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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오웬. 

부드럽게 어깨를 토닥거리는 손길에, 오웬이 눈을 깜빡거렸다. 여기는 어디야? 눈을 비비는 사이에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포근한 이불, 창 너머로 스며든 따스한 볕이 반짝거리고, 저 멀리 새들의 기분 좋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깼어?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 카인이 침대에 걸쳐앉고 오웬을 바라봤다. 오늘은 웬일로 깨우자마자 일어나네? 

무슨 소리야. 기사님 뭐라도 잘못 먹었어? 나는 분명 마법관을 나와서…. 나와서…. 

오웬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입을 꼭 다물었다. 조금 놀란 듯한 어린 고양이같은 표정.

어제 일 때문에 아직도 심통이 난거야? 미안, 대신 생크림이 듬뿍든 케이크 사왔는 걸. 특별히 네가 마음에 들어하던 곳에서 사온 거니까 얼른 아침 먹고 케이크도 먹자.

케이크? 뭐가 어찌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프고 케이크가 있다는 소리에 오웬은 성큼 걸어가 식탁 앞에 앉았다. 

빨리 케이크 줘.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금방 줄테니까 걱정 마.


한껏 기대에 부푼 오웬은 카인이 내미는 접시를 보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고기구이, 몇 가지의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 밝은 갈색빛이 도는 빵.

이게 뭐야, 케이크는?

오웬의 신경질을 완전히 무시하고 카인이 말을 이었다. 케이크는 밥을 먹고 난 후에, 잖아? 다 먹으면 케이크 줄테니까 얼른 먹자. 자, 맛있겠지?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썰어 오웬의 입가에 포크를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오웬이 한참을 지나 겨우 삼키는데, 카인의 얼굴이 미소가 번졌다. 맛있지?

맛없어. 

기름진 맛이 입안을 타고 위장까지 흘러내리는 느낌에 오웬이 인상을 끼푸렸다. 단호한 말에 머쓱해진 카인이 슬쩍 오웬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차갑네.

그거야 심장…이 없으니까.

느리게 입을 움직이는 오웬의 손에 슬쩍 깍지를 낀 카인은 이제 곧 따뜻해질 거라며 웃었다. 있지,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지금 잠깐 같이 가줄래? 


카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오는데, 기묘한 느낌이 맴돌았다.


여기는 중앙이야?

응? 그렇지. 그것보다 말이야. 이것 봐, 꽤 귀엽지? 카인이 가리킨 곳을 보자 작은 눈사람 두개가 있었다. 얼굴 위에는 노란색과 빨간색 단추가 눈처럼 있고, 종이를 오렸는지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앙나라에 지금 눈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렇게나 따뜻한데도 하나도 녹지 않았다.

오웬은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려고 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재미없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건.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싫지 않았다.

그래? 이거 꽤 힘들게 준비했던 건데. 일부러 북쪽까지 가서 눈사람 만들고 녹지 않게 마법을 거느라 꽤 힘들었다고.

축하해. 헛수고 했네. 내가 기사님의 마법을 풀어서 금방 녹아내리게 만들어줄게.

싸늘한 오웬의 반응에도 카인은 꿋꿋하게 아직 남은 게 많다며 오웬을 이끌고 앞으로 향했다.

엄청나게 커다란 케이크가 중앙에 있고, 그 주변에는 달콤한 쿠키며, 붉은 잼이며, 크림이 풍성하게 쌓여있었다. 깜짝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덥썩 잡아 입에 가득 넣고 삼키는 모습을 보며 카인이 오웬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줬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

…기억할 리 없잖아.

그건 좀 섭섭하네. 오늘은 우리가…. 아니, 일단 다른 것부터 하자. 


카인은 의기양양하게 케이크를 잘라들고 오웬의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실내로 들어오자 테이블 위에 케이크를 놓고, 쇼파에 앉고 팔을 벌렸다.

뭐야?

진짜 무슨 의미인 지 몰라 고개만 갸웃거리는 오웬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확 가까워진 두 사람.

