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가을의 선선한 바람 아래에, 두 여인의 결혼을 축하하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뭐 결혼식이란 게 어딜 가나 전부 축하받을 일이라지만 천계의 영웅 프레이야와 크림슨로제, 그 둘의 결혼식이기에 더욱더 뜻깊었다.  게다가 그런 만큼 게스트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주례는 메이아 여왕과 황녀 에르제, 사회는 커맨더와 아이리스에 축가도 염황/염제의 듀엣곡으로,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객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웨딩드레스 구매나 화장, 하객용 식사 준비 등 필요한 다른 준비는 다 해놨는데 어째 결혼식장이 섭외가 되질 않고 있었다. 일단 디스트로이어와 스톰트루퍼, 알키오네, 마제스티 등 다른 이들이 열심히 뛰고 또 뛰어서, 결과적으로 결혼식 장소는 저 밑의 언더풋으로 변경됐다.


"아~ 아라드까지 이제 또 마가타 타고 내려가야 하나...?"

"어쩌겠어. 조금은 현실적인 생각도 했어야 했는데..."


로제와 프레이야는 솔직히 천계, 자신들이 지켜낸 고향에서 하고 싶은 생각도 조금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사실 날도 괜찮은데다 준비는 다 끝났으니 이젠 식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고작 식을 어디서 올리느냐는 문제는 그녀들의 기쁜 마음을 흐려놓을 수 없었다.


"어... 이렇게 붙이는 게 맞나?"
"야 이 미친... 화염방사기 집어 넣어. 동생도 타르바자 퀘이커 집어넣고!! 아오 진짜..."


아무래도 부모님을 일찍 떠나보낸 두 여인이었기에, 식전 준비는 부모님 대신 동료들이 하고 있었다. 사회자인 커맨더와 아이리스, 그리고 주례를 서는 메이아와 에르제는 진즉 준비를 끝냈으나 문제는 화촉을 준비하는 쪽, 화촉에 불을 붙인답시고 화염방사기를 꺼내든 디스트로이어와 스톰트루퍼, 그리고 냅다 타르바자 퀘이커를 휘두르려는 마제스티를 말리느라 알키오네는 죽을 맛이었다. 남의 결혼식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이해가 그닥 잘 되지는 않았지만 식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게 아니라. 잘 봐... 이렇게."

"오, 그런 방법도 있구나."


디스트로이어도 딱히 화염방사기로 직접 불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화재라도 벌어지면 말짱 도루묵이요 방화범으로 감옥행이니, 대신 디스트로이어가 선택한 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서는 화염방사기 끝의 점화기에 불을 붙인 다음, 성냥에 점화기로 불을 붙여 그 불씨를 화촉에 옮겨붙이는 것이었다. 은근 머리를 잘 굴린 듯해서 디스트로이어 본인도 뿌듯했고, 알키오네 또한 괜시리 남의 결혼식 망칠 우려를 하지 않아도 돼서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데, 주인공 두 분은 안 오나요?"
"곧 올 겁니다. 아, 저기 왔네요. 두 분, 이리 오셔요."


슬슬 식을 개막할 시간이 되어가는데, 주인공인 두 사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보며 메이아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에르제도 조금은 초조한 듯 두리번거리다, 간신히 식장에 입장한 로제와 프레이야를 보고는 드레스룸으로 안내했다.


"사회자분들 준비하세요. 주인공 도착했어요."

"알겠습니다."

"라져."


아이리스와 커맨더도 메이아의 사인이 떨어지자 즉각 준비에 착수했다. 대본도 준비되어 있고, 마이크 테스트도 끝. 이제 식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기대된다. 그치?"
"뭐... 하객들은 많이 온 거 같아. 식비 좀 많이 깨지겠는걸... 축의금도 많이 벌겠고. 푸흐흐..."

"으이구, 속물..."

"뭐 어때서~"


드레스를 갈아입고 보는 서로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프라임이나 옵티머스의 추천대로 한 쪽이 정장으로 입었다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두 번 다시 못 볼 뻔했다. 사실 정장 차림은 그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었기도 했으니 이런 일생 단 한 번뿐일 수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잠시 커튼을 살짝 걷어 식장을 내다보던 프레이야는 하객 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가 초청해놓고도 새삼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프레이야는 옆에 있는 아름다운 자기를 놔두고 이미 축의금 생각밖에 머릿속에 없는 듯한 로제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볼을 부풀렸다.


