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HOOT !

W. 몸





“ 알았어. 소개 시켜줄게. ”

“ 내 애인이야. ”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지훈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 팔을 비틀었다.


“ 뭐라고? ”


태도를 확 바꾼 남자가 팔짱을 끼며 지훈을 위 아래로 훑어봤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지훈이 고개를 돌려 민규에게 속닥였다. 당장 해명하세요. 민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훈이 당황해 두 눈을 깜빡이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보다 더 귀티 나는 얼굴을 가진 남자는 지훈이 민규에게 실망하기 충분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사람들을 여럿 만나오면서 그 안에 나를 끼워 넣으려고 했었다니, 지훈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자 남자가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쳤다.


“ 뭐가 좋다고 웃어요? ”

“ 얼굴 봤지? 나가. ”

“ 조용히 하고 있어 넌. ”

“ 마지막까지 지저분하구나 너. ”

“ 이런 지저분한 애한테 너 애원했었어. 저기요, 그쪽 진짜 민규 애인이에요? ”

“ 야 ”

“ 제가 묻잖아요. 나 민규 남자친군데, 그 쪽 어제 아침에 민규 집에 있었어요? 내가 확인할 게 있어서요. ”

“ 대답하지마. ”


남자가 피식 웃었다. 지훈이 팔을 뒤틀자 민규가 지훈의 몸을 제 몸에 붙였다.


“ 증명해봐. ”

“ 가라고 했다. ”

“ 저 남자가 대답을 안 하잖아. ”

“ 얘가 왜 너한테 대답 해야 돼 ”

“ 그러니까 증명하라고. 저 사람이 애인인지 뭔지 내가 어떻게 믿어? ”

“ 나 지금 참고 있다. 그만 하고 가. ”

“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못 가겠는데 민규야 ”


민규가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가 여유롭게 민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니까 왜 감당도 못할 거짓말을 해가면서 나랑 헤어질.. ”


미안해요 이 팀장. 민규가 지훈의 어깨를 돌려 그 입에 제 입술을 가져다댔다. 지훈이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벌어진 일이었다. 놀란 지훈이 민규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두 손만 움찔거리고 있자 민규가 먼저 입을 떼어냈다.


남자가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훈이 주위를 살폈다. 저 쪽 1팀과 2팀 복도에서 몇몇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고, 남자와 제 주위를 둘러싼 제 사원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민규가 남자를 차갑게 돌아봤다.


“ 이걸로 너랑 헤어질 이유 충분하지. ”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민규의 오른뺨을 후려 갈겼다. 지훈은 아직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다른 쪽 손으로 때리려던 것을 막은 민규가 남자가 휘청거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자 두 눈을 꽉 감았다. 남자는 울며 민규의 정강이며 머리통을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때리려 했고, 민규는 그것을 우악스럽게 막았다.


“ 무슨 일이십니까! 그만하세요! ”


금세 올라 온 경호팀 직원들이 남자를 양쪽에서 붙잡았다. 남자가 양팔을 잡아 빼려고 했지만 훨씬 건장한 남자 둘이 그를 놔주지 않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때까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뛰어 온 2팀의 이 사원과 1팀의 권 대리가 상황이 정리 된 것인지 두 팀장을 살폈다.

옷 매무새를 대충 정리한 민규가 천천히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이 바닥을 향한 고개를 덤덤하게 들었다.


“ 이 팀장.. ”

“ ... ”

“ 내가 미안.. ”

“ 아뇨. 사과하지 마세요. ”


지훈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민규에게 다가왔다. 말 없이 지훈을 바라보는 민규 앞에서 정성껏 소매 단추를 푸른 지훈이 민규에게 오른 뺨에 훅을 날렸다. 민규가 풀썩 쓰러졌다.


