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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식 나이

* 필리핀 이자나가 미래인 드림

역트립한 쿠로카와 이자나 역키잡 하기

W. 티본






한때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남들보다 행복하게 살 거라고 착각했었다. 영원할 거 같은 행복은 한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 가족들이 뺑소니 사건으로 인해 내 곁을 떠나면서 나의 행복은 불행으로 변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디며 살아가게 되었다. 다행히 부모님의 재산과 사망보험금, 그리고 친척들의 도움 등이 있어 조그마한 집에 혼자 살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 * *






여느 때와 같이 학교가 끝난 후 남아서 야간 자습 시간에 공부했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도어락을 열었다. 어두운 집 안에는 아이의 형상이 있었다. 다 큰 성인이 우리 집에 있었다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신고했겠지만 조그만 아이가 있었기에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그때 아이가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야?”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거 아니야?” 


“일어나보니 여기였는데.”


“……?”





일어나보니 여기라니? 누가 우리 집에 이 남자아이를 두고 간 건가? 그런데 그게 말이 돼? 일단 집이 어두우니 나는 전등의 스위치 버튼을 눌렀다. 밝아진 집에서 아이의 외형을 살펴보는데 흰머리에 어두운 피부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목구비는 외국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잠시만, 외국인? 외국인이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일단 아이를 원래 집에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에게 사는 곳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말해준 주소는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상 한국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는 나라가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역시나 아이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저기, 꼬마야?”


“쿠로카와 이자나.” 


“응?”


“꼬마 아니고 쿠로카와 이자나라고.”


“아, 그래. 이자나, 혹시 한국에 놀러 온 거니?” 


“무슨 소리야?”


“어? 놀러 온 게 아니야? 하지만 여긴 한국인데…?” 


“뭐?”





아이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서인지 예전의 나였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하게 되었다.





“일단 우리 집에서 잠깐 살래? 내가 집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줄게.”





아마 외로워서 같이 살자고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우물쭈물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자나와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자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이자나에게 엄마와 에마라는 여동생이 있으며 그 여동생은 엄마와 많이 닮았다는 것, 더불어 에마는 꽤 귀여운데 항상 이자나가 놀아주었다는 것,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자신만 홀로 시설에 살게 되었다는 것 등 그 외에도 이자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이자나와 친해졌다 싶을 때쯤, 이자나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이자나가 잠시 밖으로 나갔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자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지나가 우리 집에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 * *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주말이라 늦게까지 자고 일어난 내 눈앞에 이자나의 얼굴이 있었다.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이자나는 나를 보고 웃으며 오랜만이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이자나를 천천히 훑어보는데 예전보다 조금 더 키가 커져 있었다.





“한 달 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내 말을 들은 이자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1년 만이잖아.”





그의 말에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달 만인데…?”





나와 이자나는 서로 못 본 시간대가 다르니까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물론 갑자기 사라지고 나타난 것도 이상했지만 시간의 흐름도 이상하니 자연스레 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버렸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


“원래 살던 시설에 있었어.”


“이자나가 사는 시설은 다른 나라에 있는데 어떻게 간 거야?”


“기다리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원래 살던 곳이었어.” 


“……?”





이자나가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이자나에게 시간의 흐름이 이상한 것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이자나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현재 자신은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자나의 생일은 알았지만 태어난 해는 몰라서 물어보았다. 이자나는 1987년생이라고 했다. 1987년생이라니. 현재 내 나이보다 훨씬 많은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어린 남자아이다. 이자나와의 대화를 조합해 본 결과, 이자나는 다른 세계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 * *






이자나가 다른 세계 사람인 것을 알게 된 지 10개월쯤 지난 무렵, 이자나는 벌써 17살이 되어있었다. 그동안 그와 많은 일이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가 다른 세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와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자나는 시설에 있을 때 갑자기 형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했다. 형의 이름은 ‘사노 신이치로’라고 했다. 전에 이자나가 형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 나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자나는 웃으며 너무 좋다고 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이자나에게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이자나는 우리 집에 와서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그중 시집을 가장 좋아했고, 나는 이자나가 좋아할 것 같은 시집을 학교가 끝나고 서점에서 사 선물로 주었다.


네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부하가 생겼다고 말했다. 부하의 이름은 ‘카쿠쵸’라며 시설에서 만났다고 했다. 나는 이자나가 소꿉놀이에 빠졌나 의심했다.


다섯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부하인 카쿠쵸와 최강의 나라를 만들 거라고 했다. 왕국의 이름은 천축이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모두 국민으로 삼아 머물 곳을 만들어줄 거라고 했다. 이자나는 가족이 없는 나에게 천축에 들어오라고 말했다. 


