊은 눈으로 말없이 한참을 서있던 토니는 다가와선 손을 내밀었다. 피터는 처음엔 그가 말을 하지 못할 만큼 화가 난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지 않아 왜 이러지, 혼나는 것에도 익숙해졌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답을 알았다. 조용히 웹슈터를 그의 손으로 건네면서 눈치를 살피는 피터의 앞으로 토니의 반대쪽 손이 내밀어졌다. 



"이게 뭐예요?"

"며칠 안 봤다고 잊었나 보지?"



새 웹슈터를 보는 순간, 피터는 방금 전의 침울한 기분을 잊고 탄성을 내질렀다. 오, 그럴리가요, 스타크씨! 정말 제가 이 웹슈터를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완전히 예비 웹슈터를 다시 압수당했다고 생각했는데 피터는 다시 손에 넣게 된 고성능의 웹슈터-피터가 손수 제작한 예비 웹슈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를 소중하게 손에 꼭 쥐며 토니를 반짝이는 눈으로 콕콕 찔렀다.



"수트는 아직 안 돼."

"스타크씨이.."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단호하게 선을 그은 토니는 웹슈터를 잘 챙겨 다니라 두어 번 강조했다. 이유가 뭐든 피터는 자신의 오리지널보다 훨씬 길고 힘 있게 뻗어나갈 거미줄에 벌써 설렜다. 토니는 옆구리를 짚으며 창문을 가리켰다. 창문 닫고 자, 쌀쌀해. 그 외엔 별말 없이 그는 슬리퍼를 끌며 문 앞에 섰다. 안녕히 주무세요, 스타크씨! 피터가 해맑게 외치자 끝끝내 토니는 주먹을 꽉 쥐더니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



"속 좀 그만 썩이면 어디 덧나?"



정말이지, 혈기왕성한 청소년이란. 쯧. 피터는 토니가 그 나름 인내했다는 것을 느꼈다. 피터는 웃었고 토니도 어깨를 들썩이기만 했다. 이전보다는 여러모로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




"학교로 돌려보내?"



제임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토니의 말을 되물었다. 현장 수습을 마치고 장관이 왔다간 것이 걱정된 제임스는 사건 조사를 위해 움직이기로 한 나타샤와 클린트를 두고 스티브 일행과 먼저 본부로 날아왔고 이미 로스가 한바탕 치르고 떠난 후 토니의 심리상태를 멋대로 추측하며-언제 불뚱이 튈지 모르니 캡, 방패 좀 빌려줘, 농담을 할 여유는 있었다- 해피의 말에 의하면 랩실에 처박힌 토니를 찾았다.



그는 왜인지 스파이더맨 수트의 설계도를 띄워놓고 분주했다. 스티브는 그가 불안을 느낄 때면 이처럼 연구나 정비 등에 몰두한다 덧붙였다. 랩실의 유리 문을 두드리니 토니가 의외로 평온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랩실로 오기 전, 해피가 사장님의 기분은 괜찮을 겁니다, 하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자초지종 듣고 보니 로스가 스파이더맨을 치타우리 코어와 엮었다는데 관련이 있다면 있지만 결코 그가 작당한 것은 아니니 토니가 좀 더 열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평소보다 더 차분한 모습이라 되려 불안했고 흔들리는 제임스의 동공을 본 스티브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토니는 불안할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속삭였다. 아니, 캡은 무슨 토니 스타크 전문 심리 분석가라도 돼? 



"결론부터 말할게. 내일부터 꼬맹이 녀석을 등교시킬 거야."

"학교로 돌려보내?..힘이라도 돌아왔어?"

"아니. 그래도 보내야 해. 아니면 장관이 의심할 거야. 고 깜찍한 놈이 그새를 못 참고 장관의 눈에 들었거든. 그것도 재주야, 어떻게 그러지?"

"네 눈에도 들었는데 그게 뭐가 어렵겠어."



제임스는 별 의미 없이 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토니는 그 대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토니가 피터를 학교로 보내려는 이유는 이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욕 거리에 나타나 사람을 돕던 스파이더맨의 부재를 안 그래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연히 업스테이트에서 마주친 스타크 인턴십 중인 건방진 꼬마가 때마침 학교를 비슷한 기간 장기 결석 중이란 걸 만에 하나 로스가 알게 된다면 그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그것은 토니가 가장 원치 않는 흐름이었다. 그럼 또 그 꼬마를 통제해야 하느니 위험하다느니 시끄러울 게 뻔했고 과연 그 모든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가 견뎌낼지도 확신이 없다. 아니, 토니가 자신이 없다. 그것에 시달리는 피터를 볼 자신이 없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못 되어도 일단 토니는 피터를 학교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 폭발 테러범들이 노리는 게 스파이더 보이라며?"

"나도 달갑진 않아. 임시방편일 뿐이야."

"그 때문에 그와 다른 이들이 위험해진다면 어쩔 건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스티브가 우려를 표했다. 토니는 손에서 만지작거리던 웹슈터를 내려놓으며 언제나처럼 강한 자신감을 비쳤다.

 


"왜 걱정이야, 우리가 있는데."




.




"저...스타크씨...?"

"왜 그래, 꼬마야."



피터는 무릎 위로 다소곳하게 올려놓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느릿하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 생각인데 이게 더 눈에 띄지 않을까요..?"



피터가 땀을 삐질 흘렸다. 토니가 선글라스를 벗어 피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글쎄, 전혀. 평범한데?"



어느덧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곳으로 쏠려있었다. 피터는 고개를 숙이며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어디가 평범해요오....물론 내 기준이지만. 



