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밖이 많이 어둡다 싶어서 창 너머를 바라본 순간, 번개가 번쩍이더니,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책상 아래 숨어!”라는 선생님 지시에 반 애들 모두가 따라줄 만큼 크게 진동했다. 큰 지진인 것 같은데, 지진의 흔들림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충격파 같은, 꿀렁꿀렁 거리는 기분 나쁜 진동이었다.

마침 급식시간인지라 국이 엎질러지고 우유병이 떨어져 깨지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실 유리창에 금이 갈 정도였다. “가까이 가면 안 돼!”라는 선생님 주의를 무시하고 밖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대한 가시가시복어성인이 공중에서 마을을 위협하고 있다.

젠장, 하고 “말씨를 예쁘게 해야지!”라는 선생님 지도를 무시하며 욕하고 교실을 나와 “뛰지 마시오.”라고 적힌 포스터를 무시하고 복도를 달렸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을 무시하고 미리 복사해둔 열쇠로 문을 따 옥상으로 갔다.

태풍의 날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폭풍이 불었다. 마을 중에는 경보가 울려대며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피난하고 있는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한 발 늦은 경보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며, <Smells Like Teen Spirit> 노래와 함께 LED 액정이 원색으로 빛나는 손목시계를 조작해서, 기동대의 호출에 응했다.

“통신보안, 여기는 무로시타 중령.”

시계 위로 홀로그램 화면이 뜨며 처음 볼 때보다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중령의 다급한 표정이 비춰졌다.

“현재 네오 유토 시티에 나타난 괴물체 ‘가시가시복어성인’은 물 속성의 어족으로, 정확한 전투력 수치는 불명이나, 경비 태세 7단계 중 5단계에 해당한다고 판명. 노기 우타미 대원은 당장 출동하여 현장 대응에 임하라!”

“통신보안, 여기는 노기 우타미.”

나는 공중에 어영부영 떠있는 가시가시복어성인을 째려봤다. 그것에게 있어서 지구의 하늘은 좁아터진 듯이 보였다. 그것과 눈이 맞았다.

“우훠훠훠훠.”

고증이 전혀 안 된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리석고도 잔학스러운 인류여. 소돔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여라!”

이미지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심판을 예고하는데, 낮게 변조한 듯한 목소리가 의외로 괜찮았다.

“야! 이 복어자식아!”

나는 있는 힘껏 소리질렀다. 가시가시복어성인은 소리를 인지했다고 전하기라도 하듯 그 몸뚱이를 조았다 풀었다 했다.

“무엇이 목적이냐!”

가시가시복어성인은 내 물음에 하찮다는 듯 독을 뿜어 도로를 녹였다. 분노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애초에 복어라는 게 독을 ‘뿜는’ 존재였는지 의문이 들어갈 틈이 엿보이지 않았다.


“급식에 나오는 생선, 극혐 아니야?”

이 사단이 나기 단 10분 전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우타밍? 불만스럽게.”

“가시 바르는 거 귀찮아.”

“아하~, 일반론이네~.”

유라는 손가락을 턱에 대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을 했다. 런천 매트에 급식 당번이 미소시루를 놓았다. 유라의 런천 매트는 푸른 배경에 꽃문양이 수놓은 디자인인 반면, 내 거는 빨갛고 심플한 체크무늬다.

“그래도 비 온 뒤에 땅 굳는다잖아!”

그리고 밝은 미소로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는 유라가 부럽다. 초등학생 정도 되면 사회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유치원 때처럼 순수하게 있을 수 없을 텐데.


“네놈들이 이 생태계에 저지른 짓을 알고도 어찌 이리 뻔뻔할 수가 있는 것이냐!”는 말에 솔직히 아무런 반박을 못 하겠다. 정신 전력의 패배다.

“무로시타 중령.”

내가 말했다.

“쟤 말 너무 맞는 말인데요?”

“그렇다고 너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 마을을 포기할 생각이냐!”

나는 중령의 다급한 와중에 뱉은 뻔한 전형의 반복에 도리어 거부감이 생겼다.

옆집 오빠(14)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중심적 사고의 틀에 갇힌 무한한 발전지상주의가 인류 불평등과 지구 멸망을 이끌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옆집에 놀러 온 언니(17)는 “기술의 인류 구원을 꿈꾸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사상이며, 우리는 현대에 그로부터 나온 기술과 떨어져 살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은 오히려 발전으로서 환경을 구하고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본 나는 괴수들이 판을 치는 요즘에도 일본 가정은 평화롭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계를 찬 팔을 하늘 높이 뻗고 변신 주문을 외운다.

“깊은 혼세의 어둠이 소용돌이치고, 그 심연을 바라보는 이의 자아를 앗아갈 때, 영에 깃든 용이 깨어나 육신의 피안에서 빛으로 화하리―”

“우타밍!”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멈칫했다. 뒤를 돌아보고픈 충동을 어찌저찌 억누르고 있다. 아니, 부끄러워서 못 보는 거다. 저 목소리는 유라다. 폭풍에 그녀의 머리칼과 옷이 주체할 수 없이 휘날리고 심지어는 서있기조차 위태로운 상황인 건 안 봐도 안다.

선생님이 찾나? 아니면 알고 보니 유라가 인류의 적 진영의 스파이였나? 혹시 내 주문을 들었나? 얘 지금 돌았나고 생각하려나? 그런 생각의 소용돌이가 물리적 바람과 함께 불어 닥쳤다.

“방금 거… 봤어?”

조심스레 물었다.

“으, 응…”

지구야, 그냥 멸망하자.

“…멋있어!”

