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킴-이쁘다니까 (inst)






불이 꺼진 어느 조용한 방 안, 레트로 스타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건조하게 울려 퍼졌다.


"와, 존나 대박…."


컴퓨터 앞에 앉은 남자는 흡사 취향 저격 야동이라도 발견한 양 숨죽여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30인치 화면 속에서는 잘빠진 몸매의 한 댄서가 이번 달 화제의 방송 댄스를 알려 주고 있었다. 언뜻 모양새만 보고 지나친다면 음침한 취향을 가진 변태를 연상할 수도 있겠으나, 영상 속 댄서는 예쁘장한 남자였으며 마우스를 딸깍이며 다음 영상, 또 다음 영상을 재생시키는 이 남자 역시 평범한 회사원(김태형, 27, 서울 거주)이었다.


김태형. 국적은 대한민국. 올해 나이 27세.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그는 모 은행 본사 스마트금융부에 근무하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태형은 대학 졸업 후 취준생 신분으로 살던 팍팍하고 고된 나날에 익숙해진 나머지 입사 직후 한동안은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 입사 1년 만에 거지 같은 부장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게 되었고, 우연히 만나게 된 댄스 강의 영상에 매료되고 말았다. 평상시에도 아이돌에 관심이 많아 종종 유튜브를 즐겨보던 덕분에 많은 양의 영상을 빠른 시간 내에 독파할 수 있었으나, 자동 재생 목록에 뜬 '지미니짱의 댄스 교실'은 그 어느 영상보다도 이름만큼이나 무지막지하게 파격적이었다. 시대에 발맞추어 유튜브 채널을 이제 막 개설한 문화센터 댄스 강의 같은 느낌의 이름, 파워포인트 단색 그라데이션을 연상케 하는 채널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맨 처음 자동 재생 목록에서 그 이름을 목격했을 당시 태형은 지금이 2019년이 맞나 잠시 의심해야 했지만 '지미니짱의 댄스 교실'은 나름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명 유튜브 채널이었다. 거기다 미리보기 화면에 뜬 선생님의 외모는 흡사 아이돌처럼 눈부셨다. 자타공인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자인 태형은 선생님의 얼굴에 한 번, 홀린 듯 클릭한 영상 속에서 BT21의 Airplane pt.2를 추는 선생님의 빼어난 춤선에 두 번 마음을 빼앗겼다.


태형은 그날 이후 과하게 규칙적인 사람으로 변모했다. 퇴근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야근 또한 도맡아 하기로 유명했던 그가 여섯 시 정각만 되면 온갖 서류를 아무 곳에다 처박고 홀연히 일어나 자리를 뜬다는 소식은 이미 스마트금융부 전체를 조용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여유롭게 집에 가는 것이 좋다며 꼭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던 그가 돌연 지하철로 이동수단을 바꾸었다는 목격담 또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약 편도 30여 분 단축된 출퇴근 시간을 무엇에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


답: 방에 틀어박혀 지미니짱의 댄스 교실 영상만 주구장창 봤다.


같은 영상도 두 번, 세 번 봤다. 이미 올라와 있는 영상들은 적어도 열 번 복습했다. 안무까지 모두 외울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단순한 복습 차원을 뛰어넘어 씹덕 포인트까지 하나둘 열 손가락 가득 꼽다 보니 덕심에 불이 붙었다. 아, 언제 또 업로드될까. 다른 자료는 더 없을까. 덕질을 해 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그런 감정들이 몽글몽글하게 솟았다. 지미니짱의 영상은 언제 어디서나 은혜롭고 설렜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었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기 마련.


2호선 왕십리 방면 지하철에 앉아 지미니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태형은 제일 오래된 영상 몇 개를 뒤적이다 문득 영상 설명에 적혀있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람? 최근 영상에는 분명히 없었는데……. 일단 할렐루야.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태형은 인스타그램 웹사이트 버전에 접속했다.


"미모 무슨 일, 진짜. 와, 대박…."