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즉위식 때문에 요새 계속 바빴으니까 그리웠어. 그동안 혼자 둬서 미안해.

즉위식?

응, 아서전하의.

헤에. 


카인은 품에 안긴 오웬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뭐하는 거야? 기사님 죽고 싶어?

아직도 삐진거야? 진짜 미안해. 나, 한동안 휴가 받았으니까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어.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실실 웃고 있는 카인. 부드럽게 입술이 겹쳐졌다.


□□해.

어째서인지 카인의 목소리가 일그러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기사님, 지금 뭐라고 한거야?


있잖아, 나랑 □□해줘서 고마워. 나, 행복해.


더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귀가 먹먹해지는 새하얀 침묵.

그 깊은 심연 속에서, 오웬은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이 세상에 오로지 단 한 명의 존재 뿐.



***



북쪽나라의 임무 때문에, 몇 번이나 오웬의 방에 노크를 한 현자는 텅 빈 방을 보고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오웬의 부재를 물어보았다. 


오웬이 없어?

며칠씩이나?

뭐… 알아서 돌아오지 않을까요.


요란한 쌍둥이와 달리 미스라는 귀찮은지 적당히 넘겨버렸다. 


하지만 오웬이 무얼 할지 모르지 않누.

그래, 저번에는 카인을 공격했지 않았나.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던 카인을 떠올리며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책 회의 중, 똑똑거리는 노트 소리와 함께 히스클리스와 시노가 나타났다.


현자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 오웬에 대한 것이에요.

오웬의? 


곧바로 스노우와 화이트는 주변을 분리해내 다른 마법사가 이를 듣지 못하게 했다. 


저기, 실은… 오웬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걸 봤어요.

그거야 상처의 상태일 때는….

아니요. 상처가 아니라….


히스클리프는 눈을 질끈 감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의 모습이였어요. 평소의 오웬인데도 마법을…. 늦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시노가 툴툴거렸다. 


히스, 우리가 사과할 필요 있어? 그 녀석이 입 다물라고 협박했잖아.

그래도 말하지 않은 건 우리 책임이야. 곧 바로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의 오웬 모습이 너무… 처연해보여서 말하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처연? 그 오웬이? 

쌍둥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날의 오웬은 뭔가… 슬퍼보였어요. 마치 버려진 아기고양이처럼….





춥고, 배고파. 


《쿠아레 모리토》


쳇, 왜 또 못 쓰는 거야. 오웬은 혀를 차며 풀밭 위로 몸을 뉘였다. 흰 옷이며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뒤덮여 꼬질꼬질한 상태. 평소라면 이런 것 쯤은 마법으로 얼마든지 깨끗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누워있는 오웬에게 작은 다람쥐가 슬며시 다가와 도토리를 내밀었다. 주는 거야? 다람쥐가 앞에 내려놓은 작은 도토리를 들고 이리저리 빛에 비춰보던 오웬은 갈색빛이 맴도는 매끈한 표면을 훑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북쪽나라의 오웬이, 지금은 마법도 쓰지 못하고 한 입거리도 안될 다람쥐에게 동정이나 받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털썩 누운 오웬은 천천히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무표정하게 늘어졌다.


처음에는 북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마법관을 나와, 북쪽으로 갔던 것까지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빗자루에서 내려 몇 발 내딛고 나서, 그 이후에 '상처'로 기억을 잃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달콤한 생크림을 먹고 싶어. 갓 구운 스콘에 올려서 따뜻한 홍차랑 같이.

즐거운 상상을 하며 되는 대로 멜로디를 붙여가며 음을 흥얼거리자 근처에 있던 동물들이 성큼 다가왔다. 


사슴, 토끼, 이름 모를 작은 새. 

성큼성큼 다가오는 늑대의 모습을 보고 소동물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얘들이 무서워하니까 너는 거기에 있어. 

