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2020)

It's hard to live a good life... It seems like the Devil don't ever let up.

십자가에 묶여 썩어가던 동료를 총살할 수밖에 없던 윌라드와, 동생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죽음을 방조한 목사를 죽여야만 했던 어빈. 우리 대부분은 선한 삶을 꿈꾸지만, 나와 소중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악마가 되어야만 하는 순간은 늘 찾아온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혼재하므로. 윌라드가 아들 앞에서 아내를 모욕한 남자들을 때리지 않았더라면, 어빈이 동생을 괴롭히는 무리들을 손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목사 살해라는 큼직한 사건 이후에도 살인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칼을 죽인 어빈처럼 때로는 정당하게, 무방비한 남자를 뒤에서 습격한 보안관처럼 때로는 비열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죽음 앞에서만 신의 존재를 느꼈던 연쇄살인마 칼처럼, 악마 그 자체와 다름없는 인간도 이 세상엔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도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항상 선하려고 애쓰는 자는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반드시 파멸하게 되어 있다.《군주론》

그래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어떤 이는 악마 그 자체이고, 어떤 이는 악마와 맞서기 위해 악마가 되어야만 하며, 어떤 이는 시대로부터 악마가 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인간은 그토록 애타게 신을 희구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스러운 도덕률을 읊으며 선한 인간으로 거듭날수록, 우리는 그 선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다시 어떤 악마가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모순이 이승을 지배하고 있다.

그 모순에 대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짧게 말해 재미있게 봤다.


덧1.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잘 만든 영화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도 자연스러웠고, 의문이 들 때쯤이면 자연스레 화면이 전환되어 피로가 없었다. 나는 움직이는 시각 매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피로를 안 느끼고 몰입해서 볼 수 있던 몇 안 되는 영화다.

덧2. 나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이 있고 그 밑으로도 사촌동생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으면서도 와닿았던 장면은 어빈이 이복 여동생을 괴롭힌 무리를 박살내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라도 별로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덧3. 로튼 토마토 지수가 65%, IMDb에서는 7.2점 나오는데 이 중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70% 이하로 떨어지기에는 조금 아까운 영화 아닌가 싶다. 특히 내게는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영화라서.


근면성실

Shih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