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수업을 함께 하게 된 프리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에 팬텀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 재미없는 수업만 하던 생활과 윤리 교사 옆에, 어쩐지 익숙한 머리색과 눈 색을 가진 사람이 눈에 띄었다. 팬텀은 방금 잠에서 일어나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의 기억 속에 저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있던가, 하고 가만히 생각했다. 아까, 이름 말하지 않았던가. …뭐랬더라.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팬텀은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책상에 손을 올리며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아, 프리드…라던데?”
   프리드, 프리드…. 이름도 많이 들어본 기분인데. 어디서 들어봤…. …프리드?! 팬텀은 고개를 번쩍 들며 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잠이 깨자 그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고, 프리드 또한 갑자기 고개를 든 팬텀에게 눈을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웃음을 짓고 있는 프리드의 모습에 팬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팬텀은 다시 제 짝꿍에게 몸을 숙여 속삭였다. 저 사람 여기 왜 있는 거래? 그녀는 팬텀이 제게 몸을 숙이자 살짝 얼굴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아까 못 들었어? 생윤 교생으로 왔다던데? 팬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교생? 교―생?! 그녀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팬텀을 보고는 놀란 듯 그의 몸을 살짝 흔들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팬텀은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자신을 바라보며 계속 웃고 있는 프리드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팬텀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루미너스의 반으로 향했다. 루미너스가 있을 교실 문을 드르륵, 하고 확 열고는 샌님!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교실에 있는 모든 학생과,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건지 선생님의 눈길이 모두 팬텀을 향했다. 그 중의 루미너스의 눈은 상당히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곧바로 팬텀을 째려보는 눈으로 바뀌어서는 입모양으로 ‘넌 이제 죽는다.’라는 말을 했다. 팬텀은 루미너스의 말에도, 또 많은 시선들에도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문을 조용히 닫았다. 교실 안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고, 팬텀은 창피한 기분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아 손부채질을 하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얌전히 복도에서 기다렸다. 루미너스가 입모양으로 했던 말이 여전히 눈에 아른거렸다. ‘넌 이제 죽는다.’ …나 죽는대…, 망했다. 앞문에서 선생님이 문을 열며 나와 팬텀에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충고를 했고 팬텀은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그런 팬텀을 보더니 작게 혀를 차고는 교무실 쪽으로 걸어갔고, 팬텀은 선생님이 지나가자마자 교실 안으로 들어가 루미너스에게 달려갔다. 루미너스의 책상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팬텀은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샌님, 샌님! 있잖….”
   “도대체 아까 왜 그런 거지?”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와, 눈빛에 팬텀은 당황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루미너스는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한테는 이게 중요하다. 창피해서 죽어버릴 뻔 했다고.”
   “…미, 미안해. 하지만 선생님께도 방금 사과는 했는걸.”
   정말이냐는 듯 눈빛으로 말하는 루미너스에 팬텀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고, 루미너스는 알겠다는 듯 한 번 고개를 까딱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헐레벌떡 달려온 거야?”
   “아, 그래! 그, 그, 누구야. 예전에 너랑 같이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누구지?”
   “…하얀 마법사?”
   “아―, 아니! 하얀 마법사 말고, 그 사람 있잖아. 그…! 모범생 같이 생긴 남자!”
   “…누굴 말하는 거지?”
   “그, 그, 프….”
   “프리드?”
   그래! 프리드! 팬텀은 그 말을 한 루미너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고, 루미너스는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 채 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팬텀은 그의 표정을 눈치 채고 조용히 손가락을 접어 손을 내렸다.
   “프리드가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보다 너랑 프리드랑 아는 사이였던가?”
   “…아니, 그…. 특별히 아는 사이라기보다는 너 만날 때 종종 보는 사이였으니까…….”
   “…확실히 그렇긴 했지. 근데, 그래서 프리드가 왜?”
   “너 그 사람이랑 요즘 연락 했어?”
   루미너스는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팬텀의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지며 입을 열었다.
   “근데 너도 아무것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지?"

   "…그, 그 사람이 왜 우리 학교에 있는 거야?”
   “프리드가 우리 학교에 왜 있어?”
   “…아니, 그 사람 아까 우리 반에 왔었단 말이야….”
   루미너스가 잔뜩 불신의 눈으로 팬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젠 애원하다시피 믿어달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팬텀을 보며 루미너스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정말 프리드가 우리 학교에 왔다고? 팬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왜?”
   “내가 알아…? 자다가 갑자기 우리 반에서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서 깨봤더니….”
   “용케도 그런 걸 듣고 깨는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 어쨌든 그렇게 깨봤더니 그 사람이 기분 나쁘게 날 보고 웃는….”
   “그건 오직 네 생각이겠지.”
