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레이 × 새끼코가 × 카오루

• 비도덕적인 묘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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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사흘 째다. 아니, 그 꿈은 이상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색정적이었고, 또 지나치게 황홀하였다. 남자 같지도, 그렇다고 여자 같지도 않은, 중성적인 사람이─사실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긴가민가한─꿈에 나왔다. 헐벗은 채로. 얇은 천 하나 없이 내게 손을 내밀고, 아찔하게, 그는 나를 안았고, 탐닉했다. 대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내가 좇아왔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상적인 형상이 바로 「그」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 한참을 뒤척이고 나서야, 나는 그를 잊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그는 내 이상과도 가까운─ 어쩌면 이상 그 자체였기 때문에 연필을 들 수 밖에 없었다. 큰 도화지 위에 꿈에서 본 형상을 그렸다. 연필의 선이 지저분하지도, 그렇다고 깔끔하지도 않았으며, 중성적이고, 아름답지만 악惡하기도 해 보이는, 그이자 그녀인 그림이 그려져가고 있었다. 유화 물감을 붓에 묻혀 그 연필 자국 위를 덧그렸을 때에는, 나는 탄식했다. 절로 아, 라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이상했다. 그림은 내 연인인 사쿠마 레이와 닮아 있었으면서, 또 전혀 닮지 않아 있었다.


"…대체 뭐야?"


그림을 구겨버릴까 생각했지만 할 수 없었다. 물감이 마르지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그림 속의 그는 정말로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 그림과 교감하듯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겨우 의자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그림을 그린 이유도 모두 그 이상한 꿈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자, 나는 넋을 잃었다. 그림이 주는 묘한 인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것이 나 뿐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리라,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옷장 앞엔 검은색 옷 위에 붉은색의 넥타이가 걸려 있었다. 내가 어제 꺼내놨던 건가? 그 이상한 꿈을 꾼 이후로 자꾸 모든 걸 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복잡한 생각을 모두 한 번에 잊게끔 만드는 따르릉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옷을 모두 단정히 갖춰입고 나서 그 전화를 받자, 익숙하고도 현혹적인 목소리가 너머로 들려왔다.


"어디야, 코가."

"아, 지금 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서둘러, 선배?"

"하아, 오늘 네 녀석의 성인식 날이잖냐. 오늘은 우리 일족의 친척도 몇 명 모인다고, 말했잖아?"


맞다. 깜빡 잊고 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 사실을 잊을수가 있는가? 오늘이 성인식 날이기에 옷이 옷장 앞에 걸려 있었던 거고, 무언가 잊고 있었던 것도 「성인식」이었다. 오늘은 그의 집에 처음 가보는데다, 그 처음 가보는 집에서 성인식까지 치룬다니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오늘만큼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아, 그랬지.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네 녀석 집 앞이니까, 얼른 나오던가 해라."

"응, 조금만 기다려!"


오늘이 지남으로써 성인이 된다. 이미 성인인 사쿠마 선배와는 다르게 두 살이나 어렸던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불만이었다. 물론 그가 가르쳐준 어른의 짓을 한 적은 많았지만 말이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자, 아침이었음에도 구름이 껴있어 꽤 어두운 날씨는 축축하지도, 그렇다고 맑지도 않았다. 그런 것보다도 사쿠마 선배가 보이자 나는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를 바라보면 곧장 웃음이 나왔다.

언제나 그와 몸을 섞는 일은 기분 좋았고, 가끔씩은 그것이 비도덕적인 일이라는 것에 대한 가책이 느껴졌지만 그 가책이 오히려 쾌감으로 와닿기도 했다. 그는 나를 타락으로 이끌었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중에서 갈등하던 나를 어두운 세계로. 그리고 어떨 때는 또 밝은 세상으로. 그는 기묘했다. 사쿠마 가家의 인간들은 다 기묘하다는 말이 제대로 들어맞듯이. 나는 그 기묘함에 끌렸고, 그의 모든 걸 잡아먹을 듯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 끌렸다. 무엇보다도 유혹적인 겉모습과는 다르게 치기어린 성격도, 모든 것에 끌렸다.

