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여우비 들으면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니발, 먼저 가요."


윌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겨우 바닷물에서 윌을 끄집어냈건만 둘 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피차일반이었고, 뺨과 가슴에 칼을 찔린 윌은 피를 많이 흘려 의식을 겨우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한니발은 자신도 총에 맞아 상처가 깊은 와중에도 윌을 바다에서 건져내어 육지에 올려다 놓고 보살폈으나 이대로 계속 여기에 머물게 된다면 윌은 머지않아 곧 의식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치요가 곧 올 겁니다. 윌을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같이 가요."


"당신도 알잖아요. 저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윌,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에요."


윌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생기를 잃어버린 푸른색의 눈동자로 한니발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 나는 왜 한니발 렉터를 사랑해버려서 나 자신을 절벽으로 밀어 넣었을까.

윌의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맺혔다가 툭 떨어져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당신을 사랑해요. 윌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한니발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놀란 눈치로 윌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윌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당신을 사랑하게 돼버린 거예요. 당신이 살인마였음을 알고 나서도 저는 때때로 당신에게 공감했고, 이해했어요. 당신을 감옥에 잡아처넣고 싶었지만, 동시에 당신과 함께 도망치고 싶었죠. 당신이 저의 배를 갈라놓고 저희의 딸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의 목을 베었던 날, 저는 당신과 도망쳤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당신이 상처를 받지도 않았을 텐데. 당신이 자수를 하고 나서 3년 동안 저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죠. 만약에 만나러 갔었다면, 저는 또다시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결국 저는 당신과 같이 있을 수도 없고,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거였어요. 이게 제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한니발."


윌은 창백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 두려움에 질려있던 표정은 이제 평온해졌다.

덜덜 떨리는 차가운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 한니발의 손을 찾아 잡으며 윌은 미소지었다. 


"저도 윌을 사랑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요. 윌은 제 유일한 약점입니다. 저는 제 약점이 되어버린 당신을 죽였어야 했지만, 저는 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저의 눈을 가려버린 거예요. 윌이 저를 떠난대도 저는 여전히 당신만을 사랑할 겁니다. 윌을 두고 가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저와 함께 가요."


한니발은 이제 거의 애걸하듯이 간절한 목소리로 윌에게 말했다.

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대답할 힘도 없었다.

대답 대신 고개만 간신히 끄덕이며 윌은 서서히 의식이 흐려짐을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윌은 때에 맞지 않게 행복감을 느꼈다. 한니발과 함께할 수도,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자신의 끝은 결국 이 길뿐이리라 여기며 윌은 눈을 감았다.

의식이 흐려지던 찰나, 자신의 곁에 한니발이 눕는 것이 느껴졌다.

윌은 잠깐이나마 따스함을 느꼈다.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한니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그저 손을 뻗어 윌의 곱슬거리는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기만 했다.

달 아래에서 윌과 한니발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듯 보였다. 


윌, 달빛이 너무나 아름답군요.


한니발은 작게 중얼거렸다. 




















*


저는 주로 노래나 영화제목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데, 이번에는 여우비를 들으면서 썼어요. 같이 들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꼬옥 꼭. 

고죠유지 / 구 장르 : 한니그램 MCU 셜존 고유계 : @chemmmi_ani

쳼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