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by 쀼

공백제외  4807字




쿠로오 테츠로


하늘 참 파아랗다. 구름 한 점 있으면 얼룩이라고 의심받을까 봐 그런 건지 구름도 없다. 선선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오간다. 몇 가닥 눈을 찌르는 것도 있지만 무시하고 다시 바람을 음미한다. 해가 떠 있을 때 밖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다. 그늘 한 점 없어서 광합성 한 번 제대로 한다. 매일 이러면 키 클 수 있나. 살 타는 게 먼저겠지?

“있지. 나 이제 추운데 옷이라도 주면 안 돼?”

“절대 안 돼요. 지금 쿠로 상은 목숨을 위협받는 중이라구요. 그러니 인질답게 있어요.”

나 이제 콧물까지 나오려고 해. 팔도 저리고 살에 닭살도 돋았어. 이거로 목숨 위협하는 거라면 성공했다, 너. 그런데 감기 걸리면 너부터 죽일 거야. 아니야. 감히 널 죽일 순 없겠지만 평생 내 얼굴 볼 생각 하지마. 아니, 이것도 아니야. 살짝 덜떨어져 보여도 외관만큼은 훌륭한데 쟬 안 보면 내 손해잖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엿먹일 수 있지. 웬 건물 옥상에 어울리지도 않는 캐노피를 설치해서 그늘 안에서 고상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만 25세 직업 약물 유통업자 하이바 리에프 씨, 답 좀 알려주겠어요?

“쿠로 상 그렇게 팬티만 입고 묶여 있으니까 완전 야해요.”

이렇게 만든 게 너입니다만. 어디서 정신을 잃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눈 뜨자마자 범인은 짐작 했지만 남 보기 민망한 꼴로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 속옷 차림으로 의자에 묶여 있을 줄이야. 의자 등반이 뒤로 손도 묶이고 발목도 의자 다리에 묶인 걸 보고 황당함을 금하지 못했다.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티 낼 줄이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시할 수 있었는데도 호기심에 다가간 것? 성욕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서 날뛰다가 아카아시의 경고를 듣지 않은 것? 아니면 사람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자만 한 것? 사실 지금 생각하면 셋 다 잘못 한 거지만. 당시에 이런 내 모습을 미리 알았다면 접근할 생각도 안 했을 거다. 목숨은 한 개고 소중하며 가치 있는 거다. 그런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고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모든 고추 큰 사람과 자보고 죽자는 좌우명이 목을 졸랐다. 젠장.

목요일 새벽 3시 20분부터 딱 한 시간 동안 열리는 이쪽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클럽이 있다. 이름도 없다.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들 그 클럽이라고 칭하며 알음알음으로 입소문을 탄 곳. 장소는 12시간 전에 공개되고 어디서 누가 공개하는지 정확하지도 않다. 그냥 어느 순간 오늘은 어디래 라고 하면 가는. 그곳이 왜 유명해졌냐고 물으면 이유는 딱 하나. 외모, 재력, 매너, 테크닉 등등 A+++ 이 보장된 이들의 집합소여서. 쉽게 말해 특 1급수 물이란 거다. 살기 좋은 물에 여러 생명체가 달려드는 건 당연한 이치였고 한 명이라도 건져서 에프터 나가면 대박인데 이게 복권 당첨될 확률보다도 낮다고 한다. 눈이 머리에 달린 이들이 모여서인지 간만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클럽을 운영하는 게 지금 차 마시는 러시아산 사자다. 일부러 알게 된 건 아니다. 모든 게 다 우연이었다. 오랜만에 시간이 맞은 아카아시와 우연히 장소를 손에 넣은 내가 합심한 결과로 클럽 간 것도, 흡연자가 되려고 나간 골목길에서 목격자가 된 것도, 그리고 사람 한 명을 곤죽으로 만들면서 ‘내 클럽에 쓰레기는 필요 없어여~.’ 라고 한 말을 들은 것도 전부. 전부 다 우연이었다. 살면서 눈치 없단 소릴 들은 적 없었기에 나름 눈치 빠른 자신을 높이 평가하곤 했는데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장면을 목격하자마자 저 길쭉한 장신이 핫한 클럽의 오너이며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까지 깨닫는 데 걸린 시간 35초. 자릴 피해야겠다고 판단 내린 게 3초. 바로 클럽으로 들어가 초를 셀 필요 없는 영원한 해피엔딩.