그 말에 비로소 나는 거대변신로봇을 소환해서 좁아 터진 운동장에 다리를 모아―그렇게 설 수밖에 없었다― 착륙해 가시가시복어성인과 동등한 눈높이에 설 수 있었다. 로봇의 중추에서 나는 그의 팔을 뻗어 가시가시복어성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선언했다.

“네 말은 충분히 이해한다. 피터 뭐시기 씨가 제창한 애니멀 라이트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고, 그 방향성을 향한 의견은 제각각이다. 나는 감히 그 사회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고 분노를 담아 외쳤다.

“오늘 급식은 보리밥에 산채 샐러드였다고!”

팔뚝은 기관총으로 화해 적의 숨통을 끊을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적이 방어막을 치고 이를 막아낼 때 짜증이 났다.

눈 역할을 담당하는 카메라의 원격/야광 투시용 적외선을 무기화한 레이저 빔은 방어막을 뚫었지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그러면서 적이 조금씩 발사하던 독은 어느새 수비에 온 집중력을 쏟아야 할 만큼 공격의 주도권을 넘겨줘버렸다.

다음 공격을 예측하려고 시각 데이터 처리를 하던 와중에, 갑자기 가시가시복어성인은 직접 몸뚱아리를 날려 부딪혀왔다.

“우왁!”

뒤로 넘어지면 학교가 무너진다. 로봇의 무릎 관절 역할을 하는 부분이 현대 기술의 힘으로 무게 중심의 변환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때 반동을 주어 팔꿈치로 적의 눈을 가격했다. 적의 비명이 땅을 울리는 와중에, 필살기 발동을 위한 쿨 타임이 기준치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지금 바로 이 근접 거리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두 주먹을 적의 관자놀이에 쥐어박고, 그대로 주먹을 회전 및 가열시켜, 적의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으윽…”

솔직히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은 스킬이었다. 적은 무자비하게 해체됐다.


옆집 오빠네에 놀러 온 언니의 사촌동생(16)은 이렇게 말했다.

“디컨스트럭티드 클럽 장르의 모순은 결국 클럽 음악을 해체한다 해도, 자신의 방식으로 재-조립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서 내게 SOPHIE의 <Faceshopping>를 틀어줬고, 언니는 그 기분 나쁜 것 좀 끄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준 언니가 고마웠는데, 나중에 호기심에 유튜브로 찾아봤다. 그리고 그날 밤은 엄마 방에서 자면서 그 언니의 조언은 잘 따르기로 다짐했다.


기묘하게 달라붙는 가시가시복어성인을 보며 그 때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들었다. 적의 비명은 고통스러운 소음이 되었고, 그 주파수에 로봇이 마비되고, 나도 제정신으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후방 카메라로 학교 교사(校舍) 쪽을 봤다. 교사 안 쪽에 인기척이 없는 것 보면 벌써 지하 벙커로 모두 피신한 것 같다. 옥상에 나와 있던 유라가 제일 걱정됐는데, 귀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할 것 같던 예상과 다르게, 유라는 난간 앞에서 결연한 표정과 자세로 서있었다.


“우타미는 지금 이런 거 볼 나이라고!”

옆집에 놀러 온 언니가 옆집 오빠 방에 수두룩 빽빽한 비디오 컬렉션에서 《머메이드 멜로디―피치피치핏치》를 꺼내 와 틀었다. 인어가 사람이 됐다가 진주 조개 갖고 변신해서 적과 싸우다가 착해 빠지고 눈치 없는 남자 주인공이랑 꽁냥거리다가 하는 이야기인데, 아무튼 그 싸우는 수단이 특이하다. 바로, 아름다운 노래를 해서 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옆집 엄마랑 같이 차를 마시고 있던 엄마도 어느 틈에 와 보시고, 어린이에게 매우 유익한 애니메이션이라며 몇 개를 빌려갔다.

이런 핑크핑크하고 대놓고 소녀 취향인 것에 나는 거부감이 있었다. 옆집 오빠네 패거리 취향이 옮아서 그랬으리라. (다만 그 취향의 숙주인 오빠네 집에 왜 이게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나도 동생한테 보여준다는 핑계를 대며 내 나름대로 은근히 즐겨봤던 것 같다. 처음에 들었던 큰 거부감에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 꼬인 욕구. (아마 그네 집 오빠도 그런 게 아닐까.)


유라는 노래를 불렀고, 아무튼 나는 그런 소녀만화적인 싸움이 피 튀기는 실전에서 쓰이는 것을 보고 있다. 로봇이 작동하는 기계음, 적과 싸우는 동안의 타격음, 적이 내고 있는 비명을 제거할 때 이 주위 세계는 고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라의 가녀린 목소리를 캐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적이 내는 비명과 묘하게 맞아 들어가, 그 위협을 무언가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움직였다. 이쪽 전문가가 아닌지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분명 적이 내는 위협적인 주파수에 유라는 이를 역이용하는 주파수를 더해, 정체불명의 시너지를 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적은 보이지 않는 손에 튕겨져 나가듯이 급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 완전 후퇴. 상황은 종료되었다.”

망연히 서있고서 몇 시간 뒤, 무로시타 중령이 말했다.


그토록 친하던 유라가 결사 기동대의 비밀 병기였다는 사실이 이성적으로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작아진 나는, 다시 넓어진 마을에 덩그러니 서있다. 내일 다시 학교에서 물어보지 뭐. 노을이 지고 있고, 나는 집에 갈까 하다가, 좀더 남아 마지막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학교 뒤편 창고로 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고 나왔다. Deafheaven의 <Canary Yellow>를 흥얼거리며 언제 한 번 유라랑 노래방 가서 불러달라고 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독과 상처로 얼룩지고 무너진 바닥을 하염없이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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