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에코백이 찢어졌다. 정확히는 가방끈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가득한 번화가 한복판에서였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텀블러는 뚜껑이 열려 이리저리 튕겨나가 내용물을 사람들의 신발과 바지자락에 흩뿌린다. 보조배터리에 연결해놓았던 핸드폰은 가장자리의 액정이 나갔다. 화면이 보라색으로 번지는 것으로 봐서 오늘 내로 무조건 A/S를 맡겨야만 하는 상태이다. 파우치 안에 들어 있던 파운데이션 병은 완전히 박살이 났는지 파우치 안에서 베이지색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다. 오늘 다녀온 전시회의 티켓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다행히도 K가 처한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재앙 수준이었는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K의 물건을 주워주었기에 이 일련의 과정을 확인하는 데에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K는 마치 세 시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것 같은 수치심과 피로감을 느꼈다.


가방끈이 뜯어진 에코백은 커피와 파운데이션으로 덕지덕지 물들어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K는 가까운 상가의 계단에 주저앉아 멀쩡한 물건과 고치거나 손을 봐야 하는 물건, 그리고 버려야 하는 물건을 나눴다. 아니, 그것보다 오늘 핸드폰 A/S는 가능한가? A/S센터의 운영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도 벌써 액정의 반 이상이 보라색으로 변해버렸다. 이럴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웃든가, 울든가. K는 적어도 전자가 후자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둘 중 뭐라도 해야 할 때가 오니 둘 중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여기요."



그렇게 가방에 주섬주섬 물건들을 담고 있는 K의 눈 앞에 깨끗한 천 하나가 내밀어졌다. 에코백이다. 그리고 그걸 내미는 이는 K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뇨. 괜찮아요. 편의점 가서 봉투 달라고 하면 돼요."

 "그냥 받아요. 어차피 세일 상품으로 내놓은 거에요."



K가 앉은 계단 바로 옆에 에코백이 이리저리 널린 가판대가 보였다. 아무래도 가게 주인인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돈 낼게요. 현금 있거든요. 얼마에요?"

 "이건 주세요. 버려드릴게요."



가게 주인은 너덜너덜해진 가방 안의 물건들과 쓰레기를 챙겼다. 그리고 가게 주인의 눈에도 점점 비현실적인 색으로 물들어가는 액정이 보였다.



 "요 앞에 서비스 센터 있어요. 주말이라서 사람이 많을 것 같긴 한데 빨리 가 보세요."



편의점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 핸드폰 문제가 더 급했던 K는 결국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새 에코백을 받았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받아 적당히 따뜻하게 열이 오른 천의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다. K는 나중에라도 이 가게를 찾아 뭐라도 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가게 주인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에코백이 아니라 아주아주 튼튼한 백팩을 매고 올 것이라고, K는 생각했다.





(구) Second Ezequ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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