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첫째는 경수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백현이 학원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원하는 부분의 진도는 다 뺐으니 더는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원래 말발이 좋은 건지 그동안 들어둔 보험이 제 몫을 톡톡히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현의 의견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백현은 학원 대신 독서실 이용권을 끊었다. 그 독서실은 경수의 동네와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학교에선 여전히 두 사람 모두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경수는 가끔 사물함을 열다가 웃었고, 백현은 쓰임새에 비해 많은 양의 포스트잇과 형광펜 등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사탕만큼이나 알록달록한 메모에는 가끔 별이나 하트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손재주가 없어서 모양이 이상한 그림들을 볼 때마다 경수는 조그마한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리려 낑낑대는 백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난 오늘 김치볶음밥. 많이 달라고 해줘.」



경수는 사물함에 새로 붙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나섰다. 정규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가는 경수와는 달리 백현은 교실청소와 담임의 종례까지 마치고 하교를 했다. 자연히 음식주문은 먼저 출발하는 경수의 몫이 되었는데, 둘이서 하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분식집 이모는 이제 두 사람을 아예 한 세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기 아들이 다 컸다면 학생들 같았을 거라면서-그녀의 아들은 오래 전에 병으로 죽었다-주문한 것보다 더 넉넉히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나면 두 사람은 공부를 시작했다.


장소는 다양했다. 대부분은 백현이 다니는 독서실이었지만 카페나 아이스크림 가게일 때도 있었고, 가끔은 경수의 집으로 가기도 했다. 경수의 집에는 이제 붉은 등이 달려있지 않았다. 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백현과 함께 기다리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갔다. 이제 와서 안 사실인데 경수는 의외로 공부머리가 좋았다. 기본적으로 암기력이 뛰어난데다 문제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 이대로라면 이번에 치른 기말고사 결과도 기대해볼 만했다.


반면 백현의 그림실력은 처음 그대로 허접했고, 거기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경수는 늘 백현의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을 실컷 비웃다가, 백현이 삐칠 때가 되어서야 슬그머니 화났어? 하고 묻는 것이다. 눈썹을 있는 대로 늘어뜨린 채 그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면, 언제나 그랬듯 백현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어, 비 온다.”



1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 온 저녁이었다. 오늘도 경수는 백현을 데리고 올라와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경수의 말에 백현은 오답노트를 만들다 말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부터 우중충하다 싶었던 하늘에선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었다.



“꽤 오네. 너희 어머니 오늘 우산 가져가셨대?”

“아니, 안 그래도 올 때 됐는데 마중 나가야겠다.”

“같이 가.”



경수가 마루 밑에서 우산을 꺼내는 동안 백현이 낡아서 달달거리는 선풍기를 발로 끄고 일어났다. 가뜩이나 오래되어 턱이 닳은 계단은 빗물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했다. 서로 조심해라, 너나 잘해라 등 투닥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던 두 사람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멈췄다. 계단 중턱에서 심상치 않은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저기 너희 어머니 아니야?”



어떤 남자가 여자를 벽에 몰아붙여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경수가 튀어나가듯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일 안한다고 말을 해도 들러붙는 손님새끼들은 있기 마련이어서 이런 상황 자체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저 손님새끼가 예전에 경수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간, 진상 중의 진상 손님새끼였다는 점이다.



“이봐요,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안 떨어져?”



경수는 서둘러 남자의 손아귀에서 여자를 떼어놓았다. 말이 좋아서 떼어놓은 것이지 실상은 있는 힘을 다해 잡아뜯은 것에 가까웠다. 이 씨, 씨, 씨발년들이. 꼬부라진 혀로 욕을 뱉는 남자에게선 술 냄새가 역하게 진동했다. 경수가 남자를 떼어내는 동안 여자에게 다가간 백현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흔들었다.



“경수 어머니, 괜찮으세요?”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않는 그녀의 모습에 겁이 덜컥 났다. 사람을 왜 벽으로 몰아세웠나 했더니 손으로 목을 졸랐던 모양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비실비실한 목덜미에 남은 손자국이 어두침침한 가로등 아래에서도 선명했다. 경수는 그대로 남자를 내팽개치고 여자의 앞에 주저앉았다. 엄마, 엄마. 차마 손대지도 못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여자를 부르는 경수를 대신해 백현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XX동 계단인데 사람이 쓰러졌어요. 모르겠어요, 지금 의식이 없고 숨도 안 쉬는…….



