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갑자기 나 작년 3월 22일에는 뭘 했을까? 궁금해서 봤는데

아무것도 안했더라구요(당연함)

그래서 22년에 뭐했나 봤더니 이글을 올렸어용

그래서 이 글을 재업합니당 ㅎ 2번이에요 !! 💛





일단 2번은 무조건 백현이가 먼저 짝사랑하는 걸로. 아주 어릴 때부터 옆집 사이라. 꼬꼬마 시절 같은 유치원 다녔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같았다. 여주는 맨날 입버릇으로 아 변백현 졸라 지겨워~ 하지만 사실 제일 편하고 친구로서 좋은 사람은 백현이었으면 좋겠다.

백현이도 여주 좋아함. 근데 그 마음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한 건 정확히 고등학교 때. 얘가 난데없이 3학년 선배랑 사귀게 됐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데. 백현은 그때 질투란 감정을 느끼면서 아, 내가 얘 좋아하구나 깨달았음.

몇 년간 우정으로 지냈으니까 헷갈려 부정할 법도 한데. 백현은 한번 여주가 좋아지니까 곧바로 인정하고 받아드렸다. 그래도 몇 년간 다진 우정은 깨고 싶지 않아서 제 마음을 함구하겠지. 그동안 여주는 대학 가서도 새로운 남자친구 사귀고 그러는데 백현인 아무도 안 만났으면 좋겠다.


“어, 변백현이다.”

“쟤 또 여주 데리러 왔나 보네. 야 변백현!”


남자친구가 있어도 술 취하면 데리러 오는 사람 변백현. 여주 가방 챙기고, 부축하고, 애들 몫까지 결제하고 나오는 사람 변백현. 속 안 좋으면 애 앉혀두고 숙취해소제 사다 주고. 혼자 절대 택시 안 태우고 같이 여주 집까지 데려다주는 사람도 몽땅 변백현.

그래서 여주 남친들은 하나같이 백현이 경계했으면 좋겠다.


“여주는.”

“야 근데 어떡하냐. 오늘은 경호 오빠가 여주 데리고 갔어~”

“....아.”

“여주가 너한테 말 안 했어?”


오늘도 여주 술 마신다길래 백현은 바로 저녁 일정 비우고 여주 기다렸다. 그런데 여주가,


[오늘은 안ㅇ왇도 돼!]


라고 오타 작렬해서 메시지 보냈는데. 이거 보고 짝사랑하는 주제 대체 누가 데리러 안 오겠어. 그런 새끼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분명 머저리 새끼일 테니까.

그래서 한걸음에 왔는데 여주는 이미 없대. 심지어 사귄 지 얼마 안 된 그 남자친구가 데리러 와서 같이 나갔대. 백현은 표정 관리할 여유도 없이 얼굴이 바싹 굳는다. 핸드폰을 꺼내 여주에게 전화를 걸려다 말고. 다시 도로 집어넣어. 저가 무슨 주제로 이러나 싶은 거야. 아무리 친구라도. 남자친구랑 있는 게 여주한텐 더 좋겠지.

변백현 원래 술 절대 안 먹는데 여주 때문에 밤에 혼자 몇 잔씩 하면 좋겠다. 주변에서 담배 권유받긴 했는데. 그건 절대 입에도 안 대. 여주가 담배 냄새 경멸하는 거 잘 아니까. 좋은 냄새라도 풍겨야 제 곁에 있을 거 같아서.


“변백현. 그렇게 계속 등신같이 굴 거면 그냥 고백을 해.”

“됐어.”

“야. 차라리 시원하게 까이면 더 마음 정리하기 쉽다니까? 김여주도 네가 혼자 이렇게 청승 떨고 있는 거 나중에 알면 얼마나 더 미안해하겠냐.”

“김여주는 그게 안 돼.”

“뭘.”

“걘 자기한테 고백한 애랑은 다신 안 봐.”

“......”

“헛된 여지 주기 싫다고. 더럽게 깔끔하지 않냐.”

“......”

“그래서 안 돼. 내가. 김여주 못 보고 사는 건 안 되니까.”


사실 변백현이 김여주 좋아하는 거. 여주 빼고 주변인들은 다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모를 수가 없는 게, 아무리 소꿉친구라도 저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곁에서 챙겨주는 사람은 드물잖아.

김여주 춥다고 하면 곧장 제 외투 벗어서 애 입혀주고. 팔소매 길게 늘어뜨리고 있으면 손수 접어줘. 지퍼도 목 끝까지 올려주고, 여주가 조금만 빠르게 달리면 넘어진다며 걱정해. 이게 어딜 봐서 친구 사이야.

근데 여주는 하도 어릴 때부터 변백현이 자기한테 이러는 걸 알아서. 그냥 이 모든 게 얘 성격이구나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장 가까운 데서 사랑을 쏟아내고 있는데 정작 가까운 애만 모르고 있는 상황. 백현은 제대로 된 여자친구 한번 사귄 적도 없으니, 여주가 놈의 옆에 누군가 생긴다는 그런 전제 상황도 생각해본 적 없어서 더더욱 와닿지 못한다.


