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이어집니다

-피터 파커 X 스콧 랭

-카톨릭 소재 있습니다


The End of the World : Wayfaring Stranger


그는 딱 봐도 신자같지는 않았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미사에 들어오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으므로 처음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손질되지 않은 머리에 낡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그가 방랑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성당은 아주 거대하고 낡아서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인을 해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내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대개는 들어온 만큼이나 쉽게 사라지곤 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처음 서너 번 정도를 제외하고 그가 딱딱하고 긴 성당의 의자에 앉아 있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뿐이었다면 아마 내가 그를 오래도록 뇌리에 남길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와 대화 한 번 나눠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웃지 않는 한 대번에 각인되는 데 없이 평범한 편이었고 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데에 서투른 편이었으므로.

내가 그의 얼굴과 음성을 모두 기억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당시 나는 심각한 불면을 앓았고 며칠씩 잠을 설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그 날도 마찬가지로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가 본당 뒷문을 열고 나가 산책을 할 요량으로 조금 걸었다. 달이 너무 가늘어 구경할 것도 없는 하늘이었고, 귀뚜라미와 들고양이 소리만이 들리는 새벽이었는데, 나는 이런 고요함에 중독되어 영 잠에 들지 못하는 거라고 밤을 탓하고 있었다. 

뒷문에서 조금 걸어가면 그리 넓지 않은 작은 숲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곳에는 따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가로등이 닿지 않는 얕은 어둠을 헤치다 방으로 돌아가는 건 어릴 적부터 착실하게 신앙생활만 해 온 나의 유일한 일탈거리였다. 나는 발자국 소리조차 숨기지 않고 걸었는데, 무언가 내 발자국 소리를 감추어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들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신부님은 들고양이들을 너무 가여워하며 챙겨주는 걸 낙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개체수가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나 있었고, 나는 그것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러나 잠시 뒤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자마자 나는 가로등도 없는 그 작은 숲에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가로등 불빛이 간신히 닿는 쪽의 나무에 사람이 매달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허공으로 사방을 차 대는 그의 다리를 끌어안고 숨을 진정시킨 뒤 그의 목에 달려 있는 끈-만져보니 넥타이였다-을 더듬어 풀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은땀이 다 날 정도로 당황하여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렸다. 나는 바닥에 형편없이 쌓인 낙엽 위로 쓰러진 그의 몸을 흔들다가, 코 밑에 손을 대어 그가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휴대폰을 방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곧바로 구급차를 부를 수 없어 일단 그를 업고 본당으로 들어오자 그는 눈을 떴다.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듯 고개를 휘청거리며 눈을 뜨려 노력하던 그는 높게 솟은 본당의 천정을 바라보며 잠시 웃으려다가 옆에 있는 나를 보고 찬물을 맞은 사람처럼 다시 무표정이 되었다. 


"정신이 좀 드세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술냄새같은 건 전혀 나지 않았다.


"여긴 성당이에요."

"....누구세요?"

"저는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이구요."


그는 나를 향해 손을 휘저으며 무언가 말을 하려 노력하다가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곧바로 구급차를 부르는 게 옳은 일이었겠지만, 그 때 내 머리에는 그런 생각같은 건 들지 않았다. 어쨌든 짧게나마 대화를 했으니 무사하다고 여겼고, 본당 의자에 눕혀둘 수는 없으니 내 방으로 다시 들어서 옮겼다. 

그는 내가 아침을 먹고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도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사라졌다는 건 어쨌든 제발로 걸어서 나갔다는 뜻이니 나는 그가 무사하리라 여겼다.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걱정하기에는 당장 할 일도 너무 많았고, 눈이 시릴 정도로 잠이 모자라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필름이 끊기듯 곯아떨어져 잠이 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누군가 나를 깨우러 올 때까지 기절해 있기도 했다.

신부님은 내 불면에 무언가 원인이 있다고 여기셔서 병원에 가 보라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사가 있던 날에 하필 늦잠을 잤을 때 신부님은 정말로 화를 내셨다. 나는 다음날에 어떠한 변명도 이유도 핑계도 댈 수 없이 병원에 가서 앉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여기까지만 쓰고 트윗으로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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