늑대는 알아들었는지, 살짝 먼 발치에서 주저앉았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풀잎을 스치며 시원한 향기를 데리고 와주었고, 나무그늘 아래의 오웬은 품에 다가온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쪽에서 들리는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순식간에 동물들이 도망쳤다. 


방금 노래 너가 부른거야?


잘 땋은 갈색머리, 종아리까지 오는 널널한 원피스를 입은 젊은 나이의 여성. 

오웬이 말 없이 천천히 눈만 깜빡거리자 그는 덥썩 손을 붙잡고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여기 살아?






마법관에서는 오웬이 없어졌다는 소식과 그 '오웬'이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어린 마법사들이 알면 큰 소동으로 이어지거나 패닉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 인원을 추려 각 나라별로 몇 명씩만 따로 모였다. 다른 아이들이 오웬의 행방을 물을 때를 대비하여 입을 맞추고, 사라진 오웬을 찾을 회의를.


대책이랄 것도 없어. 찾을 방법? 없잖아. 며칠째 매일 각 나라를 뒤지고 있는데도 나오지 않고 있어. 이러다가는 어린 애들도 금세 알게 될 거야.

후후, 벌써 눈치 챘을 지도 모르죠?

샤일록.


쌍둥이가 볼을 부풀리며 말하자 샤일록은 살짝 눈웃음 지으며 실례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냈다. 


…오웬만 찾으면 되는 건가?

계속 침묵해있던 오즈의 입이 열리자 빠르게 피가로가 대꾸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거야. 그 오웬 녀석이 스스로 나무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어. 이게 더 심각한 문제겠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영향은 아닐꼬?

두 분 말씀대로 그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우선 오웬을 찾는 게 먼저예요. 


마지막으로 오웬을 봤던 시기가 언제죠?

미스라여, 그대가 오웬과 함께 차를 먹으러 갔던 시기가 언제였누?

아, 잘은 모르겠는데요. 그 이후로 오웬을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믿을 수 없구먼.

믿을 수 없는게야.


마지막으로 오웬을 봤던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오웬의 부재는 금방 들통나 버리겠죠. 어렵네요….


현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카인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옷이 더러우니까 빨아줄게. 그거 우리 남편이 입던 옷인데 좀 크긴 해도 괜찮지? 


면재질의 베이지색 상의 소매를 두번이나 접은 오웬은 여자가 내미는 머그컵을 받아들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우유가 안 달아. 

응? 우유는 원래 안 달잖아. 

설탕 넣어줘.

미안, 설탕 다 떨어진지 오래라서…. 곧 남편이 돌아올텐데 그때 같이 들고 올거야. 큰 시장에도 갔다온댔거든.

금방? 언제?

음… 삼주 쯤 걸린다고 했으니까 내일 쯤 올 거 같아.

알겠어.


오웬이 거실 한쪽에 있는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실털을 보며 턱을 괴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여자는 본인을 메리라고 소개하며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오웬, 너는 어디서 온거야? 원래 거기 사람 거의 없는 곳인데 노랫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어. 난 쭉 남쪽나라에서 살다가 남편이랑 결혼해서 중앙에 온지 몇 년 안됐거든. 여기는 외진 곳이라 오히려 남쪽나라보다도 사람이 적은 것 같아. 

…북쪽.

진짜?! 우리 남편도 북쪽에서 태어났어! 난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남편 말로는 엄청 춥고 살기 힘들어서 고생했었다던데! 엄~청 무서운 마법사도 많다고 했어!


내가 그 무서운 마법사야. 평소라면 그렇게 말했겠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있지, 만약에 가슴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거야?

혹시 그거 사랑 얘기야? 좋아하는 사람 있어?!

사랑?

그 사람이 계속 해서 생각나고 같이 있고 싶어?

모르겠어.

어렵네~ 상대방은 어떤 사람이야?

멍청하고 바보 같은 사람. 자기 목숨을 걸고 남을 지키려다가 죽을 뻔 했어. 그리고 전부 잊어버렸어. 그간에 있었던 일도, 나에 관한 것도. …좋아한다고 말한 주제에.


