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오물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이 들어있으나 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契. 여홍






[부고] 이민형의 본인상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실
발인 8/27일 오전 9시


늦여름밤, 인준의 잠을 깨운 것은 한통의 부고문자였다. 이민형의 본인상. 짧은 일곱글자는 인준의 몸을 절로 끌어 당겼다. 죽었다고? 이민형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인준이 고양이 세수를 하며 상복을 꺼내입었다. 오랜시간동안 신지 않아 잔뜩 먼지가 내려앉은 검은 구두를 휴지로 대강 닦아내고 집 문을 나서자마자 재민에게 전화를 했다.


“나재민, 혹시 민형이형 문자….”
- 어, 나 벌써 빈소야. 늦지 않게 와.
“……거기….”
- 이제노?


핸들을 움켜쥔 인준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노, 많이 힘들어하지? 인준의 물음에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재민이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야 인준의 물음에 대꾸했다.


- 둘이 우주 찾으러 가는 길에 음주운전하던 차랑 부딪혀서 사고가 났대. 민형이 형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제노는 간신히 살아서 나오긴 했는데…. 출혈이 너무 심한데다가 의식불명이라….
“이제노… 거기 없어?”
- 응. 제노는 응급 수술 중이고, 민형이 형은 상 치르는 중이야.


헤드라이트를 강하게 쏘아대는 뒷차가 아니었다면 영영 도로 한 가운데 정차하고 있을 뻔 했다. 겨우 엑셀을 밟은 인준은 재민의 핸드폰 너머로 간간히 들려오는 곡소리에 이를 물고 참다가 결국 병원을 지천에 두고 차를 세운다. 시야가 울렁거려. 아무래도 운전은 무리인 것 같다.


- 어, …네? 정…말요?


별안간 들려온 재민의 목소리에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긴 인준이 소란스러운 상황에 다급히 재민의 이름을 불렀다. 재민아, 야, 나재민, 왜 그래? 한참을 소란한 상황만 핸드폰 밖으로 내보내던 재민이 반쯤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제노…… 죽었대.


첫사랑이 죽었다.




1.


“이우주. 만세.”
“만세!”


이제 일곱살이 된 우주는 애교가 많다. 하는 양이 꼭 얌체같은 고양이 꼴이라 작달만한게 요사스럽기도 하지, 하다가도 이내 꼬리를 빼짝 빼고 품에 안겨오는 꼴을 보면 마냥 미워할 수가 없어 품에 보듬고 안게 되었다. 있잖아, 삼촌. 만세말고 또 무슨 말이 있는지 알아? 백세! 천세!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어린아이답게 까득까득 웃으면서 인준의 무릎에 앉아 잠옷을 입는 우주는 종일 싱글벙글이었다. 인준은 슬쩍 우주의 시선을 피한다. 웃을 때 생기는 반달같은 눈모양이 꼭 민형같았다가도 어떨 때는 제노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 같아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삼촌, 안 잊어버렸지?”
“뭘?”
“나 내일 아빠 보러 가는 날이잖아.”


인준은 종종 자기보다 몇 뼘이나 작은 이 아이가 낯설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함을 가지고서 성인보다 더 한 냉소적인 면을 띄니, 누가 보아도 이제노와 이민형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쉬쉬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영민하고 냉정한 우주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제 친아빠들의 기일을 챙겼다.


“안 잊었지. 어떻게 잊어.”
“재민이 삼촌은 안 와?”
“삼촌은 지금 일본이래.”
“우주 줄 거 많이 사오라 그래.”
“그럴게.”


작은 손으로 잠옷의 단추를 맞춘 우주는 제 방 침대에 누워 인준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방귀쟁이 거인 이야기 읽을래. 책장을 뒤지는 인준은 바닥에 앉아 우주가 읽고싶어하던 어린이 동화를 읽는다. 작은 손을 여러번 죔죔이던 아이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잘자, 우주야.”


무드등의 옅은 불을 올려놓은 인준이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우주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이제노가 잠들었을 때의 얼굴과 참 많이 닮았다. 깊이 잠들었을 때 베개 밑에 손을 넣는건 민형의 습관을 닮았는데, 배냇웃음을 짓는 표정하며 얼굴 구석구석은 제노와 몹시 닮았다. 인준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져 손등으로 눈가를 누른다.