…이라면 얼마나 좋아. 인생사 바라는 대로 되면 욕하는 사람이 왜 있겠나. 꽤 사각지대인 것 같아 조용히 들어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어깨를 붙잡히는 바람에 현장 검거당했달까. 사실 현장검거는 나보단 그 쪽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지만, 강자 앞에서 이걸 논할 강심장이 있다면 어서 절 변호해 주시옵고. 하여튼. 이놈의 잔머리는 엿 같은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해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친 짓인지 나열하기엔 민망하지만, 뻔히 유추할 만한 그런 것. 생판 남인 사이에서 저 단정한 수트 아래 매그넘을 가진 걸 알게 됐다면 뻔한 거 아닌가.

이름 모를 호텔로 끌려가 태초의 그것으로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사람 한 명을 밟던 그 무서운 모습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거기엔 성욕에 환장한 수컷만 남았다. 아카아시가 한 경고-제발 상대 좀 알고 섹스하라던-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진탕 뒹굴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유리창 너머로 어스름이 하늘이 밝아지는 걸 보고 상대가 까무룩하게 잠든 거 확인한 뒤에 얼른 옷 챙겨서 빠져나왔다. 그리고서 까맣게 잊었다. 아니, 잊으려고 노력한 게 맞을 거다. 쉽게 잊을 만한 인물도 아니었을뿐더러 제3의 다리는 계속 떠올랐으니까.

그렇지만 그 후로 클럽이 열리는 장소엔 얼씬도 안 했다. 솔직히 첫 만남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여러 의미로 위험하단 걸 잠적하면 무슨 수로 찾나 싶기도 했다. 뭐…, 보란 듯이 찾아내서 지금까지 연을 이어가는 중이지만.

“쿠로 상 때문에 일에 차질이 생겼어요.”

“하하하, 얌전히 숨만 쉬고 산 사람이 뭘 했다고~?”

“숨 쉬고 있으니까 문제죠.”

이런 참된 개새끼를 봤나. 그럼 그때 깔끔하게 죽이지 그랬어. 저 말이 거짓 1그램도 없는 순수한 진심이란 걸 알기에 속으로만 욕한다.

두 번째 만남에선 정말 죽을 뻔했다. 집주인도 없는 곳에 멋대로 쳐들어와서 하나라도 거짓으로 답하면 살점을 도려내 약물에 담근다고 했다. 단순히 협박이 아닌 실행으로 옮기기 직전이라 정말 죽는구나 싶었다. 그땐 내 쪽에서 먼저 기절해서 이대로 눈 감으면 다시 못 뜨겠구나 싶었는데 비정기적이지만 꾸준히 얼굴을 볼 줄이야…. 만날 때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하루하루를 피골이 상접한 채로 지내다가 문득 젊은 날의 몸이 너무 아까웠다. 그때 좌우명이 떠오를 건 뭐람.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살찌는 것처럼 성욕도 계절 탄 것 같다. 정신 차리고 보니 말도 트고 통성명도 하고 배까지 맞추는 뭐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 겉으로 보기에 어떨지 몰라도 속궁합만큼은 찰떡이었기에 나름 잘 지낸다 생각했는데 이 꼴은 다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일에 차질은 무슨 차질. 싸돌아다니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다리를 자를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면서.

“일을 하려 해도 쿠로 상 밖에 안 떠오르잖아요. 큰일이에요.”

