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 








W.겨울안개









아무도 모르게 이사를(이사라기엔 도주에 가까웠지만.) 끝마치고 나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었다.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며. 예전 학교의 교복을 입고 처음 학교에 갔던 날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스위치를 꺼버린 전등처럼. 나는 캄캄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봄이 되고, 슬슬 더운 바람이 불어 올 때 까지도.






침몰(沈沒)하는-






외할머니는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또, 좁은 아파트에 객식구가 둘이나 생긴 것이 못마땅한 눈치이기도 했다. 가끔 찾아온다던 이모는 어쩐 일인지 부리나케 달려와서는 엄마와 한참이나 말다툼을 했다. 캐리어 두 개를 세워둔 방에 이불을 깔고 엄마와 나란히 누운지 수개월은 지났지만, 캐리어는 여전히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엄마도 대책은 없었던 모양이지. 어쩌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스위치도 꺼진 상태인지도 모른다.


아침을 거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젖은 머릴 털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주름 진 손으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동전 몇 개를 건냈다. 우유라도 사먹으란 소리다. 나는 눈치껏 동전을 받아들고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노쇠한 목소리가 말한다.






“오야.”






그리곤 꼭 한다는 말씀이






“기 죽지 마라.” 였다.






기 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귀에 이어폰을 끼우고 이른 아침의 동네를 타박거리며 학교로 향했다. 기 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이런 건 아닐까. 내 책상에서 과자를 처먹고도 쓰레기는 치우지 않는 좆같은 학우들을 향해 쌍욕을 할 수 있는 그런 마인드. 나는 봉지를 손으로 툭툭 처내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후 하고 불어 부스러기들도 날려 보낸다. 그리고 그 위로 엎어진다. 기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캄캄해진 머리를 굴려보지만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은 없다.


동네에 수영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날엔 갑자기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내달렸다. 대여한 수영복에 몸을 욱여넣을 땐 설렘마저 생겼다.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심장이 펌프질 하는 소릴 들은 착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뿐이다. 내 수영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고, 물에 뜨지도 못하는 나는 푸드덕 거리며 물이나 한 바가지 마셨다. 왕왕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휘황찬란한 수영복을 입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쿨럭 거리며 물을 뱉어 냈고, 남자는 날 탈의실에 데려다 주었다. 어지간하면 수영 하지 말랜다. 그게 아니면 내 수업을 듣던가. 라고 말했다.


또 어린 나이의 나는 그런가 하고 즉흥적으로 수영강습을 등록하기에 이른다. 다음 주. 첫 수영강습이 있던 날 나는 수영복을 고르다가 갑자기 도망치고 싶어졌다. 수영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확실한 건 ‘나는 물과는 안 맞다’는 점이다. 녹초가 된 몸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니, 외할머니는 어쩐 일로 삼겹살을 굽고 계셨다. 락스 물을 배 터지게 처마신 나는 기름진 고기를 상추에 얹어 몇 번인가 싸먹다가 금방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실내를 채우는 동안에도 엄마는 방 안에서 나올 기미가 없었다. 좁아터진 실내를 환기시키려 창도 열고 현관도 열었다. 그리운 여름의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는 날 아파트 층계참으로 불러내신다. 작은 창문 앞에 달라붙어 외할머니가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맡았다.


아직도 모래 놀이터가 있네.






“느그 엄마 병원에 보내뿔란다.”






모래장난을 치는 애들은 하나도 없다. 어둑어둑한데 다들 집구석에 돌아가 엄마 허벅지에 코 묻은 얼굴을 부비고 있겠지.






“니는 애비한테 가던가.”






그런 애들은 기가 살아있을까.






“… 그것도 싫으마, 이모가 보육원 알아봐준다 카더라.”






내 기는 아빠의 주먹과 엄마의 병이 죽인걸까.






“네.”






고 2가 보육원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그 날 밤. 잠든 척을 하는 엄마의 머리를 몇 번인가 쓸어준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 엄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노쇠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새벽. 나는 캐리어를 끌고 동네 길을 타박거렸다.








