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는 성장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언제부터인가 털갈이를 하더니 금세 성견이 되었다. 그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와 제노는 규칙을 정했다.

첫 번째! 밖에서는 무조건 강아지로! 그도 그럴 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여러 번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회가 제노에게 원하는 것이 많았는데. 어느 날 라일과 술을 먹기로 약속을 잡은 날 제노는 자신도 나가고 싶다며 현관 앞에서 시위하는 제노를 데리고 나왔다. 결과는..

"세 분 다 신분증을 제시해주세요."

사람은 셋인데 신분증은 두 개여서 퇴짜를 맞았다. ( 제노는 그 술집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

또 어느 날은 내가 제노를 잠시 세워두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왔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어서 번호 좀..."

이라든가.

"학생, 혹시 연예인 할 생각 없나요?"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받아서 제노 스스로가 수인화를 해서 나가겠다고 했다.

두 번째! 목걸이 착용하기! 목이 답답하다며 목걸이를 거부하는 제노에게 나는 몇 푼을 투자해서 각인 은목걸이를 만들어주었다. 제노는 그 목걸이를 하고 온종일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가격대비 너무 뿌듯했다. 

세 번째! 한글 공부 및 사회에 대한 적응하기! 일생을 연구실에서 살아온 제노는 바깥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연구소에서 제노한테 알려준 거 중 가장 유용한 것은 기다려 훈련일 정도였다. 그래서 제노는 하루에 한 번 2시간씩 한글 공부를 하고 최대 3번 산책 나가기를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제노는 많이 울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개로 변해 숨었던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의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제노는 결국 주체적으로 공부를 했고 한글을 마스터했다.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면 연필을 쥐고 노트에 일기를 쓸 정도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일상에 하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제노야~"

"응?"

제노가 너무 잘 컸다는 것이다. 변성기 오기도 전일 때부터 봐서 커도 그냥 엄마 마음일 줄 알았는데 그 뒤에 검은 마음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

"왱?"

"그냥 뿌듯해서."

오늘도 혼자 삭히는 중이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못 살 것 같아서 제노를 데리고 라일이네 집에 놀러 갔다.

"하이."

"어... 그래 안녕...?"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재민이는 아직 어색하다. (기보다는 무섭다.)

"라일이는 어디 있어?"

"부엌에."

내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제노도 뒤따라들어왔다. 그때 뒤에서 재민이 나를 불렀다.

"얘를 왜 이 꼴로 데려와."

"응..?"

"헥헥."

참고로 재민은 수인화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탈피를 하거나 체온 조절을 하는 등 꼭 해야 할 일만 아니면 전반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다. ( 라일이 이유를 물어봤는데 재민이 자기는 인간일 때가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고한다. )

"아니야. 제노, 이제 사람해도 괜찮아."

"웅!"

제노는 사람으로 변해서 재민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저기 라일이 방인데... 

"라일아."

"어 왔냐."

간간히 느끼는 거지만 라일이도 재민이랑 살면서 말투가 많이 변한 듯하다.

"나 고민이 있어."

내가 사뭇 진지하게 말하자 라일이는 제노에게 줄 우유를 꺼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 제노가 좋아."

"난 또 뭐라고."

라일이는 피식 웃으며 우유를 컵에 따랐다. 

"그 좋아함이 아니야! 막... 그러니까.."

"이거 가져다주고 올 테니까 생각을 좀 정리해 보렴 친구야."

라일이는 나를 다독여주더니 쟁반에 물과 우유를 들고 방에 들어갔다. 라일이 말대로 생각을 정리해봤다. 하지만 너무 양심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은 정리해 봤어?"

"너는 재민이 보면 어떠냐?"

라일이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음? 재민이를 보면.."

"어 보면?"

"좋지."

"뭐야,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해?"

"아니 막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간질거린다던가.."

"뭐야. 너 재민이 좋아해?"

"미쳤어?!"

"그럼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니까... 내가..."

"응."

"어... 내가...."

"....."

"내가 있잖아..."

"빨리 말 안 하면 밖으로 쫓아낸다."

"내가 제노를 좋아해!! "

"아까 한 이야기를 왜 또 해?"

"아니 모성애가 아니라. 남자로서."

"......므어?"

"이것 봐... 네가 생각해도 좀 아니지....?"

"뭐 어때. 나랑 재민이는 이미 사귀는데."

"그건 너니까... 어?!!!!!!!"

올해 들은 말 중에 제일 놀랐다. 나는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난 그 사실을 모르지?!!"

"네가 안 물어봐서 말 안 했는데. 우리 같은 침대에서도 자고 그래."

"므... ㅓ어ㅓ...."

언어회로가 고장 났다. 아까 재민이가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어... 어떻게 사귀었는데..?"

"재민이가 고백하고, 내가 받고."

"...즈스흐 믈흐르...(자세히 말해라)"

"어... 그게 첫 눈 오는 날이었나?"

-회상 

"재민아 눈 온다."

"야 주인, 저기 봐."

재민이 창문 너머로 가리킨 곳에서는 커플들이 손을 잡고 거리에 나와 첫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쟤네 손 왜 잡아? 온도 조절이 안되나?"

"그게 아니라. 좋아해서 잡은 거야."

"그럼 나랑 주인도 손 잡으면 되겠네."

"?? 그 좋아함이 아니야."

"그럼 뭔데?"

"이 사람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막 다 주고 싶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뭐 그런 느낌?"

"그래?"

재민이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나도 주인만 보면 막 가슴이 두근거리고 뜨거워지는데."

너무 가까워..

"이거는 아닌 건가?"

".... 너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주인이 준 컴퓨터에서 배웠어. 아, 그리고 대부분 이 말을 할 때."

재민이 내 목덜미에 손을 대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렇게. 하던데."

심장이 멈출 것 같아... 

"나랑 사귀자 주인."

"...."

"장난 아니고 진짜야."

"너 진짜 짖궂어.. 얼굴 가지고 사람 홀리고...

"그게 원래 뱀의 특징이지."

재민의 눈은 호선을 그리며 접혔고 나는 승낙의 말을 건넸다.

-회상 끝.

"....미쳤네..."

"가끔씩 얼굴 공격 할 때 빼고는 죽을 것 같이 심장 아프지는 않아."

"와....."

"넌 네가 고백해봐."

"엥?"

"왜 굳이 남자가 하라는 법 있나."

"그래도 제노는 날 안 좋아하잖아."

"좋아하는데?"

"진짜?"

"주인으로."

"죽는다."

희망이 없음에 주저 앉았다. 희망이 없지 않다는 걸 이때 빨리 알아차렸다면 나랑 제노가 서로 삽질을 할 일은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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