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타는 바보였다. 저런 멍청이도 있구나, 세상은 넓구나. 미래의 이 공작가를 책임지려면 견문을 더 넓어야겠다. 라고 결심하도록 도운 것이 히나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은 학교도 안나온 평민이니까 당연히 오사무와 아츠무가 아는 평균보다는 많이 낮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이제 보니 공부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걸 보면 뼛속까지 바보다. 그래도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무뢰한은 아니었다. 오사무만. 

아츠무의 시비가 붙으면 한동안 저택은 시끄럽다. 여기저기서 이 바보. 바보 아니야! 라는 소리가 질릴 정도로 들린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오사무는 그럴 적마다 시끄러운 둘의 앞에 서서 말없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표정으로 욕을 하는 오사무의 얼굴은 무시무시해서 히나타는 딸꾹질까지 하지만 아츠무는 그런 오사무를 무시해버린다. 다만 히나타를 놀리는 소리가 약간 덜 해지는 정도. 히나타는 본인 스스로 얹혀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입에 바느질한 것처럼 입을 꼭 다문다. 작은 입술이 종이처럼 구길 듯이 앙다물었다. 아츠무에게 바보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을 다물어서 바보를 인정해버려서 속이 끓고 있을 것이다. 

히나타는 아츠무를 째려보다가 어디론가 뛰어 가버렸다. 저택은 넓어서 저렇게 가면 분명 길을 잃고서 울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미야 가(家)의 저택에 온 지 석 달이나 지났는데도 히나타는 아직도 저택에서 길을 잃는다. 어떨 때는 제 방도 찾아가지 못한다. 2층에 올라오자마자 왼쪽 세 번째에 있는 검정 문의 방이라고, 오사무와 아츠무가 수십 번 설명했지만, 항상 방을 찾는데 하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오사무는 1시간 뒤에 히나타를 찾으라고 사용인들에게 미리 지시를 내린 뒤 몸을 돌렸다. 개운하다는 표정이 절로 나왔다.


"아~ 재밌었다~!"

"그만 괴롭혀. 어린애 괴롭히면 재밌냐?"


오사무가 낮은 목소리가 철없는 아츠무를 질책했다. 티타임 겸 독서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아 평소에도 표정없는 얼굴은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도 같이 놀리자. 그러면 울걸?"

"....싸이코 새끼."

"놀리는 거 진짜 재밌는데 왜 이 맛을 모를까."

"저러다 도망간다."

"지가 갈 때가 어딨다고 도망가? 아니, 도망가 봤자 여기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뱅뱅 돌고 있을걸?"

"그런 말 좀 하지 마. 그러니까 쟤가 부채감 느끼고 기도 못 피고 저러고 있는 거 아냐. 우리가 억지로 데려온 거니까 신경 좀 써줘."

"피든 말든. 제깟 게 뭐라고. 그리고 우리 장난감으로 데려온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럼 왜 데려왔는데? 아츠무가 웃으며 물었다. 그 웃음은 참 지독해 보여서 오사무는 눈을 돌렸다. 형제의 질문에는 답하기 싫었다. 무엇보다 아츠무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것이 분명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붙어있는 형제의 속마음 따위 산에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들릴 것이 분명했다. 오사무는 말을 돌리기 위해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야 말로 그런 어린애 말장난하려고 데려오는 거 허락했어?"

"그럴 리가. 그냥.... 살아있는 장난감? 흠..."


아츠무는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쓸었다. 저 표정은 익히 알고 있다. 오사무는 형제의 입에서 얼마나 못된 말이 나올지 자리에 기다렸다. 


"섹스해보면 새로울 것 같아서. 음... 아, 첩 같은 거."

"뭐? 너 그런 거에 관심 없었잖아."

"저 꼬마 목숨은 우리 건데 뭘 어떻게 하든 우리 맘이지. 사무, 너 혹시 저 꼬마를 진심으로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히나타는 오사무의. 낯간지러워서 속으로라도 그 말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형제는 장난이 아주 짓궂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면 기를 쓰고 악마가 되려는 피곤한 성격이기에 부러 히나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사무는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 뒤통수에서 찌릿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서재로 돌아온 오사무는 엎어두었던 책을 들고서 의자에 앉았다. 뿌드득 소리를 내는 갈색의 가죽 의자가 오늘따라 거슬린다. 오사무는 다시 책을 읽기 위해 글자를 눈 속으로 넣어보았지만, 활자는 스르륵 빠져나갔다. 목도 뻐근하고 눈도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오사무는 결국 책을 덮고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단정한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쏟아났다. 눈언저리에 뜨끈뜨끈한 열이 올랐다. 

