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The Kid - i need you more




김해영, 나는 너의 이름 세글자에 여전히 숨이 막히고 마는데 너의 숨은 어디에도 없어서 또 한 번 무의미한 질식을 꿈꾸다가 이내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네가 죽은 열여덟에 딱 열을 더한 나이가 되었다. 스물 여덟, 이때의 너는 싱그러움을 넘어선 겨울의 하얀 눈꽃처럼 참 아름다운 사람일 텐데. 나는 너의 스물 여덟을 보지 못해 통탄스러웠다. 진실로 억울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날 사랑하는데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가미 없이 태어난 돌연변이 물고기인 나는 심연에 가라앉는데, 땀에 젖은 이마를 아무리 닦아도 이곳은 물속인데, 나 왜 죽지 않는 거 같지.

너의 기일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호흡의 부작용으로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물을 방출하고 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운다. 세상은 까맣게 물든 겨울이고, 창 너머는 푸른 물빛이고, 너는 없다. 너의 죽음은 내 앞에서 완성되었다. 나는 그것을 여태 단 한 번도 잊질 않았다.

해영아, 난 너를 잊지 않았어.

너의 온기를 마지막까지 둘렀던 머플러를 버리지 못했고, 따뜻한 우유는 절대 마시지 못하고, 해와 영의 사이를 서성이며 울어. 나 아직도 열여덟의 겨울처럼 울어, 해영아.

영아, 영아, 해영아, 김해영. 나 좀 한 번만 안아주라....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떠나 강묵현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수려한 외모인 미남에, 큰 키와 격투기 선수처럼 탄탄한 몸,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 차근차근 쌓은 실력까지. 여타 다른 선수들과 달리 사생활 역시 깔끔했다. 그에게 관심을 표한 사람은 많지만 가벼운 마음이라도 만나거나 데이트한 적이 없고, 팬에게는 무척 친절하고, 구단 식구들과 선후배와 관계 역시 완만했다.

모두에게 곁을 내주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강묵현은 혼자였다. 김해영이 죽은 이후로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친구조차 만들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고, 회식이라는 명목하에 하는 사회생활은 있어도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는 언젠가 가야 할 김해영의 천국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버티는 중이었다. 영 멋없는 차림으로 가면 김해영이 분명 실망할 테니까, 근육질의 몸에 걸맞은 야구 점퍼도 걸쳐주고,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보여줄 요량으로 손바닥에 굳은 살도 잔뜩 만들며 연습하고.

김해영의 기일은 겨울이었다. 강릉 바다마저 얼 거 같은 그런 추위가 들이닥치는 날이었다. 강묵현은 그해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던 음식을 골라 포장해 김해영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제사를 지낼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배불리 먹을 때, 김해영의 상만 텅 비어있게 할 수는 없어서 강묵현은 김해영의 기일 마다 함께 먹고 싶었던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김해영의 생일에 끄지 못한 초도 켜고, 케이크도 준비했다. 열두 시가 되면 잠시 기다렸다가 입술을 꾹 다문 강묵현이 후, 불어 초를 끄곤 했다. 제사를 지내는 예절은 잘 모르겠고, 그냥 김해영이 여기에 왔다면... 울지 않고 맛있는 음식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돌아갔으면 해서.

강묵현은 나직이 십년 간 누구도 앉은 적 없는 반대편 의자를 응시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음울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무거워서, 해영아, 많이 먹어 그 말 한 마디를, 아직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김해영이 언제 올 지 몰라서 강묵현은 모든 기일에 휴가를 내고 뜬 눈으로 낮과 밤을 지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운동도 하고, 물도 마시고, 그를 닮아 담백한 집도 청소했다. 바뀌지 않는 것은 식탁에 둔 식사였다. 열두 시엔 케이크를 두었고, 아침엔 따뜻한 우유를 데워 맛집에서 줄을 서서 사 온 빵을 두었다가 점심 땐 반찬과 국을 끓여 두고, 저녁엔 같이 술 한 잔 없어서 맥주와 와인을 종류별로 두었다.

그리고 다시 열두 시가 지났을 때 울었다. 김해영만 본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 큰 남자가 어깨를 굽히고 소리 내 울었다. 사랑을 눈앞에서 죽인 자만이 내뱉은 처절한 울음이었다. 눈물, 타액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솥처럼 크고 거친 손바닥으로 덮었다. 코끝이 시큰대고 눈가가 아팠다.

그만 울어야 하는데,

혹시 내 울음소리를 듣고 네가 뒤를 돌아볼까 무서운데, 

실은 네가 그렇게라도 뒤를 돌아보고 나를 끌어안아 주길 바라서.

울다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그냥 식탁에 엎드렸다.


"묵현아, 왜 이러고 자?"

