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님의 CoC 시나리오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을>의 전편과 본편을 포함한 시나리오 플레이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시나리오 진상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아직 시나리오를 플레이하지 않으셨다면 열람을 지양해주세요!

※약간의 날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 글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본인(PC)과 엔님(KP)의 자작캐릭터입니다. 본인캐릭터 시점입니다!


정이당 갓시날이니 모두 플레이해주세요!!








나, 이들의 이름을 바치오니 ㅡ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무슨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름을 제단 위에 올리는 그 순간, 간절히 바라던 소원같은건 사라져버렸다.



아, 내가 무엇이었던가. 내 앞의 존재는 누구였던가?



뒤에서 신음하며 나를 향해 힘겹게 손을 뻗는 형을 보았다. 

내 소원, 그저 형과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것... 그것 뿐이었는데. 

형의 떨리는 손을 잡아 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존재를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보잘것 없는 존재로 여겼고, 대면에 대한 대가로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가득 채워 그 안에 밀어넣었다. 

순전히 그들의 유흥을 위해서였다. 알고있었다.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우리들은 악과 정의의 배역을 받았고, 연기해내지 못하는 쪽에게 잔혹한 형벌을 가해야했다. 

형을 살리고자 했던 소원은, 죄책감과 의무로 범벅이 되어 죽고 죽이기를 반복하는 인형극이 되어버렸다. 


내가 바랬던 것은, 이게 아닌데.









용사라니? 마왕이라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용사가 아니었으며, 마왕같은건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마왕성이라고 가리키는 저 성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멀리서 저 성을 바라볼 때면, 형도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독하기 그지없는 저 성에서, 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걸까. 

기억을 더듬어 '신'의 존재의 말을 떠올려내곤, 형이 사람들이 부르는 "마왕"일거라고 결론내렸다. 

우리 착한 형이 마왕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오해라고, 이 모든건 거짓이라고, 우릴 내버려 달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일부는 내가 세계를 구원할 구원자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일부는 그런건 아무렴 상관없으니 내가 해야할 일을 하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끝에 용사님을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가 모두 우리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즈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용사는 마왕을 죽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럼 내 역할은....


형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는 것.



마음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억울함에 흘리는 눈물이 의미없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곳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이 세계는 오로지 나와 형, 둘 중에 누가 죽는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계속해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기에... 남의 불행같은 것은 순간의 동정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인간의 동정이란, 너무나 짧아서 슬픔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이 남의 슬픔이기에 그 깊이를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죽도록 괴로웠지만, 나 역시 인간이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했던 형제가 갑자기 세계의 존망을 짊어지다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성에서 지내는 기간동안 나는 꾸준히 한가지 말만 들었고-



설마 용사님.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실 생각은 아니죠?



...그 말은 나의 생각을 뒤흔들었다. 

용사니까. 

내가 용사이기 때문에. 

해야만 한다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형이 악이기 때문에, 그것을 처단하는 것은 선인 나의 역할이라는 말은 참으로 거슬리면서도 납득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말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형제의 우애와 희생의 숭고함, 그리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칭송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처음엔 상황 인지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이 사람들이 왜 나에게 부담을 지우는지 알 수 없었다.

점차 정황을 깨닫기 시작하자 남아있던 일말의 이해심도 사라졌다. 

나에게 말도 안되는 의무를 지우면서 당연히 할 것이라 믿는 것.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동전 몇 푼으로 바꿔 생계를 잇는 사람들. 앞에선 따뜻한 미소와 격려를 보내지만 뒤에선 세계의 존망을 결정지을 숭고한 의식에 대한 호기심과 동정섞인 말들이 오가는 매일.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될 것 같다가도 우리 형제의 최후를 생각하면 이해하고싶지 않았다.






마왕성을 멀리 응시할때면 줄곧 생각했다.

 나는 형을 죽일 수 있을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젓곤 했었지만, 사실 언젠가는 내려야 할 결론이었다. 

하지만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형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아서.

끝을 보기전에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절대로 그래선 안돼. 난 할 수 없어.


홀로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눈물을 감추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형이 나를 죽이고자 한다면, 최대한 웃는 모습으로. 

형이 나를 보고 상처받지 않게. 

슬퍼하지 않게.






....누군가가 죽어야한다면, 나를 제물로 바치자.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이야. ...그렇지, 형?"


닿지 않을 말을 중얼거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죄책감을 떠맡기 싫어서, 피해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나였다. 죄책감이 두려워서, 형을 다시 못보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모든것을 내던지고 도망가려고 마음먹은 비겁자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늘어가는 상념에 편두통은 가실 줄을 몰랐다. 차라리 바로 내일이라도 결판을 내야한다면, 속이 시원하기라도 할텐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길어서 끝없는 생각과 상상이 겹쳐져 고문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다. 


머릿속에서 몇번이고 형에게 죽고, 형을 죽였다. 어느쪽도 정답이 아니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답이 없어도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죄책감에 질식해 죽는다고 하더라도, 비겁함에 눌려 죽는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마왕성에 가게 된다면, 형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할까. 거울을 보며 몇번이고 연습해봤지만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할 수 없었다. 

현실을 깨달을 때마다 늘어가는 비참함은 나의 언어와 표정마저 앗아가버렸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로지 눈물 뿐이었다. 이쯤되면 마를법도 한데, 그칠 줄을 모르는 눈물은 멈출 수 없는 내 고뇌를 이해해주는 듯 했다.








결전의 날이 오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등지고 길을 떠났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계적인 걸음으로 마왕성으로 향했다.



어때. 결정했어? 이 무대의 첫 결말말야.



누군가가 말을 건네는 듯 했다. 

건조한 눈빛으로 멀리 하늘을 응시하자, 짓궃게도 화창하기 그지없는 파란 하늘이 눈에 담겼다. 

한걸음 내딛기도 힘겨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의무감에 절어있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저 형이 지독히도 보고싶었다.

설령 내가 형을 죽이게 되더라도, 혈육의 온기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만남과 그 이후의 일같은건 아무렴 상관 없었다. 먼 훗날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형이 필요했다.






그렇게 형을 처음 대면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처음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몇번이나 각오하고, 생각했던 일이었지만... 거울 앞의 내가 그러했듯이,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했을 것이다. 


미안해, 형.  


차마 내뱉지 못한 한마디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조용히 눈물을 떨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모든 것이 침잠하는 것을 느꼈다.







또다시, 반복되어....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진 채, 눈을 떴다.




.



.



.



그것은 끔찍한 윤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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