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밖에서 보는 풍경은 끝없는 어둠 속 수 많은 별들이 놓아진 풍경을 반복해 보는 것 같았지만 꽤 나쁘지 만은 아닌 것들이었다. 나쁘지 않은 것일 뿐 계속 바라보고 있자면 우주를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욱 생생해져 아스가르드의 낙원같은 풍경이 때때로 그립기도 했다. 로키는 그럴 때 마다 넌지시 토르를 찾아갔다. 사실 아스가르드의 풍경이 그립기 보다는 이제 정말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껴진 탓이 컸을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 같은 것들. 감정의 시발점이 근원이 무척이나 거대했던 사건이었던 만큼 로키가 천년을 넘게 살아왔음에도 이런 유형의 불안감은 새로이 느껴보는 것이었다. 토르의 집무실로 향하는 발길에 유난히 무거운 음이 박혀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키의 이런 불안감은 집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금세 사그라 들곤 했다. 토르는 자신을 불현듯 찾아온 로키를 향해 웃어보였다.

"마침 잘왔구나, 로키. 줄 게 있다."

 로키는 자신을 보며 기쁜 듯 웃는 토르를 향해 늘 그랬듯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래보여도 거짓말의 신인 걸. 로키는 제 마음을 숨기고 상황을 회피하는데 능숙했다. 로키는 집무실 문을 닫고서 약간은 빈정대는 투로 답했다.

"사카아르의 전기충격기 같은건 아니겠지?"

 토르는 로키의 의심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때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나 보지?"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흐음, 그럴리가. 로키는 능청을 떨며 토르에게로 다가갔다. 토르는 그런 로키에게 더 가까이 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로키는 자연스레 토르의 발치앞에 섰고 토르는 그런 로키의 어깨에 무언가를 조심스레 걸쳤다. 로키는 제 어깨에 닿은 녹색 천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숄이다. 녹색이 너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 가져왔지. 어때, 마음에 드느냐?"

 토르는 꽤 고급진 재질로 만들어 졌는지 부드러운 녹색 숄을 만지작 거리는 로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로키는 이 녹색 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선 제가 좋아하는 고급진 녹색이기도 했고, 토르가 저를 생각하며 가져왔다는 것에 감동을 했던 참이었다. 

"토르,형. 난 서리거인이야. 추위에 강하다고. 뭐.. 녹색인 건 마음에 드네."

 토르는 솔직하지 못 한 제 동생을 보며 기분좋게 웃었다. 로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주던 토르는 로키의 허리를 받쳐들고는 이마에 소리없는 입맞춤을 남겼다. 

"집무실에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로키가 공연히 몸을 주춤거리며 말했다. 토르는 그런 로키에게 씨익 웃으며,

"왕의 집무실에 노크도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자가 로키, 너 말고 있더냐?" 

 라고 말 할 뿐이었다. 로키는 토르의 너스레에 허,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로키는 손을 까닥여 집무실에 작은 결계를 쳤다. 혹시 모르니까. 로키 역시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

"그 녹색 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토르는 어색한 저녁식사 속에서 나즈막한 한마디를 꺼냈다. 로키는 토르가 갑작스레 말을 걸자 놀란 듯 몸이 잠시 튀어오르듯 움찔거렸다가 이내 눈치를 보며 토르가 무서운 듯 잠시 샐쭉 올려다보고는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날씨가 꽤 쌀쌀해서요. 녹색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녹색인게 마음에 드느냐?"

 토르는 로키의 대답에 기쁜 듯 되물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그때의 로키, 그대로 인 것 같아서 토르는 로키가 기억을 잃은 건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로키는 토르의 표정이 유난히 화색이 도는 것을 보고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숄이 꽤 마음에 든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한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하거라. 얼마든지 구해다 줄테니." 

