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이어집니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본격적으로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 반죠는 보충수업이 끝나고 2시간 정도 센토를 거의 매일 만났다. 센토가 반죠를 만나고 나서 부쩍 늘게 된 말이 바로 저것이었다.

센토는 첫날 의기양양하게 시험지를 가져와 반죠 앞에 들이밀었고, 반죠는 놀랍게도 그 시험지의 반도 다 풀지 못했다. 센토가 반죠의 성적을 듣고 준비해온 시험지였으나 센토의 생각보다 반죠는 공부와는 연이 없었다. 센토는 첫날 좌절한 자세로 왜 이걸 모르지, 여러 번 되뇌었다. 훈련이나 대회를 나가느라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까마득했던 반죠는 민망해져 괜히 큰소리를 냈다. 그러게, 왜 공부를 도와준다고 해서는! 민망함을 가리기 위해 센토를 원망하자 센토가 고개를 치켜들며 반죠를 노려보았다. 반죠는 그 기개에 순간 눌렸으나,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나의 천재적인 두뇌로 반드시 네 성적을 끌어올리겠어!”


당사자도 그다지 생각 없는데, 센토는 열의에 불타올라 개념을 정리해둔 노트까지 가져왔다. 공부 잘하는 사람답게 깔끔해 보여 반죠가 감탄하고 있는데, 센토가 그 위로 적는 글씨는 해독이 필요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것이 도통 알아볼 수가 없었다.


“뭐라고 쓴 건데?”

“바보야? 당연히 근의 공식이잖아.”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잖아!”


알고 보니 그 노트는 중학생인 여동생의 노트였다.

센토와 반죠의 보충수업은 공부보다는 둘의 투닥거리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센토는 자주 머리를 쥐어뜯으며 최악이야! 라는 말을 중얼거렸고 반죠는 그래도 무언가를 머리에 넣기는 했다며 이전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여름방학이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반죠는 센토가 이쯤에서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처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이쯤 되면 단순히 승부욕의 차원이 아닐까. 반죠는 의아했다.


“야.”


반죠는 한 살이 많은 센토를 ‘선배’ 따위의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반죠가 푼 문제를 채점하느라 빨간 펜으로 가위표를 긋고 있던 센토가 고개를 들었다.


“왜.”

“왜 공부를 도와주는데?”


센토가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것처럼 반죠를 빤히 바라보았다. 흡사 표정은 ‘저 원숭이가 대체 무슨 말이래.’ 하는 표정이라 반죠는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센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긴 하냐? 왜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는데?”

“한심하다니!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지금 수험 공부를 해도 모자라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후배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난리니까.”

“수험 공부는 평소 공부로 충분해.”

“우와, 재수 없어.”


센토의 뻔뻔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센토 말대로 그는 정말 ‘천재’인 모양으로, 이미 추천장을 받아놓았고, 모의고사 성적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있는 자의 여유? 반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꼭 이유가 필요해?”


센토가 다시 채점에 집중하며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반죠의 마음속 연못에 파문이 일게 했다. 그 돌은 무겁지 않고 오히려 가벼운 편이었으나 연못에 여러 번 튀겨 마침내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순수한 호의,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벽을 높여온 반죠는 이런 순간에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괜히 무릎 위로 땀이 난 손을 닦았다. 카스미, 이런 녀석은 널 만나고 나서 처음이라 어려워. 카스미가 어디선가 말하는 것 같았다. 반죠, 표현할 수 있을 때 많이 표현해줘.

센토는 고요해진 반죠를 한 번 흘낏 바라보고 문제집에 코를 박았다. 아직 반죠에게 솔직하게 전부 말할 생각은 없었다. 반죠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제법 순수한 편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의 이상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았다. 센토는 조금 고독했다. 그래도 조금 고독한 편이 나았다.


“야, 센토.”


반죠가 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말을 붙였다. 반죠의 처참한 정답률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듯 센토가 답했다.


“왜.”

“끝나고 컵라면 먹을래?”

“너는 이렇게 틀려놓고 밥 먹겠다는 소리가 나오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라서 반죠는 제가 좋아하는 컵라면을 권했다. 센토는 반죠의 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컵라면을 먹자는 반죠의 제안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날부터 둘은 보충수업이 끝나면 편의점에 가 파라솔 아래서 컵라면을 먹거나, 옥상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아무튼 무언가를 입에 넣으며 성장기의 허기진 몸을 달랬다.

반죠는 마음속 허들이 자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높게 쌓아 올린 벽은 센토의 평범한 호의에 조금씩 무너졌다. 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여태 자신이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서서히 바깥이 보였다. 아직 벽 너머의 얼굴은 센토가 유일했지만, 반죠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넓어졌다고 느꼈다.