현재 피터 파커는 생전 타본 적 없는 번쩍번쩍한 슈퍼카 안이다. 그것도 미드타운 고등학교 정문에 버젓이 멈추어선지 5분이 넘었다. 어찌 된 일인가 하면 학교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뜬 피터는 아주 평범하게 이를 닦고 머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여긴 집이 아니라 업스테이트 본부였고 어떻게 학교까지 가지, 새로 주신 웹슈터를 써볼까! 기대에 부푼 순간 경적이 울렸고 눈이 부신 슈퍼카가 그 앞으로 대령되었다. 타. 토니의 한마디였고 피터는 극구 손사래쳤지만 질질 끌려 탈래, 그냥 탈래, 두 가지 선택지에서 피터는 진땀을 흘리며 매서운 눈빛의 압박 속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을 본부 유리창 너머로 지켜본 모두는 피터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박장대소와 함께 활기찬 아침을 시작했다. 샘은 어이쿠, 도련님, 학교 잘 다녀오세요, 집사 말투를 흉내 내며 웃어댔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피터는 몰려드는 시선 때문에 차마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왜, 문이라도 열어줘?"

"헉, 아니요, 제가 내릴게요, 그건 정말..큰일 날 거 같아요."



피터가 주섬주섬 가방을 끌어안았다. 차 문을 열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피터가 꾸벅 인사하고 도망치듯 교문으로 달렸다. 빵, 클락션이 올렸고 창문이 내려갔다. 맙소사, 토니 스타크잖아?



"마치면 데리러 올 거야."

"..스타크씨가요?"

"그거 굉장히 상처받는 발언인데. 나처럼 되겠다며?"

"아악..그 이야기는 그만...그런 뜻이 아니라.."

"아님 뭐, 이 차가 싫은 거면 아머라도 태워줘?"

"엄...그냥 차로 할게요."



토니는 턱짓했고 피터는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들어섰다. 네드는 교실로 피터가 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 토니 스타크가 널 데려다준 거야? 미쳤다, 짱이야. 근데 왜 이리 죽상이야? 피터는 책상으로 엎어지며 낑낑거렸다.



"내가 방해하는 거 같아서. 하실 일이 많으시거든."

"알 것 같아. 그럴게 엄청 바쁘잖아. 어제 사고도 정리해야 하고 회사일도 어벤저스 일도 그렇고."

"..그거 참 깨우쳐줘서 고맙다."



피터가 책상 위로 콩 머리를 박았다. 그렇게 박아서 부서지겠냐? 지나가던 미셸이 코웃음 쳤다.



설마 매번 이렇게 데려다주시려는 건 아니겠지?

...토니 스타크라면 그럴지도. 아이언맨 아머로 등교하면 멋지겠다.

네드, 무서운 말하지 마. 물론 멋진 일이지만, 아이언맨이 웬 고등학교에 꼬맹이 하나 데려다 놓겠다고 아머를 입고 온다니..말도 안 되잖아!

그건 그래.



그날은 하루 종일 토니 스타크의 화재가 아이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1 토니 스타크의 방법




"그래서 어쩔 계획이야?"

"보여줘야지."

"뭘?"

"이 학교엔 토니 스타크가 관심을 두고 있다는걸. 그럼 대놓고 학교를 건드는 일은 없겠지."



제임스는 맞는 말이라 수긍했지만 토니의 미소가 수상쩍다 느꼈다. 어쩔 생각이야...?



그리고 다음날, 토니가 슈퍼카로 피터를 등교시켰다는 소식을 샘에게 전해 듣고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 같으면 저런 차 타고 학교 가면 좋아죽을 거야."

"아니, 과학고등학교에 슈퍼카가 웬 말이야? 이건 가십걸이 아니라 퀸즈의 친절한 이웃 이야기라고."



그렇게 피터의 학교뿐 아니라 어벤저스 내에서도 한동안 시끌벅적했다고.




#2 가십맨



[고등학교에 모습 드러낸 토니 스타크, 역시 숨겨진 자식..]



"정말 이런 쓸데없는 기사는 왜 자꾸 올라오는 거야?"

"조회 수 장난 없네."

"당장 다 지워, 프라이데이."



[Yes, sir.]




#3 스콧과 루이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스코티."

"강력한 토네이도가 나를 덮쳤거든..."

"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바람에 휩쓸려가서 우리 매출도 반쪽이 되었어. 그 큰 건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친구. 지금이라도 스타크사의 보안 카메라를 털면,"

"이봐, 루이스.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어? 뉴스 봤지? 그거 때문에 보안은 더 강화됐을 거야. 이만 포기해."

"그걸 뚫는다면 우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거야, 인건비 걱정도 없고 자재비 걱정도 없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처럼 말이야. 엑스콘 보안 컨설턴트의 이름을 날리는 거지."

"세계적인 범죄자겠지, 멍청히도 감히 스타크사를 상대로 하려한...."



스콧은 쿨럭 기침을 하며 물을 마시던 컵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때 뭐라고 했었지...?"

"오, 이제 관심이 좀 생겼나 보네."

"그게 아니라, 왜 그들이 보안 카메라를 마비시켜야 했지?..혹시 의뢰인 얼굴 기억나?"



그럼, 그때 나는 어느때처럼 사무실에서...루이스의 설명을 들으며 스콧은 경악했다. 그의 촉새 같은 설명은 그날, 골목에서 마추쳤던 폭탄을 가진 두 사람과 거의 일치했다. 



"루이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추석은 잘보내셨나요?? 추석때문에 조금 늦었네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가 갑자기 학원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잠깐 쉬어간다고 생각해주세요♡ 빨리 써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일교차가 커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용! 다음화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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