 토르의 다정한 어투에 로키는 어떨떨한 표정으로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여전히 토르가 무서웠고 먼저 말을 걸거나 목소리를 내어 곧잘 대답하진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는 그에게서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에 로키는 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 다정함이 싫지 않은 것 역시 로키를 혼랍스럽게 했다. 로키의 내면속에서는 계속해서 그와 더욱 가까워져선 안된다는 본능적 외침이 울려대고 있었다. 어째서?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자 로키는 어렴풋이 토르와 자신이 평범한 형제관계는 아니라는 것 정도만 짐작할 뿐이었다. 

"이곳에만 있으면 심심할텐데 주로 무얼 하면서 지내느냐 로키. "

"보통... 책을 읽어요. 배너가 가져다 준것들 위주로요.."

 토르는 로키의 대답에 자신과의 저녁 식사에 녹색 숄을 걸치고 나온 로키를 바라보던 것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껏 애정어린 마음이 담긴 애틋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토르의 그 표정은 행복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쓸쓸해 보였고 많은 슬픔을 함구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원래 너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지. 비록 나를 기억하지는 못해도 넌 로키가 맞구나." 

 토르는 소리없이 웃으며 포크로 고기를 한 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로키의 식사속도에 맞추어 느릿하게 식기를 움직이고 있었고 로키는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로키는 와인을 한모금 느릿하게 넘기면서 토르를 관찰했다. 서로 색깔이 다른 두 눈. 금빛이 듬성듬성 비치는 짧은 머리칼.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꽤나 단단하고 두터운 근육들. 로키는 제가 입양아라는 말이 사실임을 실감했다. 토르와 자신은 아무리 뜯어봐도 닮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외모,체형,머리색 까지 일치하는 것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질문을 해도 되나요?"

"물론이지."

 토르는 보통 제가 먼저 말을 이끌곤 하던 찰나에 로키가 질문을 던진것이 반가운 듯 기쁜 어조로 답했다. 

"저는 어떤 동생이었죠? 그러니까.. 로키 오딘슨.. 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 해서요."

"꽤 어려운 질문이구나 로키."

 토르는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떤 동생이었냐고? 토르는 그걸 평생 정의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어떤 존재라 정의되는 걸 싫어하는게 로키 아니였던가. 토르는 잠시 식사를 멈추고는 대답을 꺼냈다.

"너는 장난을 아주 좋아했지. 마법을 잘 다뤘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나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어. 우린 정말 친한 형제였으니까. 그만큼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저, 음 그러니까."

"편하게 하거라 로키. 정중히 대할 필요 없어. 너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급하게 볼 업무가 있어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미안하지만 여기서 먼저 일어나마."

 토르는 아직 음식이 조금 남은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키 역시 아직 음식이 남아있긴 했지만 딱히 더 먹을 생각은 없었다. 

"널 돌봐줄 사람이 바로 도착할거야. 어린 친구지만.. 스타크도 있으니 괜찮겠지."

"저는.." 

 편히 대해. 토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토르의 목소리와 얼굴이 조금은 간절해 보여서 로키는 이게 설령 연기처럼 보일지라도 토르를 아주 남 대하듯 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고 창문을 통해 나가려는 토르를 향해 용기를 내어 인사를 내뱉었다.

"다,다녀와.. 형."

 토르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더니 '그래 다녀오마 로키.' 라는 한마디를 남긴 후 홀연히 사라졌다. 로키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별안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쪽으로 급하게 나갔다. 

"누구세요?"

"엄... 피터 파커라고 해요. 아니 이름을 말할게 아니지. 어... 그러니까 오늘 로키씨를 돌보러 온 사람이요! 들어가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자신을 피터 파커라고 소개한 사람은 제게 문을 열 카드키가 있음에도 구태여 로키에게 허락을 맡은 후에야 집안으로 들어왔다. 로키는 처음 피터 파커라는 이름을 듣고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굴을 확인하자 곧바로 그를 알아차렸다. 

"그때 저 도와주셨던 그 분 이시네요."

"다니엘씨! 아니지 지금은 로키, 맞죠?" 

