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e는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켰다. 자신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쉿' 조용히 좀 하라고 하라고 했고, 그녀는 주변을 살펴보니 자신의 큰 소리에 놀라 여기를 쳐다보는 손님들에게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해야 했다. 한편 자신의 손을 덥썩 잡아오며 말하는 그녀에 화들짝 놀란 누뉴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zee를 바라보았다. 


"아.. 그게"

"제가 책을 참 좋아해요! 장르 가리지 않고 소설, 만화책 다 좋아해요!"


zee의 말을 인터셉트하며 아까보다는 목소리를 낮춰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지 그녀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러시냐고 하고 손을 빼낸 누뉴였다. 그런 그에게 어떤 소설을 쓰는지 물어보는 그녀의 눈은 여전히 반짝였다. 웹소설을 쓰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요새는 종이책 안 들고 다녀도 되니 자신도 웹소설 즐겨 본다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 그래 웹소설의 경우 본명을 안 쓰고 필명을 많이 쓰니까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네요! 어떤 작품이에요? 필명은 뭐구요?"

"누나"


그만 하라면서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한꺼번에 질문을 받자 혼란스러워 하는 누뉴 때문이라도 그만하게 해야겠다 싶어 그녀를 한 번 더 말리려고 했지만 누뉴가 그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만 말리라는 뜻이었다.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그의 누나가 책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녀는 zee의 가족이었다. 그를 믿는 것처럼 그의 가족을 믿었고 또,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가능한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zee가 자신의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누뉴...입니다"


누뉴의 답에 그녀의 입이 다시 한 번 쩍 벌어졌고, 이번에는 그 입을 손으로 가렸다. 커다래진 그녀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누뉴? 누뉴?! 그 누뉴?!'라고. 어버버하는 그녀의 반응에 누뉴는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고, zee는 저 누나 왜 저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최근 들어 웹소설을 잘 보는 그녀는 누뉴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하나 같이 다 재밌어서 올라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봤다. 그의 최신작도 그랬다. 완결되고 나서 잠시 쉰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아쉬웠던지. 언제 돌아올지 궁금했지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댓글을 봐도 언제 돌아오나요? 이런 것만 가득했지 언제 돌아오는지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예전에 그의 글을 읽고 너무 재밌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얼굴 없는 작가. 어디에 사는지, 성별은 어떻게 되는지, 실제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작가님..? 정말 작가님이에요?"


그녀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누뉴작가님이 맞냐며. 다시 한 번 그의 손을 이번에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잡아온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떨떠름하게 누뉴가 끄덕였다. zee도 그런 누나의 반응에 놀랐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귀하신 분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와 같은 느낌이었다. 


"저.. 싸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누나 그만해"


주책 맞은 누나에 그는 그녀를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자 알겠다면서 얌전해졌고 누뉴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디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팬싸인회도 전혀 진행하지 않는 그에게 싸인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난감했었다. 순순히 물러나 준 그녀에게 감사했는데 곧이어 다음 질문이 날라왔다. 


"근데 진짜 왜 제 동생 만나세요?"

"누나!"


아니 그렇잖아. 인기 작가고, 한참 어린데 뭐가 아쉬워서 너를 만나냐고. 

그렇게 누뉴는 한순간에 우리 작가님이 되었고, zee는 우리 작가님 앗아간 도둑놈이 되어버렸다. 


-


가지 않으려는 그녀를 억지로 돌려보낸 뒤 zee는 누뉴에게로 왔다. 얼떨결에 만나 진땀 뺐을 그에게 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후'하고 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랬고, 그런 그에게 웃으면서 누뉴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많이 긴장했었던 것 같다. 긴장한 것이 풀리니 조금 피곤했다. 그의 누나를 만나는 것도 이런데 부모님을 만나면 더 긴장하게 될 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이 풀려 약간 늘어진 누뉴를 걱정하는 zee가 우선이었다. 걱정으로 찌푸려진 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저 정말 괜찮으니 걱정 말아요"


누뉴는 웃어 보였다. 정말이다.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정신 없었지만 드디어 그의 가족 중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와 같이 앉아 있는 저 미인은 누구인가 싶었는데 그의 누나라니.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미인이었으니까. 자신이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그의 가족을 만난다는 것에 긴장이 되었다. 그와 달리 통통 튀는 그녀에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분명히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동생을 아끼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을 아끼지 않으면 이렇게 시간을 내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들은 궁금해서도 있겠지만 동생의 애인이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읽었고, 팬이라는 것은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와 별개로 자신의 팬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또 그의 가족이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누뉴가 우리 가족이 되는 것은 환영이에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울게요. 근데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왜 만나요?'

왜 만나냐고 또 묻자 zee는 못하는 말이 없다며 어서 돌아가라고 했지만 누뉴는 웃음이 났다. 그녀는 확실히 재밌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그도 색달랐다. 자신보다 훨씬 연장자인 zee에게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참 귀여워 푸스스 웃음을 터진다.


"누, 왜 웃어?"

"그냥요"


귀여워서 그렇다고는 차마 말 못하고 그냥이라고 이야기하니 zee가 밉지 않게 쳐다보고는 그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확실히 누나는 누뉴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통통 튀는 데 게다가 누뉴라는 것을 알고 더 난리치며 걱정 말라고 하는 누나가 도리어 걱정되긴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할 땐 확실히 하는 그런 여자다. 

'왜 너냐고 아까 물어보니까 너여서 좋다고 하더라. 너의 모든 것이 좋대. 어디 그런 사람 흔하겠어?'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를 배웅해 줄 때였다. 자신이 아는 누나는 대체로 밝고 왈가닥인 면도, 아줌마 같은 면도 있는 사람이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성격 어디 가지 않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너 우리 작가님 속상하게만 해. 아주 죽어!'였다. 누뉴를 좋아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그 정도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누뉴가 그런 말을 했다니 너무 기뻤다. 모든 것이 좋다니.