“으아아아아!!”



남자의 괴성과 동시에 다급하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끊겼다. 철벅, 우산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경수의 머리 위로 빗물이 퍼부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주인을 잃고 혼자 떠드는 휴대폰과, 피 흘리는 백현을 번갈아 내려다보던 경수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남자는 깨진 병을 들고 서 있었다. 유리의 날카로운 단면에 맺힌 피가 빗물에 뒤섞여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경수의 눈앞에 펼쳐졌다.



안 돼.



소리 없는 절규는 벙긋대는 입 속으로 먹혀들어갔다. 안 돼, 안 돼… 숨 막힐 듯한 침묵을 깬 것은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괜찮은 겁니까? 곧 출동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남자가 병을 떨어뜨리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비틀거리는 남자를 멍하니 올려다보던 경수의 옷자락을 백현이 잡아당겼다. 도경수. 힘없이 작은 목소리였지만 경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난 괜찮아, 그보다도 너희 어머니… 옆구리가 뚫린 주제에 경수를 안심시키려 억지로 말을 잇는 백현을 경수가 만류했다. 말하지 마, 아무 말 하지 마… 고개를 젓는 경수의 뺨에 백현의 손이 닿았다. 괜찮아, 이제 거의 다 왔어. 그 몇 마디에 놀랍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어…….”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치던 남자는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구급대원들이 계단 아래에서 남자를 발견했을 땐 이미 목이 부러져 즉사해서 손쓸 방도가 없었다고 했다. 여자는 몇 번의 심폐소생술로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에 사건의 충격이 더해져 일시적인 쇼크에 빠졌던 것뿐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그나마 멀쩡한 편이었던 경수는 다른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경찰 앞에서 사건을 진술해야 했다. 남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는 것, 깨진 병에 백현의 피와 남자의 지문이 발견되었다는 것 등등 대부분의 정황이 경수의 진술과 일치했으므로 수사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사건은 모두 조용히 해결되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선생님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상태가 심각했던 건 여자보다도 백현 쪽이었다. 울지 말라며 계속해서 경수를 달래주었던 백현은 구급차에 오르면서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의식이 없어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만 했다. 백현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가서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한 사람은 백현의 부모님이 아닌 양아치 담임이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셔츠도 뒤집어 입고 온 담임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수술실 복도에 서있는 경수를 보고는 혀를 찼다.



“나야말로 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둘이 언제부터 붙어다녔어?”

“…그냥, 좀 됐어요. 죄송해요.”

“네가 유리병 휘둘렀어? 왜 사과를 해.”

“…죄송합니다.”

“이거 웃기는 놈이네. 그렇게 사고치고 다닐 때는 내가 뭘 잘못했냐고 대들더니.”

“…….”



전부 사실이라 할 말이 없다. 고개를 푹 숙인 경수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던 담임은 다시 혀를 끌끌 찼다.



“여긴 내가 있을 테니 너는 어머니께 가 봐. 이번 주는 특별히 봐줄 테니 집에서 어머니 잘 모셔라. 대산 다음 주부턴 빠지지 말고. 너 수업일수 간당간당한 거 알아 몰라?”

“알아요.”

“그걸 아는 놈이 생활태도가 그 모양이야? 다음부터 또 빠지면 그땐 정말로 확 짤라버릴 거야. 알았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수의 어깨를 담임이 툭툭 치려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에게서 남자를 떼어내다가 긁힌 팔꿈치에선 아직도 피가 나고 있었다.



“가 봐, 너도 약 좀 바르고.”



담임에게 떠밀려 수술실 복도를 벗어난 경수는 길 잃은 아이처럼 갈피를 못 잡고 서 있다가 여자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늦은 시각의 6인실은 조용했다. 경수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자의 침대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잠들었다고 했으니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병원비를 먼저 지불해야 하겠지만.



“…….”



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던 경수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은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려 했었으며 그것을 말리던 백현은 아직도 수술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병원비 계산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담임은 그것을 경수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지만 경수는 이 모든 일이 전부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았다. 여자에게 일을 그만두라 말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까. 백현과 친하게 지내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아니, 나 같은 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 모든 자책과 후회는 이미 부질없는 짓이었다. 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담임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앞에 들이닥친 잔혹한 현실 속에서, 경수는 오래도록 소리죽여 울었다.