과거 나는 자각할 틈도 없이 그의 언변에 홀려들어갔고, 성경의 이야기 속, 카인과 아벨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꾸밈없이 드러냈고 또 나의 마음을 바랐다. 사쿠마 선배가 굳이 바라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오래 전부터 그에게 향해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와 사랑의 연인이 되기도 전에 입을 맞췄고, 몸을 부볐고, 육체의 연인이 되었다. 그때는 선배도 학교를 재학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너도 표식을 갖게 되는 거야, 코우가. 너만 남았어. 알을 깨고 나온, 표식을 갖게 될 사람."

"사쿠마 선배랑 똑같은?"

"그래."


그에게 표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물으려던 순간,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어느새 나는 그의 집 정문 앞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으리으리하고 고풍스러운 정문 앞에는 새 모양의 표식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선배가 말한 표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선함과 악함의 경계에서 머물러있는 자들만이 자아를 깨닫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저 표식이라고. 사쿠마 선배는 정문의 문을 열고 나를 밀었다. 큰 크기의 정원은 크기에 비해 제법 깔끔했다. 조금 텅 비어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서야 성인이 된다는 것에 조금 실감이 가기 시작했다.


"머뭇대지 말고 들어가. 네 녀석 친척들도 오냐?"

"뭐, 겨우 성인식 가지고 오겠어? 아마도 안 오실걸."

"그럼 내 곁에 꼭 붙어있어. 너, 어차피 우리 일족에게 인사도 나눠야할테고."

"응? 내가 왜 선배네 가족한테…"


쉿. 그만 말하라는 듯 그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빙긋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만 같았다. 왜 선배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나눠야하는지에 대해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를 따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옳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겉모습부터 낯설고 하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온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바깥의 하얀 페인트칠과는 달리 내부의 벽지는 검었다. 그 검은 풍경 속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내게로 향한 시선들은 사쿠마 선배와 똑같이 붉은 눈을 가진 자들의 것이었다. 압도된다는 것을 처절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심장 소리마저도 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라면, 들릴지도 모른다. 모든 자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해있던 그때. 선배가 그들을 향해 웃었다. 딱히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러자 그들의 입꼬리에도 미소가 번졌고, 나를 향한 시선은 거둬졌다. 그것이 어떠한 무엇이었다고, 나는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오싹했다. 선배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저들과 똑같은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이제 됐어, 코우가. 저들이 너를 봤으니까."

"…무슨 말이야, 사쿠마 선배?"

"글쎄? 나중에 다 이해하게 될 거야. 아, 그래. 일단은 성인식 장소로 갈까."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에 의해 어딘가로 향했다. 길게 펼쳐진 계단을 쭉 오르자 거대하고도 공허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 공간에 들어서자, 머리가 아려올 정도로 달콤한 향이 코 언저리에 맴돌았다. 그리고 고급스런 양탄자 위를 가로질러 들어가자, 금색으로 칠해진 옻의 장식장, 그리고 그 위엔 작고 아름다운 성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작은 별 문양 몇 개도 그려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성배에 정신이 팔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사쿠마 선배가 오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이, 뭘 그렇게 가만히 쳐다봐."

"아… 저 성배, 예쁘길래."

"원한다면 줄까? 어차피 코가 네 것이 될 테지만."


저 성배가 왜 나의 것이 되지? 그것에 대해 물어보자, 선배는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또 회피한 것이었다. 그에게 무언가 한소리라도 하려던 순간,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진한 향에 숨이 막혔다. 나는 입을 다시 다물었다. 저 아름다운 성배가 내 손에 들어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래, 좋은 일이니 굳이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그가 성배의 옆에 위치한 작은 나무 문을 열었다. 선배가 내게 오라는 듯 까딱, 손짓했다. 나도 그 나무 문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아니 회색인 분위기라고 하면 다 표현할 수 있으리라. 요상한 장식들과 시나몬 향이 나는 곳이었다. 그의 집은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신비했기에, 사쿠마 레이에게 딱 어울리는 집이 아닐까 싶었다. 선배가 서랍에서 검은색 면사포를 꺼내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면사포를 내 머리 위에 둘렀다.