   아니 정말이거든?! 억울하다는 듯이 거짓울음으로 엉엉대는 팬텀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루미너스는 그가 엎드려 있는 자신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 소리에 팬텀이 고개를 들어 루미너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프리드가 왜 우리 학교에 있는데? 본론부터 말해. 쓸데없는 이야기 집어치우고.”
   “…네―. 사실 나도 비몽사몽인 상태로 들은 거라서 짝꿍한테 물어본 건데, 생윤 교생으로 왔다던데….”
   “…….”
   그 자식 말도 없이 이렇게 나타나? 생각해보면 이 고등학교도 프리드가 다녔던 모교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교로 교생을 온 건가. 며칠 전에 루미너스와 연락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학교로 교생을 온다는 이야기도, 또 그걸 암시하는 이야기조차도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그였는데, 이렇게 말없이 자신의 학교로 교생을 온다 하니 어쩐지 괘씸해지기도 했다. 만일 따지러 들면 ‘놀라게 해주려고 했지―.’라며 웃어넘길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됐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루미너스는 작게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팬텀의 옷자락을 끌고 교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샌님! 난 왜 끌고 가?! 당황한 팬텀은 계단이라 억지로 멈췄다가는 차마 그가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멈추질 못하고 그에게 질질 끌려가기만 했다. 교무실에 도착해서야 팬텀의 옷자락을 놓아준 루미너스는 가만히 교무실을 들여다보았다. 저 멀리 정말 프리드 같은 머리색을 한 남자가 있었고, 그는 학교의 생활과 윤리 교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싶었다.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 수는 없으니 루미너스는 복도에서 창가에 몸을 기댄 채 초조한 듯 살짝 발을 떨었다. 그런 루미너스를 살짝 바라보던 팬텀은 왜 부르러 가질 않고 그러고 있냐며 교무실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아, 둘이 이야기 중이구나. 그러나 교무실 너머 보이는 시계의 시간이 쉬는 시간이 끝날 때가 다 된 것 같아 팬텀은 루미너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업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안 들어 갈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만….”
   “…….”
   완강한 그의 태도를 보고 팬텀은 작게 한숨을 쉬며 자신 또한 루미너스를 따라 창가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머지않아 수업시간 종이 울렸고, 루미너스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교실 쪽으로 향해 달렸다. 팬텀은 이럴 줄 알았어, 라는 생각을 하며 루미너스를 따라 달렸고, 교실이 다르기에 그와 찢어져 버렸다. 아슬아슬하게 교사가 들어오시기 전에 둘 다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루미너스는 교실에 아직 교사가 들어오시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아 다음 시간의 교과서를 꺼냈다. 수업에 집중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억지로 집중을 하려 자신의 차가운 손을 양 볼에 대었다. 정신 차려야지. 드르륵, 문이 열리며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들어왔고, 루미너스는 교과서에 두었던 시선을 들어 교사에게로 옮겼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루미너스는 다시 교무실로 달려갔다. 또 팬텀을 찾으러 가긴 귀찮았다. 어차피 끌고 가면 투덜댈 게 뻔하기 때문에 데리러 가고 싶지 않았다. 아까 팬텀을 데려간 건 순전히, 그가 그 말을 한 게 거짓말이었으면 바로 옆에서 때리려고 데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루미너스는 교무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무실에 프리드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루미너스는 절망하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창가에 기대며 교무실에 들어가는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살짝 눈을 감고 있던 루미너스의 팔을 누군가가 잡았다. 루미너스는 갑자기 자신의 팔에 느껴지는 온기에 눈을 번쩍 떠 그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은 웃으며 안녕? 이라고 말하고 있는 프리드였다. …안녕? 안녕이라고 네가 말할 처지야? 잔뜩 노려보는 루미너스에 프리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만난 루미너스의 모습은 정말 많이 큰 상태였다. 마지막에는 분명 자신보다 키도 훨씬 작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자신의 키를 거의 다 따라와 있었고, 목소리 또한 전화하며 듣긴 했지만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는 생각을 했다. 살짝 날이 더워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불편해서 그런 것인지 루미너스는 조금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었고, 프리드는 그런 모습에 살짝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웃음 지었다. 잘 어울리네.
   “그래서, 왜 이야기 안 한 거야?”
   “…그냥, 놀라게 해주고도 싶었고. 너랑 연락할 때는 또 잊고 있었어.”
   그럼 생각났을 때 다시 이야기 해주면 되잖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니까. 곧바로 들려오는 그 이야기에 작게 한숨을 쉬는 루미너스를 바라보며 프리드는 그저 웃었다. 많이 힘들진 않아? 팬텀이랑 일은 없었고? 알바는, 같이 병행하기에 안 힘들어? 들려오는 질문 폭탄들에 루미너스는 질린다는 표정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거 맨날 물어보는 건데 질리지도 않냐.”
