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재활 목적의 습작입니다.


네이선 블루는 광인이었다. 에드먼드는 네이선의 절친한 벗이었지만 사람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네이선 블루는 굳이 비유하자면 걸어 다니는 기행이었다. 그리고 에드먼드 라이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에드먼드 라이트'도 평범한 구석은 없다고 수군거렸으나, 그는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조금 복잡했을 뿐, 네이선 블루에 비교하면 에드먼드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라이트 자작가의 삼남이었다. 위로는 두 형과 누이 한 명이 있었다. 라이트 자작가는 사실 조부 대에 크게 망할 뻔했다. 에드먼드의 조부는 도박 때문에 손 하나를 날릴 정도로 정신이 나간 도박광이었다. 하지만 에드먼드의 아버지를 사랑했던 신대륙의 부유한 상속자가 기꺼이 지참금으로 라이트 자작가의 빚을 갚아주었다. 그 상속자가 바로 에드먼드의 어머니였다. 에드먼드의 부모님은 사랑했고, 자식을 다섯이나 낳았다. 다섯째는, 에드먼드의 남동생은 한 살이 되던 해에 고열로 죽었다. 어머니는 에드먼드가 열 살 되던 해의 봄에 폐렴으로, 그리고 에드먼드의 아버지는 에드먼드가 기숙사립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마차 전복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의 신탁으로 주식 투자를 크게 망하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라이트 자작가는 망했다. 그것도 쫄딱 망했다. 천만다행으로 누이의 지참금만은 남아 있었다. 누이는 쫄딱 망한 라이트 자작가에서 탈출했다. 자, 이제 젊은 라이트 자작-첫째 형님-에겐 소심한 둘째와 영민한 셋째가 남았다. 라이트 자작은 소심한 둘째를 '종교'에 의탁하도록 유도했다. 둘째는 신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영민한 셋째는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하겠노라 약조했다. 에드먼드 라이트는 군인이 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그는 사교계를 통틀어서 신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하지만 라이트 자작가는 망했다. 그리고 에드먼드는 '라이트 자작가의 스캔들'을 재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사교계에서 철저히 무시당했다. 신대륙의 졸부 상속자. 라이트 자작 부인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신탁으로 묶어두었던 돈은 한 푼도 남김없이 빈 종이가 되었다. 아버지, 도대체 주식 투자는 왜 하셨던 거죠? 누이의 지참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것도 다 써버렸다면 그들에겐 답이 없었다. 새 라이트 자작이 모든 걸 수습하는 동안 에드먼드는 장학금을 노리기로 했다. 기숙학교를 다닐 때부터 동기들은 얼굴만 번드르르한 에드먼드 라이트는 뇌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욕하고 다녔지만, 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은 바로 에드먼드였다. 대학은 더 수준이 높지만 에드먼드는 장학금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네이선 블루'였다. 네이선 블루? 이 대학의 신입생은 대부분 에드먼드와 교류가 있거나,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이었다. 대체로 에드먼드처럼 기숙학교를 졸업한 귀족가나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이기 때문이었다. 네이선 블루라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다른 동기들도 놀란 눈치였다. 

'도대체 네이선 블루가 누구야?'

라이트 자작가는 폭삭 망했지만 에드먼드 라이트는 수재였다.

그런 에드먼드 라이트를 네이선 블루라는 본 적도 없는 놈이 이겼다. 에드먼드는 존경하는 형님께 반성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존경하는 첫째 형님께, 약조하였던 장학금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대부가 제 처지를 동정하셨기에 학비는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편의를 봐주셨기에 생활비도 융통했습니다. 저의 다정다감한 친구들도 도움을 주었고요. 형수님과 조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우리 영지는 그다지 수확이 좋지 못하여 늘 걱정입니다. 우연히 들었는데 사업 때문에 수도를 빈번하게 오신다고요. 비록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초대할 수는 없지만 대학에 한 번 와 주셨으면 합니다. 동기들에게 첫째 형님의 사업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럼 건강하시길, 에드먼드가.」