"…예쁘네, 코가. 신부 같아."

"윽, 부끄럽게… 그런 말 하지 마. 검은색 면사포네?"

"어, 성인식을 위해 준비했거든."


머리칼과 함께 면사포를 정리해주는 그 손길이 워낙 섬세해서, 그는 우리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모르는 듯했다.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내 심장 소리가 아마 바깥까지 튀어나갔을 것이다. 부끄러움에 내가 고개를 숙였을 때, 그는 손가락으로 나의 턱을 유련히 들어올렸다. 오늘따라 그는 더 비밀스럽다. 감히 나로서는 궁금증도 갖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또 신비하다. 그가 가만히 나와 눈을 마주치다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가 입을 맞췄다. 가볍게 혀가 얽히고 나서야 그는 입술을 떼었다. 입술이 붉게 적셔진 그 느낌이 좋았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의 눈이 어느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욕구로.


"…이따 다시 하자. 그때는 성인으로써."

"으응… 사쿠마 선배."

"이제 나가지. 의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벌써? 그 잠깐 사이에 의식이 준비되어 있을리가 없잖아.

내가 반문하려던 순간이었다. 그가 나무 문을 열고 내 손을 다시 잡아 올렸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믿겨지지 않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완전히 텅 비어있던 장소가 꽉 채워져 있었다. 달콤한 향은 더욱 세게 퍼지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보인 사람 중 대부분이 내게 뚫어지라 시선을 보냈던, 선배의 일족들이었다. 천천히 나는 성배의 앞으로 다가갔다. 선배 또한 웃음을 띠고 나의 맞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면사포를 쓰고 검은색 장갑까지 낀 내 모습은 낯설었다. 어딘가 퇴폐적이었으며, 나 자신이 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것은 필시 며칠 전부터 꿔왔던 그 꿈 때문일 것이다. 꿈 속의 나오는 금색 빛의 갈발 만큼은 뚜렷이 기억이 났다. 그 여인의 형상을 한 남자인, 육체의 연인인, 나의 꿈 속의 「그」 때문이었다. 내 자아를 깨뜨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꿈 속의 연인이었다, 바보 같게도!


"자, 코우가. 그 성배에 든 것을 마셔. 한 방울도 남김 없이."

"…이게, 뭔데?"

"피."


거짓말. 그런 걸 마시라고 할리가 없잖아. 성인식은, 원래 이런 거야? 원래…

내가 성배를 드는 것을 망설일수록 선배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시리도록 싸해진 시선이 모조리 나에게 향했다. …이상하다. 모든 게 이상하다. 어째서 이렇게 몽롱할 만큼 달콤한 냄새가 나는 걸까. 대체 어디에서. 왜, 성배의 안에서 이 냄새가 풍기는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유혹적인 향 앞에서 나는 망설이다 성배를 들었다. 작은 성배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 성배 속에 내 얼굴이 비췄다. 붉은색 시선들이 두려웠다. 어딘가에 구속된 듯한 느낌에 떨리는 손으로 나는 성배를 들어 올렸다. 찬란한 금색 성배에 내가 만지는 곳마다 때가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촉박한 느낌에 나는 입술로 성배를 가져다댔다. 피가 흘렀다.



꿀꺽.



나는 무엇을 꿀꺽 삼켜버린 걸까. 성배에 비춰보이던 '나'를?

