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Exes be Friends?


K 내일 뭐해?

B 똑같지, 뭐. 그건 왜?

K 아니, 그냥. 아무 일 없어.

B 연차 쓸까?

K 아니야. 제발 그러지 마.

B 쉰다고 연락할게.

K 그러지 말라니까. 나는 – 아,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커크는 고개를 돌려 본즈의 시선을 피했어. 그리고 앞에 놓은 종이컵에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지. 상담사는 메모하던 펜 뚜껑을 딸깍 소리가 나게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블라인드를 끝까지 위로 올렸지. 따듯한 햇살이 들어오고 나니 마음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어. 커크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본즈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어. 둘은 다퉜던 날을 재연해보고 있는 중이었어. 이미 몇 년이나 지났는데 기억이나 날까 싶었지만, 몇 마디를 나누기도 전에 기억은 물론이고 감정까지 생생하게 돌아왔지. 괜찮아? 그렇게 묻는 본즈를 보면서 커크는 이건 과거의 일일 뿐이라는 걸 다시 자기에게 상기시켰어.

 

K 아무튼 그러지 마. 출근해.

B 내일 있는 일이, 연극이었나?

K 야, 잠깐만. 넌 이 땐 내가 그거 준비하는지 알지도 못했거든.

B 그랬어?

 

K 다시 해. 아무튼 그러지 마. 출근해.

B 알았어. 미안해.

K 본즈, 그렇게 말하지 좀 -

B 왜 그래.

K 아니야. 별 일 아니니까 이 얘긴 그만하자.

B 사랑해.

 

K 본즈, 너 그 말도 한 적 없거든.

B 그래도 하고 싶었어.

K 진짜, 너는.

B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했을 거야?

K 꺼져.

B 정말?

K 응. 당연하지.

 

커크는 본즈의 발을 강하지 않게 툭 찼어.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어. 어릴 때 했던 대화들을 되짚고 있자니 약간은 우스워진 기분도 들었어. 분명히 예전에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을 냈을만한 말이었는데도. 커크는 본즈의 입술을 살짝 봤어. 늘 화해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 하지만 대신 주먹을 내밀었어. 본즈는 유치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살짝 부딪혀줬어.

 

K 아무튼 다시 시작해.

B 어디부터?

K 거기.

B 응?

K 못 알아들은 척 하지 마.

B 알았어. 사랑해.

 

 

 

 

 


“제발 그만 좀 해.”

“지미. 나는, 나는 그냥...”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 해.”

“알았어. 미안해.”

“또. 또 하잖아. 또 했다고.”

 

커크는 계단에 주저앉았어. 가까이 다가오려는 본즈에게는 손을 뻗어서 막았어. 겨울이라 해가 짧았어. 시간은 기껏해야 오후였지만 초저녁이라도 된 것처럼 집안은 캄캄해지고 있었지. 본즈는 오랜만에 일찍 교대를 하고 집에 들어왔어. 이 날을 커크보다 더 기다린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런데도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둘은 또 싸우고 있었어. 커크는 한숨을 내쉬고 옆에 놓인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일어섰어. 그리고 자기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본즈를 그냥 지나쳐 걸었어.

 

“어디 가.”

“학교.”

“....그래. 알았어.”

 



커크는 옆자리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어. 학기 초였는데도 벌써부터 자리가 꽤 차있었지. 커크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하나 꺼내서 앞에 놓았어. 그래 놓고는 손도 대지 않고 펜 뚜껑 끝을 노려보고만 있었어. 숨을 돌리고 나니 미뤄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어.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쉬니 대각선 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커크를 힐끗 째려보는 게 느껴졌어. 커크는 펜을 들고 뭔가를 쓰는 체했어. 의미 없는 낙서들을 그려놓다가 공책을 죽죽 그었지. 커크는 등 뒤에서 툭툭 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어. 옆에 자리 있냐는 물음에 커크는 얼른 웃으며 가방을 치웠어. 그리고 몇 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다시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지. 찬바람이라도 조금 쐬며 걸으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커크는 핸드폰 화면을 계속 켰다 껐다 했어. 커크는 아까 자판기에서 뽑았던 콜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어. 그새 다 마셨는지 몇 방울 떨어지지 않았어. 커크는 캔을 건너편에 있는 쓰레기통 안으로 던졌어. 캔은 끝에 맞고 튕겨져 나왔지. 오늘따라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어.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고 핸드폰이 웅웅 울렸어. 커크는 얼른 화면을 켜서 확인해봤지. 술을 마시러 가자는 친구의 문자였어. 커크는 그냥 핸드폰을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어. 지금 커크가 가장 짜증이 나는 건, 본즈랑 보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아까운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는 거였어. 결국 커크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어.

