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영은수


"아니, 취소했어 엄마. ...싸운게 아니고, 끝낸거야. 결혼 안 한다고. ...아이 진짜, 엄마까지 왜 그래!"

적당히 넘어갔어야 했는데, 결국은 짜증으로 전화를 끊었다. 네가 먼저 사과하고 화해 해라, 안 그래도 바쁜 사람 신경 쓰이게 말아라, 엄마는 헤어졌다는 딸의 말은 무던히도 듣지 않았다. 아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시겠지. 그 사람을 믿었으니까. 참 좋아했고. 이해는 된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최근까지 은수도 황시목이 말라가는 저에게 다시 물을 주고 따뜻한 온실로 거두어 준 손길이라고 믿었다. 

잊고 있던 불쾌감과 갈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집 앞에 온 사람을 밀어낸 이후로 황시목에게서 다시 미련은 볼 수 없었다. 원래 매사에 무감한 사람이었으니 이별 앞에서도 그렇겠지. 그 점이 늘 은수를 안달 나게 만들었다. 끝내자고 먼저 손을 놓으면 후련함이 들 줄 알았는데 시목과 관련된 그 무엇도 가볍게 털어낼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도 황시목이 왜 그랬는지, 뭘 숨기는지 아는게 없잖아. 

한층 더 비참한 기분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순전히 충동이었다.

[우산 안 가져 왔어요]

저질러버리고 가을비가 이례적으로 쏟아지는 창 밖만 쳐다보았다. 창문에 붙어 또르르 굴러 내려가는 빗물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지잉- 진동소리.



장훈의 차 안 공기는 쾌적했다. 습도 없이 보송하고 적당히 따스한 온도. 목적지를 듣지도 않고 알아서 네비게이션 화면에 은수의 아파트 이름을 꾹꾹 입력하는 뭉툭한 손이 자연스러워 핏 소리를 냈다. 전에 가봤으니까요. 장훈도 이내 은수의 의도를 알아챘다.

"라디오 틀까요."

이리 저리 돌아가던 다이얼은 대충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방송에서 멈췄다. 비 오는 저녁의 서울 시내는 어김없이 차들이 가득했다. 앞 차의 빨간 주차등을 보며 움직이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동안 쇠를 두드리는 빗물 소리도 지루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

"그냥요. 그 쪽은요? 별 일 없으세요? 보스가 죽었다면서요."

"예. 그리 됐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공기의 적당한 텐션이 좋았다. 시목 때문에 받은 좌절과 한숨을 잊을 수 있는. 단지 그 뿐일까, 이 남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늘은 그와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김기자님 하고는 이윤범의 비자금과 돈 세탁 문제를 주로 캤었어요. 피콕 이라고 하던가요. 마약, 레이븐 쪽은...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상상도 못했거든요. 이윤범이 그 정도로까지 밑바닥일 줄은,"

아차, 격한 워딩에 기분 나쁘려나. 슬쩍 본 장훈은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쪽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어요. 알려주실래요?"

"하이고. 뭐가 궁금하신데요."

"우장훈씨도... 마약 해요? 해봤어요?"

푸하, 아니요. 안 합니다. 나름 고민 끝에 한 질문에 웃음기 가득한 답이라니.

"진지하게 물어본건데. ...보스가 없으면 이제 우장훈씨가 보스 하는거에요?"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춘 장훈이 본격적으로 은수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것도 아인데요. 이제 그 쪽 일은 안 할겁니다."

"정말요?"

"예. 진짜요."

이윤범에 대한 질문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저 한마디로 모든게 해결 된 듯한 기분. 

"근데 은수씨는 와 그렇게 이윤범한테 꽂혔는데요. 뭐 원수쯤 됩니까?"

"네. 부모님의 원수요."

정말? 진짜에요. 장훈이 하나를 오픈 했으니 은수도 하나를 오픈 했다. 톡, 톡, 가볍게 핸들을 두드리는 장훈은 다시 앞을 보았다.

"제가 이 짓을 그만 하면, 앞으로 영은수 검사님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자수하실거에요?"

"허, 자수, 그게 또 그리 되나. 강남서로 가서 자수하면 중앙지검으로 배정되는거 맞습니까? 영검사님이 내 좀 맡아 줄래요?"

진짠가보네. 잠깐 조사실에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장훈과 마주하는 상상을 해봤다. 숨막혀.