대부의 동정과 교수의 편의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모든 호의가 에드먼드가 갚아야 하는 빚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빌어먹을 네이선 블루. 교수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에드먼드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나 네이선 블루는 천재였다. 그는 마치 교수들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답을 썼다. 정체 모를 신입생은 빌어먹게도 에드먼드보다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에드먼드는 곧 네이선 블루와 마주칠 수 있었다. 왕립대학의 정원엔 큰 분수가 있었다. 화창한 날이면 분수 근처에서 책을 읽거나,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분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건 분수대에 길게 누워서 물을 맞고 있는 청년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기도하듯이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커다란 천사 조각상이 내뿜는 물을 맞으면서. 이 왕립대학엔 가끔 미친놈들이 나타나곤 했다. 자신의 비상한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광인들. 하지만 그 광인들은 대개 대학원생이었다. 저 잘생긴 미친놈은 심지어 대학원생도 아니었다. 에드먼드는 근처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아는 얼굴들이 죄 모여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네이선 블루를 보았다. 

네이선은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기지개를 켰다. 가늘어지는 눈동자 속 파란 바다가 보였다. 그 순간, 에드먼드는 직감했다. 그가 네이선 블루였다. 어디 출신인지도,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네이선. 에드먼드는 천천히 네이선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이선은 무표정하게 옷의 물기를 짜는 중이었다. 에드먼드는 충동적으로-몹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악수를 청했다.

 나는 에드먼드 라이트, 자네와 같은 신입생이야. 에드먼드가 인사하자 네이선은 잠시 눈을 찡그리더니 손을 맞잡았다. 네이선의 손은 물기로 차갑고 축축했다. 사실 첫 만남부터 네이선의 존재를 의심할 구석이 있었다. 단지 분수의 물을 오래 맞아서라기엔 네이선의 손은 너무 차가웠었다. 그러나 에드먼드 라이트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었다. 용과 인어, 뱀파이어 등은 허무맹랑한 존재였다. 에드먼드는 현실적이었다. 한때 그의 울타리였던 라이트 자작가는 파산 직전이었고, 첫째 형님은 어린 시절, 부모님은 너만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하였으며, 당장 대학 졸업 후엔 군 장교로 입대할 예정이었다. 당장 그다음 날에 총탄에 맞아 죽더라도. 왜 그 잘난 얼굴로 '라이트 자작가의 스캔들'을 재현하지 못하냐고? 신대륙의 상속자였던 어머니는 가난한 자작에게 첫눈에 반했다. 모든 재산을 자작가와 둘 사이의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에드먼드는 아버지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더 똑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먼드는 아버지처럼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였듯 제게 접근하는 여성을 사랑할 수 없었다. 신은 아름다운 에드먼드를 만들 때, 지나치게 완벽한 피조물에게 딱 하나의 결함을 선사하셨다. 에드먼드는 남색가였다. 지금까진 에드먼드의 시선을 사로잡는 남성이 없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네이선과 마주하자 그제야 모든 의구심이 해소되었다. 그는 비극적이게도 같은 남성한테 성적 끌림을 느꼈다. 평범. 에드먼드가 조금이라도 평범했더라면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과 신사적인 행동으로 라이트 자작가는 진작 구해졌었다. 결이 좋은 금발 곱슬머리, 숲처럼 짙은 녹색 눈동자, 길고 풍성한 속눈썹, 몸 선이 드러나는 의복 밑으로 잘 잡힌 근육, 웃을 때면 꼭 천사가 재림하는 것 같았다. 사교계엔 에드먼드를 기다리는 부유한 상속자가 흐르도록 넘쳤다. 에드먼드가 집안이 망했다는 핑계를 대며 사교장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 그 자신이 마음에도 없는 결혼 따위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사기 결혼일 때는 더. 집안은 망했어도 양심은 존재했다. 에드먼드는 보기 드물게 양심이 있는 청년이었다. 다만 에드먼드는 네이선 블루를 향한 그의 감정이 단지 '호기심'이라고만 착각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의 여름, 네이선이 태연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내 번식 행위에 어울려줬으면 좋겠어, 에드먼드."