 

 

“왔어? 밖은 안 추워?”

“응.”

“내가 잘못했어.”

“네 잘못 없어.”

“난 정말 일은 그만둬도 상관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미.”

“난 괜찮아.”

 

 

 

 

 

 

 

K 난 괜찮아.

B 아닌 거 알아.

K 진짜야.

 

B 뉴욕 도착하면 전화해.

K 핸드폰 꺼둘 거야.

B 그럼 내가 할게.

K 바보야. 꺼두면 전화 받지도 못하거든. 됐어, 난 일주일 동안 자유야.

B 그건 안 되지. 전화 할게.

K 전화는 왜 하는데.

B 애인이 안심을 안 시켜줘서.

 

K 그럴 거면 따라오던가.

B 지미, 그건 내가 -

K 농담이야.

B 미안해.

K 아, 진짜. 그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할 수 없어?

 

B 지미? 난 그냥 연기하는거야.

K 알아. 나도거든.

B 물이라도 마실래?

K 화낸 거 아니야.

B 그래, 알았어.

K 진짜야. 화낸 거 아니야.

 


커크는 본즈가 뚜껑을 열어 건넨 페트병을 받아들었어. 그리고 입이 빵빵해지도록 물을 가득 입에 물었어. 그 때 싸웠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돌아왔어. 억지로 지웠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지워졌는지 그동안은 본즈를 매일 보면서도 많이 잊고 있었거든. 이렇게 열을 내다가 커크는 혼자 가만히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어. 사랑해, 본즈. 열이 다 식고나면 커크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 둘은 키스로 화해를 대신했어. 다음날 아침 같은 침대에서 일어날 때까지는 그렇게 좋은 관계가 지속됐어. 하지만 그 평화는 며칠 가지 않았지. 본즈는 가끔씩은 네가 원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곤 했어. 그건 커크가 가장 진절머리를 내는 말이었어. 나한테 얼마나 더 책임을 지울 셈이야?

 

 

이건 성격 검사 결과지에요.

K 아, 네. 감사합니다.

B 감사합니다.

반대로 드렸어요. 제임스 씨는 레너드 씨 결과지를, 레너드 씨는 제임스 씨 결과지를 받으신 거에요.

K 네. 흥미롭네요.

파트너에게 가장 잘 들어맞는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걸 한 문장씩 읽어주세요.

K 아. 잠시만요. 너도 읽어봐. 나만 보지 말고.

B 읽고 있어.

 

 

K 나부터 할게.

B 그래.

K 변화하길 싫어한다.

B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거겠지.

K 그거나 그거나. 너도 읽어.
 

B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이다.

K 뭐야. 간지럽게.

B 너도 해.

K 현실적이고 신중하다.

B 네가 너무 거침없는 거야.

K 그러시겠죠, 아저씨.

 

B 대인관계가 좋다.

K 내가?

B 너 친구 많잖아.

K 아닌데. 너밖에 없어.

B 헛소리 하지 말고 읽기나 해.

 

K 알았어. 책임감이 강하다.

B 안심이 안 되는데 책임져야지 어떡하겠어.

K 아닌데? 내가 언제. 그런 적 없어.

B 여기 딱 맞는 거 있네. 실용적인 기술이 부족하다.