*








퇴원수속은 다행히 별 탈 없이 끝났다. 담임이 비용을 대신 지불해 주었기 때문이다. 감사의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경수의 뒤통수를 한 대 세게 후려치는 것으로 담임은 둘 사이의 빚을 청산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졸업이나 해. 네놈 얼굴 올해까지만 보고 치우는 게 나의 소원이다.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그날 낮부터 다시 식당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누워있는다고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니 산 사람은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집에 홀로 남은 경수는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사방은 조용했다.



“…….”



경수는 누운 자세를 바꾸며 백현을 떠올렸다. 자신들이 퇴원수속을 밟고 나올 때까지도 백현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이 1센티미터만 더 깊게 들어갔더라면 수술도 못해보고 죽었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지만, 수술을 한다 해도 모든 게 해결될 거란 보장 역시 없었기에 경수는 마냥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수의 우려대로 백현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그 애가 깨어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경수는 누운 자세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여름의 습기를 먹은 장판이 경수가 움직일 때마다 쩍 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애는 언제쯤 깨어날까. 과연 깨어날 수 있긴 한 걸까. 담임도 지금쯤이면 학교로 복귀했을 텐데 병실에 혼자 있으려면 외롭지 않을까. 하지만 경수는 차마 백현을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은 백현의 근처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이번 일로 경수는 그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담임이 학교에 뭐라고 이야기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더는 백현을 자신과 엮게 두어선 안 되었다. 자신 때문에 백현이 입은 피해는 지금까지로도 충분했으니까.


경수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렀다. 기나긴 주말이 끝나고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던 월요일 아침에도 백현이 깨어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등교하는 내내 몇 번씩이나 도망치고 싶었던 경수의 걱정이 무색하게 학교는 조용했다. 백현의 부재에 의문을 가졌던 이도-나중에 알았지만 담임은 백현의 결석을 맹장수술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수의 무단결석에 새삼스러움을 느낀 이도, 경수와 백현의 동반결석에서 어떠한 연관성을 찾은 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대신 교실에선 없는 사람에 대한 뒷담화가 심심찮게 이루어졌다. 반장 말야, 내일이 없을 것처럼 공부만 했는데 병원에서 공부 못해가지고 어쩐대? 모르지, 누워서 책 보고 있을지도. 야, 인간적으로 그건 좀 무섭다. 그나마 기말 본 다음이라 다행이지 않냐? 대부분은 쓸데없는 잡소리들이었지만 경수는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엿들었다. 근데 병문안 한 번 가 봐야 되는 거 아냐? 냅둬, 아치가 가지 말랬잖아. 걔는 대체 무슨 수술을 어떻게 했길래 아직까지도 못 나온대? 그러게나 말이다. 누가 변백현 아니랄까봐 맹장수술도 참 요란하게 한다. 집도 잘 사는 놈이 수술은 또 왜 코딱지만한 병원에서 해가지고. 야, 집이 잘살면 뭐하냐? 엄빠도 없는데. 뭐야 걔 엄빠 없어? 왜? 몰라. 따로 사는지 없는 건지 내가 알 게 뭐야? 어쨌든 걔 그 집에 혼자 살아. 내 친구가 옆집 사는데 일하는 아줌마 말고는 없다더라. 그래? 어쩐지 집에 놀러오란 소리를 한 번도 안 하더라. 난 또 내가 수준 떨어져서 안 데려가는 줄 알았지. 근데 너 솔직히 수준 떨어지잖아. 나 같아도 우리 집에 너 들여놓기 싫다. 뭐 이새끼야? 너 뒤졌어 이리 와봐.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를 무심한 눈으로 보던 경수는 낙서하던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끌리는 소리에 아이들이 떠들던 것을 멈췄다. 요즘 완전히 죽어지내는데도 대부분은 여전히 경수의 눈치를 봤다. 경수는 그 모든 소음들을 뒤로 한 채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번만큼은 담임도 경수의 땡땡이를 눈감아줄 것이었다.


오늘은 방학식이었다.








e








옥상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경수는 식이 끝날 때에 맞춰 교실로 내려갔다. 안에서는 담임이 기말 성적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1등은 모두의 예상대로 변백현이었다.