   “…아, 내가 맨날 물어봤었나?”
   고개를 끄덕이는 루미너스에게 프리드는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지. 걱정? 마음속으로 되물은 루미너스는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걸 생각하자, 어쩐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오는 것 같아 생각을 관뒀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없던가. 가만히 다른 걸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 그의 과목이 생활과 윤리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생윤 교생이었어? 그럼 우리 반은 들어올 일이 없겠네. 그 말에 프리드의 표정이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루미너스는 그의 그런 표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며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루미너스, 너 이과였던가?”
   “응, 예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쉽네.”
   “뭐가?”
   …아니야. 대답을 회피하는 프리드를 루미너스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계속 자신의 눈을 보지 않은 채 다른 곳을 바라보는 프리드를 보며 루미너스는 재차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럼 팬텀은 계속 보겠네. 아, 그렇겠네. 별로 반갑진 않지만.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 프리드는 다시 눈을 돌려 루미너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성격 탓에 단정하게 입을 줄 알았던 교복은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 와이셔츠 단추 하나를 풀고 있었고, 넥타이도 조금은 풀어진 상태였다. 묶여진 뒷머리 때문에 드러난 목선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기분이라 프리드는 억지로 루미너스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팬텀이랑 무슨 일 있기라도 했어?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팬텀도 날 나쁘게 봐? 뭐, 나도 싫으니까 큰 상관은 없는데…. …음, 직접적인 일은 없었지만, 우리 첫 만남이 그 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너를 만났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좋게 보이지만은 않더라고.”
   “…….”
   “정말 팬텀이랑 괜찮은 거 맞아?”
   “…그때보단 많이 괜찮아졌어.”
   “…그랬다면 다행이….”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루미너스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프리드에게 나중에 보자며 급히 교실로 달려갔고, 프리드는 빠르게 떠난 루미너스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저렇게 빨랐던가, 쟤가. 루미너스는 교실로 달리면서 오늘만 벌써 두 번이나 이렇게 달려야 하다니,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갑자기 나타난 프리드 자식 때문이야. 교무실과 제 반 교실이 가까워서 망정이라고 생각한 루미너스는 교실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가며 다시 수업 준비를 했다.

*     *     *

   팬텀은 가만히 교탁 위에 서서 수업을 진행하는 프리드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작게 하품을 한 팬텀은 주위를 바라보았다. 평소 생활과 윤리 시간과 다르게 반 아이들은 잠을 자는 이 한 명 없이 모두 말똥거리는 눈으로 프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대답 소리도 매우 컸다. 옆에서 프리드가 수업을 하는 걸 지켜보는 생활과 윤리 교사가 프리드와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는 대답도 않더니. 그런 교사의 표정을 눈치 채고 팬텀은 속으로 킥킥 웃다가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는 프리드에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프리드는 수업을 뛰어난 실력으로 진행해나갔다. 처음 교생을 나온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팬텀은 프리드가 정말 공부만 해서 이런 수업 같은 거는 실수를 많이 할 거라고 예상하고 나중에 비웃어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수업을 잘하니, 놀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또 모든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었고, 조금은 외모도 평균 이상이었기에 여학생들이 많이 따랐다. 그렇다고 남학생들에게 질투를 받았던 것도 아니다. 점심시간마다 같이 나가서 축구까지 할 정도로 남학생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었고, 정말 공부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였는데 그에게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을 이끌리게 만들 만한 그런 매력과 친화력이 충분했다. 프리드는 며칠이 지나자, 완전히 학교의 인기인이 되었다. 분명 기념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매번 프리드의 자리에는 선물들이 가득했다. 학교에 그런 선생님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학교 분위기도 상당히 밝게 변화하고 있었다. 팬텀은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학교도 곧 망할 거야. 저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팬텀은 어쩐지 계속 지나가지 않는 것 같은 시계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점심이 꽤 맛있었던 것 같아, 안 그래? 샌님? 가만히 단어장에 눈을 둔 채 걷고 있는 루미너스에게 팬텀이 얼굴을 들이댔다. 갑자기 들이댄 얼굴에 깜짝 놀란 루미너스는 그에게서 살짝 물러났고, 팬텀은 루미너스가 자신을 벌레 보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상처를 받은 것처럼 잔뜩 시무룩해진 채 몸도 잔뜩 수그리고는 걸었다. 루미너스는 그런 그의 자세를 보고는 더욱 표정이 구겨져서는 발걸음을 빨리 했고, 팬텀은 갑자기 그가 발걸음을 빨리하는 것을 보고 울상이 되어 같이 가자며 소리를 쳤다. 그렇게 루미너스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고 있을 무렵, 운동장 쪽이 조금 시끄럽다는 걸 느낀 팬텀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어떤 남자가 남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있었고 자세히 그를 바라보니 그가 프리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오늘도 같이 축구하는 건가. 