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키소스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 이어 보시면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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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PD)와 반대로, 자신에게 애정을 갖지 못하는 질환도 있습니다. 


신체변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는 신체이형장애 혹은 신체추형장애라고도 불리며, 실제로는 외모에 별 다른 결점이 없거나 매우 사소한 결점이 존재해도, 그것을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고치려고 성형 수술이나 시술에 집착하게 되나, 그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 등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DSM-IV에서는 신체형장애 범주로 분류되었다가 DSM-5에서 강박장애와 관련된 장애의 하위 장애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망상장애로 진단 받을 수도 있으며, 약물 치료와 자존감을 높이는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단명에 들어가는 ‘dysmorphic’이란 단어는 이상을 나타내는 ‘dys’와 형태라는 의미의’morph’를 더하여 만든 것인데, morph라는 것의 어원은 잠의 신 히프노스의 아들 중 한명인 모르페우스(Morpheus, μορφή)에서 따온 것입니다. 모르페우스는 밤의 신 닉스의 아들이라는 전승도 있으나, 보통은 잠의 신인 히프노스와 휴식과 명상의 여신인 파시테아(Pasithea, Πασιθέα) 사이에서 태어난 천 여명의 아이들 중 첫째라고 합니다. 

모르페우스는 꿈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 어떤 사람의 형상도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들이 인간에게 꿈을 통해 계시 등을 내릴 때 필요한 인간의 형상을 취하여 꿈 속에 나타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하게 되죠. 

모르페우스. 1771년. Jean-Bernard Restout 작품. 보통 날개가 달린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모르페우스가 활약한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케익스(Ceyx, Κήϋξ)와 알키오네 Alcyone, Ἀλκυόνη)’에 관한 것입니다. 

테살리아(Thessalia, Πετθαλία)의 왕과 왕비이자 사이 좋은 부부였던 둘은 남편인 케익스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되는 비극을 맞이하였고, 남편이 죽은 줄 몰랐던(혹은 믿고 싶지 않았던) 알키오네는 매일매일 가정의 여신 헤라에게 남편을 돌려주길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제사를 지내야할 알키오네가 자신의 신전에서 계속 기도하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헤라는 모르페우스에게 알키오네의 꿈 속으로 찾아가 케익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모르페우스에게 헤라 여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이리스(헤라의 전령이자 무지개의 여신). 1881년. Pierre-Narcisse.


모르페우스는 헤라의 부탁대로 알키오네의 꿈으로 들어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남편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였습니다. 얼굴, 목소리, 체형, 그리고 걸음걸이 모두 완벽하였으나 익사한 상태였기에 전신이 푹 젖고 피부가 창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소의 케익스와 같았죠. 그러나 평소의 다정한 케익스와 달리 슬픈 표정으로 알키오네에게 자신은 이미 죽었으며, 자신의 시체를 찾아 장사를 지내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죠. 

결국 꿈으로 인해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그녀는 바닷가에 밀려온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본인도 바다에 뛰어들게 됩니다. 

케익스와 알키오네. 1768년. Richard Wilson. 바닷가로 떠밀려온 케익스의 시체를 발견하고 비통해하는 알키오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후 이 가엾은 부부를 안타깝게 여긴 신들에 의해 부부 모두 새(물총새로 변했다고도 하며, 그 새의 학명이 알키오네에서 기원한 Halcyon입니다)로 변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물총새가 된 후에는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아 그들이 둥지를 짓고 알을 낳는7일 간은 바다가 아주 조용하고 평안했다고 하며, 이 시기를 'Halcyon days'라고 부르게 됩니다. 

물총새의 모습.


그 누구의 모습도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으며, 이 신의 이름을 딴 유명한 영화 속 등장인물이 바로 매트릭스(Matrix, 1999)의 주요 조연인 모피어스입니다. 일종의 꿈 속이라고 볼 수 있는 매트릭스 세계 속에 나타나 주인공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아주 적절한 이름을 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매트릭스 속에 등장한 모피어스.


또한 일종의 마약이자 뛰어난 진통 효과를 가진 약인 모르핀(Morphine) 역시 모르페우스의 이름에서 기원하였는데, 꿈 속에 있는 듯한 몽롱한 느낌이 들고 잠이 들게 한다는 점, 그리고 통증을 잊게 한다는 점에서 꿈의 신의 이름이 어울리는 약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르핀 주사제 앰플.

이야기 읽는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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