*

 처음 로키를 발견한 것은 피터였다. 피터가 처음 부터 로키를 알아봤던 것은 아니었다. 로키는 '다니엘' 이라는 가명을 쓴 채로 도서관에서 잡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생이었고 외관은 로키의 외모였음에도 이상하게 흐릿한 인상이라 느껴졌다. 피터는 대학 과제를 위해 로키가 일하는 도서관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피터는 마치 목이 졸린 듯 한 흉터 때문에 로키를 지나가다 본 것임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상이 묘하게 흐릿하고 존재감도 얉게 느껴졌지만 (일반인이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피터는 무언가 이상한 직감을 느꼈고 -로키에겐 어쩌면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찾는 척 하며 말을 걸어 그와 친분을 쌓아갔다. 

"그러니까 다니엘 씨는 이전의 기억이 없다는 건가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래요. 가족이 누군지 원래 제 이름도 뭔지.. 다니엘은 제가 임시로 지어놓은 이름이에요."

 피터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파이더맨은 친절한 이웃이니까. 직접 대화를 해보니 피터가 보기에 다니엘, 그러니까 로키는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의 목에 남겨진 흉터는 지나칠 정도로 기시감이 느껴져서 피터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 같은 직감. 그리고 그런 피터의 직감은 아주 정확히 명중했다.

"도와주세요! 저기에 아직 사람이!" 

 피터도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아직 학생이긴 했지만 그래도 엄연한 성인이다)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빌런 퇴치에도 유려한 실적을 쌓아가곤 했다. 특히 피터는 도시속에서 싸우는 것이 아주 유리했다. 때문에 자주 가는 도서관 근처에서 빌런이 나타났으니 피터가 출동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피터는 빌런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면서 다니엘이 떠올랐다. 그도 무사히 도망쳤을까 라는 생각. 피터는 도서관 안으로 기어들어간 빌런을 잡으러 가며 부디 그가 무사하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는 도서관 창고에서 잡다한 것들을 정리할 일이 생겼고 그 때문에 아직도 도서관에서 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피터가 그를 발견한 것은 이성을 잃은 빌런이 다니엘의 목을 붙잡고 부러트리려 하기 직전일 때 였다.

"오, 안돼 안돼 안돼 그만둬!"

 피터는 천장에 거미줄을 날려 당장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그 행동은 당장 그만두어야 했다. 피터는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다니엘의 눈은 빨간빛이 되었고 피부는 파란빛을 뿜어대더니, 자신에게 손을 댄 빌런을 얼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려던 상대를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나서 곧바로 기절했다. 피터는 그런 그를 안고서 토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니엘! 괜찮아요? 병원에 금방 데려다 줄게요. 평범한 병원은 아니겠지만 그게 당신에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유난히 흐릿하다 느껴졌던 다니엘의 인상이 갑작스레 뚜렷하게 느껴진건 그 때였을 것이다. 무언가 마법이 풀리기라도 한 것 마냥, 피터는 그제서야 그의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피터는 다니엘, 아니 로키를 들쳐업고서 토니에게로 향했다. 

*

"저랑 같이 게임 하실래요?"

 피터는 가방에서 게임 시디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로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사실 로키도 매번 책만 읽자니 조금 지루한 참이기도 했고 피터는 나름 익숙한 얼굴이라 편했기 때문이다. 

"근데 스타크씨도 오신다고 했던거 같은데 안오시나요?"

"아,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오실거에요. 그 동안 저랑 게임해요!"

 피터는 게임 시디를 기기에 넣으며 말했다. 로키에게 게임기를 쥐어주며 웃는 모습이 아직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로키는 얼떨떨하게 게임기를 받아들며 피터의 지휘대로 어리숙하게 게임 컨트롤러를 만지작 거렸다. 

"앗, 로키. 처음 해보는 거 맞아요? 저보다 잘하는데요?"

 피터는 약이 오르는 표정으로 한쪽 볼을 부풀렸다. 로키는 멋쩍게 웃으며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했다. 제 손 움직임에 따라 행동하는 우주선들은 나름 귀여웠고 이상하게 정이갔다. 로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이 이상하게 참 마음에 들었다. 

"아, 우주선이!"

