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피터는 학교에 오지 않았어. 토니는 신경 안 써서 피터가 등교를 안 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흘째 되는 날에 알아차린다. 내내 안 왔다고? 이럴 줄은 몰랐는데. 하고 생각하는 토니. 어째선지 떨리던 피터의 손이 자꾸 떠올랐어.

피터가 학교에 나온 건 그 다음날이었는데 그 전과 조금, 동시에 많이 다른 모습이었어. 피터가 그동안 끼고 다니던 뻐킹 도수높은 안경을 벗고 나타났거든. 왜 벗은 거냐는 리즈의 질문에 피터는 안경이 부러져서. 라고 답했지. 야, 벗은 게 훨씬 나은데? 못 알아볼 뻔했어. 너 잘생긴 얼굴이었구나? 리즈의 칭찬에 예상하지 못한듯 피터가 어색하게 웃었어. 장난치지 마, 아무튼 고마워. 두껍고 철지난 뿔테를 벗으니까 콩알만하게 보였던 눈이 확 커지고 인상도 밝아진 건 사실이었어.

토니는 다른 거 하다가 애들 목소리에 피터쪽을 돌아봤다가, 순간 드라마처럼 눈이 마주쳤어. 햇빛을 받아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한 토니는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감각을 느낀다. 피터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멀리 떨어진 창가자리 끝에 앉았어. 뭐야, 피터 파커? 지금 일부러 저러고 온거야? 나 때문에? 무슨 하이틴 드라마도 아니고 진짜?

사실 토니와 헤어진 날, 피터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거미에게 물렸거든. 그리고 집에 가서 울다가 쓰러지듯 잠들었고, 다음날 일어났을 때 시력이 엄청 좋아져있었어. 시력 뿐만이 아니라 힘도 지나치게 세져서 안경을 박살내버렸고 알람시계도 박살내고 문도 박살내고 주변 사물들을 다 부수는 바람에, 이대로는 학교에 갈 수 없겠다고 판단한 피터는 학교에 병가를 내고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에 대해 연구했어. 그러니까 결론은, 토니 때문에 안경을 벗은 건 아니라는 뜻이야. 하지만 토니에게 자의식 과잉은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피터는 며칠간 너무 힘들었어. 토니 스타크한테 장난감처럼 버려진 것만 해도 힘든데 이런 일이 생겨서 더 괴로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할 상대가 없었어. 만약 토니가 진심으로 피터를 좋아했다면 전부 털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아니었으니까. 말그대로 죽고 싶었어. 눈을 뜨면 달라진 제 모습, 과도하게 강해진 감각에 고통스러워해야했고 눈을 감으면 토니의 냉담한 표정이 떠올랐거든.

하지만 멍청하게도 피터는 토니가 계속 좋았어. 마음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호되게 당해놓고 정신을 못차리다니, 스스로 미쳤다고 자책하는 피터. 그리고 학교에서 어떻게든 토니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돌아온 피터에게 자꾸 시선이 돌아가는 토니. 체육복 바지 아래로 근육잡힌 다리만 봐도 뭔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어. 하지만 피터는 토니를 끈질기게 피해다녔기 때문에 무엇이 왜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어. 기를 쓰며 빠져나가는 피터에 오기가 생긴 토니는 저리 꺼지라며 차버릴 때는 언제고 피터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토니는 항상 자기멋대로였으니까 스스로 상황의 모순성을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러다 하교할 때 드디어 피터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한 토니가 피터를 불러세우려고 했어. 불러서 뭐하려고? 토니 스스로 되물었지만 일단 피터를 제대로 마주하는 게 먼저였어. 그런데 피터가 현관 밖에 있는 누군가를 보고 밝게 웃으며 뛰어나가는거야. 피터가 저렇게 웃는 걸 처음 본 토니는 원인모를 좆같음을 느끼며 상대가 어떤새끼인지 확인하는데 익숙한 얼굴에 놀라버렸어. 자주 본 얼굴은 아니었지만 분명 오스코프 후계자 해리 오스본이었지.

"해리! 내가 간다니까 왜 왔어."
"차 있는 사람이 데리러오는 게 맞는 거 아니야? 빨리 타."

파커가 오스본이랑 아는 사이라고? 전혀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함께 있는 두사람은 꽤 잘 어울렸어. 피터가 해리의 차를 타고 먼저 가버린 후 기분이 왜이렇게 더럽지 하고 생각하던 토니는 아마 피터 같은 애가 수준 안 맞게 오스본이랑 어울리는 걸 봐버려서 그런 걸 거라고 판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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