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남수]One's youth

W. 와니


05






 지지대가 누렇게 변하고 불쾌한 냄새가 날 때 쯤 깁스를 풀었다. 아직 서늘한 봄인데도 이런데 한여름에 다쳤으면 어땠을지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코롱을 엄청 뿌려댔다. 씻고나서, 집에 와서, 또 학교 가기 전에. 학교에 가서는 안녕.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남수를 검지로 톡톡 건들어 몰래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했다. 맨 뒷자리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남수는 흘긋 칠판을 눈치보고는 시선을 내려 교차되어 있는 선 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혼자 닌텐도를 가지고 노는 것보다 둘이 하는 오목이 더 재밌었다.

 아직 남아있는 붓기에 아버지가 가끔씩 들리시던 한의원에 갔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비어있는 침대에 누웠고 가방 팔걸이만 두 손으로 꼬옥 쥔 채 서성거리고 있는 남수에 내 옆을 가리켰다. 너도 여기 누워. 나는 아픈 데가 없는데.. 남수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냥 한 숨 자면 되지. 누운 채로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천천히 바닥에 책가방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곧 선생님이 들어와 손목에 젤을 짜내고 물리치료할 때 보았던 기구로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디가 아프니? 앉아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나를 따라 누워있던 남수에게 물었다. 저는 강세 따라온 거예요. 그럼 찜질팩만 해줄게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치료를 마친 후 남수 배 위에 팩을 올려놓았다. 이어 전기 치료를 다한 후 의사 선생님이 와 침을 놓고 남수에게 이왕 온 거 피로회복에 좋다며 등에 맞아볼 거냐 장난스레 물으셨다. 어차피 내가 낼 거니까 온김에 해봐 나도 웃으며 거들었다. 남수는 단번에 괜찮다며 답했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눈을 깜빡이며 내 손목을 내려보았다. 아파? 조금 따끔해. 남수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고 여기 따뜻하다..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졸리면 자. 너는? 나는 이거 신경 쓰여서. 나도 찜질할 땐 잘 거야. 손목을 눈짓하며 말하자 남수가 또 주억거리고는 몸을 꾸물거렸다. 잘 자. 잘 자. 남수의 조금 잠긴 목에 답했고 남수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했다. 흐트러진 앞머리에 살며시 드러내고 있는 속눈썹이 찹 길고 촘촘했다. 손목은 그 날 한 번에 다 나았다.

 자리를 바꾼지 한달이 다 되어가자 언제 바꾸냐 묻는 아이들에 선생님이 중간에 바꾸면 어중간해지니 4월 말에 다시 뽑는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몸을 기울여 속삭이자 내게 빙긋 웃음을 지었다.


 -


 "야, 나강세. 오늘도 같이 안 가?"

 "응."
 "뭔데. 우리 좀 서운하다."

 "나는 아니야."

 "오늘은 일이 있어. 다음주엔 같이 갈게."

 아나, 이게. 두 손으로 액정을 톡톡 두들기고 있는 원태를 흘기는 건승이에게 미안하다 말했다. …같이 가면 안 돼? 건승이가 내 뒤를 힐긋하며 물었다. 내내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원태가 그 말에 눈을 굴려 건승이와 제 앞을 슬쩍 봤다. 음.. 안 될 것 같은데. 머쓱하게 미소지었다. …알았어. 건승이도 진심은 아니었던지 바로 뒤로 물러났다. 아쉬운지 표정은 못내 떨떠름했다. 월요일엔 꼭 같이 갈게. 눈웃음을 지으며 상체를 기울여 어깨로 툭 몸을 부딪혔다. …알았어. 다음 주에 봐. 야, 가자. 인사하고 몸을 뒤로 돌려는 건승이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삐친 거 아니지? 입술이 삐죽 나와있던 건승이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나를 눈초리로 흘기더니 아니거든? 목소리에 정색을 담아 말했다. 아니면 말고. 다시 뒤로 고개를 빼자 차남수랑 잘 놀기나 해. 속사포로 이야기 하며 척척 다리를 뻗었다. 큭큭 웃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가자, 남수야. 가방 팔걸이만 꼬옥 잡고 서있던 남수가 조심히 보폭을 넓혔다. …괜찮아? 방금 상황이 마음에 걸렸는지 묻는 남수에 응, 신경 안 써도 돼.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남수 생일이었다.

 "…진짜 이거면 돼?"

 앞에 차려진 분식을 훑어보며 물었다. 떡볶이, 튀김, 김밥. 저번주에 먹은 것과 똑같은 차림. 남수는 응.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젓가락을 들었고 나는 그 맞은편에서 턱을 긁었다. 내가 사는 거긴 하지만.. 생일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다시 한 번 다른 거 먹고 싶진 않냐고 물었지만 남수는 반절로 잘린 떡 조각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오물거릴 뿐이었다. 잠시 바라보다 나도 떡 한 개를 집어올렸다.

