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래왔듯 앨서가 러브를 찾은 것은 비 오는 날의 일이었다. 런던이 늘 그렇듯 비는 주척거리며 내렸고 날은 우중충하니 사람들 얼굴도 꼭 그와 같았다. 러브는 지겨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방문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앨서는 검은 우산을 접어 털고 우산 꽂이에 얌전히 꽂았다. 러브는 앨서의 방문이 반가운 모양으로 그를 보곤 웃어보인다. 왔어요? 여상한 말투로 묻곤 식탁을 가볍게 치웠다. 그는 식탁에 앉아 러브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머그컵. 앨서는 의아하지만 흡족하게 머그를 두 손으로 감쌌다. 빗줄기 사이로 걷느라 차가워진 손에 온기가 돈다. 그 짧은 시간, 앨서는 러브의 한 쪽 눈에 관한 생각을 하다 그만 두었다. 누구나 살다보면 무언가를 잃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은 흐를 것이며 상처는 언젠가는 낫는다. 낫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피는 멎는 법이다. 애써 자신의 이야기와 유리시키며 생각을 이어나가던 앨서는 러브의 한 쪽 눈과 눈을 맞췄다. 러브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저 웃는 얼굴을 보곤 앨서는,

- 뭘 보나?

  묻는다.

- 앨서씨 얼굴이요.

  답하는 러브는 마냥 기분이 좋아보인다. 앨서는 곤란한 표정으로 커피만 홀짝거렸다. 날은 서늘하고 시선은 집요할 정도로 다정했다. 러브는 앨서를 지켜보며 지난 시간의 현실성을 가늠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것이 꿈일까.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하는 꿈이 아닐까.

  꿈이라는 것은 반 쯤 확신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제 앞에 앉아있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자신은 이미 한 번 죽은 몸. 앨서 또한 그러했다. 바깥의 풍경은 눈 감고도 그려낼만큼 익숙한 것이었다. 수십번 보았던 바로 그 풍경. 러브는 이것이 꿈임을 알면서도 되도록 깨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눈을 떴을때 그곳이 헤임리히일 것이라는 추측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는 앨서의 표정이 평안해 오히려 러브의 가슴 한 켠은 불편하기만 한다. 당신의 끝은 어땠을까. 끝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라고. 당신의 마지막을 보지 못해 당신이 살아 꿈에 나오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앨서의 뒤로 보이는 창 밖을 바라본다. 비는 그치지 않을 것처럼 내렸다. 앨서는 어느 순간 말을 멈췄다. 꿈은 꿈으로. 자신 역시 어떤 현실이 기다리던 눈을 떠야하는 순간이 올테다. 그렇지만 역시 그의 끝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러브는 손을 뻗어 앨서의 눈을 감긴다.

  그러한 행동에도 앨서는 여전히, 입술을 일자로 다문채 미동도 없었다. 러브는 한 손으로 앨서의 눈을 가린채로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곧 만나러 갈게요. 말하며 러브 역시 하나 남은 눈을 감았다 뜬다. 그러자 그는 마치 없었던 사람인것처럼 흔적도 없다. 러브는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려 노력했지만 그의 빈자리는 아직도 버겁게 느껴졌다. 슬픔은 오래 전의 일이며 이제는 무뎌졌다고, 자신은 잃은 것에 그리 미련을 두는 편이 아니라고.

  누구를 향한 해명인지도 모를 것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익숙한 집안 풍경을 보다 앨서가 있었던 자리에 앉아눈을 감는다. 곧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곧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러브는 눈을 뜬다. 현실이었다. 혹은 그보다 지독한 악몽이거나. 어쨌든 당신이 없음은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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