여섯 번째 만남에서 본 이자나는 크게 다쳤는지 곳곳에 붕대를 감아놓고 있었다. 나는 이자나에게 달려가 그의 몸을 살피며 괜찮냐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물었다. 이자나는 예전에 다친 거라며 거의 다 나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보며 걱정했다.


일곱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삭발 상태로 죄수복 같은 걸 입고 있었다. 나는 이자나에게 머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물었다. 이자나는 소년원에 수감되었다고 말했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이자나는 자신의 형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소년원 수감이 끝나고 빨리 형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년원에서 항상 형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했다.


여덟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폭주족 총장이라고 했다. ‘블랙드래곤’이라는 폭주족이며 형이 초대 총장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아홉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정신이 많이 쇠약해진 듯 보였다. 알고 보니 형이 자신의 친형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자나는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자나를 마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열 번째 만남에서 이자나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이자나는 신이치로 형이 죽었다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이자나가 밥을 먹지 못한 것 같아 밥을 차려주고,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이번 열한 번째 만남 때 이자나는 여전히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고 더불어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는 떠나면 안 돼. 나 버리지 마….”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이자나에게 당연하다고 절대 안 떠난다고 다독였다. 이자나는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더니 내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나는 이런 짓을 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이자나를 2주간 위로해주다가 그는 원래 사는 곳으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 * *






열한 번째 만남을 마지막으로 이자나는 우리 집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어 대학 졸업을 앞두었을 때도 이자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친척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을 거냐고 물어볼 때면 이자나가 다시 나타날까 봐 계속 여기에 살겠다고 했었다.


이자나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때쯤 대학 동기들과 졸업여행으로 일본에 가기로 했다.


대학 동기들과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이자나를 생각했다. 이자나는 일본 시설에서 자랐기에 다른 세계지만 이자나가 전에 알려준 시설이 여기 세계에도 있는지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비행기에서 잠이 들었고 일본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주변에 대학 동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찾아댔지만 보이지 않았다.


우선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공항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학 동기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본말들이 한국말처럼 내 귀에 잘 들려왔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나는 설마 이자나처럼 나도 다른 세계로 간 건가 생각했다. 그래서 이자나가 예전에 알려준 시설로 가보았고, 폐허로 된 시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설 내부를 둘러보았다. 시설 안에는 아이들이 그린 여러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중 쿠로카와 이자나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놀라며 주변에 이자나가 사는 세계라는 단서가 더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저 멀리 시설 아이들의 단체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에는 이자나도 있었다.


나는 여기가 이자나의 세계라는 것을 확신했다.


시설을 다 둘러본 나는 시설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때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앞을 바라보니 오드아이를 가진 성인 남자가 서 있었다. 이마부터 눈까지 큰 흉터가 있는 남자였다. 어리둥절해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데 옆으로 누가 또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이자나였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자나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이자나를 마주 안았다.






* * *






이자나와 재회한 후, 그는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도착한 장소는 마당이 넓은 큰 주택이었다. 이자나는 나에게 평생 함께하자고 여기서 같이 살자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같이 사는 건 좋지만 평생은 아닌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내 대답을 듣고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띠리링- 띠리링-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그의 휴대전화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이자나는 전화를 받고 잠시 집에 있으라며 손가락으로 어느 방을 가리켰다.





“피곤하면 저쪽 방 침대에서 자면 돼.”





이자나는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언제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나 생각했다. 이자나는 늘 1주에서 2주 정도 내 세계에 있다가 원래 살던 세계로 갔으니까 나도 내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생각을 하다가 피곤하기도 했던 나는 이자나가 말해준 침대로 가서 잠을 취했다.






* * *






눈을 떠보니 이른 아침이었다. 옆에는 이자나가 자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같이 잔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다 큰 몸으로 같이 자는 건 당황스러워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내 손이 무언가에 걸려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을 확인해 보니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잠이 다 깬 기분이었다. 수갑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이자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나는 그를 보며 이 수갑이 뭐냐고 당장 풀라고 말했다. 이자나는 수갑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평생 함께하기 싫다며.”


“…평생 함께할 테니까 수갑 풀어줘. 응?” 


“그건 안 돼.”


“뭐?”


“겨우 만났는데 갑자기 사라지면 어떡해.”





이자나는 수갑이 채워져 있는 내 손을 매만졌다. 나는 돌변한 이자나의 눈빛이 이상해서 순간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빨리 내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자나가 보고 싶었지만 이러한 것을 원한 건 아니었다.






* * *






이 주 정도가 지나면 내 세계로 돌아갈 줄 알았으나 나는 여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이자나의 평생 함께하자는 말은 결혼하자는 말이었는지 나와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과 피로 이어진 가족을 원한다며 나와 밤을 자주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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