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현자

동쪽 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동쪽의 마법사 여러분께서는 폭풍의 계곡에 가주셔야 합니다.

파우스트

폭풍의 계곡....?

네로

들어본 적 있어. 일명, 미혹의 계곡이다.

히스클리프

미혹의 계곡......

네로

아아.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해.

시노

흥. 과연 샤우드의 숲지기인 나를 헤매게 할 수 있을까.

파우스트

어떤 이변이 일어난거지?

현자

원래부터 불가사의한 계곡답게, 다양한 이변이 다발하고 있다고 해요. 인근 마을에서는.....

폭풍의 계곡에 사는 검은 마술사와 하얀 마녀에 관련된 일이 아니냐고 하던데요.

파우스트

검은 마술사에 하얀 마녀?

현자

네. 사람을 미혹시키는 검은 마술사와, 사람을 돕는 하얀 마녀가 있다고 해요.

파우스트

.........

네로

짐작가는 거라도 있는 건가, 파우스트.

파우스트

없어. 하지만, 폭풍의 계곡은 은자들이 숨은 계곡이라고 들었다.

어떤 녀석들인지는 모르지만, 그들도 사람이 있는 세계를 싫어해서 조용히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시노

자기가 은둔형 외톨이라고 해서 걔네 편을 들지 마. 일단은 가서 조사하자고.

파우스트

......알겠다. 그렇지, 현자. 폭풍의 계곡에 가면, 정령몰이를 해보는 게 좋다.

현자

정령몰이, 요?

파우스트

「고양이춤 이삭」을 꾀듯이 흔들면 고양이인 척 하는 정령들이 몰려오는 경우가 있어.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모습을 본 사람은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의 교류를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자

정령몰이 말이죠. 알겠습니다. 다음에 해볼게요.

파우스트

그러도록 해, 귀엽고 말이야. 그럼 폭풍의 계곡으로 가자.


2화


현자

이곳이 폭풍의 계곡.....

히스클리프

왠지 분위기가 들떠이는 곳이네요. 소리가 많고, 기척도 많아.....

시노

정령들도 숨어있는 것 같군.

현자

(듣고 보니, 소리나 기척이 많이 느껴져......)

(바람 소리.....)

(벌레의 소리......)

(새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신비롭고 이상한 곳이네...... 반짝반짝 빛나는 꽃가루나, 가지에 매달린 열매나, 발밑의 초록색 이끼도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정령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킥킥 웃으면서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네로

이 계곡을 방황하는 인간은 괴기하고 성가신 경험을 겪겠지. 이곳은 짐승과 정령들을 위한 계곡이다.

현자

샤우드의 숲과는 다른가요?

시노

샤우드의 숲은 중심에 블랑솃 성을 두고 있어. 생생한 인간의 것에 가깝다.

파우스트

맞아. 이곳은 인간이 접근할만한 곳이 아니다.

현자

아..... 성인 남자가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두 갈래의 나무 뿌리.

인근 마을 주민이 말하기를, 이 나무 뿌리의 빈 구멍에서 쉬려고 했는데 굴러 떨어졌다고 해요.

파우스트

.....여기서 떨어진 건가?

네로

결계를 치고 숨어 살고있는 마법사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가끔씩 묘한 공간이 결계 안으로 연결되거든.

시노

검은 마술사나, 하얀 마녀의 집일 수도 있겠군.

히스클리프

마을 사람들은 두 명의 마법사를 만난 거지요. 어떤 체험을 하신 건가요?

현자

구멍에서 떨어진 후, 정신을 차려보니 하얀 마녀가 간병을 해주었다고 해요. 다친 다리도 마법으로 고쳐줬다고 하고.

그 후에 검은 마술사가 찾아와서 이 계곡에 접근하면 저주를 건다고, 다시는 접근하지 말라고 했대요.

파우스트

.......다른 정보는?