"자수 하기 전에 이윤범 자료 갖고 있음 저한테 넘기실래요?"

"...생각 좀 해보고요. 근데 거기는 영은수씨 혼자 팝니까. 더 위에 믿을 만한 선배나 부장급은 없어요?"

"뭐야. 지금 나 말단 평검사라고 무시하는거?"

"그기 아이고, 혼자서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라. 동료가 있으면 훨씬 나으니까. 내가 맨날 이래 대충 말하는 거 같아도 진짜 위험하다니까요."

"글쎄요. 저희 부장님은 강단 있으신 분 같아요. 현명하고 신념도 있으시고. 나머지는, 언제 한조그룹의 돈에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 인 것 같고."

"내가요. 만약에 뭐라도 주면, 혼자 달려들지 마시고 꼭 믿을만한 사람들이랑 같이 해요."

"줄게 있긴 한가봐요?"

"만약에요. 약속?"

"일단 주고나 말하지. 네, 그럴게요. ...근데 그럼 우장훈씨도 위험해지는 거 아니에요?"

"와요. 걱정됩니까."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다.



창 밖으로 익숙한 동네 풍경이 보일 때쯤 갑자기 장훈이 갓길로 방향을 틀었다.

잠깐만요. 비 오니까 여 앉아 있어요. 차 문을 열고 내린 장훈은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비를 쫄딱 맞으며 운전석으로 뛰어들었다. 짤막하게 손질한 머리가 물기를 먹어 더욱 착 가라 앉았다. 비에 젖은 셔츠에서 향수의 언더노트만 남은 향이 가라 앉아 차 안 공기 바닥으로 붙는다. 어딜 다녀온 건지 물을 새도 없이 차는 다시 출발했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 왔네요. 아파트 입구에서 차가 멈췄다.

"손 좀."

"네?"

"손 달라고요."

주머니에서 매니큐어를 꺼내더니 제 쪽에 가까운 은수의 왼손을 당겨왔다. 투명색의 인공적인 반짝임이 장훈의 투박한 손이 길을 내주는 대로 은수의 손톱 위에 내려 앉는다.

"어린애들은 손 빨고 손톱 물어뜯고 하면, 손톱에 스티커 같은거를 붙여주면 딱 안한다 카데요. 어른도 통하는지 함 해봅시다."

거 맨날 그리 뜯으면 남아나겠습니까 손톱이. 보는 내가 다 아프다니까. 왼손을 끝내고 어느새 이로 잘근거린 흔적이 남은 오른손까지 당겨와 열 손가락을 다 채우고야 말았다. 

밀폐된 공간을 부유하는 화학약품 냄새가 몹시도 거슬렸다. 머리가 아파온다. 은수야, 손톱, 그만. 저지하던 시목의 목소리 때문에 속이 뒤틀렸다. 불편하다. 무언가를 덧칠한 손이 한없이 무거웠다. 장훈의 갑작스러운 다정만큼이나. 아니, 생각해보면 그의 다정은 갑작스럽지 않다. 처음 봤을 때에도 토악질하는 은수의 등을 두드려준 손이 크고 따스했지. 그만, 손톱, 영은수 그만해. 어디선가 시목의 집요한 시선이 따라 붙는 것 같았다. 

나 어떡하지, 선배.



손 끝에 붙은 시선을 위로 들었다. 비에 젖은 장훈의 단정한 눈동자.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움찔하는 목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던 시선이 장훈의 어깨와 쇄골 사이에 머무른다. 젖어 몸에 밀착된 셔츠, 그 아래에 설핏 비치는 검은 문신의 존재.

"R. 레이븐의 그 R 인가요."

낙인처럼 새겨진 그것이 은수의 눈에 띄었다. 멋쩍게 옆머리를 괜히 만지는 것으로 긍정의 대답을 대신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눈만 끔벅이는 장훈을 뒤로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신경질적으로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도, 집으로 들어서서 현관문을 닫아 걸어도 과거의 기억은 여전히 은수를 쫓아오고 있다. 

장훈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으로, R을 새긴 사람을 한 명 더 안다.




"이거 문신이에요, 선배?"

연애도, 남자 경험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시목과 처음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둘의 몸이 밀착했던 열기가 믿기지 않아 거울을 보고 젖은 머리를 말리는 시목의 옆에 붙어 앉아 있었고 그 때 발견했던 문신의 흔적. 쇄골 라인을 따라 손으로 훑다가 느껴지는, 매끈한 피부와는 이질적인 도톨거리는 질감의 부분. 꼭 문신 지운 것처럼 생겼네.