면봉처럼 작은 전신 샷 영상에 익숙해져 있던 태형에게 지미니짱의 인스타그램은 그야말로 뉴 월드였다. 인스타그램에는 지미니짱의 클로즈업 셀카, 상반신 셀카, 수수한 미소 셀카, 새 옷 자랑 셀카 등이 도배되어 있었다.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예쁘다. 지미니짱 님은 너무 고져스, 아름답고, 귀엽고, 숭고하고… 그냥 모든 수식어를 다 붙여도 성에 차지 않을 듯했다. 태형은 곧바로 앱스토어에 접속해 인스타그램 어플을 깔고 계정을 만들었다. SNS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지냈던 탓에 지미니짱 님의 계정을 다시 검색해서 찾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드디어 팔로우까지 했다. 그렇게 그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잉 1, 팔로워 0의 지미니짱 바라기 계정이 되었다.


"네일? 댄서가 직업 아니었나?"


스크롤을 내리는 것도 아까워 사진을 하나하나 소중히 감상하던 중이었다. 태형은 지미니짱의 인스타그램 칠십 번대 사진을 구경하다 네일아트 사진을 발견했다.


'지미니짱 님이 여자…?'


아닌데, 분명 영상에서 안무 설명할 때 들었던 목소리는 남자였는데. 스크롤을 내려 사진들을 더 살피다 보니 감이 잡혔다. 웹상에서는 댄서로 유명했으나 네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한 윤곽이 잡힌 것은 아니었으나 태형은 지미니짱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거의 반 미친 흥분의 도가니였다(이미 유튜브 구독자들 중 상당수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참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던 태형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인스타그램의 나머지 컨텐츠를 전부 천천히 감상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지미니짱 님의 실제 이름이 지민이라는 것, 아쉽게도 댄스 학원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네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라는 말에 충실하게도 한 번 커진 욕심은 점점 더 번져갔다. 태형은 지금 당장 팬 미팅이든 하이터치회든 오백 번이라도 응모해서 그를 만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지미니짱은 아이돌도 아니고 팬미팅을 열 정도의 유명인도 아니었다.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겨우 한 발짝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 멀리 아득히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매일 밤 더 끙끙 앓아눕곤 했다. 아, 만나고 싶다. 진짜 존나 만나고 싶다. 태형은 이 실체 없는 그리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지미니짱 님의 영상을 돌려 보고 또 돌려 봤지만 한 번 커진 마음은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았다.


"김 주임, 어디 아파?"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아프긴 아팠다. 지금 태형은 지독하기로 소문난 상사병에 걸려 있었으니까. 출근길에도, 혼밥을 자처해서 간 식당에서도 태형은 지미니짱의 인스타그램 계정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지미니짱의 바쁜 현생을 증명하듯 생각보다 새 게시물은 자주 올라오지 않았다.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 케케묵은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걸까. 태형은 뜸해진 소식에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이를 알 리 없는 지미니짱은 매일 같은 프레임 속 사진 속에서 변함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후, 태형은 애먼 곳을 터치했다가 다시 한번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계정 주인이 태그된 게시물을 모아 볼 수 있는 메뉴가 바로 그것이었다. 충만한 덕심으로 지미니짱이 태그되어 있는 게시물을 찬찬히 구경하던 태형은 문득 이상한 데자뷰를 느꼈다. 수줍게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는 지미니짱의 사진 속 배경이 익숙하게 다가왔던 탓이었다. 자세히 보자 회사 근처 네일샵이었다. 말끔하고 고급스럽게 생긴 외관 때문에 카페로 착각해 들어갈 뻔했던 기억이 났다. 본문을 읽어 보니 지미니짱은 해당 네일샵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존나 운명의 데스티니…. 태형은 또 한 번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그는 가장 근본적인 고민과 마주했다.


남자가 네일을 받기도 하나?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무작정 찾아가서 꽃다발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행했다가는 아마 유치장에서 다음 날 아침을 맞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지미니짱을 만날 구실로 네일을 받으러 가자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만 같았다. 태형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절대 작지 않은, 예쁘지만 남자다운 골격. 이 손에 네일아트…?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덕후의 마음은 이미 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태형은 마음 먹은 김에 지미니짱네 네일샵 인스타그램 계정을 눌렀다. 순식간에 화려한 온갖 네일아트가 눈을 어지럽혔다. 잠시 현기증이 날 것 같아 휴대폰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했다.