 노래방 갈래? 부른 배에 의자에 등을 기대고 무얼 할지 고민하다 나온 말이었다. 남수가 안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여태껏 매일 실내에서 놀았으니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수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그런 남수에 말을 덧붙였다. 별로면.. 근처에 게임방 있는데, 거기도 괜찮아. 남수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차분히 눈만 한 번 깜빡이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노래가 없어서.. 남수 말에 아.. 입을 벌렸다. 생각해보니 친구들과 갔을 때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시간 없다며 인기 순위에서 아무거나 눌러 시작했었다. 대충 틀어도 아는 노래였고 모르면 가만히 있다가 후렴구에서 다시 질러댔다. 뭐하냐고 서로 비웃고 야유하는 장난에 웃으며 마이크를 쥐었다. …남수랑은 어떡해야 하는 거지..? 잠깐 머리를 굴렸다가 입을 뗐다. 코노 갈래?

 곡 수 대로 지불하는 거니까 부담이 덜할 거야. 시간도 그만큼 자유롭게 조정이 되고. 모르면 가만히 있어도 돼. 난 너랑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서 그래. 차분히 말을 잇자 남수가 조용히 눈만 이리 굴렸다 나를 봤다, 그러다 다시 저리 굴렸다. 그러다 곧 살짝 턱을 내렸다가 올렸다. 응. 나도 너랑 하는 건 다 좋아. 그렇게 말을 끝내는가 싶더니 손끝을 마주 비비더니 다시 입을 조그맣게 열었다. …근데 나.. 정말 가만히만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너털하게 웃었다. 괜찮아. 

 "이건 내가 낼게."

 두 명이 딱 여유롭게 앉을 수 있는 의자. 기기와 한 걸음 정도의 거리. 적당한 공간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좌석 위에 털썩 가방을 내려놓았다. 남수는 몇 곡을 부를 거냐 물으면서 주머니에서 세로로 두 번 접혀있는 지폐를 꺼내 잘 투입되게 테이블에 다리미처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폈다. 음.. 2000원만 넣을까? 마이크를 쥐고 아, 아-. 테스트를 하다 답했다. 기껏 왔는데 달랑 3곡은 아쉬울 것 같고 그렇다고 6곡을 넘어가면 부를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뭘 불렀더라.

 생각보다 분위기는 좋았다. 솔직히 나 혼자 6곡을 줄창 부를 각오를 했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긴장한 듯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가만히 화면만 바라보다 두 번째 노래부터는 아는 부분은 더듬더듬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애들이 TV를 틀어놓은 덕분이었다. 남수가 아이돌 노래라니.. 나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자 몸을 살짝 옆으로 빼며 뭐, 뭐해. 빨리 불러.. 화면을 가리켰다. 아, 미안. 웃어보이곤 다시 가사로 고개를 돌렸고 화면엔 붉은색 조명이 지나갔던 남수 얼굴이 둥 떠있었다.

 네 번째 곡은 스탠딩 에그의 'Little star'였다. 남자친구가 불러줬다며 둘째 누나가 흥얼거리던. 밴드로 앞머리를 깐 채로 소파에 늘어져 마스크 팩을 하면서. 왜 저래.. 하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도 계속 멜로디가 너울거려서 물어봤었다. 그 동안 한 번도 불러본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남수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조금씩 가로로 까닥이고 양발을 굴렀다. 노래가 끝이나자 아까까진 고조돼있던 게 푹 꺼진 느낌이라 어쩐지 어색함이 몸을 휩싸는데 남수가 눈을 반짝이며 조용하게 박수를 쳤다. 와,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그 칭찬에 그저 하하.. 웃으며 너도 잘 불러. 말하고 재빨리 다음 곡을 고르려 리모콘 들었다. 익숙했는데 오늘따라 서먹했다. 아니, 진짜야. 목소리도 좋았어. 진지해 보이는 얼굴도 좋았고. 진심을 보여주려는 듯 똘망똘망하게 뜬 눈이 나의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느라 들고있던 리모콘을 허벅지 위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나도 진짜야. 너도 목소리 좋았어. 부드럽고 청아하고. 듣기 좋았어. 그 말에 남수가 멍하니 있다가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 피하고는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고 화면을 보며 앉았다. 1분 안에 선택하래.

 오락실 건물 2층에 있던 노래방이었던지라 다시 나가려면 게임기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보이는 사진기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 게임 할래? 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은 역시 총게임이었다. 사방에서 나오는 좀비들에 익숙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남수도 처음에는 작동법도 어수룩해 하더니 곧잘 따라왔다. 다음엔 레이싱 게임을 했고 이리저리 다 쳐대며 결승선에 들어왔다. 이어 농구공도 던져보고 인형도 뽑아보면서 한 바퀴 기웃거리며 둘러보았다. 승패에 상관없이 즐거웠다. 그러다 즐길만큼 즐긴 것 같아 걸음을 뗐고 아까 그 사진기 앞에 섰다.

 "우리 사진 하나 찍을래?"