"아~ 그나저나 정말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올 줄... 우읍..."

"사랑해. 프레이야. 이런 날이 온 게 정말... 극적이야."
"아하하~ 뭐야~ 닭살돋게 말야."


돌이켜보면 정말로 다사다난한 날이었다. 황녀님은 인질이 됐고, 안톤은 파워 스테이션을 점거한 채 에너지를 흡수해대고... 그 모든 걸 헤쳐나가니 이번엔 내전. 그것마저 헤쳐나간 끝에 찾아온 평화였다. 비록 이 평화가 언제까지 갈 지는 몰라도 오늘만큼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심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프레이야의 입술 위로 뜬금없이 로제가 제 입술을 포갰다. 잠깐의 정적, 그러나 당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부드럽게 혀를 섞고 또 입술을 빨며 잠깐의 키스 타임을 가지고, 입술을 떼자 뜬금없는 사랑고백에 프레이야는 얼굴을 붉혔다.


"진짜 극적이다 극적이야... 우리 둘이 결혼하는 날이 올 거란 상상은 진짜 꿈에도 못했는데..."

"그러게... 솔직히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 순간이 위태로웠지... 그래서 당신이 더 사랑스러워. 프레이야."
"아~ 하하~ 별 말씀을."


다사다난한 천계의 혼란을 헤쳐나가며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 엄청난 행운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랑하는 사람과 잘 맺어져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다니 이만한 행운도 없었다. 로제의 뽀뽀와 또 닭살돋는 멘트에 프레이야는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잠시 후 크림슨 로제, 프레이야. 두 분의 예식이 시작되니 하객 여러분 모두 착석해주세요."

"자 그럼~ 프레이야 씨와 크림슨로제씨의 결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례 입장."


시간이 됐다. 하객들 전원이 착석했고, 사회자도, 주례도 모두 준비됐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다. 커맨더의 목소리와 함께 장내에 박수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 이번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을 메이아와 에르제가 입장했다. 커튼 뒤의 프레이야와 로제도 긴장한 듯 사회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깐, 이거 식순이 왜 이리 길어? 원래 천계는 이렇게 길게 결혼식 해요? 저 두 분, 부모님 없으시다며? 뭐 그냥 다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가죠."

"아니 아이리스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어도 식"

"됐고, 신부 입장!! 에, 신부가 둘이니 한 큐에 두 분 입장하시는 걸로."


그런데, 대본을 찬찬히 몇 번이고 훑어보던 아이리스가 식순이 왜 이리 기냐는 딴죽을 걸었다. 사실 천계의 전통에 따라 이런저런 행사같은 것도 다 집어넣었는데, 문제는 있지도 않은 신랑 입장이라거나 후속으로 축가라거나 너무 많이 집어넣다 보니 길어진 것. 만류하려는 커맨더를 떨쳐내고 아이리스는 마이크를 집어들고는 몇 바퀴 손 안에서 돌려잡더니, 신랑 입장 페이즈는 건너뛰고 바로 신부 입장으로 넘어가버렸다.  한 큐에 두 명 입장하라는 말도 덧붙여서.


"그럼, 신부 두 분... 반지 교환하세요."

"하하... 아이리스 언니 이럴 땐 참 호쾌하네..."


이어 대기실에서 나온 로제와 프레이야가 화이트라인을 밟으며 식장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대본을 훑어보고 어디를 생략할까 고민중인 아이리스 외, 하객이고 주례고 사회고 너 나 할 거 없이 전원이 두 명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아이리스의 지시에 따라 반지를 교환하고 나자, 로제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럴 땐 참 호쾌하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


커맨더도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미 지나가버린 거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나 집중하자. 혼인 서약의 선언과 함께 에르제와 메이아가 단상에 올라섰다. 일단 시간관계상, 그리고 두 사람이 혼인서약서 낭독은 빨리 해달라고 했기에 혼인 서약은 그리 길지 않게 넘어가버렸다.