그 빌어먹을 꼬맹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도장을 콱 찍어놓고 지워지지 않아 오사무도 골치였다. 작고, 비루 마르고, 멍청해서 자기 이름도 못쓴다. 머리카락은 어떻게 그렇게 뻗치는지, 거칠기까지 해서 보기에도 흉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이 없다. 심지어 히나타는 적국의 백작 저택에서 종노릇하던 평민 꼬마였다. 

적국과 국경 지역에서의 마찰이 있었다. 그 마찰의 주범인 백작 가를 치다가 포상처럼 딸려온 것이 바로 히나타였다. 

이제 저 죽일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던 히나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 듯 선명했다. 어떻게든 눈물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까지 씹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눈물 몇 방울이 히나타의 둥근 뺨을 타고 흘러내린 지 오래였다. 

방금 백작 가의 8살 먹은 아들을 죽인 검을 들고 있던 오사무는 그 검을 뒤로 숨겼다. 긴 검은색 망토 뒤로 핏물을 머금은 검은 숨겨졌지만, 핏자국은 검을 따라 흔적이 만들어 냈다. 

히나타와 눈이 마주쳤다. 잘도 윗사람의 눈을 바라본다. 어딜 가도 귀족의 눈을 평민이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매를 맞을 일이었다. 히나타는 무서워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뭐라더라, 저게 사슴 같은 눈방울이라고 하던가. 오사무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읽었던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오사무는 말 없이 히나타를 바라보다가, 곧 아츠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히나타를 저택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이 변태 또라이 싸이코 형제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물론 저조차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둘 모두를 괴롭혀 지옥의 나락으로 빠트리게 만들려는 악마 같은 형제.

고민을 하던 중 운 좋겠도 히나타는 미야 가의 저택으로 굴러들어 올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오사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츠무가 재밌어 보인다며 히나타를 저택으로 데려온 것이다. 

손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용인도 아닌, 애인은 더더욱 아닌. 

아츠무 몰래 어떻게 히나타를 구워삶는 담? 아니, 저렇게 천박하게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 짧은 사이 아츠무 놈에게 말버릇이 옮았나 보다. 젠장. 

책등으로 이마를 탁탁 쳤다.




***

딱히 찾으려고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낮에 히나타를 놀려줬으니 밤에 놀려줘야지, 그전까지는 검술 훈련을 하기 위해 편한 옷을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가던 중, 연무장 근처의 작은 우물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히나타를 발견하고 아츠무는 냉큼 달려갔다. 히나타만 보면 자꾸만 음심이 솟는다. 괴롭혀주고 싶다. 히나타를 마주하면 마치 6살의 장난스러운 악동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기껏 숨은 곳이 여기야?"


싱글싱글 웃는 아츠무의 얼굴을 발견하고선 히나타는 흠칫 놀랐다. 어린아이처럼, 어리지만, 하여튼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는 히나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택 안에서 숨으면 또 길 잃어버리니까..."

"아직도 못 외운 거야? 이거 정말 바보 아냐?"

"바보 아니라고! 바보라고 하는 사람이 더 바보야!"

"그래서 내가 외우라는 글자는 다 외우셨나?"

"...."

"다 외울 때까지 바보라고 부를 거다?"

"평생 그러겠네, 짜증 나는 새끼..."

"뭐라고?"

"아무 말 안했어."


건방지긴 하지만 귀여운 수준이다. 본인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감히 반말하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인생에 한 명쯤은 이런 간 큰 놈이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놈이 어디가 좋다는 거지? 아츠무가 히나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여자보다 예쁠 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보통의 남자들보다 어디 하나 뛰어난 구석은 없었다. 키는 작고 왜소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정원사나 마굿간지기를 도우며 햇빛 아래에서 잡일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손은 거칠었고 팔다리에는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얼굴과 기미까지. 언뜻 보면 '귀엽다'라고 봐줄 만 하지만 체격이 작아서 그런 것 뿐인지 아무리 봐도 잘난 구석이 없었다. 

형제의 취향이 이상하다. 인생이 너무 순탄하고 잘나가서 일부러 오점을 만드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야."

"....?"


뾰로통한 얼굴의 히나타가 아츠무를 바라본다. 요즘은 그래도 잘 먹고 잘 자서인지 볼살만은 보기 좋게 올랐다. 조금만 지나면 바보 말고 돼지로 놀려도 될 것 같다. 