“ 어제 여쭤 보셨지 않습니까. ”

“ ... ”

“ 본인이 첫 인상과 다르지 않느냐고. ”


지훈이 민규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같은 곳에 다시 주먹을 박아 넣었다. 민규가 숨을 몰아쉬며 뺨을 붙잡고 지훈을 올려봤다. 주위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 오늘 알았습니다. 첫인상과 어떻게 다른지. ”


쓰러져 앉은 민규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은 지훈이 손바닥으로 민규의 왼 뺨을 후려쳤다. 민규가 두 눈을 감으며 호흡을 지훈의 움직임에 맞추었다. 그 모습을 인파에 섞여 지켜보던 이 사원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 저거 때리라고 그냥 내주고 계신데요. ”


권 대리는 권 대리대로 처음 보는 흥분한 지훈의 모습에 놀라 말 없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민규가 고개를 들어 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눈가가 발개지고 눈물이 고여 분명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민규가 욱신거리는 볼 근육을 움직이며 다시 지훈 쪽으로 뺨을 대주었다. 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며 민규의 멱살을 잡았다.


“ 처음에는 그냥 미친새끼인 줄 알았는데. ”


민규의 코 옆 광대를 조준해 주먹을 꽂아 넣자 중심을 잃은 민규가 제 무릎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골랐다. 지훈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민규의 배를 가격했다. 민규가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오늘 보니 감당 안 되는 쓰레기였군요. ”


엎드린 민규의 등을 발로 밟아 넘어뜨린 지훈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이 달아올라 민규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민규의 머리채를 잡아 벽에 기대게 했다. 민규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민규는 말 없이 두 눈을 감았다. 지훈은 그 행동에 기가 찬 듯 웃었다.


“ 맞을 짓을 ”

“ 왜. ”


지훈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민규가 지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울지 마, 울지 말고 때려. 지훈이 결국 울음이 터져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민규는 그제야 눈을 뜨고 지훈을 바라봤다.


“ ... 왜 해요... ”


지훈이 남은 무릎마저 힘 없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


민규는 터진 상처에 바를 연고를 샀다. 권 대리와 부 사원이 다가와 울고 있는 지훈을 부축했고 민규는 다가온 이 사원의 손을 거절하고 한참동안 복도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이지훈이 울었다.

지훈이 울었던 것에 대해 전후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소수의 사원들이 지훈의 첫 키스가 민규이었다던가, 남자가 지훈의 연인이었다던가 하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없었다. 민규의 얼굴을 확인한 약사가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민규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올라가는 볼 근육이 찌릿하게 저렸다.


“ 개새끼나 인간쓰레기나 다를 게 뭐야. ”


어젠 좋아한다고 그러더니. 짧은 꿈 같았던 며칠 간의 기억이 민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 왜 속상하지. ”


민규는 약국 앞에서 심장 언저리를 문지르며 서있었다.

일부러 거울을 보지 않았던 민규가 차에 올라타 룸미러를 확인하는 순간 심각한 상태에 입을 쩍 벌렸다. 벌려진 입 때문에 당겨진 근육이 뻑뻑하게 움직였다. 볼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고, 살짝 문질러보기도 했지만 퉁퉁 부은 붓기가 빠지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 사람 진짜 안 때려 봤나보네. ”


때리는 족족 다 흉졌어. 연고를 약지에 눌러 짜 터진 입가부터 살살 바르던 민규가 스읍 숨을 들이쉬었다.


“ 이런 거 발라줄 애인도 없고 내 인생 참... ”


민규는 데일밴드 포장을 뜯으며 중얼댔다. 포장이 엉성하게 뜯어지자 괜히 그 것에 화풀이를 하며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 차라리 자기 전에 이러지 그러셨습니까. ”


지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뚝뚝 눈물을 떨구던 지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 ... 적어도 그 때는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


민규가 시트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물아쉬었다. 제 앞에 두 무릎을 내려놓은 지훈이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뱉은 말들을 곱씹었다.


“ 나 진짜 쓰레기네.. ”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 이지훈씨 맞으시죠? ”

“ 예. 맞습니다. ”

“ 사진보다 훨씬 미남이시네요. ”

“ 과찬이십니다. 앉으시죠. ”


말쑥하게 차려 입은 지훈이 오랜만에 정리한 앞머리가 어색한 듯 연신 손으로 쓸어 넘겼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베이지색 투피스가 단정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스커트 위에 가지런히 모은 손톱마저 깔끔했다.