 피터의 탄식에 화면을 쳐다보자 어느 새 우주선은 게임 속 적군의 공격을 받아 절반이상이 날아가 있었다. 로키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 동시에 목이 강하게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에 밭은 숨을 내쉬며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로키? 왜그래요?"

"숨..이..." 

 로키는 고통을 호소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눈 앞이 핑핑 돌았다. 말을 내뱉을 수 조차 없어 피터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쥐었는데, 피터는 로키에게 심호흡을 하라며 응급조치를 취하려 했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로키는 피터가 어떻게 손 쓸 방도도 없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토니는 억울했다. 얘가 쓰러진게 내탓도 아니고 이유도 모른다니까? 피터는 화가 난 상태로 토니의 멱살부터 붙잡고 보는 토르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로키는 자신과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목을 붙잡으며 숨을 못쉬었다고, 게임을 하자고 한 제 탓이라며 재차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토르는 피터의 말에 토니의 목에서 바로 손을 떼내었다. 

"로키가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고 했소...?" 

 피터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는데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토르는 영문을 몰라하는 둘을 뒤로한 채 로키의 병실안으로 들어갔다. 호흡곤란을 일으켰다는 전과 달리 로키는 꽤 평온한 얼굴로 쌕쌕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토르는 그런 로키의 목을 들추었다. 선명하게 남아있는 흉터. 단순한 흉터는 아닌 것 같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법의 기운. 어떻게든 마법임을 숨기려 감춘 태가 났지만 발동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탓에 희미하게 나마 흉터가 마법의 흔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토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진 않았기에 이런 고급 마법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일전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봤던 적이 있다. 이 정도의 흉터, 강도. 

"네 스스로 기억을 지운 것이냐 로키?"

 토르는 로키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째서? 토르는 당장이라도 로키를 붙잡고 묻고싶었지만 로키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로키는 제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렸으니. 기억을 지우는 마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있으면서. 무려 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온전히 지워버리기 위해 로키는 제가 가지고 있던 마력을 모두 소진시킨 모양이었다. 전능을 일시적으로 잃을 정도로. 토르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타노스에 의해 목이 꺾인 로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래, 그 아픔이 네 기억속에서 사라진다면. 네가 그 동안 겪었던 고통마저 없어진다면.

"하지만 로키, 그럼에도 네가 날 너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에 화가 난다고 하면 어찌해야 하느냐."

 토르는 혼란스러웠다. 로키는 사실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마침내 함선에서 함께한 시간 동안 로키와 마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당연히 로키는 저에게 망설임 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토르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이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로키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하하, 언제 쯤 안속을래?' 라며 그 얄미운 한마디를 하며 나타날 것 같아서 몇날 며칠이고 기다렸던 토르였지만 로키는 다시 체념을 할만한 시간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또다시 불현듯 나타나서는 자신을 잊어버렸다니. 로키와의 관계는 늘 제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부터 잡고 싶어도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함선 생활 때도 때때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토르는 자신이 곁에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처럼 구는 때가 종종 있던 로키를 떠올렸다. 언제나처럼의 변덕이나 어릴적의 소심함이 문득 튀어나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짐작에 토르는 제 탓을 했다. 토르는 모든 것이 후회가 되었다. 로키를 더 세심히게 이해해주지 못한 것, 로키의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해버린 것, 어쩌면 로키가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린 것도 당연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날 용서해 줄것이냐 로키?"

 토르는 아직도 눈을 뜰 생각이 없어보이는 로키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 차라리 잠들어 있는 로키를 보는 것이 나아서 토르는 못다한 질문과 용서를 구했다. 답이 돌아올리가 없음에도, 토르는 끊임없이 말들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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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현생이 바빠 거의 한달텀으로 글을 쓰게 되네요 이번달은 일이 많아서 쓸 수 있을지.. 흑흑 읽어주시는 분 계실진 모르겠지만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다들 토롴하시고 행쇼하세요^^! 

□ 제목은 임의로 정한거라 중간에 수정될 수 있습니다. 








마블, 토르로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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