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있을 거에요.

자신 있게 마이를 토닥였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닫힌 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자 닥칠 운명을 아는 여자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모연은 패닉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강모연.


저벅, 저벅.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이 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길 빌었다. 아직 준비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게로 오고 있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어. 그 사람은 또 얼마나 절망하겠어?

쩔그럭.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마이가 속삭였다.

"The moment the door opens, run. I will hold the guy for a moment. (문이 열리는 순간, 뛰어요. 내가 남자를 잡고 있을 게요.)"

끼이익.


"의사 선생? 아니 의사 선생이 왜 여기에..."

"세상에!"

문이 열리고 나타난 그는, 쏟아지는 햇빛을 후광처럼 입고 있었다.

"당신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영수증씨!"

모연은 뛰어가 박력있게 그의 마스크를 벗기고 입을 맞췄다.


"으읍...뭐야 이게! 의, 의사 선생,"

영수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입을 문질렀다.

"그런...내게 그런 마음이었어? 난 진짜 몰랐..."

"Please don't tell me he's the Big Boss you've been talking about. (제발 이 사람이 당신이 노래 부르던 빅보스는 아니라고 해줘요.)"

마이가 경멸스런 표정으로 영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Completely shatters my fantasy. (내 판타지를 아주 산산조각을 내네.)"

"No way! I told you Big Boss is sexy, handsome and attractive! (말이 돼요? 빅보스는 섹시하고 잘생기고 매력적이라고 말 했잖아요!)"

모연이 영수의 양 어깨를 잡고 말했다.

"영수증씨 잘 들어요."

"리차드거든! 리차드 진!"

"그래요, 영수증 진. 당신 보나마나 또 나쁜 짓 했죠. 아니 잠깐 세상에, 지금 우리 죽이러 온 거 아냐? 세에상에, 나 당신 그렇게까지 쓰레기로 보진 않았는데...!"

영수증이 똥씹은 표정을 했다.

"내가 당신 살린 건 알죠? 당신 같은 쓰레기도 치료하기로 선서한 의사라. 그러다 나도 병 걸릴 뻔했어, 기억 나죠? 기억력도 쓰레기는 아닐 거 아냐."

"아 거 참, 쓰레기 쓰레기, 듣는 쓰레기 기분 나쁘게...!"

이게 아닌데.

"듣는 영수증 기분 나쁘게!"

이것도 아닌데?

모연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 그러다 죽으면 벌 받아요.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데. 내가 그 업보를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를 줄게요."

안그래도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을 산채로 수장시킨다는 생각에, 물귀신이 들러붙지는 않을까 내심 찝찝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미 받은 의뢰였다. 검은 돈을 버는 바닥에서, 번복은 곧 죽음이었다.

"하...의사 선생,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진 않은데 말이지. 죽고 나서 일을 걱정하기엔 지금 당장이..."

"당신 당장 죽어요."

"뭐?"

영수증이 황당하다는 듯 모연을 쳐다봤다.

"설마하니 내가 당신 예뻐서 키스했겠어? 우린 아주아주 무시무시한 전염병에 걸렸어요. 당신 걸렸던 거보다 세배는 무서운거."

모연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얼마나 무서운 병이면 단체로 수장을 시키려고 했겠어요? 손끝만 스쳐도 전염인데 세상에 어쩌나 우린 입을 맞췄네?"

영수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데 어머나. 내가 마침 천재적인 의사야. 지금 전세계에서 치료법을 아는 사람이 딱 한명인데, 그게 바로 나에요."

"살려줘! 나 좀 살려...크윽...벌써 숨 쉬기가 어려워 지는 것 같아...! 어떻게 좀 해 봐, 의사 양반!"

영수증이 절박하게 애원했다. 그런 영수증을 잠깐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연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갈아꼈다.

"우린 이미 한 배를 탔어요, 영수증 씨. 자기가 탄 배를 가라앉히려는 건 아니죠? 서둘러요, 당신 목숨을 구하려면!"




영수증이 꽁무니가 빠지도록 달려간 뒤에 마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의사로서 선서해서, 잭한테 일부러 병 옮기지도 못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저 사람한텐 키스도 하네요?)"

"(입술만 닿았어요. 침도 안섞였어. 이런 걸로 어떻게 옮아. 의사로서 선서한거지, 거짓말 안하겠다고 선서한 건 아니거든요.)"

모연은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걸로 모자라는지 카악~퉤! 걸쭉하게 침까지 뱉은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아 이건 진짜 진담인데, 여태까지 겪은 일들 중 가장 끔찍했어.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만나면 유시진씨한테 소독해달라고 해야지.