자신은 센토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지만, 반죠가 생각하기에 센토는 그다지 반죠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댈 수 없었다. 반죠는 관계에서도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피부에 와닿는 것을 충실히 느끼는 게 반죠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반죠의 감은 센토는 반죠만큼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센토는 반죠에게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반죠는 내심 신경이 쓰였다. 멱살 잡고 왜냐고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반죠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열심히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제 이유야 어땠든 센토와의 나날은 제법 즐거웠으므로 굳이 균열을 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 센토를 미워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런 건 원치 않았다

반죠는 운동화 앞코로 운동장 바닥을 쿡쿡 찍었다. 센토가 교실에 두고 온 게 있다고 해서 혼자 교문 근처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문득 든 생각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구질구질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지금 하늘처럼 그랬다. 반죠는 발로 직직 아무런 무늬나 긋다가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보였다. 폭신한 분홍빛 스크런치에 묶인 반 묶음 머리가 삐죽 올라와 달랑거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얼핏 보아하니 센토와 반죠의 학교 교복은 아니었다. 학교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기다릴 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보충수업은 끝났고 센토와 반죠를 비롯한 몇몇만 조금 더 남아 자습이나 멘토링을 하고 있는지라 학생 대부분은 귀가한 참이었다.

반죠는 자신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동글동글하고 순한 눈매에 귀여운 상인 얼굴은 앳돼 보였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 정도? 반죠는 무시하려다가 소녀가 어려 보이는 탓에 한마디 건네고 말았다.


“누구 기다려?”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반죠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반죠가 그 시선에 멈칫해 덧붙였다.


“지금 여름방학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데.”

“키류 센토라고 있는데, 알아?”


반죠는 뜻밖에도 자신이 아는 이름을 듣게 되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여자친구인가? 자연스레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상상은 잘 안 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둘 다 눈매는 순했고, 새까만 머리에 단정한 이미지였다. 센토보다 눈앞의 소녀는 활기차 보였지만, 반죠가 모르는 공식을 칠판에 적어 내려가는 센토도 그럴 때만큼은 못지않았다. 반죠는 자신도 여자친구가 있었던 마당에 왜 단 한 번도 센토에게 여자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한 적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물리랑 연애하는 것처럼 보였나….

동그란 안경을 쓰고 갸웃거리는 소녀는 무척이나 귀엽지만 어려 보여서 센토를 좀 꾸짖을 생각이었다. 너무 어리지 않냐고. 방학 때는 사람이 드물고 한가진 곳이라 반죠는 소녀와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소녀의 물음에는 애매하게 “뭐, 조금.”이라고 덧붙였다. 소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반죠를 바라보았다.


“혹시 있잖아.”

“미소라!”


센토가 저만치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말하려다 센토의 부름으로 멈춘 미소라가 무심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우산을 하나 건넸다.


“오늘 비 온다고 했고, 아빠가 분명 챙기라고 말했고, 근데 안 챙겼고. 왜 내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안 내리잖아.”


센토가 말하기 무섭게 무거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똑똑 떨어지며 운동장을 적시기 시작했다. 미소라는 그것 보라는 얼굴로 자신의 우산을 펼쳤다. 반죠도 우산이 없었던지라 난감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센토가 우산을 펼쳐 반죠의 반소매를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나쁜 머리 비 맞으면 더 나빠져.”

“말을 꼭 그딴 식으로 해야 해?”

“역시 반죠 맞지?”


반죠가 어물거리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라가 역시 맞았다고 중얼거리자 반죠가 미소라와 센토를 번갈아 보았다. 뭔데?


“여자친구한테 내 얘기 한 거야?”

“여자친구?!”

“여자친구?!”


둘이 똑같이 분노한 표정으로 반죠를 노려보았다. 특히 미소라 쪽이 격분한 얼굴이었다. 반죠는 둘의 기세에 눌렸으나 사뭇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뭐, 왜!”

“여자친구 같은 거 아니거든?”

“바보야, 얜 내...”

“동생이라고!”


미소라가 소리를 빽 질렀다. 어지간히도 억울했는지 뽀얀 이마와 미간에는 주름이 잔뜩 잡혔다. 동생이라고, 동생이라고, 미소라가 하는 말이 귓가에 반복해서 들렸다. 가만 보니 둘이 닮은 것도 같다. 결 좋은 새카만 생머리 하며, 순해 보이는 눈매라거나 선한 인상이. 반죠는 후련하게 풀리는 속에 자신도 모르게 “적어도 근육이라고 붙여.”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었다. 후련하다?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적어도 아까보다는 눅눅한 감정이 가셨다. 비 오기 직전의 불쾌하게 눅눅했던 공기가, 차라리 지금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달가워지듯이.


“동생 있다고 말 안 했잖아.”