"지미니짱…."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메인에 있는 간결한 설명을 쭉 읽어 보니 기본 케어만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손 관리는 남자들도 종종 받는다고 하니(지식인에 물어봤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태형은 앉은 자리에서 네일샵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미니짱이 일하는 시간대를 알아본 후 예약까지 마쳤다. 태형은 이리저리 방방 뜨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드디어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다. 태형은 새벽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흡사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을 연상케 했다. 태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출발 삼십 분 전 나갈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중요한 자리를 위해 마련했던 디자이너 브랜드 셔츠부터 최근 새로 산 로퍼, 그리고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었던 조 말론 향수까지. 그야말로 풀 세팅이었다. 오늘 회사에는 월차를 냈다. 네일아트 때문에 월차를 썼다는 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부장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터였으나 태형은 이후의 일 따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그는 오늘만 살기로 했으니까. 휴대폰과 에어팟을 챙겨 든 태형이 현관을 열었다. 아, 날씨 한번 좋다.


오전 타임 예약 시간에 늦을 것을 우려한 태형은 오늘도 정확한 도착 시각을 자랑하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오늘은 너무 떨릴 것 같아 일부러 유튜브 어플에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여유 넘치는 도시 남자를 연기하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없이 했다. 지하철 창문에 대고 스윗한 미소를 연습하며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출구를 나와 지민이 일하는 네일샵 근처에 가까워지자 노력한 보람도 없이 심장이 세 배, 네 배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백 미터, 오십 미터, 삼십 미터, 십 미터, 삼 미터…. 네일샵은 태형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투명한 창 너머로 넓고 깔끔한 테이블과 색색의 네일 컬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밝은 조명이 여러 개 켜진 샵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실루엣 또한.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태형은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손을 슥 문질러 닦고 서둘러 문 손잡이를 쥐었다. 네이버 시계를 보니 예약 시간까지 딱 1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쾌한 종소리가 샵 안을 가득 울렸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저 예약했던 태태라고…."

"아… 네. 앉으세요."


말로만 듣던 실물 영접이다. 미친, 김태형 존나 계 탔어. 미쳤다. 태형의 마음속에서는 연신 불꽃이 팡팡 터졌다. 매일 태형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 춤을 추던, 컴퓨터 영상 속에서 조곤조곤 화제의 안무를 설명하던 그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태형의 아이돌 지미니짱. 실물은 태형 기준 오백 배는 더 예뻤다.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카락과 깔끔하게 정리된 눈썹, 그리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얼굴에 발갛고 도톰한 입술은 태형에게 심각한 2차 심장 어택을 가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지민의 코디를 빠르게 스캔하던 중 오늘 태형이 두르고 온 목도리와 같은 색깔의 깔끔한 아이보리 스웨터를 지각한 순간 태형은 오늘 서로의 착장이 마치 커플룩 같다는 뇌내망상에 행복에 겨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그랬다. 태형에게 이 자리는 팬미팅 자리요, 하이터치회 자리였다.


"… 혹시 이게 마음에 드세요…?"

"네!"


반면 지민은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태태라는 귀여운 닉네임 덕분에 예약자가 남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1차 당황, 정장 차림의 멀쩡하게 잘생긴 남자가 들어와서 2차 당황. 아침부터 매우 버라이어티했으나 태형 못지않은 얼빠였던 지민은 잠시 햇살이 비쳐든 듯 행복한 기분에 젖었다. 하지만 이 남자, 어딘가 이상했다. 예약 사항에 기본 케어라고 해서 그렇게 준비해 두었는데 자꾸만 아트 샘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마음에 드냐고 가볍게 던진 말을 냉큼 받아 먹는 건 또 뭐고.


