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돌멩이를 던지듯 아무렇게나 툭 뱉은 말이었다. 얌전히 앉아 책을 보는 뒷통수에 대고 무어라 말할지 잠깐 고민을 하다 고른 말이었다. 이름을 부를까. 그도 아니면 저 동그란 뒷통수를 냅다 때리기라도 할까. 깜짝 놀라 금방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소년은 끄떡없는 뒷모습을 한 채로 조용히 다음 장으로 눈을 옮겼다. 나무에 기대 소년의 뒤에 서있던 케빈은 가슴 속에 확 갑갑증이 일었다. 말 다음에는 행동이었다. 얼른 한 걸음 다가가 무방비 상태의 등을 확 떠밀었다. 앉은 상태로 퍽하고 앞으로 밀린 소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방황하는 눈동자는 쉽게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서있는 케빈의 얼굴에 시선이 꽂히기까지는 수 초가 걸렸다.

"아..."

    벌어진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케빈은 그것조차도 마음에 안 들었다. 내려다보는 시선 끝에 소년의 귀를 틀어막고 있는 귀마개가 보였다. 멍청하긴, 와인도 아닌 주제에 귀에 코르크 같은 것을 꽂고 있단 말이야. 케빈은 상대방에게 무안을 당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난폭해질 수 있는 아이였다. 놀란 채로 굳어 어정쩡하게 눕듯이 앉아있는 풑밭의 소년에게 뛰어들어 다짜고짜 귀마개를 뺏어 아무데나 던졌다. 그것은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거리에 떨어졌으나 소년 또한 상관없다는 듯 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더욱 더 놀란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 분명했다. 깜짝 놀라 어색하게 머리를 만지는 척 손을 내리는 것을 케빈이 놓칠 리 없었다.

"귀를 틀어막고 고고한 척 앉아 문학을 즐기면 네가 다른 세계 사람이라도 된 것 같지?"

    적대감이 가득한 말이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늘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소년은 한 마리 백조같았다. 케빈이 소리를 지르거나 같은 반 아이를 때려눕힐 때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소년 뿐이었다. 소년은 케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저런 표정이 제일 역겨웠다. 아무것도 몰라요. 저런 얼굴들은 대개 떠다놓은 물 같았다. 부수고 싶어 아무리 주먹질을 하고 침을 뱉어도 퐁당거리며 물 튀기는 소리만 날 뿐 제가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

"케빈, 나..."

    소년은 땅을 짚은 채로 가만히 있다가, 말하는 것이 어색한 듯 어물거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케빈이 손톱 끝으로 나무껍질을 신경질적으로 뜯어내다가 주먹질을 했다. 마른 손에 피가 났다.

"나, 나는..."

    피를 보고 놀란 소년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케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눈을 마주치고 말을 이었다. 케빈은 어쩐지 그가 말하는 것이 메아리처럼 자꾸 울려 잘 들리지가 않았다. 저도 모르게 그 눈을 쳐다봤다.

"오른쪽, 귀가 안 들려서..."

    바람이 불어 풀들이 누웠다. 그 사이로 케빈이 집어던진 하얀 귀마개 하나가 보였다. 케빈은 물을 부술 수는 없지만 더럽힐 수는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검은 잉크를 풀면 되는 일이었다.


도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