경수는 14등이었다.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보충수업을 듣지 않는 대신 경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혹여나 자신을 알아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얻었다는 것만 빼면 일은 나름 괜찮았다. 눈에 띄게 친절하지는 않았으나 타고나기를 반반한 얼굴 때문인지 손님은 꾸준히 늘었고, 이를 흡족히 여긴 사장은 경수의 시급을 올려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백현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었지만 병원에선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했다. 독한 놈이라는 담임의 타박에도 경수는 백현을 한 번도 보러 가지 않았다. 그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제 몸을 혹사시켰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폭염이 절정에 다다른 오후였다. 날씨 때문에 다들 밖에 안 나오는지 카페 안은 제법 한산했고, 덕분에 경수는 카운터에 서서 멍하니 길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시원한 실내에서 보는 한낮의 더위는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거리를 보며 어쩐지 혼자 낯선 곳에 떨어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무렵, 옆에 놔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스팸인가 하고 메시지를 확인하던 경수가 순간 흠칫 했다.



「백현이 깨어났다. 시간 나면 들러라.」



멋대가리 없이 짧은 문장은 담임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액정에 뜬 조그만 글씨를 눈에 새기기라도 하듯 들여다보던 경수는 이내 폰을 내려놓고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때마침 한 무리의 손님들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바깥의 열기를 한가득 품고 들어온 손님이 가까이 다가와 주문을 했다. 손님이 메뉴를 말하는 동안 후덥지근한 공기가 경수에게도 와 닿았다. 순간적이나마 에어컨 공기를 이길 정도로 뜨거운 기운에 그제야 경수는 정신을 차렸다. 아스팔트도 녹일 정도로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저 거리의 풍경이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경수는 그 길을 백현과 함께 걸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주문하신 빙수와 음료 나왔습니다. 무거우니 조심하세요.”



경수는 담임의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화면이 텅 비었다. 공허한 눈으로 경수는 카운터 앞에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오늘까지만 일하기로 했었지? 다음에도 또 일하러 와.”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 나와 오픈준비를 하던 사장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경수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방학 동안에만 일하기로 했던 거라 오늘이 마지막 근무였다. 개학이 월요일이니 그 전날인 일요일까지 나와 줄 수 없겠냐는 사장의 부탁을 경수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리 공부와 담 쌓았대도 학교가기 전엔 준비할 것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은 그냥 쉬고 싶어서 그런 거였지만 다행히도 사장은 납득했다.


그래, 주말엔 좀 쉬고 준비해야지. 그래도 좀 아깝네. 주말엔 경수학생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손님들의 항의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장의 모습에 경수가 작게 웃었다. 대신 겨울에 또 올게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예의상 던지며 경수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감시간 때 올 테니 그동안 가게 잘 보고 있으라는 사장을 보내고 카운터에 선 경수는 의미 없이 휴대폰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담임에게서 백현이 깨어났다는 메시지를 받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으니 진작에 퇴원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백현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 볼까 생각은 했었지만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한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무너져버릴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보나마나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하라고 할 것이 뻔했기에 차마 연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식이 궁금한데 찾아갈 용기가 없어서 생겨난 경수의 고민거리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어? 너 여기서 알바 뛰냐?”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경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작년에 잠깐 경수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놀던 무리 중 하나였다. 교복을 입은 것을 봐선 보충수업을 마치고 온 것 같은데, 올해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한다던 말이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방학에만. 뭐 사러 왔어?”

“과일빙수 하나 포장해줘. 엄마 심부름.”

“그래. 조금만 기다려.”



얼음을 갈아서 담고 과일을 얹는 경수의 손놀림을 물끄러미 보던 녀석이 카드를 내밀며 한 마디 했다. 의외로 잘하네. 나중에 장사해도 되겠다. 카드를 받아서 긁고 서명을 유도하며 경수가 대답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학교는 요즘 어때?”

“맨날 그렇지. 아 맞다, 변백현 전학 간다던데 너 알고 있었어? 너네 반 반장이잖아.”



영수증과 함께 스푼을 포장하던 경수의 손끝이 멈칫했다. 녀석은 떠드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죽다 살아나더니 미쳤나봐. 수능 앞두고 갑자기 무슨 전학인지 원.”

“…그래? 몰랐는데. 언제 간대?”

“다음 학기부터 안 나온다는 걸 보면 이번 주 안으로 가겠지? 그래서 꼰대들 죄다 난리야. 솔직히 학교에 걔 말고는 다 꼴통이잖냐.”