3화


현자

하얀 마녀는 도마뱀을 좋아하고, 검은 마술사는 새를 먹고 있었다고 해요.

시노

괴식을 먹는군. 미스라의 친척 아닌가?

현자

그리고 마녀의 작은 집은 강변에 있었고, 정원에는 고양이가 머무는 흰색이나 보라색 풀이 자라고 있어서 아름다웠대요.

네로

고양이가 씹는 풀인가. 뭐, 가보면 알겠지. 이 구멍 속으로 말이야.

파우스트

기다려, 네로.

네로

괜찮다니까. 묘한 기척은 안느껴져. 그럼, 먼저.

현자

저희도 가봐요.

파우스트

..........


현자

......으, 아야야...... 여기는 어디지? 다른 사람들은......?

아..... 고양이다!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 형제인가. 눈 색이 비슷해......

검은 고양이가 수컷이고 흰 고양이가 암컷 같네. 너희 어디서 온거야?

아..... 강가의 작은 집.......

파우스트

현자.

현자

파우스트. 다들 무사한가요?

파우스트

시노와 네로가 히스를 찾으러 갔다. 목소리는 들렸으니까 괜찮겠지. 여기서 대기하자.

현자

다행이다. 파우스트, 저 집을 봐주세요. 마을 사람이 말했던 오두막같지 않나요.

파우스트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현자

네!? 그, 그런가요..... 하지만, 정원에 흰색과 보라색 꽃이 있고 흰색과 검은색 고양이가 두 마리......

파우스트

이녀석, 그만두렴. 후후, 그래그래.

현자

좋겠다..... 엄청 따르고 있어......

파우스트

따르고 있지 않아. 너희들, 저쪽에 다녀와.

현자

........... 저 집을 조사하러 가볼까요? 하얀 마녀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파우스트

아니, 필요 없어. 무관한 사람의 집이다.

현자

어떻게 단언할 수 있죠? 아..... 검은 마술사 쪽이 나타나면 위험하니까......?


4화


파우스트

보통은 멋대로 남의 집에 쳐들어가지 않잖아. 문도 잠겨있고 부재중이야.

게다가 강한 결계도 쳐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고 해도, 가까이 가지 못하겠지.

현자

그럼 역시 마법사의 은둔처군요.

파우스트

이런 곳에 살고 있으니, 어지간히도 사람을 싫어 하는 이야. 가만히 놔두면 돼.

현자

(파우스트..... 자기도 사람 사귀는 게 서투르니까 은자 생활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네......)

파우스트도 은자 생활을 하고 있었죠. 어떤 생활이었나요?

파우스트

어땠냐니...... 나는 저주상이었으니까. 음침하고 살벌한 생활이었지.

현자

그렇군요...... 외롭지는 않았나요?

파우스트

사람이 없을 때에만 외로움을 느낀다고는 할 수 없지.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있어.

현자

...........

파우스트

다들 고독을 독처럼 여겨. 하지만 독이라면 약이다.

고독 안에도 위안은 있어.


선택지 1

현자

알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시간은 편해서 좋아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는 정말 좋아하지만, 혼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야하나......

파우스트

그렇네.

현자

파우스트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나요?

파우스트

아니...... 지금도 모르는 대로야.


선택지 2

현자

그럴까요...... 혼자만의 시간이 편할 때도 있지만 혼자 위안받는 건 무서워요.

아무도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왠지 쓸쓸한 것 같아서.....

파우스트

사람이나 마법사만이 네 친구라고는 할 수 없겠지.

벌레도, 새도, 짐승도 네가 사는 세상의 주민이다. 때로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지.


파우스트는 재롱을 떠는 고양이들을 안아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파우스트

나만이 존재하는 고독한 세계에서, 무한히 자신을 돌이켜본다. 그러는 사이에, 어째선지......

시간은 지나고 있지 않다고도 생각해.


