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아침이었다. 살랑이는 바람에 케인은 잠결에 덥고 있던 이불을 재차 여몄다. 제 얼굴으로 나붓이 내려앉는 감각이 거슬려 인상을 찡그렸다.


"케인- 일어나봐요."

"... 으응... 조금만 있다가..."


웅얼거리며 이불을 더 끌어올렸다. 옅은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으나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혼몽한 정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 가라앉았다. 안그래도 많은 일이 있었던데다 늦은 밤까지 누구에게 시달려서 몸이 늘어지는 건 당연했다. 웃음소리의 주인공이자 밤새 케인을 괴롭혔던 장본인은 해사한 미소를 띄운 채로 재차 케인을 깨웠다. 계속해서 옆에서 치근대는 설리반이 귀찮았던 케인은 아주 몸을 돌려버린채 이불을 둘둘 말았다. 설리반은 포기하지 않고 케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 안 일어날겁니까? 결혼반지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결혼반지라는 말에 케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휙하고 돌리니 멀끔한 설리반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결혼 반지? 내가 언제? 아니 그것보다 지금? 이 시간에?"


벌떡 일어난 케인에 설리반은 부시시하게 삐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했다.


"언제긴요. 밤에 반지 맞추러 가자고 했었는데 케인이 좋다고 했잖아요."

"그... 그때의 좋다라는 거랑 그 좋다는 좀 다른 거 아냐?"


케인은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달아올랐다. 그러고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는데 자는 사이 씻긴것인지 멀끔했다. 알 것 다안다해도 괜시리 부끄러워 이불을 둘둘말았다. 나가자고 할땐 언제고 이불을 둘둘 말고 있는 케인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덜컥 누워버리더니 설리반은 불쌍한 눈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싫어요? 정말?"

"아니, 좋은데..."


깨어난지 얼마 안 된 머리때문인지 케인은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괜찮으면 어서 준비하고 나가요."


언제그랬냐는 듯 불쌍한 표정은 싹지우고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는 설리반에 홀딱 넘어간 케인은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모를 설리반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온다고 침실을 나섰다. 설리반이 나간 침실 문을 멍하니 쳐다보던 케인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9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 세상에, 출근!"


퍼뜩 정신이 든 케인은 시트를 둘둘 말고선 허겁지겁 제 옷을 찾아 헤맸다. 언제 가지고 온 지 모르는,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된 제 옷들을 보며 놀래기도 잠시 서둘러 옷을 걸쳤다. 어젯밤 기함할 정도로 떼로 몰려든 기자들을 뚫어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강의가 있었고, 또 자초지종을 모를 교수님이 기다릴터였다. 케인은 어젯밤 일부러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 화면이 밝아지기 무섭게 문자 알림이며 부재중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가족들 부터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들까지 아주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케인은 새삼 자신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삼켰다. 그 때였다. 난데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전화의 주인공은 아서였다. 케인은 전화를 받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분명 어떻게 된거냐고 물을테고 걱정했다는 말을 늘어놓을 걸 알아서 괜히 아서에게 미안해졌다. 분명 가까운 사이라 기자들이 그녀에게도 몰려갔을테니 난처해 하고 있을터였다. 케인은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아서."

[케인!!!]


깜짝 놀랠만큼 큰 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아서에 잠시 전화기를 귀에서 떼었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서, 진정해-"

[뭐야? 너 괜찮아? 정말?! 너희 집이며 학교며 지금 난리야!]

"응, 알아. 미안, 너희 집도 난리지?"

[나는 괜찮아. 설리반씨 비서랬나? 그분이 연락와서 기자들도 쫓아내주고 경호인력도 붙여줬어. 너는?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지금 어딨어?]


쉴틈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서에 케인은 머쓱하니 웃었다.


"응, 나 괜찮아 정말. 지금 설리반 삼촌네 와있어. 학교는... 음 교수님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네."

[학교 오려고? 지금 기자들이 쫙 깔렸어!]


오면 난리 날 거라며 그냥 오지 말라는 아서의 말에 고민했다. 


"그래도 교수님한테 자초지종은 설명은 드려야 될 거 같은데..."

[설리반씨가 연락 하신 거 같던데.  교수님이 너 핸드폰 꺼져있어서 나한테 연락되면 나중에 전화만 좀 해달래.]

"에... 진짜?"


케인은 저도 모르는 새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알아서 처리해 놓은 상태였다. 어제 미련하다고 혼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응, 일단 좀 진정 될 때까진 쉬어. 강의는 너 없어도 다른 사람이 할 거니까 걱정말고.]

"내 수업듣는 학생들이 불편할까봐 그러지."

[쓸데없는 걱정은! 시험만 치면 이제 종강인데 걱정 마! 그보다 너 기사는 봤어? 아니다 보지 마! 아주 화가나서 어휴 정말!!]

"안 볼 수 있으면 안 봐야지."


양아치 같은 놈이라며 있는 대로 욕을 하는 아서에 케인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메이슨이라고 했던가. 거짓인 게 밝혀지면 연예계 활동은 물론 사회적으로 매장될 게 뻔했는데 왜 그랬을까. 어젠 너무 감성적으로 속부터 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이해가 안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서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설리반한테 얘기해 둘테니까."

[내 걱정은 마, 어제 비서님이 명함도 줬고 정말 경호 인력까지 빵빵하게 붙여줬어. 나 완전 공주님 된 거 같애!]


불같이 화를 낼 때는 언제고 신이 나 호들갑을 떠는 아서에 케인은 작게 웃었다. 침대에 걸터 앉아 아서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침실의 문이 열리는 줄도 몰랐다. 


"케인?"


트레이를 손에 든 설리반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 아서- 나 있다가 연락할게. 응 알았어."


통화를 종료하고 머쓱하게 웃었다. 


"아서가 걱정된다고 연락왔어. 경호인력 붙여줬다면서?"

"예, 아무래도 기자들이 피곤하게 굴테니까 당분간은 조심할 필요가 있어서요."

"응, 나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마워. 아서가 챙겨줘서 고맙대."

"아니에요. 저때문에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닐텐데 오히려 제가 아서씨한테 미안하죠."

"괜히 바람 넣어주진 마. 지금도 엄청 즐기고 있는데."


설리반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케인을 보았다. 


"공주님 된 거 같대. 그 상황인데 웃기지?"

"큭, 공, 공주님요? 큼, 아서씨는 역시 재밌는 분이시네요."


케인의 말에 설리반은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 했으나 쉽지 않았는지 입꼬리가 계속해서 씰룩대었다. 그 모습이 더 웃겨서 케인이 실실 웃었다. 


"흐흐, 그냥 웃어."

"큽, 아뇨- 어떻게 그래요."


겨우 웃음을 참고 설리반은 가지고 온 가벼운 식사를 케인에게 내밀었다. 

이것저것 소소하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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