아, 약간 그런 쪽인가…? 그래, 남자가 네일을 받을 수도 있지. 그러나 화려한 플라워 파츠의 핫 핑크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남자의 성 정체성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지민은 본 투 비 게이였으나 살면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일아트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했는데, 그저 어려서부터 미용업에 종사하셨던 어머니를 닮은 손재주 덕분이었다. 손놀림을 눈대중으로 따라 하다 보니 금방금방 늘었고, 흥미를 느끼기도 했고, 또 색에 대한 감각도 탁월했던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자격증을 땄다. 부산의 어머니 샵에서 일을 함께 하던 지민은 상경 직후 어렵지 않게 샵에 취직해서 막 1년차를 찍었다. 부르는 곳이 많았으나 그의 최종 목표는 댄스 학원을 차리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방송 댄스와 스트릿 댄스를 오래 했고 아이돌 연습생으로 있던 시기도 있었으나 지금은 큰 욕심이 없었다. 유튜브로 인지도도 모았겠다, 조금만 더 모아 부산에 학원을 차릴 생각이었다. 나름 평탄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색은 이대로 갈까요?"

"네? 네!"

"아… 네…."


지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런 포인트까지 캐치할 리 없는 태형은 지민을 영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119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태형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인가를 조곤조곤 건네며 부드럽게 다듬어 주는 지민의 손은 태형보다 족히 한 뼘은 더 작아 보였다. 꼼지락거리는 하얀 손가락 하나하나가 너무 심각하게 귀여워서 씹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람이 너무 귀여운 것을 보면 미쳐 돌아버린다는 말을 실시간으로 체험 중이었다. 이래서 귀여운 애들 보면 울리질 못해서 난리인 걸까. 태형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민이 무슨 말만 하면 무조건 Yes, Yes만 외치고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는 네일이 완성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 되셨어요. 특별히 더 신경 써 드렸어요."

"네네, 감사합…."

"손톱 바디가 길어서 예쁘게… 잘… 됐네요…."


태형의 손은 마디가 심하게 굵은 곳도 없이 길쭉길쭉 예뻤다. 특히 손가락이 길고 손이 큰 만큼 손톱이 매우 크고 길었다. 그런 손톱 열 개마다 화려한 핫 핑크 네일이 자리 잡은 덕분에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혼종이 탄생해 있었다. 설렘과 절망 사이, 천국과 지옥 사이가 있다면 지금 여기 지미니짱 님이 일하시는 네일샵이 아닐까…? 태형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생각했다. 무슨 정신으로 계산을 했는지도 모른 채 중얼거리듯 인사를 하고 샵을 나왔다. 손에는 지민이 쥐어 준 하얀색 명함이 있었다. 태형은 잠시 비틀대던 걸음을 멈춘 채 명함을 들었다.


"박지민…."


정보가 하나 더 업데이트되었다. 이제는 풀 네임도 알게 되었다. 어쩜 성까지 예뻤다. '박'지민이라 이거지. 심지어 명함 뒷면을 보자 그의 카톡 아이디가 버젓이 적혀있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태형은 이전에 전도지를 받았던 집 근처 교회에 이번 주 일요일부터 발 도장을 찍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만큼 기뻤다. 조금 전의 절망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박지민. 지미니짱 님. 추운 겨울바람은 매서웠지만, 태형의 마음속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와,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다, 저거."


샵 안에서 테이블을 정리하며 밖을 내다보던 지민은 공중에 발 박수를 치는 태형을 보며 경악했다. 핫 핑크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다. 근데 저렇게 신날 일인가…? 지민은 태형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충격에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민의 카톡 친구 추천에 조용히 1이 더해졌다.


집에 도착해 옷도 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운 태형은 휴대폰을 붙잡고 기쁨의 몸부림을 쳤다. 지민의 카톡 프사를 몇 번이고 눌러 보고, 지민의 프로필 음악도 멜론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해 놓았다. 블링블링한 손톱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미니짱의 고귀한 흔적일 뿐.



누가 덕후는 계를 못 탄다고 했는가.

태형의 첫 번째 덕질 팬 미팅은 그렇게 화려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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