K 무슨 소리야. 나 이제 요리도 잘해. 다음에 보여줄게.

B 안 믿어.

 

K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B 음

K 아닌가? 그럼 다른 거. 변함없이 충실하다.

B 그래, 고마워.

K 천만에. 너도 해.

B 충동적이다.

K 뭐야. 좋은 거 해줬더니.

B 알았어. 창의적인 일을 선호한다.

 

 

K 화목한 가정을 중요시한다.

B 뭐, 그렇지.

K 미안. 난 그냥 진지한 관계를 중요시한다고 말하려던 건데.

B 그렇게 이해했어. 괜찮아.

K 너도 해.

B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K 그건 누구나 그래.
 

B 속박을 싫어한다.

K 아닌데? 좋아해.

B 지미. 그거 내가 생각하는 속박 맞아?

K 넌 날 너무 잘 알아.

 

 

 

 

본즈가 바로 병원에 들어 가봐야 해서 커크는 집까지 천천히 걷기로 결정했어. 1시간 정도가 걸릴 테지만 자전거를 집에 놓고 오기도 했고,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걸을 만하겠다는 판단이 섰어. 커크는 음악 어플을 켜서 차트 순서대로 음악을 틀었어. 잔잔한 사랑 노래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왔지. 커크는 가사를 듣기 위해 음량을 두 칸 더 올렸어. 커크는 마지막에 본즈와 검사 결과를 주고받으면서부터 둘의 성격 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어. 그리고 결과지 밑에 덧붙여진 글씨들을 읽다가 자신의 성격 유형을 발견했어. 로맨스, 양립하지 않음. 상담사는 이건 단순히 하나의 검사일 뿐 현실에서는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기 마련이라고 말했지만.

 

커크는 티비를 켜놓고 소파에 털썩 앉았어. 티비에서는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지. 커피테이블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사온 맥주 한 캔을 올려놨어. 커크는 가끔씩 구경하곤 하는 익명 사이트에 들어갔어. 헤어진 애인과 다시 만나도 괜찮을까요, 라는 제목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어. 와이파이가 또 말썽인지 로딩이 한참이나 걸렸어. 커크는 시끄럽게 득점을 축하하고 있는 티비를 다시 껐어. 맥주를 따서 한 모금을 마신 후에야 로딩이 끝났지. 커크는 얼른 스크롤을 내려 봤어.

 

미친 짓이에요

놓아줘야 될 때는 놓아줘야죠. 마음 정리하세요.

깔끔하게 끝내세요.

절대 하지 마세요. 깨끗이 포기 하셔야죠.

굳이...

냉정하게는, 아니요.

다시 같은 이유로 헤어질걸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면 90프로는 잘 안 돼요.

가능성 없어 보이는데요.

사람마다 다르죠. 시도해보세요. 전 지금 남편이랑 그렇게 결혼했어요.

 

 

커크는 거기서 스크롤을 딱 멈췄어. 위에 달려있는 수십 개의 부정적인 댓글보다 하나의 긍정적인 댓글이 더 눈에 확 들어왔어. 커크는 비추천이 23개가 찍혀있는 댓글에 첫 추천을 눌러줬어. 커크는 90프로는 잘 안 된다는 댓글로 다시 스크롤을 올려봤어. 다시 읽어봐도 숫자는 100이 아니라 90이 맞았지. 10프로는 잘 된다는 거잖아. 커크는 그 댓글에도 추천을 눌러줬어. 어떤 과학적 정확성도 없는 댓글이었지만 말이야. 마침 상단바에 알림이 울렸어. ‘레너드 맥코이님이 회원님의 프로필 사진을 좋아합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본즈는 가끔씩 이렇게 페이스북으로 커크를 놀래켰어. 촬영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가면, 커크는 둘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지곤 했어. 로비에서 기다리다보면 숨을 헐떡일 정도로 울며 나오는 사람들이나 복도에서까지 싸움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거든. 사실 본즈랑 나는 다시 좋아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커크는 오랜만에 그 생각을 했어. 우리가 그 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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