"응. 예전에."

"문신 있으면 경대 입학 안 되는데?"

"그 전에, 입시 전에 지웠어."

선배 10대 때 일진 뭐 그런 거였어요? R. R? 전여친 이니셜? 외국인인가? 실없이 물어봐도 더 이상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불친절하기는. 삐죽이는 입은 마음과는 반대로 진심을 뱉어냈다. 많이 아팠겠다. 새길 때도, 지울 때도. 

"이젠 안 아파." 

조심스럽게 쓸어 내리는 은수의 손을 겹쳐 맞잡고 손 끝에 퍼붓던 키스의 아찔함도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 때 마음을 덜 줬어야 했나, 그 때 좀 더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어야 했을까, 불현듯 내려다본 손 끝엔 투명한 매니큐어가 그 자리에 남았다. 사라진 키스의 감촉 대신.



말이 안 된다. 황시목이 레이븐이니 마약이니, 그것도 10대에? 경찰인데 그 사람. 그렇지만 그 시기에 미국은 왜 갔을까. 미국과 레이븐이 관련이 있나. 황시목이 레이븐과 관련있다면, 한조와 이윤범과도? 그럼 결국 우리 아빠와는... R 문신이 우연의 일치이기를, 밤새 뒤척이며 어느 쪽으로 생각의 곁가지를 뻗어봐도 소득은 없었다.

황시목이 누구인지를 판단할 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대로 지독히 무거운 몸을 끌고 지검으로 출근해 앉아 있다가, 입 끝에 맴도는 생경한 감촉의 씁쓰름한 맛에 저절로 입술에 닿은 손을 퍼뜩 내렸다. 

보는 내가 다 아프다니까. 나지막이 내뱉던 우장훈의 중저음만큼이나 쓰다.






24. 황시목, 우장훈


"...당신이었으요?"

허. 이렇게 또 연결이 되나. 장훈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시목이 악수를 생략하고 맞은편에 앉자 벌떡 일으켰던 몸을 다시 차분히 의자에 얹었다.

"마약조직범죄수사과 황시목 입니다."

"마약카르텔 TF 소속 우장훈 입니다."

이어지는 잠깐의 적막 속 치열하게 얽히던 눈빛을 먼저 거둔 쪽은 시목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 고생 좀 했으요. 많이."

또 다시 적막. 들고 온 노트북을 피면서 느긋이 의자로 등을 기대어 팔짱을 끼는 시목의 태도에 장훈은 조바심이 난다. 초면도 아닌데 구면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불편한 사이, 공기의 흐름에 실린 묘하게 껄끄러운 기분을 장훈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할까요. 저는 그라면, 신분이 복원 되는 겁니까? 어디 소속으로?"

"공교롭게도 TF 추진하시던 두 분이 모두 세상을 떠나셔서, 지금으로서는 데이터에 남아있는 기록을 가지고 윗선에 복원과 복직 여부를 결재 받아야 할 겁니다."

"하, 여부를 결재 받는다고요. 확정이 아이고?"

"절차가 그렇습니다."

찌그러지는 장훈의 미간. 저 남자는 온 얼굴로, 몸짓으로 감정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드러낸다. 가볍게 테이블을 내려치는 장훈의 태도가 거슬린다.

"10년 동안 뭐빠지게 일하고 온 사람을, 복직을, 아니지, 신분을 회복 시켜 줄지 말지도 간을 보겠다고?"

"...어쨌든 우장훈씨에 대한 데이터는 남아 있으니 긍정적으로-"

씨발. 옅게 노려보며 짓이기는 욕설도 너무나 거슬린다.

"내하고 장난해요?"

"좋습니다. 장난 그만하고 본론으로. 10년 동안의 성과는 어딨습니까."

여전히 시목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장훈은 백팩을 책상 위로 끄집어 올렸다.

"안상구, 레이븐, 그 위에 진짜 조직의 소유주까지, 관계를 증명해 줄 증겁니다."

하지만 백팩으로 뻗는 시목의 손을 저지한다.

"근데. 이거 가지고 진짜 저 새끼들 확실하게 다 잡을 수 있습니까? 바로 수사 들어가는 겁니까?"

"잡아야죠. 청장님께 다이렉트로 보고 후 바로 시작됩니다."