 남수는 포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표정까지 뻣뻣해져선 분홍색 토끼인형만 품 안에 꼬옥 안고 있었다. 얼굴이 묘하게 가려진 덕분에 첫 컷은 그게 포즈처럼 보이긴 했는데 나머지 세 컷까지 그렇게 둘 순 없어서 입을 가로로 죽 찢으며 웃어보였다. 이렇게. 이렇게 웃어봐. 남수의 눈썹이 일그러졌다가 어색하게 따라하는데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육안에 보일 정도였다. 아, 그렇게 말고. 이상하잖아. 나도 모르게 푸하-! 하고 웃음이 터지는데 그 때 하필 찰칵 소리가 났다. 아, 이건 버렸다. 이번엔 제대로 하자. 끅끅대다가 몸을 돌려서 남수의 불그스레해진 양볼을 잡아 엄지로 입꼬리를 밀어올렸다. 삐죽 나와있던 입술이 보기 좋게 호선을 그렸다. 응. 지금 좋다. 이렇게. 표정을 잡아주고 이제 손을 놓으려는데 그대로 또 찍혔다. 서둘러 몸을 앞으로 돌렸지만 마지막 컷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얼굴 옆에 v자를 하고 있는 나와 인형에 코를 묻고 있는 남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숙이고 있는 나와 어정쩡하게 굳어있는 남수, 얼굴을 잡고 몸을 가까이 하고있는 우리 둘. 결국 제대로 나온 건 마지막에 찍은 입 앞에 손가락으로 만든 하트를 대고 있는 나와 미소를 지으며 귀를 접어 하트 모양을 만든 토끼 인형을 들고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남수 사진 뿐이었다.

 나와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평소 집에서 보내던 때보다 더 오래있었다. 너.. 가야 하지? 그래도 왠지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운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남수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우리 좀 더 있자. 반색하는 목소리에 남수는 대수롭지 않게 끄덕이고 뭐할 건데? 하며 물었다. 나도 별 생각 없이 잡았던 거라 그 질문에 순간 주춤했다. …일단 걸어보자.

 라고 말했지만 딱히 우리가 할 만한 건 없어보였다. 영화를 보기에는 끝나면 너무 늦을 것 같았고, 배도 아직 고프지는 않았다. 거리는 줄비한 술집들로 낮만큼 밝아지고 있었다. 하릴없이 길만 터벅터벅 배회하다 느껴지기 시작하는 서늘한 기운에 결국 발을 멈췄다. 너, 우리 집 반대쪽이지? 가자.

 그렇게 남수를 배웅하러 도로쪽으로 향했다. 말없이 멍하니 앞만 보며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인도에 도착했고 택시를 잡으려 길가에 섰다. 퇴근길 붐비는 차들 사이에서 빨간색 글씨를 띄우고 있는 한 대를 찾고 있는데 문득 생각난 무언가에 고개를 들었다.

 "남수야, 잠깐만."

 목을 기울이는 남수에게 잠시만 기다려. 급하게 다시 한 번 말하고 나왔던 건물들 틈새로 다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맛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베이커리에 들어가 케이크 코너를 살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빈 칸이 많았지만 다행히 몇 개는 남아있었다. 빠르게 하지만 신중하게 훑어보았다. 딸기? 초콜렛? 티라미수? 남수가 뭘 좋아하는지, 그 동안의 기억을 되짚다 초콜렛을 좋아했던 것 같아 토치로 겉에 있는 생크림을 구운 초코 쉬폰 케이크를 골랐다. 초 큰 사이즈 한 개와 작은 사이즈 세 개까지 다 받아오고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다시 돌아갔다. 방금까지 서늘했던 것 같은데 등에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게 뭐야?"

 "선물."

 말하며 숨을 후- 내쉬었다. 어리벙벙하게 껌뻑이고 있는 큰 눈에 말을 이었다. 생일인데 케이크는 먹어야지. …아. 가족이랑 먹으려나? 말하는 도중에 떠오른 생각에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남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입만 조그맣게 벌리고 있었다. …아, 몰라. 이미 산 거 그냥 먹어. 돌아가기도 힘들어. 집에도 가야 하고. 남수가 인형만 안아든 채로 가만히 굳어있으니 팔을 까닥였다. 남수는 얼떨떨하게 손을 뻗어 케이크 상자가 담긴 봉투를 받아갔고 한참을 어물거리다 …고마워. 주변 소음에 묻힐만큼 작게 읊조렸다. 뭘. 맛있게 먹어. 털털하게 답하고는 보이는 신호등에 걸려있는 택시에 손을 흔들었다. 곧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택시가 달려와 섰다. 손이 가득 찬 남수에 대신 문을 열어주고 또 한 번 ...고마워. 말하는 남수에 웃어보였다. 그러다 안녕.. 월요일에 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택시에 오르는 남수를 잡았다. 남수가 잡힌 손목을 내려봤다가 내 얼굴을 올려보았다.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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