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설정(이야기 공통)

-수명은 자연상태의 인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성장은 좀 더 빨라서 생후 10년 전후로 성체가 됩니다.

-개체수가 매우 적고 해안가로 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어 발견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야생동물로서는 지능이 매우 높아 좀처럼 포획되지도 않습니다.

-인류와 동일한 염색체 수를 가지고 있으며 인류와 교미하여 자연적으로 후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계통적으로 매우 가까운 포유동물입니다. 다만 인어의 유전자는 인간에 대해 강력한 우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각각 순종의 인어와 인간이 생식하더라도 둘의 특징을 반씩 갖는 새로운 모습의 잡종이 아니라 완벽한 인어의 모습을 갖춘 잡종이 발생합니다.

-인어와 인간이 교잡했을 때, 암컷 인어가 인간 남자와 교미한 경우의 수정란 생존률은 상당히 높지만, 반대로 인간 여성과 수컷 인어가 생식한 경우에는 착상 이전에 수정란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으로는 자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식지 및 활동 반경이 광활한 데에 비해 개체수가 너무 적어 인어끼리도 마주치는 일이 드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컷 인어는 암컷을 발견하면 수정에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 따라 다니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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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작가인 젠야타는 다음 작품을 위해 한 달 가량 머물 예정으로 작은 어촌이 있는 섬으로 잠시 내려온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 위주로 사진을 찍다가 섬이 조금 익숙해지자 주민들에게 물어 섬에서 사람 발길이 드문 곳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들은 곳 이곳저곳 다녀본 다음 해질 무렵이 되어서 섬 동편의 모래사장에 도착한다.

렌즈를 통해 짙은 남색의 동쪽 바다를 보는데 멀리 수면 위로 사람 머리 하나가 솟아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제법 가까이 다가오니 근사한 외모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젠야타는 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 남자는 성체가 된 지 얼마 안 된 수컷 인어(겐지)였고 마침 긴 치마를 입고 있던 젠야타를 동족의 암컷으로 오인한다.

인어는 모래사장까지 뛰쳐나가 젠야타를 덮쳐 쓰러뜨리지만 다리를 붙잡은 순간 자신이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닫는다.

조금 고민했지만 젠야타가 이미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개의치 않기로 한다.

인어는 그 자리에서 젠야타와 교미를 시도하고 매우 지난한 과정 끝에 결국 성공한다.


#2.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도 한참이나 인어와 함께 있던 젠야타는 밀물에 발치까지 파도가 들이칠 때쯤에야 인어를 떨쳐내고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날,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각, 젠야타는 인어의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는 핑계로 다시 그 모래사장을 찾아간다.

밤새 이곳 주변만 맴돌며 젠야타를 기다리고 있던 인어는 젠야타가 해변가에 모습을 비추자 허겁지겁 뭍으로 올라가 구애한다.

그 뒤로도 젠야타는 매일같이 이 시간쯤에 찾아가 인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3.

어느 날 젠야타가 몸살을 앓아 인어를 만나러 나가지 못한 날에도 인어는 여느 때처럼 모래사장이 보이는 바다에서 젠야타를 기다렸다.

평소 젠야타가 나타나던 시간이 훨씬 넘도록 한참을 기다려봤으나 나타나지 않자 인어는 다른 해안가를 기웃거리며 젠야타를 찾아나선다.

인간들이 서식하는 육지 근처의 해안가까지 다가간 인어는 그곳에서 젠야타를 찾지는 못했지만 어두운 밤바다의 해변에서 다른 인간들을 발견한다.

인어는 해변가에 서서 껴안고 키스하는 어느 연인의 모습을 수면 아래 숨은 채로 유심히 바라본다.

다음 날 인어는 다시 모래사장을 찾아온 젠야타를 격하게 반기며 달려들어서는 배를 맞추다가 어젯밤에 본 장면을 떠올린다.

젠야타는 왜인지 머뭇거리는 인어의 태도에 의아해하다가 처음으로 입을 맞춰오는 인어에게 놀란다.


#4.

섬을 떠날 날이 며칠 뒤로 다가오자 젠야타는 한번쯤 인어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인어는 바닷물에 발을 담가 내딛는 젠야타를 품에 안고 먼 바다를 향해 유유히 헤엄쳐갔다.

이대로 아주 뭍을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섬과 멀어질수록 불안해하는 젠야타의 모습에 결국은 모래사장으로 돌아온다.

섬을 떠나는 직전 날까지도 인어와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젠야타는 작은 섬에 인어를 남겨두고 도시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5.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못할 인어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젠야타는 마치 꿈 같았던 섬에서의 추억을 되새긴다.

몇 달 뒤 거푸 월경을 거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젠야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신 여부를 시험해보지만 뜻밖에도 테스트기에 표시된 결과는 양성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계속 독신으로 살 계획이었지만 인어의 아이를 갖게 되자 젠야타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결국은 섬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때까지도 미련을 못 버려서 섬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인어는 꿈에 그리던 젠야타를 만나 해후의 시간을 갖는다.


#6.

몇 주 뒤 젠야타는 지금까지 두려워서 선뜻 가지 못했던 산부인과에 가본다.

하지만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는 예상 밖으로 아주 평이했다.

뱃속에서 크고 있는 태아는 인어의 꼬리가 아닌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젠야타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둘은 수개월에 걸쳐 젠야타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지켜본다.

젠야타는 인간인 여자 아이를 출산했고, 인어는 처음으로 제 자식을 마주한 순간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결국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 후 젠야타는 도시와 섬을 계속 오가며 인어와의 연을 유지한 채 함께 살아간다.

내가 보고 싶어서 걍 내가 쓰고 있습니다. 일단 내 취향이지만 당신 취향이기도 하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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