밝고 사랑스러운 연애 얘기를 들으려고 눈을 반짝거리던 메리는 생각보다 침울한 내용에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가 뭐라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저기에 강도가 있어요! 아저씨가, 아저씨가! 잡혀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이를 따라 황급히 뛰어간 곳에는 칼을 들고 있는 남자가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금품을 노린 건지 가방 속의 물건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엉망이었다. 메리에게 주려고 했을 것 같은 아이보리 컬러의 원피스는 찢겨 조각난 채 흩어져 있었고, 터진 주머니 속에서 설탕 알갱이가 흘러나와 빛을 받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꽁꽁 묶인 메리의 남편은 제 아내가 다가오는 걸 알아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쿠아레 모리토》


생각하기도 전에 입이 떨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데운 우유만큼의 친절, 메리가 준다고 했던 설탕을 듬뿍 넣은 우유는 이제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바닥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강도들은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다. 오웬은 그쪽으로 성큼 다가가 신고 있던 구두로 강도의 얼굴을 쳐 똑바로 내려다 보았다.


벌써 기절하면 안 돼. 너는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살려 달라는 소리가 아니라 죽여달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 최악의 형벌을. 


 《쿠레 · 메미니》


영혼이 짓찢길 때까지 영원히 맛 보렴.


오웬은 메리와 그의 남편이 있는 쪽을 힐끔 곁눈질 하고는 주문을 외워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검은 셔츠에 보랏빛 넥타이, 줄무늬의 정장과 흰색 코트, 그리고 모자까지.


오웬, 너 마법사였던 거야? 


서슴없이 성큼 다가가는 메리를 그의 남편이 붙잡았다. 

메리! 안 돼. 저자는 북쪽나라의 마법사, 오웬이야!

하지만 우리를 도와줬잖아?

저 녀석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그랬는지 모르잖아! 메리, 제발 내 말을 들어줘!

…하하, 그래. 너희의 집에 아주 무서운 저주를 걸어놨어. 앞으로 너희의 불행은 전부 내 탓이야. 나쁜 마법사는 이만 사라져 줄게. 안녕.


오웬은 빗자루를 꺼내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상공에서 본 인간의 모습은 개미보다 작았고, 순식간에 나무에 가려 더는 볼 수 없었다. 


중앙나라의 밤은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 흔들린 머리카락이 뺨을 간지럽혔다. 심장 아래가 뻐근해지는 기분. 그때와 같았다. 기사님이 깨어나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을 때.


바다가, 귀에 스치는 파도 소리가,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가, 신발 끝에 닿아 서걱거리는 젖은 모래가,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던 그 온기가.


그리워졌다.





카인, 안에 있어요?

응? 현자님 웬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카인에게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 말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답해줄게.

…오웬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을 찾고 있어요. 마법을 쓸 수 없는 오웬이, 사라져 버렸어요.

오웬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날이려나?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오웬이 갑자기 나타났어. 갑자기 손을 내밀어서 뭘까 싶었는데 물어보니까 무시하고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어. 마치… 달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아, 이건 비유적 표현이지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럼 푹 쉬어요. 


방을 나와 오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던 현자에게 쌍둥이가 달려왔다. 중앙의 한 시골마을에서 북쪽 마법사 '오웬'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그러니까, 며칠 전에 오웬이 여기에 왔었다는 거죠?

네, 당시 홀로 있던 제 아내와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 저주를 걸고는 사라져 버렸죠. 

저주? 그런 건 없어.


저주라는 말에 불려 온 파우스트가 집을 꼼꼼히 둘러 보았지만 저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파우스트의 단언에도 그는 계속 해서 오웬이 했던 마지막 말을 되풀이 하며 더 강한 마법사가 봐달라며 떼를 썼다. 


그는 저주상. 여기 모인 이 중에 제일 전문가인게야.

그런게지. 그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마법사 전원이 저주를 느끼지 못했어.

그렇다면… 그건 그냥 거짓말 인가요?