아주, 정성이네, 정성이야. 루미너스는 프리드를 바라보며 조금은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 팬텀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고 저 멀리에서 가만히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는 걸 보고는 혀를 찼다. 그를 떼어놓고 가고 싶은 생각은 가득했지만, 보통은 자신이 아무리 이렇게 반응해도 말없이 계속 따라왔을 그의 시선을 빼앗은 게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해서 루미너스는 팬텀에게 먼저 다가가 그가 보고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평소처럼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으나, 그 사이에 프리드가 있는 것을 보고 루미너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원래는 점심을 먹고 바로 교실로 들어가 못 다 한 공부를 이어 하는 게 루미너스였기 때문에 프리드가 학교에 온 뒤로 남학생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축구 실력은 좋지 않은 건지 그리 많은 골을 넣는 건 아니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실력이 어찌되었든 여학생들은 프리드의 팀을 매우 응원하고 있었고 그의 상대팀 학생들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았다. 팬텀은 루미너스가 제 곁에 온 걸 알고는 입을 쭉 내민 채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쟤는 왜 축구까지 끼어들고 난리야. 루미너스는 그런 팬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왜 저래. 흥미가 떨어진 건지 루미너스는 다시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프리드 반대편에 껴서 이겨보지 그래?”
   그 말에 도화선에 불을 지피듯 팬텀의 자존심에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팬텀은 곧바로 운동장 쪽으로 내려가 자신을 반대 팀에 끼워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루미너스는 갑자기 어딘가로 달려간 팬텀의 모습에 그가 어디로 갔나 찾아보다가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 간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조금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고. 루미너스는 운동장의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서로를 잔뜩 노려보고 있는 팬텀과 프리드를 바라보다가 주위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쪽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마 프리드를 응원하고 있었던 여학생 무리가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리드를 응원하다가 학교의 얼굴 미남인 팬텀이 다른 팀에 끼어드니 혼란이 온 것 같이 보였다. 자기는 프리드 선생님을 응원하겠다, 다른 애는 팬텀을 응원하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루미너스는 재차 혀를 찼다. 저것들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좋아해. 루미너스는 다시 손에 쥐고 있던 단어장을 들고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게임이 시작되었는지, 여학생들이 서로 좋아하는 사람의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그냥 들어갈 걸 그랬나. 잠시 후회하던 루미너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쪽의 귀를 막고는 단어장을 바라보았다.
   ―이겼다!
   팬텀은 게임에 꽤나 큰 공로를 한 것인지 같은 팀이었던 남학생들과 그의 팀을 응원하던 여학생들에게까지 둘러싸인 채 웃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응원해준 여학생들에게는 고맙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팬텀은 잠시 프리드의 팀으로 시선을 돌렸다. 팀이 졌는데도 불구하고 그쪽 팀의 분위기 또한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그쪽 팀에서 수고 했다, 잘했다, 라는 말이 들려오자 팬텀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졌으면서. 팬텀은 다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는 루미너스가 들어왔고, 팬텀은 루미너스에게 살짝 달려가며 손을 흔들었지만 그의 눈은 단어장에 꽂혀 있었다. 뭐야, 그럼 이 몸의 활약도 안 봤다고? 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팬텀은 단어장을 바라보는 루미너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늘에 앉아 그저 단어장을 보고 있는 것뿐인데, 어쩐지 그 모습에 어색함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괜히 숨을 크게 들이쉰 팬텀에게 루미너스의 시선이 옮겨졌다. 주위가 다시 시끄러워지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었다. 왜인지 자신을 바라본 채 멍하니 있는 팬텀을 바라보고, 또 두 팀의 분위기를 보자니 아무래도 팬텀의 팀이 이긴 것 같았다. 프리드의 팀 또한 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좋긴 했지만. 루미너스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팬텀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멀리 있는 그에게,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축하해.
   그 모습을 보자마자 팬텀은 마치 주위 시간이 잠시 멈춘 것만 같았다. 오직 자신과, 루미너스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계속 그를 뚫어지게, 자세히 쳐다보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모양은 똑똑히 ‘축하해.’를 말하고 있었다. 살짝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 제게 그런 말을 하는 루미너스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늘 아래로 살짝 햇빛이 내려쬐어 그를 비춰주는 모습에 그랬던 것이라고, 그래서, 그래서 예뻐 보였던 것이라고 팬텀은 애써 정당화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무시한 채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17.02.10


(오랜만의 디어 재연재네요! 앞으로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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