걔 하나 대학 잘 보내서 현수막 붙이려고 했는데 다 좆됐지 뭐. 녀석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경수의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어서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수없이 하던 대로 테이크아웃 백을 건네고 녀석을 내보냈을 뿐이다.


왜 생각을 못했을까. 그 애가 학교로 안 돌아올 수도 있는 건데. 아니, 어차피 얼굴 볼 자신 없어서 피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혼란스러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생각은 이제 다신 백현을 볼 수 없게 되었단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수렴했다. 갈팡질팡하던 감정은 곧 진득한 후회로 바뀌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오는 거였는데.


후회와 죄책감,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상태로 경수는 겨우겨우 일을 마쳤다. 근무시간동안 뭘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따라 손님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평소 같았으면 실수를 해도 수십 번은 더 했을 것이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사장의 말을 적당히 넘기고 경수는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버스 안은 한산했다. 경수는 자리에 앉아 힘없이 눈을 감았다. 몸을 거의 기대다시피 한 창문 밖에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밤늦게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요즘은 기상청이 일을 잘 하는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펴든 경수는 다시금 우울해졌다. 가져온 우산이 사고가 났던 날 썼던 그 우산이었기 때문이다. 버리기도 마땅찮고 새 우산 살 돈도 없어서 무작정 들고 오긴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비를 맞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 같기도 했다. 이건 그냥 집에 갖다놓고 다음부턴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경수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놀랐다.



“…여기서 뭐 해?”



사고 직후 전구를 교체한 가로등은 불빛이 환했다. 그 불빛 아래 백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진홍색의 빗줄기가 그런 백현의 위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경수는 얼른 백현의 위에 우산을 씌워주었다. 물에 젖어 눅눅해진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은 그전보다 말라있어서 안쓰러웠다.



“아픈 애가 왜 비를 맞고 있어,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이 시간에 여긴 왜… 으앗!”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현이 경수를 끌어안았다. 경수의 손에서 떨어진 우산이 물웅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뭐 해, 비 맞잖아. 품에서 벗어나려 바르작대는 경수에게 백현이 속삭였다. 경수야, 늘 성까지 합쳐 부르던 때와는 달리 목소리가 잔뜩 젖어있었다.


우리 도망가자.

제발








*








11월의 공기는 제법 추웠다. 시험을 끝내고 나온 경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어차피 대학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태껏 학교를 다녔으니 수능 정도는 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던 그가 백현을 만난 이후로 생긴 작은 변화였다. 과연 이것이 경수의 남은 인생을 바꿀 수 있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찍 오셨네요? 늦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여자가 먼저 와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늘 밤늦게까지 식당 일을 하다가 왔었는데, 그래도 오늘이 수능이라고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어차피 공부 못해서 대학도 못가는 아들인데 뭘 잘했다고 이러나 싶어 민망해하는 경수의 앞에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린 여자가 어서 먹을 것을 종용했다. 살면서 이런 대접은 받아본 적이 없어 얼떨한 기분으로 수저를 드는 경수에게 그녀가 말했다.



“추운데 고생했네. 시험은 잘 봤니?”

“…그렇죠, 뭐. 어차피 대학 갈 성적은 아니지만.”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났다. 여자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경수는 낡은 TV 앞에 앉아서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방영되는 수능문제풀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맞은 문제와 틀린 문제, 뭘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문제들을 곱씹는 동안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끊어질 듯 약한 물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집 자체가 워낙 낡고 후지다 보니 부엌 싱크대는 겨울엔 자주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보나마나 고무장갑도 없이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을 게 뻔해서 경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밀어내고 싱크대 앞에 섰다. 서로 자기가 하겠다며 잠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승리를 쟁취한 쪽은 경수였다. 그새 얼어서 빨갛게 된 손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접시를 닦으며 말한다.



“엄마, 시험도 끝나고 했으니까, 나 졸업하면…….”



그것은 그가 오래도록 품어왔던 소원이자, 한편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어떤 것’이기도 했다.



“…우리 이사가자.”








*








근방에서 알아주는 똥통학교답지 않게 졸업식은 조용히 끝났다. 담임을 비롯한 소위 ‘호랑이 선생’들이 그동안 애들을 착실히 쥐어팬 것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라고 경수는 생각했다. 식이 끝나면 교사들이 저희들끼리 ‘우리가 애들을 사람 만들어놨다’며 뿌듯해할 것을 상상하면 배알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었다. 경수 역시 그런 담임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였기에.