답답한 속은 풀린 주제에 괜히 꿍얼거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센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반죠는 시선을 피했다. 미소라가 둘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반죠가 스스럼없이 미소라 쪽으로 다가가―그 과정에서 우산을 함께 쓰고 있는 센토의 옷을 질질 잡아당겼다― 같이 가자고 툭 던졌다. 미소라가 조금 전 센토의 표정처럼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반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도 오는데 혼자 보내기 좀 그렇지 않냐는 말에는 더욱 그랬다. 센토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제안인지 미소라의 보폭에 맞춰 걷는 반죠에게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어느덧 미소라와 말을 섞기 시작해 좋아하는 디저트로까지 대화 주제가 점프한 반죠의 옆얼굴을 센토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반죠에게 센토가 특이한 인물인 만큼, 센토에게도 반죠는 못지않게 특이한 녀석이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미소라와 금방 친해져서는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이 그랬다. 분명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는 야생 고양이처럼 털이란 털은 다 세우고 경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미소라에게는 여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금세 벽을 허물고 있는 게 괘씸하기도 했다. 괘씸 이라는 표현이 올바른가? 센토는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 와중에도 센토의 어깨가 젖는 것을 발견한 반죠가 센토의 옷을 잡아끌었다.


“뭐해, 젖잖아.”

“어? 아.”

“암튼 이상한 구석에서 허당이라니까.”

“뭐?”

“그치, 센토가 좀 그런 면이 있어. 발명에 빠지면 주변을 하나도 돌아보질 않는다니까.”

“저번에도 자기 혼자 무슨 공식에 잔뜩 빠져서는 나한테 설명을 하다가….”


반죠에게 이끌어진 센토는 다시금 우산 밑으로 들어왔다. 센토를 공통 화제로 둘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는 반죠와 미소라가 연인 관계로 보일지도 모른다. 센토는 불쑥 치민 생각에 본인도 적잖이 놀랐다. 타인의 연정 관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자연스레 흐른 생각은 아마 아까 반죠가 했던 쓸데없는 말 때문일 것이다. 센토는 뒷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센토는 설명하기 어렵게 가라앉는 감정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센토의 생각이라고 하기에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괘씸하다’라는 생각. 날을 잔뜩 세우는 반죠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센토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에 반죠가 센토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허전해진 옆자리에 센토가 고개를 돌리자 반죠가 가방을 뒤집어쓰며 갈 채비를 했다.


“그럼 난 이쪽으로 갈게.”

“우산도 없이 가겠다고?”

“이 정도 비는 괜찮아.”


반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여름비답게 빗줄기는 제법 굵었다. 미소라가 센토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가 반죠에게 말했다.


“비 그칠 때까지만이라도 있다 가.”

“어딜?”

“우리 집.”


반죠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미소라가 그래도 되지? 뒤늦게 센토에게 물었고 센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죠가 둘은 번갈아 보자 이번에는 센토가 가방을 뒤집어쓴 반죠를 잡아끌었다.


“이리와, 바보야.”

“근육 붙이랬지!”


반죠를 인도하는 미소라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반죠가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는 것도 아닌데, 미소라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반죠를 확인했다. 미소라는 나이도 반죠보다 어리고 외모도 동글동글한 볼 때문에 충분히 어려 보였어도 행동은 제법 의젓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딱 제 나이 같았다.

반죠는 미소라를 따라가면서 센토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평소랑 별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반죠는 오늘 센토에게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센토는 반죠와 보충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컵라면이나 빵을 먹거나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모든 건 거기까지였다. 반죠가 센토의 집에 놀러 간다거나, 센토가 반죠의 집에 놀러 온다거나,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랬던 센토가 웬일로 집에 다 데려가는 게 신기해서, 오늘 무언가 다른 점이 있나 반죠는 나름대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미소라가 있다는 점 빼고는 다른 게 없었다. 동생 부탁은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브라더 콤플렉스? 반죠는 제 나름의 가설을 세웠다. 센토나 미소라가 알면 뒤로 넘어갈 가설이었다.


“들어와.”


도착한 곳은 웬 카페였다. 반죠는 카페 이름을 더듬더듬 읽었다. 간판 옆에는 가정집도 겸하고 있는지 명패가 있었는데, ‘石動’라고 새겨져 있었다. 반죠는 잠깐 멈칫했으나 이내 실례합니다, 하며 카페에 들어섰다. 제법 넓은 카페는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였지만 결정적으로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센토도 익숙한지 어디선가 컵라면을 가지고 나왔다.


“카페인데?”

“괜찮아, 손님도 없고.”


미소라가 물을 끓이며 말했다. 반죠는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았다. 진짜 첼로인가 신기해서 줄을 만졌다가 생각보다 단단해서 반죠는 손가락을 황급히 뗐다. 미소라가 간식을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센토가 말했다.


“미소라가 좀 신난 거 같아.”

“왜?”

“몸이 좀 안 좋아서, 학교도 자주 못 나가거든.”

“아.”

“사람이 온다니까 조금 들뜬 거겠지.”


반죠는 사진을 들여다보느라 굽혔던 허리를 폈다. 반죠의 마음은 센토의 말에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꼬맹이가 없었으면 자신은 이곳에 발을 붙이는 일도 없었을 것만 같았다. 미소라가 카스미를 떠올리게 해 마음이 쓰이는 것과는 별개로 반죠는 조금은 센토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착각한 게 창피했다. 창피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분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반죠는 그런 감정의 원인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 너머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흐린 빛이었다. 언제 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난나/핳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