그래서 어쩌란 거죠. 그럼 집중력이 짧은 네 탓을 해야지 사람을 납치하는 건 어디에 나온 해결법이랍니까. 말을 아끼라고 하나인 입이겠지만 그 하나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겠다. 얼른 벗어나고 싶은데 풀어 줄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그래서 쿠로 상이 없으면 집중 좀 될까 해서 오늘 죽이러 왔어요.”

“리에프, 내 꿈은 복상사야. 몰랐지? 그러니까 지금은 살려줘!!!”

멀쩡히 벗어나고 싶은 거지 누군가에게 끌려나가고 싶은 게 아니다. 쪽팔린 게 다 무언가. 우선 살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실내로 들어가서 죽이든 뭐든 하란 말이다! 이, 이 꼴로 죽는 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쿠로 상이 바란 거니까, 나중에 다른 말 하지 않기?”

다른 말 할 게 뭐 있나. 정말 지금 이 꼴만 아니면 쌍수를 들고 환영인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서 주변을 살핀다. 저들이 몸을 푸는 순간 문을 향해 달리는 거다. 그럼 개꼴은 면하지 않을까. 개똥밭이어도 산 게 낫지. 복상사야 지금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지만. 풀어라, 얼른, 얼른 얼,

“컥-!”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아우, 이제 좀 조용해졌다. 이따 다시 봐요, 쿠로 상!”

풀어주려고 다가오는 줄 알았던 인물의 손에 뒷목을 세게 얻어맞았더니 머리가 울리며 시야가 까매진다. 내가 진짜 저 망할 새끼랑 마주쳐서……. 너… 약속은… 지켜…….




하이바 리에프


-약물에 대해선 모두 음성 반응 나왔다고 합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삭제 후에 핸드폰을 꺼둔다. 그래야죠. 어떻게 보호한 건데. 양성 반응 나왔으면 죽였을지도 몰라요. 그런 곳을 골라 다니는 건가. 어째 쿠로 상은 약이 있는 곳만 가는지. 그래서 계속 눈길이 간 걸까. 어쨌든. 일일이 제재하는 것도 귀찮아서 싸돌아다니면 기어 다니게 만든다고 했더니 말도 잘 듣지.

그러고 보니, 그 날도 이 호텔이었던 거 같은데. 이 호텔이랑 우리 인연이 깊어요. 아예 여기로 거처를 옮겼으면 하는데. 워낙 바람 같은 사람이라 한 곳에 정착 못하는 거 알지만요. 살려고 아등바등 꼬리 치는 게 귀여워서 한 번 잔 것뿐인데. 지금까지 살려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죠. 왜 아직도 지켜보는지 궁금해서 옆에 둔 건데 그동안에 벌레 꼬이면 안 되잖아요. 오늘도 벌레가 꼬였는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벗긴 거고요.

“일어난 거 아는데여~?”

“하. 하하. 모, 모닝?”

언제 눈떠야 하는지 재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자는 지, 자는 척하는 건지 다 보여요. 어색한 숨소리마저. 그러고 보니 이만큼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네요? 첫날밤은 내가 자느라 못 봤고 두 번째부턴 뭐.

“Добрый день!”

“도, 도 뭐?”

“낮 인사! 쿠로 상 자는 동안 생각해봤는데요. ‘복상사’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성교할 때 남자가 여성의 배 위에서 갑자기 죽는 걸 말한대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쿠로 상은 여자랑 잘 일이 없잖아요. 지금까지 남자랑만 했으니까요. 그것도 그들 아래에서. 아. 이제 그들이 아니라 ‘그’ 한 명이겠네요. 저 말이에요, 저.

“왜 나체지요…?”

“응? 복상사 하고 싶다면서요. 산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잖아요?”

