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이었던 10년 전에 개인 블로그에 쓴 걸 그대로 가져 온 글이기 때문에, 현재 프랑스 대학실정과는 맞지 않습니다. 큰 틀은 아직도 유효하니 프랑스 대학 생활이 대략 이런 느낌이었겠구나를 위해 재미로 봐주세요.



기준은 우리 학교 우리 과 (일반 국립대 인문학과).

 

프랑스의 수업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강당에서 하는 총괄적 수업인 CM (cours magistral)과 작은 교실 안에서 주로 발표나 학생들과의 질답형식으로 진행되곤 하는 TD (travaux dirigés)로 이뤄지는데, 간혹 어떤 과목은 오로지 TD로만 진행되기도 하고(외국어나 수강 단위가 적은 과목) 보통 중요한 과목들은 두 방식을 병행합니다.

ex) 고대 중세 근세 현대의 경우 CM과 TD가 둘 다 있고, 종교건축의 물질성 비물질성같은 과목은 오로지 TD입니다.

 

일단 프랑스 학제는 1학기, 2학기로 나뉘며 시험은 1학기 시험/ 2학기 시험/ 1학기 재시험 / 2학기 재시험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일년 안에 20점 만점에 10점을 넘는다면 합격합니다. 만약 에꼴이거나 좀 더 상위개념의 교육체계안에서는 12점 이상이 마지노선일 때도 있습니다. 1학기 시험을 보고 총 평균이 10점을 못 넘었으며, 과목 당 10점을 못 넘은 것이 있다면 그 과목은 2학기가 끝나고 치뤄지는 재시험에서 통과해야합니다. 2학기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렇게 해서도 1년 평균이 10점을 못 넘는다면 1년을 유급합니다. 한 학년에 2번을 유급할 경우 그 과에서 퇴출입니다. 만일 1학기나 2학기 둘중에 하나를 통과하고 하나는 통과하지 못했다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은 할 수 있지만, 합격하지 못한 학기를 그 학년에서 다시 들어야 합니다.

 ex) 2009-2010 년도에서 1학년 재학 중, 1학기를 통과했고 2학기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2학기 과목중에 중세 고대를 과락한 경우, 2010-2011년에 2학년으로 진급하되 2학년 2학기에 1학년 중세 고대 수업까지 같이 들으며 시험도 1학년과 같이 친다.

 

시험의 종류는 한국처럼 대략 세 개입니다. 과제/중간시험/최종시험

과제는 말 그대로 발표이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틀이 잡힌 보고서를 요구하는 교수님도 있고 발표로만 평가하는 교수님도 있습니다. 보통 1학년은 모든 교수님들의 밥이기 때문에 무조건 두 개를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2학년때 좀 틀에 잡힌 발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 시험은 꽁트롤 꽁띠뉴 contrôle continu 라고 해서 수업 중의 수시 평가라고 네이버 불어사전이 말해주네요. 말 그대로 중고등학교의 수행평가같은 개념. 강당에 모여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 그냥 공부하던 그 교실에 앉아서 치는 시험입니다. 보통 외국어는 이런 식으로 많이 진행됩니다.  

최종시험은 불어론 빡시엘 partiels, 즉 부분적인 테스트란 소리지만 거짓부렁입니다 이 시험과 발표한 점수를 가지고 최종 점수를 냅니다. 보통 큰 강당에 모두 때려 넣고 시험을 치루게 하며, 두 시간이라는 택도 없는 짧은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에 답해야 합니다. 

가끔 어떤 악마같은 교수님들은 이 partiel과 저 수시평가 둘 다를 요구합니다. 이번 중세가 그런 경우로 이 경우 발표+수시평가+최종시험 삼위일체가 만들어집니다. 더 악마같은 사실은 이 1학기 최종시험이 항상 크리스방학 이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2주는 아주 좋은 시험기간이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학과가 이렇진 않습니다. 중국어과, 아랍어과 같은 단일어학과들은 저 중간시험으로 모든걸 땡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분노스러웠지만 보통 우리 학과 교수님들은 학자들의 자존심과 우월감으로 학생들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두 현역 고고학자들이고 현역 학자들이며 가끔 티비에 나오셔서 성당 설명하시는거 보면서 뿜게 됩니다. 그 분들이 보시기엔 저희들은 한낮 버러지이며 근성 없고 머리 나쁜 학생들입니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1학년들은 기억하지 않고, 2학년 되면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며, 3학년이 되면 얼굴을 기억하고 간혹 서로 인사를 하며, 석사가 되면 말문을 서로 틉니다.

그리고 제도 중에 가장 악랄한 제도는 UE입니다. Unité d'Enseignementd의 약자로, 과목이 유닛에 따라서 묶여지는데요,

이를테면 저희 과 이번 학기에 대해 말해보면

UE1 : 고대, 중세

UE2 : 르네상스, 현대

UE3 : 도상학적 짜임새의 이해, 도상학, 예술문학

UE4 : 종교건축의 물질성과 비물질성, 영어

UE5 : 자유선택 언어 : 이탈리아어

UE6 : 자유선택 : (예: 스트레칭)

이렇게 됩니다.

UE 1과 UE 2는 특별히 '미술사학과 고고학의 이해 심화'라는 하나의 과정 아래에 묶여있습니다. 최종 시험날 당일 가보면 학생들 이름이 자글자글 문 앞에 붙어있고 들어가서 기다리면 시험지가 주어지는데요, 성이 A-H로 시작 하는 사람은 주제 1을, I-Z로 시작하는 사람은 주제 2를 가지고 글을 쓰라고 말을 합니다. 주제 1이 중세일 수도 있고 고대일 수도 있고 그건 그 시험 당일 전까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름하여 주제뽑기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날 우리가 중세에 걸릴지 고대에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이걸 1학년 처음에 이해를 못해서 아주 거하게 시험을 망친적이 있습니다. 어떤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도 빡시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교수님들의 따뜻한 배려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경우에는 아주 빡치는 점이 하나 있는데, 이를테면 저는 이번 르네상스 발표를 아주 훌륭하게 했으며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 발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일 시험 당일날 제가 운이 나빠 현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면 제가 받을 르네상스 점수도 말짱 도로묵입니다. 현대 발표 점수만을 따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발표에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놔야 하는 고난을 맛봐야 합니다. 

다른 UE들은 조금 덜 연쇄적입니다. 앞의 경우처럼 둘 중 하나에 걸리는 게 아니라 둘 다 시험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평균을 구하는 식입니다. 만일 제가 종교건축에서 13점을 총점으로 받았고 영어에서 5점이 나왔다 하면 평균으로 따지자면 9점이 됩니다. 그럼 저는 UE4에서 과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시험에서 저 두 과목을 다시 시험쳐야합니다. 종교건축에서 13점을 받았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상 시험 기간 임박한 자의 리포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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