모두가 환호했다. 선배의 일족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웃었고, 그 적대적이던 눈빛들은 모두 호의로 변해 있었다. 그 한순간의 태세 전환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사쿠마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주욱 입을 늘어뜨려 활짝 웃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그는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만 빼고 이 공간의 모두가 웃고 있었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성배에 든 것을 마시자 거짓말처럼 맴돌던 달콤한 향이 사라졌다. 귀에서는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걸 선포하는 둥의 내용의 글을 누군가 읽고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 내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거짓 웃음을 띠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복도에 나왔다. 성인식 의상이 나를 속박하는 것만 같았다. 이상할 만큼 답답했다.

마셨던 피가 달콤한 맛을 냈다가, 입 안에서는 그저 쓰디쓴 맛으로 감돌았다. 속이 울렁댔고, 내가 삼켰던 '나'는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꾸물꾸물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 자아를 내가 삼켰다. 나는 겨우 화장실로 걸음을 옮기며, 금방이라도 나올 구역질을 막기 위해 입을 가렸다. 내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라."


그때, 어떤 나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무도 없던 복도에 누군가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자, 나는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긴 머리의 밝은 갈발을 가진 남자.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가 내 꿈에 나왔던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눈이 마주친 채로 있었다. 그가 먼저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꿈에서처럼 유혹적이었으며 색정적이었다.


"네가 바로 코가 군이구나~?"

"당신… 누구야. 내 이름을 알아? 왜?"

"물론, 알고 있지. 내 꿈에도 코가 군이 나왔거든."


남자가 씩 미소 지으며 내게로 가까이 다가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몸 위로 은근히 느껴지는 그의 손길이 나를 유혹하는 듯 싶었다. 어느샌가 그와 마주하고부터 입 안에 감돌던 구역질이 모두 사라졌다.

꿈 속에 나왔던 모습과 똑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꿈 속에서는 헐벗고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신부처럼 살을 내놓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내 눈 앞에서 자꾸만 아른댔다. 그의 눈웃음은 아름다웠고, 날카로워 보이지만 또 순진한 그 모습이 나를 홀렸다.


"내 이름은 하카제 카오루야. 편하게 불러, 코가 군."

"……하카제 씨."

"여전히 못 믿는 눈치네~ 왜,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하기만 하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화려한 외모와는 정반대로 귀부인 같은 옷 차림새를 한 주제에 퇴폐적이다. 가슴이 뛰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를 색욕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꿈의 환영이 자꾸만 눈 앞에 어른거렸다. 헐벗은 채로 내게 다가오던 그의 모습이.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뒷걸음질 하자, 그가 자신의 긴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넘기며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순식간에 그에게 압도되어 나는 숨도 쉬지 못했다.


"나랑 잘래?"


그가 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매고 있던 리본이 힘없이 풀렸다. 곧 단추가 풀리고 가슴이 드러났다. 그 동안에도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온 정신이 팔려 있다가, 그가 내게 입을 맞추려는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는 고개를 홱 돌리고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이 하카제 카오루라는 남자는, 동양의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구미호처럼 느껴졌다.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웃음을 띠고 유혹하는 꼴이. 너무 위험했다. 이젠 입 안에서 단 맛이 나기 시작했다. 몽롱한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겨우 눈에 힘을 주고 나는 그를 떨쳐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당신…! 내가 그런 말에 넘어갈 것 같아?"

"왜, 이미 넘어왔으면서. 우리는 꿈에서 만났잖아. 꿈에서 우리는 연인이었잖아?"

"아니… 아니야, 나는,"


그 순간,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눈동자를 돌려 그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꿈 속의 남자 또한 눈을 도르륵 돌려 문을 응시했다. 문을 쾅 닫은 후 여유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다름아닌 선배였다. 선배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 눈빛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빛났다. 나는 움츠라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하카제 씨를 밀어냈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코우가."

"사쿠마 선배…"

"저 새끼는 왜 네 옆에 있는 거고. 설명해."


선배는 말끔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속내는 이미 여유를 잃어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먹이 꽉 쥐어져서는 힘줄이 여러 군데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 새끼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제대로 불러봐. 어머니라고."