입은 채로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지저분해지니까. 더러운 건 질색이라구요. 그래서 미리 속옷까지 벗어서 잘 개켜둔 거고. 별로 시간 없으니까 간단히 할게요. 아, 정말. 오늘도 이유를 못 찾았어요. 왜 쿠로 상을 살려두는지. 쿠로 상이 머리에서 방방 거려서 일을 할 수가 없다구요. 나 잘 때 무슨 짓이라도 했나?

도망가려고 일어나는 이의 팔을 붙잡아 당긴 후에 그 위로 올라탄다. 이 새하얀 나신은 꼭 자국 남겨달라고 하는 거 같아요. 탄탄한 엉덩이는 왜 이렇게 작아요? 한 손에 다 들어오겠어.

“아. 그래서 좀 더 찾아보니까 의학적으로는 성교가 끝난 뒤 몇 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수면 중에 죽는 것을 가리킨대요. 이땐,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잖아요? 쿠로 상이 복상사할 때까지 제가 도우려구요. 어때요? 저 좀 착하져~?”

고갤 드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고서 다른 손으론 엉덩이를 꽉 쥐었다가 놓는다. 더 세게 쥐면 터지려나. 짧은 단말마가 들린다. 쿠로 상 신음 듣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오늘도 울어주세요~.

“잠깐만, 리에프 씨, 바로 하면 찢어져. 어? 알지?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

“괜찮아요.”

제 몸 아니잖아요. 엉덩이를 두어 번 내려치고서 발기한 살덩이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서 양손으로 벌어지지 않게 허벅지를 쥔다. 이대로 흔들 거긴 한데, 그러다가 미끄러져서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 진짜 되나? 한 번 해볼까요?

“그거 하면 허벅지 다 쓸려! 차라리 넣어!”

“찢어지는 걸 택하는 거야?”

“…씨발.”

욕하는 것도 섹시하고. 쿠로 상은 못하는 게 뭐예요? 도망치는 거? 웃음이 입 밖으로 절로 샌다. 같이 있으면 즐거워서 곁에 둔 건가. 느리게 움직이며 성기에 닿는 살에 비비다가 일부러 둔부 가까이로 올려 비비니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 숨기는 것도 없고, 숨길 생각도 없고. 섹스가 그렇게 좋아요? 야해 빠졌어. 붙어먹은 구멍보다 색다른 맛이에요. 보니까 예전에 운동했다던데. 그래서 허벅지에 근육이 많나? 내 거로 비벼지니까 어때요? 박히는 거랑 느낌이 같나? 가만히 고개를 베개에 처박고서 간신히 숨만 헐떡이는 것만 보면 싫은가 싶은데, 밑에는 정 반대니. 어디 쪽 말을 들어야 하는 거예요.

겹치듯 누운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들어 무릎을 세우니 빳빳하게 고개 든 두 개가 닿아 있다. 손을 앞으로 뻗어 두 개를 같이 쥐고서 허릴 흔든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손안에서 끈적거린다.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오늘은 좀 급해요, 내가. 허벅지 사이로, 음낭으로, 그리고 기둥까지 훑었다가 뒤로 무르며 다시 희롱하기. 움직임이 빨라질 때마다 같이 허릴 흔드는 것도 붉힌 귓가도 위에서 구경하는 게 이렇게 황홀할 진데. 몇 번 뒹굴고 죽이기에 아깝다. 음. 응. 정말로.

“허억, 갑자기 뭐 하는…!”

어깨를 잡아 돌려 눕게 한다. 선이 가는 몸이 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양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허벅지를 끌어안는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이 눈에 담긴다.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어요. 아직 답을 못 얻기도 했고 이대로 죽이기엔 아까워서요.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죠. 나답지 않게.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머리를 주름진 곳에 문대자 입까지 벌려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입안도 느낌 좋았으니까 천천히 사용해 줄게요. 그리고 쿠로 상 살려준 사람이 누군지 똑똑히 봤다가 나중에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해요. 알겠죠? 이렇게 착한 사람이 또 어디 있어.

그럼 오늘은,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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