-일단 어떻게 해서든지 유시진씨한테 이 쪽지를 전해요.

영수증은 마스크를 쓰고 후욱후욱 가쁜 숨을 내쉬며 뛰었다. 일분일초가 다르게 숨쉬기가 더 힘들어 지는 것 같았다.


"유시진...?"

"왜, 있잖아요! 우르크 태백부대 중대장 유대위님. 그 얼굴 하얗고 잘생기고 당신 같은 쓰레기도 국민이랍시고 보호하던 명예로운 남자."

"아, 그 눈빛 불손한 대위양반. 근데 그 양반을 내가 무슨 수로 찾아?"

"다리 멀쩡히 달렸고 안 갇혀있으면 그 정도는 좀 스스로 찾아요. 어딜 꽁으로 살려고 그래. 태국에 있어요, 그 사람. 한국군에 물어보던가."

모연은 영수증의 주머니에서 나온 껌종이를 펼쳐들었다. 쪽지를 적을만한 종이가 그것 밖에 없었다.

"근데, 어디죠? 언제?"

"뭐가?"

"잭이 언제 어디서 떠나냐구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진짜 뇌가 쓰레기도 아니고. 잔금 언제 어디서 받기로 했어요?"

"26일 저녁에 11번 부두에서."

[26일 밤 11번 부두.]
껌종이에 적은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 조그맣게 덧붙였다.

[조심해요.]



쪽지를 얼빵해보이는 군인에게 쥐어준 영수증이 또 바삐 뛰었다. 그 양반한테 꼭 직접 쥐어줄 필요는 없었겠지. 아무래도 얼굴 보고 싶은 사이는 아니다.


-그리고 그 배에 숨을 공간을 확보해놔요. 먹을 것도 좀 갖다놓고.

"아이고~~고생들 한다, 응. 응 그래 내가 진소장이야 리차드 진~ 야야 물건 똑바로 안실어? 그거 비싼건데 물건 상하면 니가 책임질거야 엉!!"

영수증은 날 때부터 책임자였다는 자세로 거들먹거리며 배에 올라탔다.



"배에? 잭이 타고 갈 그 배에? 미쳤어?"

"그럼 어떡해요? 우린 어디 가 있으라고? 여기 이 창고에 그 사람들이 안 와볼 거 같아요? 항구 근처 그 누구한테도 눈에 띄면 안돼요. 누가 잭의 사람인지 모르니까. 우린 수장 당한거고, 그럼 홀연히 사라져야죠. 그나마 등잔 밑이 제일 어두울 거예요."

"그게 될까...위험할 거 같은데..."

"불가능이 아니면 가능으로 만들어야죠. 난 지난 몇 달 간 위험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네요."

"그리고? 그 다음 작전은?"

"몰라요. 그건"

그녀는 모른다는 말을 참 당당히도 했다.

-빅보스에 달렸죠.

영수증은 마지막 여자를 배 안으로 들여보내고 닫은 문에 기대어 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허겁지겁 모연이 준 알약을 집어삼킨 그가 눈물이 핑 도는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빌었다.

빅보스라는 그 젖내나는 자식이 부디 성공하길. 안 그러면 내가 잭한테 죽어.





26일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뽀빠이 송신. 부둣가 현재 이상 없음."

정이병이 무전기를 입에 갖다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짜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요원이 된 기분이었다.

[슈렉 송신. 중대장님 막사 앞도 현재 이상 없...]

김병장의 말이 끊기자 정이병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이상 있습니까? 슈렉 응답합니다."

[슈렉 송신. 빅보스가 겁나게 멋있으시다. 울프도 겁나게 멋있으시다.]

싱거운 양반.
중대장님 부임 첫 날 중대장님 멋있지 않냐 그러니까 면박주던 분이 팬클럽 회장 하게 생겼지 말입니다.

[뽀빠이 지금 나 비웃고 있을 거 아는데, 말이 안 나온다. 니가 봐라. 죽는다. 너 그냥 거기로 텨와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중대장님 멋있는게 하루 이틀입니까?

전 날.

"중대장이 그동안 여러모로 못미더운 면을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줘서 고맙다."

처음 왔던 그 모습 그대로 한 발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중대장이 말했다. 아무도 그를 작게 보지 않았다.

"내일 밤, 나는 태국 희망 중대 중대장이 아닌 특전사령부 알파팀 팀장으로서 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꿀꺽.
전설로만 전해 듣던 알파팀. 있는지 없는지도 의견이 분분하던 전설의 특전사 팀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이력으로 전해지던 팀이었다.

"그래서, 내일 나는 제군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그럴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이건 중대장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다."