한 차례 더 백팩을 당겨오려는 팔이 저지당하자 시목의 눈에도 점점 힘이 들어간다. 왜, 또 뭐가.

"......"

"그라고, 이 중에 USB 몇 개는 암호가 걸려있는데 아직 못 풀어서 뭐가 있는지 못봤어요. 그거는 나중에 뭐 있는지 열어보고-"

사이버수사국에 협조 요청 넣어서 암호전문가 대기 시켜.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빠르게 말을 뱉은 시목은 마지막 인내심을 끌어올려 기어코 장훈의 손에서 백팩을 가져와 열었다. 

파라락 훑어 넘기는 장부들이 어딘가 이상하다. 허, 실소가 터졌다. 절반은 가린 채 복사된 자료들. 느긋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하는 짓이지?"

"내도 보험은 있으야지.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가는데, 뭐가 어찌될 줄 알고 모르는 사람한테 덥썩 오리지날을 갖다 주겠습니까?"

장훈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걸린다. 이제 장훈이 좀 더 유리해졌다.

"신분 복원, 경찰로 복직, 마약조직수사국으로 발령, 이 자료는 내가 직접 수사하는 걸로. 그렇게 해주면 원본 다 넘기겠습니다."

"여기는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야!"

"내가 협상 하는걸로 보이나? 당연히 요구 할만한 사항들인데."

원래 내 자리, 내 일이잖아. 당당한 장훈의 태도에 동요되는 것은 오히려 시목이었다. 원래 자리, 그런건 없어. 앞에 놓인 모니터 속 우장훈과 현실 우장훈의 얼굴에 번갈아 보이는 묘한 미소, 조소. 

차 안에도 아무것도 없다면 작정하고 어딘가에 증거들을 숨겨두고 온 것이다. 지금은 그냥 보내주고 뒤를 밟는 것이 현명할까. 아니, 이 정도로 머리를 쓰는 부류라면 미행도 다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인정하자. 이번에는 시목이 허를 찔렸다. 조급해졌던 건 자신이었다. 끝이 보인다는 안도감과 작은 성과에 취해서 풀어져 있었다, 답지않게. 



플랜B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하는데 책상에 올려둔 우장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껏 예민한 시목의 눈에 얼핏 보이는 발신인, 영은...

실례좀요. 재빠르게 등을 보이고 틀어 앉아 전화를 받는 우장훈의 뒷통수에만 온 신경이 쏠린다. 빨리 다음을, 다른걸 생각 해 내야 하는데, 집중해.

-전데요

다급하게 볼륨을 줄이는 행동보다 더 빨리 귀를 파고 드는 여자 목소리.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모니터 속 우장훈만 마주보고 있다. 비릿한 조소를 흘리면서.



"예."

- 바빠요? 급하게 물어볼게 있어요.

"...지금요? ...예. ...문자로 보내봐요 그럼."

갑자기 은수에게서 온 전화, 황시목도 알아차렸을까. 

만났을 때부터 공기가 불쾌했던 원인을 이제야 알겠다. 헤어졌으면서 내가 뭘 그렇게 눈치를 봐야하는데, 그렇지만 당당하게 굴기엔 그녀와의 사이에 무엇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전화가 와서, 실례좀 했습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손에 쥔 휴대폰 화면에 바로 이어서 뜨는 은수의 문자, 사진.

지금보다 젊은 황시목과 역시 젊은 안상구. 꽃다발을 들고 어깨동무를 하고. 졸업식? 왜, 어째서? 

[사진에 있는 사람, 레이븐이랑 관계있어요?]

[누군지 알아요?]

생각을 알 수 없는 여상한 시목의 얼굴, 사진 속의 그것과 같은. 최대한 아닌척 느린 시선으로 사진과 앞에 앉은 시목을 비교하고 가늠해본다.

당신이 안상구를 어떻게 알지? 

너 누구야.

"-오늘은 이만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말한것들 처리 완료되면 연락해요."

일단 이곳은 함정이다. 빠져 나가야 한다. 가빠진 호흡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빨리 등을 돌려 돌아섰다.



"한 가지 더!"

날카로운 시목의 고함이 장훈의 뒤에 붙는다.

"영은수. 무슨 사이야."

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이번에는 입장이 좀 바꼈네 서로가.

아쉽게도 황시목이 책상에 올린 두 팔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있어서, 지금의 우월감을 표정으로 보여줄 수는 없겠다. 