침몰(沈沒)하는-








우리나라 최대 공업도시라던 H시는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해고통보를 받았다. H시에 와서 알게 된 재규형은 바다의 도시 N시 출신이었는데, 지금은 K시로 이직을 했다. 출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는 소리다. 나는 한국의 수도 S특별시 출신이지만 지금은 H시의 구석에서 짐을 싸고 있다. 재규형이 K시로 부르지 않았다면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아직 22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니까. 뭐든 하면 되겠지. K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가만히 한숨을 쉰다. 역병이 창궐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스크를 빈틈없이 밀착시켜놓은 덕에 뜨거운 입김이 얼굴에 다시 들러붙었다. 난 정말이지 오랜만에 찬열이와 세훈이를 떠올렸다. 지금쯤 군대는 갔을까. 그러고 보니 찬열이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을까. 세훈이는. 어땠을까. 다들 내가 없는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뜨거운 입김이 눈까지 닿았다. 눈꺼풀이 뜨거웠다. 귓가에 닿는 애새끼들의 헉헉거리는 소리가 떠오른다. 나는 아직 18살의 여름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가 보고 싶다. 지난달에 아빠를 다시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재규형이 살고 있는 미투 룸의 한쪽 구석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우리 둘은 침대 위에 겹쳐 누워 헉헉거렸다. 다정한 손길도 몸속에서 꿈틀대는 ***도. 18살에 만났던 것들과는 달랐다. 내 정신만이 그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주부터 출근하면 돼.”






재규형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몇 번인가 담배를 펴보려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사치스러운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어 그만 두었다. 나는 샤워한 몸을 벽걸이 에어컨 아래에 서서 말리고 있었다.






“감기 들어.”


“젊어서 감기 안 들걸?”


“오우. 젊어서 좋겠네?”






서른 두살의 몸은 어디 하나 덜 여문 곳 없이 단단하다. 찬열이가 서른둘이 되면 어떨까. 나는 재규형의 어깨를 보며 가만히 생각한다.


직장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직딩 인생 몇 년 만에 제일 꿀 빠는 직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번 라인에 들어가 제품을 만지다가,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게 어색했지만, 곧 적응했다. 재규형은 내게 캐드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걸로 먹고 살라는 뜻이겠지. 한 달 후에 월급을 받자마자 재규형이 사는 집과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었다. 캐리어를 한쪽 구석에 세워두고 재규형이 선물한 새 이불을 덮었다. 형은 곧 아파트에 이사하기로 했단다. 애가 생겼다고 들었다.


결혼식은 생략됐다. 역병이 원인이지. 나는 형이 이사하면서부터 운전을 배웠다. 형수는 손이 큰 사람이다. 늘 너무 많이 했다는 이유로 반찬을 한보따리씩 싸준다. 나는 면허를 따고 곧장 중고차를 샀다. 그리곤 형수를 태워 친정에 데려다 주거나, 병원에 데려다 주며 기사역할을 자처했다. 운전을 배운 이 후로는 형과 몸을 섞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란 걸 잘 알았다.


어여쁜 딸아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형수에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손을 꼭 쥐고 말했다.






“미안해요.”






K시를 떠날 땐 고속도로를 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잠깐 K 시의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기름을 넣으면서 뒷좌석에 던져놓은 캐리어를 본다. 출발하기 전. 캐리어는 트렁크에 처박았다. 목적지는 외할머니 댁이다.


삼겹살을 한 근 산다. 봉지를 달랑이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흥얼거렸다. 흠~ 흠~ 하고 가볍게. 허밍하며 노랠 부른다.


‘띵-’


엘리베이서의 도착 음은 이미 녹음 된 음향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소리가 꼭. 마치. 내 뇌 속에서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 김민석.”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내린다.






“니 군대 가냐?”






세훈이의 까까머리에 환하게 웃는다. 스위치가 깜박이며 켜진다.





RPS 슈른. 겨울안개. 짜부. 결개. 슈슈밍. 뭐든 편하게 불러주세요

겨울안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