"사랑해"


그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가 부끄러운지 그가 zee의 이름을 부른다. 세상에 자신처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누나에게도 말했으니 곧 부모님께 만나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 zee였다. 한 달. 그것은 길게 느껴져도 금방 가니 조바심을 내지 말되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


달콤했던 휴식은 끝나고, 누뉴도 이제 본업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휴식은 이미 방콕 여행으로 끝이 나긴 했지만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낫씨와 함께 미팅날짜를 조율부터 했다. 미팅이라고 해야 할지. 회사를 찾아가서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담당자가 찾아왔었다. 회사의 의견들을 정리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건방지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얼굴 없는 작가라는 명분으로 회사 사람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계약 조건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는 것, 즉 비밀유지를 위해 힘쓸 것이 들어가 있었다. 그 조건이 없었더라면 이 회사하고 계약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 회사는 전적으로 작가를 밀어주는 편이었고, 담당자와 작가와 이야기를 해서 결정하는 것에 많이 지지를 해주는 편이었다.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당시 신입이었지만 유망주였던 누뉴를 데려오기 위해 여러 군데서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조건을 무조건 맞춰줬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지금. 지난번 보다 조금은 더 차분해진 낫이 누뉴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기존 담당자였던 맥스씨도 함께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지위에 맞게 확실히 잘 차려 입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승진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담당자는 낫씨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반갑기는 하지만 왜 왔나 싶었다. 차기작을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아직 낫은 신입 편집자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아 같이 왔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누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이 앉자 커피 시키자고 했다. 누뉴가 오는데 고생했는데 자신이 사겠다고 하면서. 낫이 그런 누뉴를 말리려고 했는데 맥스는 그를 저지하고 감사하다고 얘기했고, 둘의 주문을 받아 zee가 있을 카운터로 갔다.


"작가님은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거야"


자신 때문에 방콕에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러자 낫은 '아'하고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난 번에 사겠다고 하는 그를 말리고 자신이 샀는데. 그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눈치를 챈 맥스가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며 그를 다독였다. 그의 말은 대부분 맞았다. 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은 미안해서가 크다. 먼 곳까지 수고해서 왔고 또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하나 빠진 것이 있다. 카운터 앞에 그의 연인이 있고 한 번 더 볼 수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누뉴는 그들의 맞은 편에 앉고, 노트북을 덮으며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맥스와 낫은 그런 누뉴가 준비될 때 까지 기다렸다. 낫에게 있어서는 차기작 미팅은 처음이기에 놓치지 않게 누뉴와 반대로 노트북을 꺼내고 옆에 노트도 같이 준비했다. 


"시작할까요?"


누뉴의 말에 둘은 끄덕였고, 일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한참 이야기 중이었는데 주문한 것이 다 되었는지 zee가 직접 들고 자리로 왔다. 뭔가 입안을 적셔줄 것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렇게 커피와 디저트로 인해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긴 둘은 그에게 감사하다고 했고, 누뉴 또한 zee에게 고맙다고 했다. zee는 그런 그들에게 특유의 미소를 지어주며 맛있게 드시라고 하고 나왔다. 평상시와 같이 누뉴에게 더 다정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그는 일 중이었다. 일을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가 자신의 일을 존중해주는 만큼 자신 또한 그의 일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갈피를 잡고 결정을 했는지 심각하고도 진지한 표정을 지우고 편안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의 일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 흘긋흘긋 시선을 그 쪽으로 주고 있던 zee도 누뉴의 얼굴이 펴진 것을 보니 뭔가 잘 풀렸고, 매듭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연인은. 


"작가님. 예전에 봤을 때 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맥스의 말에 웃으며 '그런가요?'라고 말하는 누뉴는 확실히 밝아졌고, 좋아 보였다. 이전에는 차분했지만 걱정이 될 정도로 어딘가 위태위태해 보였던 그였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것일까.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실례겠지. 개인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였다. 


"근데 여기 커피 맛 참 좋지 않나요?"


누뉴가 꺼낸 말은 굉장히 의외였다. 일 외에는 딱히 말하지 않는 그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나 싶어 놀라웠다. 맥스가 놀라워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지 낫은 그저 해맑게 지난 번에도 맛있었는데 이번에도 참 맛있고 향도 좋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대답에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저 표정은 뭘까. 요새 휴식을 충분히 취해서 기분이 좋은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 싶다. 

뭔가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맥스 앞에 zee가 나타났다. 이 곳 커피향이 잔뜩 베인 사람. 그는 디저트 접시를 내려놓았다. 아까 이후로 주문하러 간 적이 없는데 갑자기 디저트라니. 뭔가 싶어 그를 쳐다보았다. 


"새로 나온 디저트인데 서비스입니다"


참으로 잘 생긴 사람이 미소까지 지으며 정중하게 얘기한다. 클래시컬한 이 공간과 참 잘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누뉴를 쳐다보니 그 또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순 단골 카페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구간이었다. 그의 의심을 깬 것은 또 낫이었다. '정말 맛있겠는데요!' 하며 두 팔을 휘젓는 그는 아까 차분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완전히 긴장이 풀려 강아지 마냥 좋아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30분 정도 뒤에 일어나야 한다고 맥스는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어서 빨리 디저트를 맛보고 가잔다. 그런 그를 보니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한편 카페 주인과 작가는 그런 그가 디저트를 한 입 먹고는 행복해 하는 낫의 모습을 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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