오늘도 이제노가 보고싶은 밤이었다.




2.


제노와 처음 조우한 곳은 신입생 환영회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곧고 바른 목소리, 어디서든 눈길을 끄는 얼굴을 한 이제노는 응당하게 황인준의 시선도 이끌어냈다. 인준은 무작정 제노가 좋았다. 티티새였던가. 인준은 그 책에서 「사랑이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빠져있는거야.」 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깨달았을 땐 이미 빠져있는 것. 자신도 감당 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감정.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애석하게도 인준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클리셰가 인준만을 예외로 두지 않은 탓이다. 제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연인이라고 했다. 제노만큼이나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준은 민형과 함께있는 제노를 처음 보던 날, 주저 앉아 한참을 울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자신이 하는 것이 하루만 앓으면 금세 낫는 감기처럼 지나가는 한 때의 흔한 사랑이 되기를 간곡히 빌었다.


“나 결혼해, 인준아.”


청첩장을 받던 날 온 마음이 으스러지는 기분이 든 것을 보면 예의 흔한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노의 이십대를, 결혼식을, 결혼생활을, 그리고 민형에게서 아이를 놓는 것까지 제 두 눈으로 지켜본 인준은 이제노가 자신의 삶에서 영면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천애고아로 자라 자신들의 세상에 오로지 둘 밖에 없었던 제노와 민형처럼, 인준은 제 아버지들의 팔자를 닮아 졸지에 고아가 되버린 우주를 거두었다. 자신이 이제노와 이민형의 아들인 이우주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하나뿐인 세상으로 남길 바랐던 마음에서였다.

누군가는 인준을 연민에 빠진 오지랖이라 일컫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구원이라고도 말했다. 남들의 시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해서라도 이제노의 일부를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남은 인생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3.


“아빠, 나는 벌써 일주일 전에 진짜 일곱살이 됐어. 으음…. 그리고 내가 유치원에서 두번째로 키가 크다? 아빠가 나보고 제노아빠처럼 키가 많이크고 튼튼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나 그래서, 인준이 삼촌이 주는 거 하나도 안 빼놓구….”


우주가 집 안에서 부모언급을 안 하는 것은 그 작은 속에 제 부모에게 하고싶은 말을 꾹꾹 눌러담고 있다가 한번씩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거라 생각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쳐들고 재잘거리는 우주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은 모양이었다. 인준은 납골당에 올 때면 늘 우주에게서 몇 뼘 떨어져 서있는다. 스물아홉으로 영원히 박제된 사진 속의 민형과 제노를 볼 자신이 없었던 까닭이다.

재민이 제노의 사망소식을 일러주었을 때, 인준은 그 길로 차를 몰아 제 집으로 갔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짐을 싸고 나와 연고도 모르는 곳에 당도해 그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제노가 있었던 서울에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알수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좀먹고 스스로를 죽여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서 머무르던 인준은 문득 우주 생각이 났다. 다섯살이 되었다는 아이. 생일을 하루 앞두고 부모를 둘 다 잃은 가엾은 아이. 이제노가 남겨놓은 살아있는 유일한 흔적. 그것은 인준을 다시 서울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삼촌, 나 이제 아빠한테 얘기 다 했어. 배고파.”
“그래? 뭐 먹을래?”
“솔직히, 삼촌 우동 먹고 싶지 않아?”


네가 먹고 싶어하니 내가 성의껏 먹어주겠다는 말투에 인준이 픽하고 웃으며 어떻게 알았대, 하고 우주의 너스레를 받아준다. 우주의 손을 쥐고 납골당을 나온 인준이 다소 분주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차를 어디에 뒀더라.


“어?”
“왜, 삼촌 차 찾았어?”
“…삼촌.”
“응?”
“저기에… 아빠가 있어.”


뜬금없는 소리에 인준이 우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차 보닛 위에 손을 얹고 서있는 남자. 바람에 흩날리는 흑갈색의 머리카락, 툭 불거져나온 높은 콧대와 둥글고 큰 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제노는 분명히…. 인준은 황급히 두 눈을 비비고 제 볼을 꼬집어 본다.


“흐, 아빠, 으엉엉.”