파우스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작은 집이 세계에 골고루 주어진 시간의 흐름에서 잘려 나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5화


파우스트

옛날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마음의 나이는,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의 수만큼 늘어가는 거라고.

나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파우스트가 하얀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요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검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미소지었다.


현자

그럼, 요새 들어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거네요. 얽힌 사람이 갑자기 늘어서 떠들썩 해졌겠지요.


파우스트는 눈을 깜빡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큭큭 웃었다.


파우스트

네 말이 맞아. 1년동안 나눌만한 대화량을, 지금은 하루만에 채우고 있어.

내가 보내온 수백년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릴 것 같아.

시노

파우스트!


대화 도중, 시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로와 히스클리프도 함께인 것 같았다.

시노는 마도구인 큰 낫을 꺼내면서 성큼성큼 작은 집으로 향했다.


시노

아마도 이곳이 마녀의 집이다! 부순다!

파우스트

기다려!

네로

서두르지 마, 시노! 집 주위에 결계가 쳐져 있어! 게다가 뭐랄까, 이 결계는......

시노

흥. 이런 음침한 기운이 풍기는 결계 따위, 내가 부숴주지.

파우스트

기다려.....!

히스클리프

어라.....? 이 집 앞에 놓여져 있는 고양이용 물접시.....

시노

《맛차•스디파즈》!

파우스트

이 바보가! 되갚아주는 술식이 발동한다.....!

《사틸크나트•물클리드》!

현자

.........! 시노의 낫이 닿기도 전에, 집을 감싸고 있던 이상한 공기가 풀어졌어!

네로

결계가 풀렸거든. 그 말은......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선생님...... 저 고양이용 물접시, 중앙 국가의 도시에서 사셨던 물건이죠? 분명, <거대한 재앙>과 싸우기 전에.....

스승님과 함께 장을 보고 있었을 때, 드물게도 파우스트 선생님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요.

파우스트

..........

현자

설마..... 이 집은, 파우스트의 은신처?

파우스트

..........

맞아.


6화


파우스트는 발밑에서 장난치는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에게 물접시를 내주며 말문을 열었다.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을 앞두고, 계곡에서 헤메다가 다친 인간을 구했다. 그뿐이야.

시노

하얀 마녀와 검은 마술사는?

파우스트

엄청 고마워하면서 꼭 보답하러 오겠다고 하니까 나와 만난 기억을 빼앗으려고 했었어.

그때 이 아이들이 방해를 해와서, 기억을 빼앗지 못하고 뒤섞여서 애매하게 구축된 거겠지.

히스클리프

즉..... 치료를 해준 파우스트 선생님과 흰 암컷 고양이의 인상이 섞여서.......

네로

이곳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 당신과 검은 수컷 고양이의 인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된거구만.

파우스트

아마도.

네로

그건 그렇고, 이곳이 파우스트의 은신처.......

........ 전혀 저주상같지 않네.......

현자

치유받는 슬로우 라이프네요.......

파우스트

시끄러워. 바닥에는 짚인형이 뒹굴고 있어.

히스클리프

선생님의 집 안 보고싶다..... 아, 안될까요?

네로

저녁이라도 먹게 해줘. 눈앞의 강, 수질이 좋아 보여.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을 것 같고.

시노

저기, 뒤에 밭이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야채가 있었어. 썩기 전에 먹자고.

파우스트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임무는 어쩌고?

시노

이녀석들 덕분에 해결했잖아.

훗..... 귀여운 녀석들이다. 오늘밤은 서비스 해주지.

파우스트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아아 정말, 어쩔 수 없네.

사틸크나트•물클리드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우자 옅은 빛이 작은 집의 주위를 감쌌다.

말라버린 잎과 먼지가 깨끗히 사라지고, 흐렸던 창문이 반짝반짝 빛나고, 천천히 현관문이 열린다.

어깨를 으쓱하며 파우스트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파우스트

자. 어서 들어와.

게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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