중대장이 둘러보며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내일 밤, 한가한 사람은 11번 부두 주변의 치안을 지켜 주기 바란다. 혹시라도 민간인이 다치지 않도록."

"이건 희망 중대의 작전이 아니고, 따라서 전투를 일체 금한다. 위험 상황이 올 것 같으면 즉시 몸을 피해라. 전투는 필요시 알파팀이 맡는다."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주변에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통제하는 일, 그리고 혹시 탈출하는 포로들이 있다면 보호하는 일이다."

대머리독수리 본진을 털 때, 또 Paradise Lust의 교육원을 털 때 보았던 여인들의 참담한 눈빛이 떠올랐다.

"내 부하가 아니라 명예로운 군인들에게 하는 부탁이다. 군인은 생명을 지킨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소리.

"또한, 그 생명에는 너희들의 생명도 포함되어 있다. 절대로 다치지 마라. 이건 명령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뒷부분 뿐만 아니라 앞부분도 명령이었다. 중대장은 항상 명예로운 명령만 내린다.

멋있다.




"와...진짜..."
"말이 안나오지?"
"죽이지 말입니다."

상관인 김병장의 말을 잘 듣는 정이병이 인적이 드문 공터로 튀어왔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흑복.
들은 적 있었다. 흑복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정규전이 아닌 대테러작전, 비밀침투작전 등 주로 소규모로 밤을 타 은밀히 수행하는 작전 때 입는 옷. 그림자처럼 녹아들어 임무를 수행하고, 그 그림자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라고 들었다.

중대장과 서상사는 그림자로 몸을 감싼 채 모자를 눌러쓰고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편하게 서 있는데도 솜털을 곤두세우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여태 우리랑 라면 드시던 분들은 아닌 것 같았다.

겁나 멋있다.


투투투투투투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려오자 정이병이 고개를 들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검은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태양을 등지고 멈춰선 헬기에서, 세명의 남자들이 신속하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눈이 부셔서 찡그리면서도 눈을 깜빡일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흑복으로 몸을 감싼 늠름한 특전사 셋이 당당하게 섰다.

미치게 멋있다.

"신고합니다. 특수전사령부 알파팀 중사 최우근."
"중사 임광남."
"하사 공철호."
"이천십칠년 구월 이십육일 알파팀 팀장의 지휘 하에 대한민국 국민 구출 작전을 수행할 것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단결!"
"단결!"
"단결!"

부리부리한 눈빛의 세 특전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 잡힌 경례를 했다. 중대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받았다.

"단결. 먼 길 신속히 와줘서 고맙다."

멋있어서 기절할 것 같다.

빅보스 팬클럽, 회장 자리는 김병장님이 안 내놓을 것 같으니까 나는 팬클럽 회원 1호 해야지.

그러나 다음 순간 펼쳐진 광경에 정이병은 생각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팀장니이임!!!"
"서상사니이임!!"

저 건장한 특전사들은 하이톤의 괴음을 내며 달려와 중대장과 서상사에게 뛰어들어 안겼다.

"빅보스 보고 싶었습니다!"
"서상사님도!"
"유소령님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지 말입니다!"
"야야야 나 발목 발목 깁스 안보이냐, 넘어질 뻔했잖아. 이것들을 확 그냥. 어? 어, 이거 안 내려놔?"
"발 불편하시다면서요. 제가 업겠습니다."
"아뇨, 제가 업겠습니다."
"중대원들 앞에서 이러는 거 쪽팔리니까 제발 좀 내려줄래."
"빅보스 저 다쳤습니다."
"뭐? 어딜."
"작전 끝나고 복귀하다가 헬기 문에 손 찧었습니다. 손톱에 멍들었지 말입니다."
"어디 가서 내 부하라고 하지 마라 쪽팔리니까."

아무래도 빅보스 팬클럽 1호 2호 3호 자리는 이미 고정인 것 같았다. 정이병은 4호 자리를 꿰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하게 처리한 거 맞지?)"
"(그럼.)"

영수증이 황급하게 건네진 돈가방을 챙겼다.
좋다. 아주 좋아. 업보도 갚고 돈도 받고. 이제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서 한동안 태국엔 발도 안들이면 된다.

"(배는 어딨어?)"
"(응?)"
"(내 배. 작은 배라도 배는 값이 나가지. 썼으면 돌려줘야 할 거 아냐.)"
"(어 그거 17번 부두 가면...)"
"(바다 바닥이 아니라?)"
영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좋아, 그럼 질문을 바꾸지. 여자들은 어딨어?)"



"작전을 하달한다."

빅보스가 위엄있게 말했다.

"작전은 없다."

그 위험한 말조차 위엄있었다.