"우리가 널 가지고 뭘 할까?"

"...집안일? 청소? 몰라. 왜 데려왔어?"

"너 섹스해본 적 있어?"

"....?"

"모르냐? 하이고, 갈 길이 머네... 사람 둘이 옷을 벗고 뭘 하는 건데..."

"그럼 해본 적 없어."


옷 벗으면 부끄럽잖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히나타의 대답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츠무는 이마를 탁 쳤다. 그래, 알몸이 부끄러웠구나. 맞아,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첫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이제는 남자든 여자든 그 어느 누구의 알몸을 봐도 부끄럽지 않은 아츠무에게 히나타는 더더욱 흥미로운 인간으로 보였다. 이걸로 뭘 할까. 눈물로 두 눈이 빨갛게 짓이겨져 있는 히나타는 가학심을 들끓게 한다. 


"좋은 거야. 나랑 해 볼래?"

"부끄러운데..."

"옷 입고도 할 수 있어. 아, 조금은 벗어야 하는데 남자끼리잖아. 괜찮지?"

"그... 그래도..."

"좋은 거야. 나 못 믿... 아, 못 믿겠구나. 음... 사무도 너랑 해보고 싶댔는데."

"오사무가...?"


히나타에게 오사무는 마법의 단어였다. 바보라고 놀리지도 않고 하대하는 하인들과도 달랐다. 무서운 건 사실이었지만 조용히만 하면 이따금 간식을 주고 저를 울리는 아츠무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니 히나타는 저 혼자 오사무에 대한 신뢰를 높이 쌓아올리고 있었다. 


"사무한테 잘 보이고 싶지?"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자 따위를 공부할 때보다 눈빛이 빛났다. 말 잘 듣는 강아지 한 마리를 얻은 기분이었다. 


"넌 가만히만 있어. 기분 좋을 거야."


그림자가 히나타를 덮었다. 




***

"이봐, 히나타는 찾았어?"

"저... 아마 아츠무 도련님께서 연습하시는 연무장 쪽으로 간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연습 중에는..."

"아아, 됐어. 그럼 내가 찾을께."


바람을 쐬는 것도 좋지. 오사무는 직접 히나타를 찾기 위해 가볍게 옷을 걸치고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츠무는 연습 중에 방해받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사용인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숨어들어 갔다면 제아무리 히나타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오사무는 빠르게 걸어가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은 고요했다. 일부러 아츠무를 위해 만든 연무장이었다. 저택과도 약간 떨어져 있고 풀과 나무가 많아 항상 시원한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그래, 분명 그런 곳이었다. 


"츠, 무, 아.... 아퍼... 그만... 이제 그만..."

"좋으면서 뭘 그래."


아츠무 또한 숨에 헐떡이는 소리였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오사무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수록 기분 나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두 사람이 풀숲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옷은 풀 때문에 초록물이 들어가고 있었고 히나타의 맨다리만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두 손으로 아츠무의 옷을 마구잡이로 쥐어 잡고 있었다.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히나타의 말과 행동은 일관성이 없었다. 


"싫다는 것치곤 잘하고 있는데?"

"으응...."


풀과 히나타의 머리칼이 섞였다. 살과 살이 뒤섞이는 소리를 더 듣지 못하고 오사무는 그 자리에서 나오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아츠무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형제는 무슨 생각인 걸까. 더 이상 형제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아츠무가 히나타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사무는 빠르게 사라졌다. 

풀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은 히나타가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어..."

"여기 올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 잘못 들은 거야."

"그, 근데... 나 정말 힘든데..."

"딱 한 번만. 많이 할수록 익숙해져서 사무도 좋아할걸?"


아츠무는 숨을 몰아쉬는 히나타 위로 몸을 겹쳤다. 

오사무를 자극하기 위한 장난일 뿐이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인 형제에게 표정의 변화를 주고 싶어서. 비싼 값을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니 히나타는 장난감으로서의 역할을 더 해야 할 것이다. 

그래, 이것은 장난이다. 조금 못된 장난. 짭짤한 맛이 나는 히나타의 목을 콱 소리가 나게 물었다. 목이 물린 새처럼 푸드득 몸을 떠는 히나타를 무시하고 이를 박아 넣었다. 꼬마에게서 어울리지 않던 야릇한 소리 대신 악 소리가 났다. 아프다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니 결국 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얼룩덜룩한 액체 아래에 있는 히나타의 모습이 보기 좋다. 


히나른 혹은 흑우 주인공른 글 올라와요! @regon_

레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