“여주.”


하지만 여주한테도 헷갈렸던 순간은 있었지.


“응?”

“오늘 일찍 들어가게?”

“아 응. 나 어제까지 계속 밤샘했거든. 알지? 나 이번에 과제 완전 폭탄 맞은 거. 사실 미룬 내 잘못도 있긴 한데 그거 마무리를 아직 못해서 집에 얼른 들어가서 하려구. 그리고 체력도 완전 바닥이야.”

“....아. 근데.”

“응.”

“오늘 내 생일인데.”

“잘 알거든요. 그래서 내가 오늘 피곤해 죽겠는데 네 생일 챙겨준다고 아침부터 케이크 픽업해서 왔잖아. 왜. 더 놀고 싶어?”


놈이 답지 않게 안달 내며 아쉬워할 때.


“아 됐어.”

“뭐야 싱겁게. 그럼 나 간다? 야야 그리고 너 좋은 말로 할 때 선물 받고 싶은 거 말해라! 나 알바 월급 받아서 돈 빵빵하게 있다고!”


그리고.


“야 넌.”

“응?”

“....그게 되냐.”


고개 떨구고. 한숨을 푹 꺼트리며 하는 말이.


“막 쉽게 가네.”

“......”

“....네 남자친구는 매일이 아쉽겠다.”


친구란 제 처지를 비관하며 뱉어냈으니까.


“뭐야 변백. 난 남자친구보다 너라니까? 나한테 너만큼 소중한 사람 없어.”

“......”

“왜에. 알겠다. 우리 영화라도 보러 갈까? 너 저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 어제 개봉하지 않았어? 기다려봐. 내가 예매할게.”


그래서. 얘가 날 좋아하나? 의심이 들면. 여주는 저도 모르게 마구 뛰는 심장을 애써 무시해야만 했다.


“안 봐도 돼.”


설레서. 기뻐서. 그런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두텁게 쌓아놓은 관계가 부서질까 봐. 그런데 여주의 불안감을 아는 듯이 놈은 항상 선수를 쳐서 선을 긋는다.


“응? 왜?”

“그거 어제 너 봤다며.”

“....아 맞다.”

“영화 재밌었냐. 내 생각 안 나디.”


놈이 머릴 털며 가볍게 웃는다. 함께 보기로 한 영화를 남자친구랑 먼저 본 여주를 보며. 낯을 해석할 수가 없어 여주는 백현을 따라 웃을 뿐이다.


“미안. 나 근데 너무 졸려서 영화 내용 기억도 안 나. 다시 볼 수 있, 어어, 뭐해?”

“집이나 가.”

“아 왜! 나 볼 수 있다니까!”

“너 지금 추워. 손 자꾸 떨면서 생떼 쓰지 마. 나한테 안길 거 아니면 얌전히 집에 들어가서 쉬어라.”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린다. 백현이 여주의 어깨를 감싸 안고 걸음을 뗐다. 내가 추워했었나? 손끝이 시리긴 했지만. 겉으로 티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변백현은 다 안다는 듯이 군다. 여주는 속절없이 잡힌 손아귀에 끌려간다.

사실은. 어쩌면. 헷갈렸던 게 아니라. 여주는 백현의 마음을 알면서도 관계가 망쳐질까 외면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편 여주야말로 근래 복잡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쩍 놈만 보면 자꾸만 이상한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어서. 사실 여주는 그동안 만난 남자친구들을 모두 변백현과 비교하곤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보면. 백현보다 나은 게 한 구석도 없던 남자들인데 왜 연애를 하겠다고 질질 끌었나, 황당한 생각도 들곤 했다.


“나 아메리카노.”


지금 남자친구도 그랬다. 오늘 만나는 내내 핸드폰 게임만 하던 남자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지가 처먹을 메뉴만 딱 말한 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주는 한마디 하려다 질려서 관뒀다. 카운터 앞에 서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괜히 더 놈의 생각이 난다.

백현은. 여주와 만나면 핸드폰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누가 아는 척을 해 와도 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카페에 들어서면 여주 먼저 앉히고 저가 나서서 주문하고 온다. 여주에게 굳이 메뉴를 묻지 않아도 즐겨 마시는 걸 알아서 시키는데. 정작 사랑을 나눈다는 남자친구들은 여주의 취향이든 여주가 바라는 다정을 베풀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무니 여주는 점점 이 연애에 현타가 오고 있었다. 차라리 이런 질질 끌려다니는 연애 말고. 어릴 때처럼 놈과 붙어 다니며 마음 편히 지내고 싶어서.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여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남자친구의 앞에 놔줬다. 우리 그냥 헤어지자. 그게 마지막 이별 선물이었다.


“눈 부었네.”

“......”

“여주. 왜 울었어.”


그래도 이별이라고. 지난밤 청승맞게 눈물이 났다. 몇 시간을 부여잡고 운 건 아니라서 분명 티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 했는데. 놈은 귀신같이 여주의 변화를 눈치챈다.