그렇지. 그냥 오웬 녀석의 심술일게야.


별 수확이 없자 돌아가려는 마법사들을 보고 메리가 집안에서 뛰쳐나왔다. 

메리! 집안에 있으라고 했잖아. 홀 몸도 아닌데, 위험하다고!

그렇지만, 오웬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돌아선 마법사들이 멈춰서서는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오웬은 숲 속에서 처음 만났어요. 이 근방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데, 물을 긷으러 가는 길에 노랫소리가 들려서 그쪽으로 가봤더니 동물들 사이에서 오웬이 있었어요. 길을 잃은 사람인가 싶어서 집으로 데려와서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히고 데운 우유를 줬더니 설탕을 부어달라고 했죠. 집에 설탕이 다 떨어져서 내일이면 남편이 설탕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올 것 같다고 하니 꽤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러다가 꼬마아이가 이쪽으로 달려와서, 남편이 강도에게 잡혀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웬과 함께 달려갔어요. 오웬은 바로 마법으로 강도를 제압했어요. 다가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막아서서…. 오웬은 쓸쓸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타고 사라져 버렸어요. 전부 정리하고 집에 왔는데, 분명 강도가 찢었던 이 원피스가 거기에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오웬을 찾으러 오신거죠? 만약 오웬을 만나게 된다면 메리가 꼭 기다리고 있겠다고, 설탕을 넣은 우유를 들고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둠 속에서 초침만 째깍거리며 시간의 흐름을 알리고 있었다. 왜 여기에 온 걸까. 쿨쿨 잠든 기사님을 내려보며 오웬은 다리를 꼬고 앉아 생각에 빠져들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마법사에게 그런 일 쯤은 간단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공간을 이동하거나, 마법을 쓴다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으니까.


홀로 그때의 바닷가를 찾아갔지만 아무리 걸어도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모래사장을 걸어봤자 구두에 모래만 묻고 다리만 아플 뿐이었다.

하나도 즐겁지 않아. 이제 돌아갈래.

뿌룽퉁한 얼굴로 오웬은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마법관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건만, 이상하게도 조금 어긋나는 느낌이 들며 다른 사람의 방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것도 기사님의 방에.


피곤한지 곤히 잠들어있는 기사님을 보면, 자꾸 깨어나지 않았을 때가 떠올라 감정이 미묘해졌다. 지금이라면 마법을 쓰지 않고서도 기사님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뾰족한 날붙이를 들고 가슴에 내려꽂기만 해도 무방비한 기사님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을 터.


순간 인어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자는 남자만 죽인다면 되돌아갈 수 있었다. 바닷속으로. 저 깊은 심연 속으로.

오웬은 그 여자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단 한 명만 죽이면 되돌아갈 수 있는데도 인생을 포기해버린 바보라고.


책상에 올려져 있는 칼을 쥐었다. 차갑고 딱딱한 감촉. 카인을 죽인다면 마법을 쓸 수 없는 이 상황도 전부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 인어와 남자처럼.


아까 전부터 뭐하는 거야?


덥썩 손목을 붙잡는 손을 뿌리치려고 끙끙댔지만, 그럴 수록 손아귀에 드는 힘이 강해질 뿐이었다.


놔.

내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줘. 나한테 뭘 하려던 거야?

알 필요 없잖아.

아니, 알아야 해.

…죽이려고 했어.

나를? 왜?

…이유를 묻는 게 이상하잖아. 나는 북쪽 마법사야. 약한 마법사를 죽여서 그 마나석을 얻어서 삼키면 내가 더 강해지는 게 당연하잖아. 뭐… 됐어, 계획은 실패했으니까.

잠깐, 오웬…!


 《쿠레 · 메미니 》 


도망친 오웬은 생각했다. 


두 다리를 얻고 남자를 죽이러 왔지만 실패했던 어리석은 여자.

그 여자도 결국엔 이런 심정이었을까. 




올해 안에는 하편까지 쓰고 끝낼 생각입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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