“ 사실 들은 얘기가 좀 있었는데... ”

“ 어떤 말을.. ”

“ 언행이 폭력적이고 무서운 분이시라고. ”


말을 꺼내놓고도 민망한지 여자가 작게 웃었다. 지훈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 사실 같습니까? ”

“ 아, 아뇨. 너무 점잖으시고... 친절하신데요. ”

“ 여태까지 그 분들은 뵐 때는 이런 감정이 아니었는데. ”

“ 네? ”

“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


제게 반했다는 뜻으로 알아들은 여자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이 지그시 눈을 마주쳐오며 몸을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 잘 해보고 싶네요. ”


-


“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으어!!! ”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은수저를 뒤집어 든 민규가 핏대를 세워가며 이별 대표곡. 백지영의 총 맞은 것 처럼을 불러 재꼈다. 인터폰이 울리자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뭐요. ”

“ 벌써 세 번째인데. 1122호 입주자님께서 계속 그러시면 경찰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좀 주무세요. ”

“ 아저씨가 지금 내 심정을 알아요? 총 맞은 것 같다고 심장이 어? 어떻게 좀 해달라잖아! 날 좀 치료 해달라잖아!”

“ 다음엔 경찰 부릅니다. ”


매몰차게 전화를 끊은 경비 아저씨에게 조차 서운한 마음이 든 민규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밑에 풀썩 주저앉아 소파 근처에 집어 던진 은수저를 주섬주섬 주워 왔다.


“ 뭐 부르지. ”


눈이 반쯤 풀린 민규가 아예 찬 바닥에 드러누웠다.


“ 당한 건 이지훈인데 내가 차인 기분이야. ”


품에 쥐고 있던 은수저를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개라도 키울걸. ”


몸을 다시 일으킨 민규가 덩그러니 놓인 핸드폰을 들어 통화 목록을 뒤적였다.


“ 우리 강아지한테 얘기해야지. ”


잔뜩 오른 취기를 위안 삼아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 민규가 끊기지 않는 통화 연결음에 대고 덤덤히 통화를 끊었다가 다시 재 발신했다.


“ 어 지훈아. 이제야 전화를 받네! ”


뚜르르르. 뚜르르르. 수화기 너머에서 통화 연결음만 이어졌다.


“ 밥 먹었어? ”


뚜르르르. 뚜르르르.


“ 손은 괜찮아? ”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 됩니다.


나 얼굴 아직 많이 부었는데. 나는 하나도 안 아파 지훈아. 그대로 약은 네가 발라줬으면 했는데 혼자서 잘 발랐어. ...미안해. 나 술 마시고 노래 불러서 경비 아저씨한테 혼났어. 어... 그냥 그랬다고. 또 무슨 말 하려고 했지. 사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 밖에 없어. 내가 숱하게 해온 말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아껴 쓸걸... ... 보고싶어. 보고싶어 지훈아.


-


지훈은 평소보다 두 배 빠르게 타자를 치며 마우스 휠을 쉴 새 없이 입은 이 팀장이 업무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모두들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점심까지 거르고 지훈이 붙잡고 있었던 모니터 속에는 ‘데이트 코스’ 혹은 ‘맛집’ 등의 검색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 예. 일곱 시에 두 명 예약 하려고 합니다. ”


핏줄이 불거진 두 눈이 그제야 힘을 풀었다.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말에 전화를 시원하게 끊은 지훈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정확히. ”

“ ... 별로야. ”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괜히 트집을 잡았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이마 가까이 댄 지훈이 속으로 주기도문을 읊고는 생각했다. 아버지, 다 좋으니 김민규 생각만 나지 않게 해주소서. 남자랑 잤다고 제 헌금이 돈이 아닌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안 되면 김민규가 잘생겨 보이지 않게만 이라도 해주십시오..





*

어제의 여파로 분량이 평소보다 (많이) 적어요.. 하루나 더 기다려주신 분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내일은 더 길게 가져올게요.. 분명히 재미있을 겁니다.. 아마도..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편에서 봐요 :)

당신을 조금만 벗어나면 고장 난 나침반 처럼 흔들렸다. | 정수경, 슬픔의 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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