여주는 절레절레 고갤 젓는다. 안 그래도 놈 때문에 복잡한 마음이 여전한데 남자친구와 헤어졌단 소리까지 얹고 싶지 않아서. 안 울었다고 거짓말을 해봐도 영 못 믿는 얼굴이었다. 그러니 여주는 급하게 제 눈가를 벅벅 문지른다. 그러자 놈의 긴 팔이 뻗어와 여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지 마. 아프잖아.”

“......”

“기다려. 얼음 컵 받아올게.”


유난스럽게도 챙긴다. 백현은 어릴 때부터 여주가 우는 꼴을 못 봤다. 놈은 받아 온 얼음 컵을 무작정 들이밀지 않는다. 제 손바닥에 찬기를 묻히고 여주의 눈가를 지그시 눌러준다. 그 손길에 여주는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아마 오랜 소꿉친구 사이가 아니었다면. 대학에서 만난 흔한 동기 사이였다면. 난 변백현을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란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웬 술.”

“아 그냥 오늘 너무 땡겨서. 왜 넌 먹기 싫어?”

“난 상관없긴 한데. 근데 너 남자친구한테 나랑 마신다고 말했냐.”

“....아 그걸 뭐 하러 말해.”

“......”

“어차피 신경 안 써. 그럼 우리 자주 가던 곳으로 가자.”


여주의 말에 백현은 씁쓸하게 입술을 축인다. 신경 안 쓴다는 말이. 여주에겐 변백현이란 존재가 친구 그 이상으론 절대 넘어가지 못한다고 쐐기를 박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여주가 함께 가자는 술집을 거절 못해 동행한다. 딱히 다른 놈이랑 보내는 것도 석연찮고. 또 남자친구랑 마시라고 보내긴 속이 뒤틀려서.

결국 만취 직전까지 간다. 변백현은 얼마나 마셨지. 그런 걸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주는 제정신을 다잡지 못하고 있었다.


“속 안 좋아?”

“으응.... 아 나 너무 어지러워. 조금만 앉아 있다 가자.”

“그래.”


여주를 부축하며 걷던 백현은. 현 위치 근처에 있을 벤치를 기억해낸다. 일단 취했으니까. 애 앉혀두는 게 먼저니까. 여주 허리에 손 둘러서 들어 안고. 발은 땅에 닿지 않게 움직여 벤치에 앉혀둔다.

수요일 밤이라 그런지 공원에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백현은 여주와 조금 떨어져 앉았다. 둘 다 망연히 까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입안에선 술 냄새가 폴폴 풍기는 것 같은데, 코끝엔 놈의 향수 냄새가 배어있다.


“김여주.”

“우응.”

“내가 데려다준다고 하면 남자친구가 안 싫어해?”

“......”

“아. 안 말했으려나.”

“......”

“난 존나 싫었을 것 같은데.”


몸에 힘이 풀려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놈은 여전히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여주의 남자친구를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 어느 남자가 남사친이랑 같이 술 먹고 집에 같이 들어간다고 하면 좋아하겠어. 그건 남자친구한테나, 남사친한테나 딱히 유쾌한 일은 못 됐다.

놈은 비교적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지막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후. 고갤 돌려 놈을 쳐다보니 어느새 두 눈을 꼭 감고 고갤 뒤로 젖힌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여주는 천천히 백현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눈매. 어우러진 속 쌍꺼풀. 조금 세모난 입매. 깔끔한 턱선까지. 어느 하나 모난 곳이 없다.


“변백현. 자?”

“......”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데 놈은 미동도 없다. 혹시나 던진 부름에도 답이 없었다. 욱신거리던 부분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감정이 홧홧했다.

여주는 몸을 움직여 놈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바짝 붙는다. 크게 망설이진 않았다. 들키면 술기운에 했다고,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고갤 움직이자 여주의 입술과 백현의 입술이 살짝 맞닿고 떨어진다.

그 찰나에.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던 백현의 놈의 두 눈이 천천히 떠졌다. 복잡한 두 시선이 얽힌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여주는 충동적으로 다시 말캉한 입술을 머금었다.


“야.”


입술이 맞닿은 채로 여주를 부른다.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면. 백현은 고갤 꺾어 제 혀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주도권을 쉽게 빼앗아 버린다. 여주에게 먼저 잡아 먹힌 입술은 종적을 감추고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눅진히 섞이는 입술이 한참 동안 여주의 숨결을 탐하고 있었다. 버거운 숨에 입술을 떼려 하면, 제 더운 숨결을 불어 넣는다.


“여주야.”


백현의 커다란 손아귀가 여주의 양 볼을 감싸왔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 한 손에 잡히는 작은 얼굴. 눈가가 붉은 여주의 낯은 백현을 시선만으로도 흥분케 만들었다.


“내가 네 남자친구였으면,”

“......”

“너 이대로 집 안 보내.”


연필로 그어진 선을 가볍게 지워낸다. 이번 일을 결코 실수라 치부하고 싶지 않아서.



“헤어져라, 너.”


끝끝내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새해 복 많루루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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