"하, 네놈이? 이 몸의? 헛소리도 정도껏 해, 남창 주제에."

"응, 그런데? 그게 뭐가 나쁜 건지 알려줄래?"


사쿠마 선배가 헛웃음을 짓다가, 곧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창이며 어머니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둘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감정 가운데서, 내 몸은 어느새 하카제 씨의 손에 붙잡혀 끌어당겨졌다. 내 모든 걸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야릇한 눈빛을 한 그는 또 다시 나를 어루만졌다. 천천히, 노골적이지도 소극적이지도 않은 그 손길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꿈 속의 남자가, 연인이 나를 만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쿠마 선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지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외면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내 모든 게 욕정으로 인해 더럽혀졌다. 손에는 땀이 어렸다. 그걸 눈치챈 듯이, 하카제 씨는 내 손을 잡았다. 땀이 나다못해 흐를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대는 바람에 나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마주칠 사쿠마 선배의 눈이 두려웠다. 하카제 씨가 방긋 눈을 접어 웃었다. 이미 나는 그에게 완전히 홀려 있었다.


"조금도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네, 코가 군? 맞아. 내가 몸 팔아서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거."

"…그런 걸 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그는 대답 대신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 숨결이 바짝 와닿을 때마다 입술이 말랐다.


"내일 내 방으로 와줘, 코가 군. 꿈 속에서 하던 거, 마저 해야지?"


그 말과 함께 하카제 씨는 내 허리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돌아섰다. 별다른 인사를 하진 않았다. 눈빛을 마주치기만 해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눈으로 좇다가,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쿠마 선배의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옷 위의 리본은 아까 하카제 씨의 손길로 풀려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선배가 리본이 풀린 흔적을 바라보더니 또 한 번 웃었다. 물론 웃음의 원인이 기쁘거나 행복하여서, 등의 감정이 아니었다. 단순히 화를 웃음으로 표현한 것 뿐이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 위를 꽉 조여오는 악력에 어깨가 아릿거렸다.


"성인식, 해야지."

"이미 끝난… 거 아니었어?"

"끝났어. 이 몸이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우리끼리의 성인식을 거행하자.

아까 선배가 하던 말과 일치했다. 그가 손을 뻗어 리본을 바닥 아래로 떨어뜨렸다. 검은 셔츠가 풀렸고 난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선배의 손에 의해 내 고개는 올려졌고, 그 탓에 그의 눈과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회개해야 했다. 한순간이라도 하카제 씨에게 넘어가, 홀렸던 나 자신을. 회개해야한다. 사쿠마 선배가 나에게 손을 뻗으면, 모든 게 깨끗해지니까.


"…내 방으로 가자."


그가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미처 다 끄덕이지도 못한 때 그는 입을 맞추고, 복도의 벽 쪽으로 나를 밀었다. 도망치지 말라는 듯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곤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너무도 급해보였다. 덩달아 나까지 급해져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에게 안기다싶이 하여 쉴새없이 입을 맞췄다. 질척하게 입가가 스며드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노골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에 온 몸이 이상해져 눅진거렸다. 복도에서 이런 키스를 나누고 있단걸 누가 볼까 두려워졌다. 나는 그의 옷자락을 겨우 잡고는 그에게 의지하여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선배는 눈을 지그시 뜨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급히 문을 잠갔고, 나는 두 다리를 은근히 꼬며 욕망에 절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선배 또한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나를 침대의 위로 눕혔다. 푹신한 감촉이 등 너머로 느껴졌다.


"코우가……"


꽤나 애처롭게 들려오는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손길은 거칠었다. 모든 게 거추장스럽다는 듯 옷을 들춰 구석구석에 입을 맞췄고, 내가 어떠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하얀 침대보 아래로 검은색 옷들이 흩어졌고, 나 또한 그의 옷을 벗기려 애썼다.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선배는 이로 유두를 잘근거렸고, 한쪽 손으로 내 다리를 활짝 벌려냈다. 치부가 모두 드러난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이 화악 화끈거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안을 벌려내고는 노골적으로 그것을 훑었다. 끈적한 눈빛을 하고는 그가 웃었다.