"정확한 사태 파악이 되어있지 않으니, 그때그때 상황에서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전달사항이 있으면 무전한다."

"예, 알겠습니다."
알파팀에게는 익숙했다.

"단, 모든 판단에 있어서 인질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형수님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예, 알겠습니다!"





"쥐새끼 하나 안보이지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배를 타고 떠나려면, 당연하게도 배를 타야한다. 승선하는 무리를 잡으려고 일찍부터 부두에 나와있었지만 밤이 거의 지나도록 수상한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긴 기다림에 지쳐 중대원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알파팀만이 꼿꼿이 선 채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여기 맞습니까? 혹시 벌써 떠난 거 아닙니까?"

"다른 부두도 가보지 말입니다. 오늘 밤은 물론이고 내일 아침 출항한다 쳐도 출항준비를 한참 전부터 했어야 하는데, 여긴 너무 조용합니다."

시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냐. 지금 자리를 뜨면 안돼.

눈치가 빠른 자들이다. 티를 내지 않는다고 조심했으나 오늘 우리가 잡으러 올 거라고 어떻게든지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도망치는 상황에서,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방법은 두가지.
일찍 가거나, 늦게 가거나.

그들은 최대한 빠른 도주 경로를 준비했다. 그렇다면...

"어, 중대장님! 저기!"

둥실.
매여있던 커다란 배 한척이 부두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박상병이 가리켰다.

"미리 타고있었어?"

"전원 조준 정렬."

알파팀이 정렬하여 서서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배가 얼마나 무거울까? 얼마나 손상되면 가라앉을 정도일까? 안에 사람은 얼마나 있지?

저 배일까 아니면 저건 눈속임일까.

저 배에 그녀가 타고 있을까?

어찌됐든 놓치는 것보다는 일단 타서..

"알파팀, 승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유소령이 주먹을 쥐어 명령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도 어슴푸레, 배 여기저기서 끌려나오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이 채 돌기도 전에 유소령의 눈동자가 먼저 바삐 움직였다. 누군가를 찾듯이.

"(빅보스, 우리 너무 부딪히진 말자구.)"
갑판에 모습을 드러낸 잭이 말했다.

"(넌 여자들을 원하는 거지? 고이 모셔놨다가 풀어줄게. 나한텐 크게 필요 없으니까, 특히 아픈 여자들은. 지금 우릴 놓아주면 여자들은 보트에 태워 보내주지, 약속해.)"

인질범의 말을 믿는 것은 미친 짓이다.

유소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인질이 생각보다도 더 많다. 갇혀있던 환자들 뿐 아니라 그냥 일하던 여자들도 섞여있는 것 같았다.

과연 저 사람들이 다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배엔 아주 작은 구명정밖에 없어. 내일 날 밝고 나서 태워 보낼테니까 알아서들 찾아서 구해. 그러려면 지금부터 가서 배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잭이 점점 멀어지는 배에서 말하는 동안 유소령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우리가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 총을 마주 겨누는 사람이 없다. 설마 총이 없나? 그런거면 좋겠는데. 아니, 없을리가 없어.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결해보려고 꺼내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 우호적인거면, 정말 여자들을 풀어줄 생각도 있는 거 아닐까?

지금 승선해서 싸우면, 승률은 백프로다. 정식 훈련도 받지 않은 어중이떠중이들, 백명이 와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병에 걸려 앓았다는 여자들, 바다에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바다는 잔잔하다. 주변에는 희망중대원들이 있다. 구할 수는 있을것이다. 그런데 환자들이 밤바다의 수온을 견딜 수 있을까?

인질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답답하고 복잡하게 얽히는 머릿속에서 놓지 않으려 애쓰는 원칙 하나.



미치도록 답답해 올 때마다 늘 그랬듯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시진씨!"

시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눈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곧 시야가 뿌얘져, 급히 눈을 깜빡였다.

지난 몇 달 간, 수백번, 아니 수천번 들렸던 그녀의 목소리.

"유시진씨!"

그러나 이번에는,
마냥 밝고 따스한 햇살만을 담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해요. 혹시, 혹시라도 불상사가 생기면..."

약간의 울먹거림. 고스란히 전해지는 떨림. 반가움과 불안, 초조함, 흥분, 그리고...


"살리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단호한 확신이 담겨있었다.




빅보스의 싸인이 떨어졌다.

"알파팀, 승선!"





우와 구독자 20명...감사합니다! 정말 혼자 올리고 혼자 읽게 될 줄 알았는데ㅠㅠ 뭔가 보답해드리고 싶은데 드릴 게 없어서ㅠㅠㅠ(비록 이미 보신거라도) 얘네 빨리 만나게나 해주자 하고 오늘 좀 많이 올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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