인준의 손을 놓은 우주가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아빠, 아빠, 울음기에 먹혀들어간 목소리가 주차장을 가득히 메우자, 보닛에 몸을 지탱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우주야….”
“으어엉, 아빠.”


틀림 없었다. 눈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인준이 9년을 짝사랑했던 이제노가 확실했다.


“…진짜네, 진짜 이제노잖아…….”


죽은 줄 알았던 첫사랑이 돌아왔다.




4.


이제노는 세번이나 심폐 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 개중 한번은 오랫동안 소생하지 않아 의사가 사망선고까지 내렸다고 했다. 그것이 아마 인준이 제노가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인들이 인준에게 제노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아주 오래도록 이제노를 사랑하고 있음을 인지하고는 마음 속에서 제노를 떠나보내길 바랐기에 선의의 거짓말을 했으리라.


“고마워. 우주… 돌봐준 거.”
“아니, 아니. 별 거 아니야. 우주가 되게 착해서 말도 잘 듣고, 순하고, 그래서 하나도 안 힘들었어.”
“어쨌든 남인데 이렇게 키워줬잖아. 나는 몸도 몸이지만, 우주가 날 보고 나쁜기억을 떠올릴까봐 도무지 올 수가 없었거든.”


잠시 세상을 떠나있는 동안 망가진 신경은 이제노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사실 무언가에 기대고, 의지하며 걷게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제노는 인준이 기억하던 그 때와 같아 보였다.


“우주가 보고싶단 얘긴 안 했어?”
“…응.”


내가 더 보고 싶었어.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 밤마다 울지 않고는 잠에 들 수가 없었어, 제노야.


“가끔 민형이…형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것도 아주 가끔이었어.”
“하긴. 우주는 나보다 형을 더 좋아했지.”
“너도 보고싶었을거야.”


혹여나 놓칠 새라 양손으로 제노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 쥔 우주는 울다가 지쳤는지 제노의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주를 내려다보는 제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준은 어느새 커버린 아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제노의 손등 위에 조심스레 제 손을 얹었다.


“우주, 데려갈거야?”
“그래야겠지. 우주한테는 나 밖에 없으니까.”
“……….”


온기가 오르는 제노의 손등 위에 얹힌 손이 별안간 제노의 손목을 쥐었다.


“나랑 같이 살아.”
“…어?”
“나한테도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우주 내가 잘 돌볼게. 진짜 내가 낳은 자식처럼 잘 볼 수 있어. 나, 계속 그런 마음으로 우주 돌봤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면서 키우자. 같이 키우게 해줘. 내가 민형이형처럼 잘 돌볼게, 제노야.”


날 이민형의 대신으로 봐도 좋으니까 옆에 있게 해줘.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어. 차마 나오지 못하는 본심은 용솟음 치는 욕망에 휘둘리다 가라앉는다. 인준의 눈을 바라보던 제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노가 허락한 ‘우리’ 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5.


황인준은 종종 이제노에게 투정을 부렸다. 짜증을 내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그럴때면 이제노는 웃으면서 미안, 하고 사과했고 황인준은 모른 척 사과를 받아주었다. 우주는 이제노를 아빠라고 불렀고 황인준은 삼촌이라고 불렀다. 이제노는 항상 황인준에게 고마워했지만 황인준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황인준은 항상 이제노를 사랑했지만 이제노에게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우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 우주는 제노가 아닌 인준을 먼저 불렀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온대. 인준은 우주를 안고 한참이나 등을 다독여주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의 부모인정은 오랫동안이나 황인준을 울게 했다.

우주가 아홉살이 되었다.


절뚝이는 발로 들어온 제노가 인준에게 편지봉투를 건네며 물었다. 내일모레 회사에서 부부동반모임이 있다고 공문을 보냈어. 같이 가주면 안될까. 인준은 제노가 내민 봉투 안의 공문서를 반복해서 읽어 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어느 거짓하나 섞이지 않은 눈으로 웃는 제노를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황인준은 더 이상 이민형의 대용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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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생명을 유지 시켜주기도 하지요. 인준이의 독은 제노에요. 앞으로도 그럴거고요. 원래 아들을 태용이로 할까하다가 키즈모델 정우주가 생각나서ㅎㅁㅎ.....! 이렇게 음울한 글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앞으로 세 식구가 행복하다면 해피엔딩이라고 우겨본다,,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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