"…혼자 해봐, 이 몸이 하나하나 봐줄테니까."

"그게 무슨…! 읏,"


선배는 풀어지지 않아 뻑뻑한 입구 안에 손가락을 들이밀고는 빙그르 돌렸다. 아픔에 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곧 그 눈빛에 압도되어 나는 겨우 다리를 벌리고 손을 입구 쪽으로 뻗었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고는 망설이고 있던 내 손에 윤활제를 부었다. 그의 끈적한 시선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손가락에서 윤활제가 흘렀고, 이 분위기에 목이 탔다.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내 것은 꼿꼿이 서서는 움찔대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수치스러웠다.


"뭐해, 안 하고. 다른 새끼랑 얘기한 벌은 받아야지, 응?"

"그런 거 아니야… 아, 으응…"


그런 게 아니면 뭔데. 선배가 읊조리며 내 손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끈적한 윤활제가 손을 타고 흐르다 점점 스며들어갔다. 찌걱대는 소리가 손가락을 넣었다 빼낼 때마다 울렸다. 혼자서 하고있는 모습을 사쿠마 선배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가만히 들 수가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들라고 나지막히 말할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숙였다. 뜨거운 열기에 미칠 것 같았다. 이게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자꾸만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손짓에 입 밖으론 신음이 나왔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하, 아… 서…언배, 사쿠마 선배…"

"기분 좋아?"

"응…"


그와 시선을 마주하자 미칠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떨려서, 모든 걸 잊었다. 애타는 신음이 헛돌수록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나는 배 위에 허연 액을 토해냈다. 울컥대며 정액을 내뱉는 것을 보자니 여전히 기분이 간질였다. 나는 그를 원했다. 사쿠마 선배를 원했다. 내가 손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나를 원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름답게 웃었다. 마치 독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나를 안았고, 그의 것을 내게 밀어넣었다. 하나가 된 느낌에 숨이 턱 막혔다. 눈물이 툭 떨어진다. 눈물이 떨어지자 이상하게도 이제서야 지금까지 잊고 있던 것이 다시 기억났다. 하카제 씨. 그는 대체 무엇일까? 왜 내 꿈에 나왔고 왜 현실에서 마주한 걸까? 아니… 잊어야만 했다. 그는 나를 교란시키는 사람이다. 내겐 사쿠마 선배만이 전부다. 그렇게 생각함에도 자꾸만 머리 속에는 하카제 씨가 불현듯 떠올랐다. 선배는 상냥히 눈물을 닦아주며, 귀에 속삭인다.


"…이 몸에게 집중해. 코가."


그의 눈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 나는 그제서야 집중할 수 있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온 몸은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내 목에 이를 욱여넣었고, 그럼에도 나는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피가 목을 타고 쏟아졌다. 아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온 몸을 파르르 떨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걸 지우개로 지운 마냥 머리가 새하얘졌다.


"너는 내 반려伴侶야."


선배의 황홀한 표정만큼은 볼 수 있었다. 그가 기분 좋은듯 활짝 웃었다. 내 몸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다시 여러번 입 맞추며. 그에게서는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아니, 내게서 나는 맛일지도 모르겠지만, 피 맛이 났다. 그것이 나쁘진 않았다. 그의 눈이 이상하게도 선명히 붉게 빛났다.


"영원히 함께 하자."


또 한 번의 파정 끝에 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나는 다시 한 번 피를 삼켰다. 아니, 정확히는 피 맛이 나는 타액을 삼켰다. 아까와는 달리 입 안에선 아무 맛도 감돌지 않았다. 아까 보았던 성배가 선배의 방 안에는 똑같이 놓여 있었다. 그 성배에 대해 물을까 생각했지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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