봤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나한테 느끼게 했던 것들을 그대로.

"아아. 은수씨요. 글쎄 무슨 사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말을 뱉으면 황시목이 더 무너질까, 저 얼굴을 한껏 구겨뜨릴까. 신중하게 답을 고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제가 영은수씨 좋아합니다."



장훈이 빠져나가고 닫히는 회의실 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시목을 빤히 보고 있는, 아무것도 모를 모니터 속 우장훈. 


[데이터가 영구 삭제되어 복원할 수 없습니다. 계속 하시겠습니까?]

마우스 커서를 옮겨 영구 삭제 버튼을 클릭했다. 경고창이 뜬다. 주저 없이 한번 더, 확인을 눌렀다.


원래 네 자리라고? 이제 여기에 그런건 없어. 



판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황시목과 안상구. 엘리베이터에서 은수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언더커버, 황시목이 언더커버라고. 도대체 언제부터? 그럼 제일 최근에 물 먹은거, 그래 평택, 그것도 황시목 짓인가. 다급하게 제 차로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고 조수석 시트 아래로 손을 뻗어 휘적였다. 국장님은? 국장님도 황시목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안상구는? 같은 편을 왜? 조수석 시트 바닥에 밀착시켜 붙여둔 물건을 힘 주어 당겨 꺼낸다. 그와 동시에 뒷통수에 붙는 싸늘함, 희미한 달칵 소리.

"어디에 숨겼어."

머리에 붙은 총구 탓에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숙였던 몸을 서서히 일으키다 바로 자세를 잡고 뒤로 돌아 황시목을 마주 보고 섰다. 장훈의 뻗은 손 끝에 들린 총을 보는 시목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머리쓰네."

"당연하지, 내가 경찰대 수석 이었으."

뒤로 한 발짝씩 물러서며 차 주변을 벗어나 넓은 곳으로 옮기는 장훈을 따라 시목도 걸음을 옮긴다. 철컥, 장훈 손에 들린 리볼버가 장전되는 소리. 완연히 허리를 펴고 주변을 살핀다. 황시목 외에 다른 팀원들은 오지 않는다. 총에는 소음기까지 붙였다. 공식 작전이 아니란 의미. 

"황시목. 기회를 줄게. 자수하고 이윤범 잡는데 협조하자. 그래야 니도 살 수 있다."

"글쎄, 그게 다 무슨 말인지."

"일단 증거 때문에 걱정되면 차분히 대화부터 하자. 둘 다 살고는 봐야지!"

아니, 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그냥... 그대로 묻히게 둬. 너하고 같이."

아까 회의실에서 마주 하던 시목이 아니다. 앞에 마주한 남자의 광기와 집착으로 번들거리는 시선, 저걸 피하면 죽는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고쳐 잡았다. 어찌됐건 여긴 경찰청이고 황시목은 아직은 경찰이다. 장훈이 불리하다. 지금 저 상태라면 뒷일 생각 없이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누구보다 잘 안다. 오랜 시간 언더커버로 살면서 억눌리고 왜곡된 자아, 그러다 이제 끝이 보인가 싶더니 눈 앞에서 다 된 일이 틀어졌을 때의 상실감, 좌절. 폭주하기 딱 좋지. 이 흐름을 깰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타나라, 제발 좀!



"형!"

갑자기 가까워지는 몰려드는 발자국 소리에 시목이 주춤했다. 그 틈을 노려 장훈이 잽싸게 시목의 팔을 맞잡아 총구를 천장으로 틀어 올렸다. 팅! 소음기를 통과한 총알이 찰나를 두고 장훈의 이마 대신 천장 스프링쿨러에 맞았다. 뿌려지는 물로 젖어가는 둘을 에워싸는 총구들, 검은 유니폼의 사람들.

"어후, 형, 나 아니었음 큰일 날 뻔 했다, 그치."

새끼야 혹시나 우찌 될지 모르니까 먼저 와서 기다렸다가 일이 틀어지면 바로 나오라고 몇 번을 말을 해도 늦냐. 무리들 중 한 발 앞으로 나선 오진태가 장훈의 원망의 눈초리에 대고 다급한 변명을 덧붙인다.

"아니 나 때문이 아니라고. 포렌식팀이 USB 암호를 좀 전에 겨우 풀어서 늦은거야!"