에드먼드는 서류를 읽느라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커피를 뿜었다.

번식 행위? 뭘 어울려? 네이선의 거침없는 언행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커피는 왜 뿜은 거야?"

네이선은 에드먼드를 힐난하는 어조로 물었다. 에드먼드는 이성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거야 네시, 네가 번식 행위라는 저속한 발언으로 날 모욕했으니까."

"번식 행위는 번식 행위야. 질릴 정도로 해봤으면서 부끄럼 타기는."

"네시. 나는 미혼이야."

"그랬지. 하지만 결혼이라는 어떠한 의무가 없어도 씨를 뿌릴 순 있어."

"네시, 제발. 그 저급한 발언 좀 그만해. 우리 사업 이야기 중이었어."

에드먼드가 정색하자 네이선이 느릿하게 물었다.

"그럼 너는 나랑 사업 이야기만 평생 하고 싶단 거야?"

"평생? 그건 지옥이지, 네시. 평생 일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평생 일하게 될 수도 있어. 장로가 편지를 보냈거든."

장로? 네이선은 에드먼드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에드먼드는 그 편지의 한 문장도 읽을 수 없었다.

"아, 장로는 고대어밖에 쓸 줄 모르는데 깜빡했네."

이내 네이선이 편지를 뺏어 들었다. 

"너는 인간치곤 똑똑하니까 금세 읽을 줄 알았어."

사과는 없었다. 네이선은 그저 무례했다.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한 번 정도는 설명해줄게."

누굴 좋아해? 에드먼드는 멍하니 깜박였다.

"장로는 내 현조부고, 다 늙었지. 둥지는 비사오 화산에 있고, 육신도 거기 잠들어 있었는데 천 년 만에 깬 모양이야. 잠들기 전에 나더러 종족 보존을 위해 눈 딱 감고 한 마리만 낳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애석하게도 난 인간 연구 때문에 바빴거든. 그리고 나랑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용은 몇 마리 없는데 장로처럼 전부 화룡이야. 나만 수룡이라고. 난 그 용들이 닿기만 해도 뜨거워서 싫어. 하지만 장로는 내가 괘씸해서 더는 의무에 소홀한 내 행태를 묵인하지 못하겠고 당장 일 년 안에 알을 낳지 못하면 내 둥지를 폐쇄할 거야. 사실 이미 압수됐어. 저번에 둥지에 갔을 때 가져온 보석은 이게 전부인데-네이선은 보석 몇 개를 보여주었다. 사파이어, 에메랄드, 토파즈, 루비 등.-네 사업의 전망은 좋지만 너무 규모가 커졌어. 우린 삼 년 안에 파산할 거야, 에드먼드. 그렇다고 인어를 납치해서 울릴 순 없는걸. 그건 조약 위반이야."

에드먼드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네이선 블루는 용이고, 종족 보존을 위하여 한 마리쯤은 낳았어야 했지만 천 년 동안이나 그 의무를 방임했고, 비수오 화산에서 깨어난 현조부는 무척 노여워하며 네이선을 비난했다. 며칠 전, 에드먼드는 신문을 읽었다. 최근 비수오 화산에서 수상한 기색이 감지됐다. 학자들은 휴화산이었어야 할 비수오 화산의 이상 현상을 연구 중이었다. 그리고 네이선은 언급했다. '둥지는 비사오 화산에 있다. 천 년 만에 깬 모양이다. -장로처럼 전부 화룡이다.' 에드먼드는 추리할 수 있었다. 추리보다는 총론에 가까웠다. 그의 친우이자 사업 투자자인 네이선 블루는 용이었다. 그것도 일 년 안에 알을 낳아야 하는 용이었다. 


1차 BL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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