"다음으로,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이제 크림슨로제 양과 프레이야 양은, 이 모든 하객분들과 저희들, 그리고 사회자분들, 전우들과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했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뤄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커맨더의 성혼선언문 낭독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자, 메이아의 성혼선언문 낭독이 시작됐다. 이후 전반부가 끝나자 에르제가 마이크를 넘겨받고 마무리했다. 이제 이걸로, 로제와 프레이야는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하객들 전원의 박수 세례 속에 로제와 프레이야는 멋쩍게 웃으며, 서로의 입술을 포개고는 혀를 얽어넣었다. 물론 혀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원래 여기에 신랑/신부 부모께 인사... 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분들끼리 인사하라니 뭔 쓸데없는 내용을 써놨어. 다음 내빈들에게 인사 후, 축가."

"진행 빠르다..."

"그러게..."


다음 순서는 신랑/신부 부모께 인사... 인데, 문제는 전쟁통에 부모님을 여읜 두 사람 결혼식에 이런 항목이 굳이 있어야 하나. 아이리스는 화가 치밀었다. 대놓고 뭔 쓸데없는 내용을 써놨냐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마이크를 여러 번 돌려잡으며 아이리스는 내빈들에게 인사 후, 축가를 불러줄 염제와 염황 듀오에게 손짓했다. 쾌속으로 진행되는 결혼식에 로제와 프레이야도 내심 기분나쁘진 않은 듯, 단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아이리스를 보며 조금은 솔직함을 숨겨줬으면 하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마지막이네. 오늘의 주인공이신 신부 두 분의 행진과 함께 이 결혼식을 마치도록 할게요. 두 분의 사랑 영원하길."


그렇게 염제/염황 듀오의 축가도 끝나자, 아이리스는 이어 로제와 프레이야의 행진을 선언하면서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돌려잡고는 결혼식의 종료 선언을 했다. 이것저것 폭풍같이 몰아치다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르고 다들 그저 어안이 벙벙해 있었지만 그래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 두 신부의 행진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웨딩 마치가 울려퍼지고, 모두의 박수 세례 아래 행진하는 두 신부의 만면에는 미소가 한가득 자리잡고 있었다.


"사랑해. 프레이야. 정말 고마워. 쉬운 결정 아니었을 텐데..."
"나야말로 로제가 결혼하자고 한 게 절호의 찬스같았는걸. 나도 사랑해. 로제..."


면사포 아래로 로제와 프레이야는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볼에 여러 번 뽀뽀했다. 멋쩍게 웃으며 걸어나가는 두 여인의 모습을 끝으로, 이 결혼식이 완전히 끝나고 이제 후속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끝났네. 이걸로... 우리들, 정말로 이어진 거겠지? 로제, 내 사랑."
"그렇지. 안 그러면 결혼식을 왜 했겠어... 프레이야도. 정말 사랑스러운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두 분 예쁜 사랑 하시길. 뭐하면 따로 또 축가라도 불러드려요? 마레리트 가져왔는데."

"아뇨 아뇨!!"

"아~ 뇨~ 어유... 무슨 큰 일을 내려고. 됐어요 사회 봐준 거만도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기념사진 촬영 이전 잠시 사진사로 섭외한 시라누이가 카메라 문제로 인해 자리를 비우자,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벌써부터 닭살돋는 멘트와 함께 꼬옥 껴안고 있는 로제와 프레이야에게 다가간 아이리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마레리트를 꺼내서는 축가라도 불러줄까 하고 떠보듯 이야기했다. 비록 로제와 프레이야의 격한 반대에 축가는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리스 또한 진심으로 두 여인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니, 딱히 아쉬울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리스는 마레리트를 집어넣었다.


"이야, 결혼 축하한다. 오붓하게 잘 살고, 자주자주 놀러 갈게."

"축하해 로제!! 프레이야!! 맞아 그래. 나도 자주 놀러가야지."

"축하합니다.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중요하니 두 번."

"아하하~ 고마워 디스트로이어, 스토미, 그리고 커맨더도 정말 고마워요."

"어머, 로제도 참?"


같은 직장 동료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시라누이의 카메라 준비 사인과 함께 다가온 디스트로이어와 커맨더, 스톰트루퍼의 축하 속에 로제와 프레이야는 생글생글 웃으며 염장지르듯 세 사람 앞에서 거리낌없이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대놓고 보는 앞에서 볼에 뽀뽀하는 로제를 보고 있자니 프레이야도 나름 기쁜 듯, 생글생글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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