에워싼 총구가 여전히 힘으로 서로의 팔을 제압하고 있는 둘을, 정확히는 시목을 향해 겨누며 더욱 좁혀왔다. 억지로 둘을 떨어트리고 시목에게서 총을 빼았아 드니 그제서야 장훈의 숨이 트인다. NIS, 국정원이 왜 여길? 

"작전 수행 중입니다. 방해하지 마!"

작전? 까고 있네. 경찰 흉내나 내는 주제에. 오진태의 비아냥에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무너지고 구겨진 좌절이 순간적으로 시목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25. 영은수, 황시목


오후엔 꼭 우장훈을 재촉해야지. 문자로 시목의 졸업식 사진을 보낸지 이틀째, 깡패에게서 온 전화 한 번을 놓쳤더니 그 뒤로는 연락이 닿질 않는다.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은수는 언제 실행에 옮길지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재촉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게 다 뭐에요?"

"아, 검사님, 저도 모르겠어요. 점심 먹고 돌아왔더니 문 앞에 쌓여 있었어요."

이제 막 안으로 옮겼는지 손을 털어대는 계장 옆 책상에 박스 서너개가 쌓여 있다. 손이 가는 대로 가장 위 박스의 밀봉된 부분을 뜯었다.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메모지에 휘갈겨 쓴 글씨.

[혼자 하지 말고. 약속 지켜요.]

누가 두고 갔는지 알 것 같다.

"영검사님! 이거, 이거 한조그룹 자료 같은데요?"

건설, 물산, 화학, 제약, 계열사별로 인덱스가 다 나눠져 있어요! 세상에, 이거 얼핏 봐도 되게 수상한 숫자가 많은데? Raven... Peacock? 이런건 다 뭐야. 계장과 실무관의 호들갑을 뒤로하고 다른 박스들도 모두 뜯었다.

"......"

마지막 박스 안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작은 상자. 황시목. 옛 연인의 이름이 쓰인 상자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따로 빼 두었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목 언저리까지 치고 올라온다. 한조의 다른 어떤 것들보다 저 작은 상자가 더 무겁고 두렵다. 제발 아니길 바랬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결국 아득한 눈 앞으로 상영된다. 말라오는 아랫입술을 축이며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답이 지금 제 손에 들어와 있다. 

황시목은 절대 말해주지 않았던 진짜 황시목.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겨냈지만, 막상 상자를 열고 USB를 꺼내 노트북에 연결하기까지 수차례 망설임이 있었다. 그 틈으로 수만 가지의 시목의 모습이 스쳤다.


 

또 쟤야, 시목의 주변 선배들이 수근거릴 정도로 1학년의 제복 입은 영은수는 맹목적으로 제복 입은 시목을 좇았다. 시목은 은수의 세상에서 언제나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특별함 이었으므로. 남들 보다 또렷한 눈매, 단정하게 닫힌 입술, 낮은 목소리, 볼에 내려 앉은 점까지, 그저 그런 타인과는 구분되는 완벽한 아우라. 수업, 공강, 훈련, 모든 틈마다 시목의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제 존재를 각인 시키기 위해 곁을 맴돌던, 열감으로 가득 들떴던 1년. 2년째엔 은수의 습관성 집착이었다. 아빠가 쓰러지시고 나서 어디라도 마음을 부어낼 곳이 필요했다. 선배, 좋아해요. 마주할 때마다 무던히도 뱉었고 무던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고백들. 어느 날, 그날도 무심히 뱉은 익숙한 문장에 시목이 드디어 반응했다. 

- 내 옆에 있으면 너한테 득이 되지 않을 텐데. 

나쁜놈, 차라리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절을 하지. 남녀사이가 득실을 따질 관계인가요? 대차게 뱉어놓고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여자로서도, 인간 대 인간 자체에 대한 교류도 모두 거절 당한거다. 비참하게. 