“선생님,”



졸업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언제 북적거렸나 싶게 조용해진 교실에는 경수와 담임만이 남았다.



“이야기 들었다. 오늘 이사간댔지?”



뭔가 말하고 싶은데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우물쭈물하는 경수의 어깨를 담임이 툭툭 쳤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경수는 깨달았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담임에게 인사를 마친 경수는 학교를 등지고 걸었다. 나쁜 기억은 내려놓고 좋은 기억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한참을 걷고 나니 집으로 가는 계단 초입에 작은 트럭이 주차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원체 가져갈 것이 없었던 탓에 차량은 저걸로 충분했다. 운전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가 경수를 발견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왔다.



“잘 하고 왔어?”



경수는 대답 대신 손에 들린 졸업장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사는 데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종잇장을 본 그녀가 잘 했다며 웃었다.



“차에 타, 이제 가야지.”

“네.”



차에 올라타기 직전, 경수는 잠시 멈춰서 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은 이맘때면 늘 그랬듯 꽁꽁 얼어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저 계단의 끝에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세상이 펼쳐진 것처럼.



“잊어버린 건 없지?”

“예. 출발하세요.”



그러나 경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도망쳐봐야 어디든 밑바닥인 건 마찬가지고 삶은 여전히 힘든 싸움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나아지지도 나아질 것도 없다는 것을 경수는 어린 시절부터 뼈저리게 깨달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기적이란 단어는 경수에게 있어 원더랜드만큼이나 허황된 말이었다. 백현이 제 삶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랬기에 경수는 같이 도망치자는 백현의 말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없어, 백현아.’



분명히 나는 너를 망치게 될 거야.



‘그러니 그냥 잊어.’



나의 유일한 기적이었던 너를, 나 때문에 망칠 순 없어. 하지만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생각나면…….’



아주 만약에, 한 번 더,



‘…그때 다시 와.’



기적이란 게 일어난다면,



‘기다릴게.’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이 미끄러운데 괜찮을까요? 문제없어요. 여기만 그렇지 큰길은 거의 다 녹아서… 어른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경수는 마지막으로 계단을 돌아보았다. 경수에게 있어 그 계단은 어린 시절의 모든 것과 같았다. 가장 어두웠던 순간도, 눈부시게 찬란했던 순간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바라보던 경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백현을 떠올렸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차가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멀어지던 계단은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








「제 17회 국제현대회화미술대전 대상-집으로 가는 길, 도경수 作

지난 12일 뉴욕에서 개최된 최대 규모의 미술대전에서 이례적으로 동양인 작가가 대상을 차지했다. 수상자 도경수 작가는 미술 관련 학위나 경력이 전혀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총 178,427점의 작품들 속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그의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는 평을 받았다. 한편 단 한 점의 그림으로 미술계 전체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도작가는 시상식을 포함한 모든 공식석상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이후 인터뷰 역시 모두 거절하고 있어 세간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작가의 수상작인 ‘집으로 가는 길’은 이달 31일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전시되며, 다음 달 17일부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2주간 전시될 예정이다.」








*








석간신문의 문화면에 인쇄된 기사가 각 매장의 가판대에 꽂힐 무렵, 귀국한 경수는 고향땅을 밟고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놀랄 만큼 많이 변해있었다. 경수가 두고 갔던 그 시간들이 까마득한 옛날이기라도 한 것처럼.


예전의 모습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거리에서, 어느새 이방인이 된 경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치기어린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와 이제는 고층 오피스텔이 세워진 카페 자리를 지나 경수가 도착한 곳은 최근 조성이 완료된 공원의 분수대 앞이었다. 성냥갑 같던 집들을 철거하고 비탈을 평평하게 깎아 조성한 공원은 잘 단장된 것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분수대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경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떠올렸다. 닳고 닳아 폭이 좁고 가파르던 계단과, 토요일 오후의 타는 듯한 햇살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모습이 바뀌었어도 경수에게 이곳은 늘 좁고 높은 계단이었다. 과거의 언젠가, 자신에게 기적이란 것을 보여주었던.

그래서 경수는 기다린다. 오늘도, 내일도, 이후에도 계속.



빛의 계단에서.








Sayu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