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다리가 부러지고, 무거운 깁스가 채워졌다. 나는 혼자서 이것을 족쇄라고 불렀다. 하얗고 무거운 족쇄가 내 다리를 잡고 있는 동시에 난생 처음으로 세상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남들이 나보다 느리고, 내가 남들보다 빠른 건 지루한 일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까. 이것이 지루하면 나는 살지 못했겠지. 무엇보다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그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러웠고, 가만히 멈춰서 있는 것 같은 그들에게 장난치기에도 좋았다. 장난을 좋아하는 내게는 지루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준다니, 이 능력은 축복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 내가 답답한 건 머리는 빠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목발을 짚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건 답답했다. 족쇄를 차고 있었음에도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긴 했다. 얌전히 지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적은 거의 없지만, 요즘은 그래도 꽤 앉아있는 편이다. 답답하면서도 며칠 내내 방에 처박혀 침대 위에 있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펑, 소리와 함께 파란색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터, 괜찮아?”


어눌한 영어발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 녀석이 침대 위에 있게 하는 이유였다. 안절부절 못하고 두 손을 모은 채 시선조차 못 마주치는 그 녀석이 귀여웠다. 누군가 커크에 대해 ‘연기와 같다.’고 표현했다. 누군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연기처럼 나타나고, 연기처럼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그가 검푸른 연기를 뿜으며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이 다 보였다. 특히 그 짧은 순간에 보여지는 멍청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 밖에도 나타날 때 꼬리를 살랑거리는 게 귀엽기도 했고. 나만 아는 그의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갑자기 나타나지 말랬잖아.”


“미안.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뭐 필요한 건 없어?”


“물. 목말라.”


일부러 일을 시켰다. 빠르게 다녀온다고 펑, 하고 사라졌다가 펑, 하고 나타날 테니까. 그의 멍청한 표정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를 몇 번이고 찾아와줄 거니까.


펑.


방금도 굉장한 표정을 지었다는 걸 그가 알련 지. 그리고 또 한 번의 펑.


“여기.”


그 물을 건네는 그의 눈빛이 따뜻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것을 받으면서 괜히 퉁명스럽게.


“찬 물 아니면 안 된다.”





간만에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려오기가 무섭게 펑, 소리와 함께 그가 모습을 보였다.


“어? 어디가?”


손에 물 컵을 들고서, 서있는 내 모습에 당황이라도 한 듯이 컵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물 들고 다니면서 마시지 마. 흘리면 어떡하려고. 봐, 흘렀잖아. 거기 네가 닦아.”


내가 늘 물부터 시키는 걸 알아서였을까. 나름 신경을 쓴 것 같았지만 당황하는 그가 귀여워서 나는 더 짓궂게 말했다.


“너 마시라고 가져왔어. 근데 어, 어디가?”


“병원. 이 형님 깁스 푼다.”


그저 깁스 하나 푸는 것뿐인데 왜 그의 눈엔 아쉬움이 담겨있는 건지. 손을 뻗어 처음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헝클었다.


“야.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그런 표정 짓지 마.”



공백미포 1128자.

연성교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피터커크 처음 써봐서 너무 어려웠네요8ㅅ8 표현하고 싶던데로 제대로 적히지 않아서 아쉬운 글입니다.


17세 여고생, 트위터 합니다. 맞팔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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