그렇게 시목이 졸업을 하고, 뒤이어 아빠가 돌아가시고 사시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잊었었는데. 사수를 따라 처음 나간 살인사건 현장에서 다시 시목을 재회했다. 담당 경찰과 시보 검사로.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 먼저 손을 내민건 시목이었다. 몇 번의 업무적인 만남에서 은수에게 늘 집요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시목의 시선. 마시지도 않는 술을 한 잔 하자고 하더니 술기운인지 뭔지 모를 벌건 눈으로 마음을 쏟아냈다. 영은수, 네가 좋아. 은수야, 은수야... 시목이 했던 대로 거절 하는 흉내라도 내고 싶었는데, 밀어낼수록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그의 낮은 목소리, 부드러운 키스를 결코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은 이후로 시목은 결코 은수에게 후회를 주지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아니, 어디서부터 내가 당신을 의심해야 했을까? 모니터 속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눈 앞이 뿌옇게 차 올라, 차마 다 읽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잔뜩 흐린 날씨가 곧 눈이라도 쏟아부을 줄 알았는데 애매하게 찌푸리기만 했다. 구치소 입구에 놓인 조악한 트리에도 누군가 기분은 내고 싶었는지 빨갛고 파란 촌스러운 조명이 둘러져 불협화음처럼 안 어울리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기실에서도 입김이 나오는 차가운 공기에, 은수는 코트 옷깃을 한번 더 여미며 안내받은 면회장으로 들어갔다. 

유리벽을 마주하고 앉은 시목은 은수를 보자 희미하게 웃었다. 적어도 은수는 알아챌 수 있는 미미한 미소. 

"은수야."

"......"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낮고 단단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저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 변한게 없는데. 지검 조사실에서 책상을 마주 보고 앉았을 때부터, 지금처럼 이렇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때 까지, 우리는 너무 많이 변했다.

"선배. ...변호사 사임계는 왜 냈어요."

재판을 앞둔 시목은 은수가 신경써서 붙인 변호사도, 국선도 모두 거절했다. 피고가 면회조차 안해, 난 그냥 손 뗄게. 네가 설득 좀 해보던가. 체포되고 조사 받을 때부터 네가 묻는 말 아니면 대답도 안 했다면서? 변호를 부탁받은 선배는 혀를 내두르며 은수에게 책임을 미루었다.

"변호 안 해."

"왜 그래요. 그 선배, 실력 있어요. 이번 재판부랑 친분도 있고. 형량 협상도-"

"은수야. 난 그런거 관심 없어."

그런 것들로, 무슨 짓을 어떻게 하더라도 네 마음을 이제 다시는 내게 둘 수 없으니까. 

"......"

또 우네, 울지마.  

"요즘엔 좀 어때. 잠은 잘 자니?"

"지금 그게 중요해요?!"

"나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해."

"선배, 정말-"

"은수야. 이제 면회도 그만 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황시목."

시목이 먼저 일어나 면회장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공간이 너무 싸늘하다. 시목이 사라진 문을 쳐다보며 어깨만 파르르 떨다 은수도 이내 그곳을 빠져나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오전 도로는 한산했다. 고요하게 차를 스쳐 가는 겨울 일상을 보내는 풍경 속, 조명을 매단 가로수들을 보며 문득 캐롤로 차 안을 채우고 싶어 은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캐롤 사이 사이 마다 연말에 어울리는 따스하고 로맨틱한 연인의, 가족의 사연들이 넘쳐난다. 

- 우리 결혼 할까? 

언젠가의 이브 아침, 제 얼굴선을 따라 훑는 손길에 잠에서 깼더니 마주 보고 누워있던 시목의 입에서 대뜸 나온 말. 그토록 바라던 순간을 세수 조차 못 하고 무방비로 맞닥뜨렸다. 

- 네가 너무 예뻐서.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려고 반지도 준비했는데 그 때 까지 기다리질 못하겠어. 

지금 생각하니 낯빛 하나 안 변하고 저런 간지러운 말을 잘도 했었네. 피식 나오던 웃음은 이내 흐느낌으로 번졌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 와버린 걸까요, 선배.

신호가 바껴도, 뒷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도 은수의 차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fin.













[에필로그] 


"어, 형, 왔어?"

"진태야. 여가 느그 집이가?" 

며칠만에 집에 들어온 장훈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삐걱이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낮은 밥상에 냄비 한가득 끓인 라면을 올려두고 만화책을 보느라 낄낄거리는 오진태가 보였다. 보일러도 어찌나 올렸는지 발바닥이 후끈해서 서있기 힘들 지경이다. 몇 개 끓였노? 3개. 젓가락 도봐라. 진태의 주인 행세는 이미 몇 번 있었던 일이라 장훈도 익숙하게 코트를 벗고 앉아 라면이나 얻어 먹었다.  

"형, 주방 천장에 물 새더라. 막 벽으로 타고 흘러."

"맞나."

"이 집 존나 낡았어 진짜. 발로 지었나? 형은 대체 이런 시골 구석탱이 다 쓰러져가는 집이 뭐가 좋다고 눌러 앉아 있냐."