뻐근한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났을 때, 내가 꿈꾸던 스물 여덟의 네가 있어서 나는 그만 언어를 잃어버렸다.

"우리 오늘 바다에 가기로 했잖아. 일찍 출발해야 차 안 막힐 텐데...."

너는 나의 일상을 당연하게 침범했고, 시계를 보며 초조해했다. 가볍게 챙긴 짐 가방을 들고, 따뜻한 패딩을 입은 너는 앳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열여덟은 아니었다. 네가 앞에 있는데, 나는 울 뻔했다. 꿈이었구나. 너를 잃은 줄만 알았던 아주 긴 꿈이었구나.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목까지 찬 울음을 세면대에서 뱉었다. 깔끔하게 면도하고, 찬물로 정신을 차리고, 네가 당연히 들어온 일상을 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을 벗 삼아 부지런히 준비하고,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 나는 너의 존재가 정말 믿기지 않아서 뒤에서 끌어안았다. 너는 당황하지 않았고, 왜 이러냐며 조금 성가셔했다. 나는 그런 너의 표정에서 우리의 시간을 읽었다.

나는 정말, 너의 무언가가 되었구나.

그것은 백일몽 같은 새벽의 시간도 별다른 설명 없이 납득할 근거였다.

어디로 갈까. 행선지는 묻지 않았다. 김해영이 갈 바다는 한 곳 뿐이었다. 내가 살았던 강릉. 치기 어린 내기에 못 이겨 추운 겨울에 몸을 담그기도 했던 그 바다. 이상하게 운전하는 시간은 극히 짧았고, 우리는 어느새 막 해가 떠오르는 바다에 서 있었다. 바람은 매서웠다. 특히 막 새벽이 물러간 바다라서 더 그랬다. 너는 짧게 기침을 했다. 네게 주지 못한 감기약이 생각이 났다.

"추워?"

나는 재빠르게 너의 상태를 확인했고,

"아니, 감기 때문에."

너는 나의 심장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그러니까... 비로소 너의 무언가가 되었다는 오늘에 나는 너의 감기가 낫지 않음을 실감했고, 사라졌어야 할 횟집이 굳게 잠긴 채 그대로임에 무너졌고, 너의 얼굴에 덧입혀진 세월은 내가 여러 차례 상상하며 입힌 것임을 깨달았다.

"묵현아?"

얼굴은 상상해도 목소리는 완벽할 수 없었다. 너의 목소리는 열여덟의 김해영이었다. 결코 스물 여덟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수 없듯이 결코. 나는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다가 너를 품에 안았다.

"해영아."

목이 멨다. 낮게 가라앉다 못해 갈라지는 스물 여덟의 내가 널 불렀다. 네가 내 뺨에 손을 대고 걱정했다. 이따금 말에 기침이 섞여 나왔고, 이마는 뜨거웠다. 죽어가는 너를 끌어안고, 네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리던 감각과는 달랐다. 이 무슨 절망이고 아픔이고 고통인지 그런데도 이 어떤 환희이고 사랑이고 그리움인지.

"해영아, 나 그냥 한 번만 안아주라...."

아프진 않아? 밥은 먹었어? 잘 지내? 하고 싶던 모든 말을 넣어두고서, 내가 널 끌어안는 게 아니라 네가 날 꼭 안아주는 걸 남기고 싶었다.

너의 죽음을 수습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널 안는 것뿐이었다. 너의 유해는 어딘가에 안치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널 마주할 수 있는 흔적이 또 한 번 사라진 것이다. 나 얼마나 절박했던가. 이런 머저리 같은 꿈을 다 꾸고.

하지만 나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는 게,

"오늘 왜 이러지?"

하며 웃는 너의 말 한 마디에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문다. 이윽고 애정이 충만한 연인처럼 당연히 나를 안아주는 너의 모습에 흐느낀다. 등을 토닥이고, 왜 울어 하며 이유를 묻는 네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다.

해영아, 너 강릉 바다에 있었구나. 폐가 약해 오래 뛰지 못했던 너는 실은 육지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바다와 바다의 이름을 지닌 너는 죽은 게 아니라... 너 여기, 강릉 바다에 돌아온 거라고 얘기하려고 했던 거구나.

보고 싶었어... 진실로, 진심으로 전하려던 말이 완성되기 직전에 너의 인영이 흐려지고, 바다가 밀려나고, 새벽이 몰려왔다. 날 끌어안은 네가 사라지고, 네게 처음 안긴 내가 사라질 때 나는 식탁에 엎드린 채 잔뜩 울고 있었다.

"...."

해영아.

나는 오늘도 너의 이름의 발음을 헤아리다가 숨이 막히고 만다.




공터 짧은 외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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