"이거 우리 아부지가 지은긴데."

"와, 아버님 건축 전공 하셨어? 어쩐지 이, 그런 어떤, 한옥 스타일의 쏘울이 담긴 빈티지스러움이, 처마 끝에 한 땀 한 땀 정성과 내공이 장난 아니더라!"

이미 늦었다 개새끼야. 진태가 어떻게든 수습 하려는 동안 장훈은 열심히 라면이나 후루룩 빨아들였다.

"아무튼, 형, 다음달에 나랑 우크라이나 작전 가자. 어때?"

"안 한다고 이제."

"팀장님이 형 꼭 데려오랬는데."

"데스크 업무 아이면 안 한다고! 현장, 작전, 이런거 고마 지긋지긋하다이."

"형은 데스크가 오질나게 안 어울려. 이번에는 진짜 그냥 딱 뭐 하나 전달만 해주고 오면 된다니까?"

"야. 베를린 건도 그냥 전달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 니 믿고 갔다가 이상하게 꼬여서 디질뻔했다. 안 믿는다."

"그래도 베를린 간 김에 오랜만에 안해주도 만나고 좋았잖아. 근데 형, 이번엔 다르다니까? 우크라이나에는 미인도 많고."

그 뒤로도 몇십 분을 진태의 우크라이나와 미인 타령에 시달려야 했다. 아후 끈질긴 놈. 듣기 싫어서 담배나 필 겸 앞마당으로 피신 나왔다.

깊은 산의 한겨울은 해가 떠 있어도 추웠다. 담배 연기인지 입김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진짜 다 때려치우고 카페나 차릴까, 이 시골에 손님은 올라나, 책이라도 쓸까, 심심해서 일기처럼 올린 블로그에 사람들이 꽤 들어오긴 하던데. 2년째 반복되는 고민을 다시 담배연기에 실어보았다. 

결국 경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경찰대를 자퇴한 기록만 남아 있을 뿐, TF를 비롯하여 장훈이 경찰 조직과 접점이 있던 모든 기록들, 흔적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한조그룹의 추악한 본 모습과 아시아 최대 마약 밀매 조직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공한 댓가로 그 동안의 모든 범죄 행각들은 면죄 받았다. 단, 경찰 내 언더커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거야말로 장훈이 바라던 바다. 얼핏 떠 오르는 기억 조차 치가 떨리게 싫었는데. 씨발거, 나도 더러버서 니들이랑은 다시는 안 엮일란다.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밀려드는 상실감과 자괴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시골에 처박혀 숨만 쉬면서 지내다가 얼마 전부터 진태가 하도 부탁해서 프리랜서처럼 국정원 작전을 가끔 도와주고는 있는데 이 마저도 그냥 다 실증난 상태. 

으아 춥다, 남은 불씨를 튕겨내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려다 시야에 들어오는 낯선 승용차. 여기까지 온거면 설마 우리집에 온건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진짜로 장훈의 집 앞마당에 들어서서 장훈 차 옆에 나란히 주차를 했다. 뭐고. 누구지? 

"......"

"생각보다 훨씬 더 시골이네요."

차에서 내린 은수가 살짝 인상을 쓰고 주변을 둘러본다. 21세기에 비포장도로가 뭐에요. 차 다 상하겠네. 멍청하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만 끔뻑이는 장훈의 바로 앞까지 걸어 오는 은수는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머리가 두 뼘 정도 짧아져 있다. 나 추워요. 이 날씨에 손님을 밖에 세워둘거에요? 여전히 미동도 없는 장훈 옆으로 스쳐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코 끝에 걸리는 익숙한 은수의 향수, 두어번 눈을 세게 끔뻑거리니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게 영은수였지. 

여는 우찌 알고 왔어요? 장훈도 재빠르게 은수를 쫓아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건조한 이야기에 해피엔딩도 사이다엔딩도 아니고 무간도AU인듯 아닌듯 애매한 허접글 이지만 길고 긴 이야기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중간에 좀 안 풀리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잘 보고 있다고 해주신 분들 덕분에 ㅠㅠ 여기까지 왔습니다 흑흑 감사합니다💛💛💛 

시목은수러들.. 죄송하고.. 장훈과 은수가 만난 날 있었던 일은 짧게 외전으로 쪘습니다. 딱히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고 성인인증 필요한 글입니다.


<외전>

https://posty.pe/ozj1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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