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이하여 간만에 낮잠을 늘어지게 자던 커크는 패드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딱 달라붙은 것만 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떠 패드를 더듬어 찾았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커크는 화면에 뜬 ‘Karl’s John’이라는 이름(워낙 흔한 이름이었으므로, 존을 처음 알게 된 날 저장했던 이름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부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을 잠깐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으음...... 존. 안녕.”

-........미안해 짐. 자고 있었어?

“괜찮아, 그냥 낮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침대에 다시 벌렁 드러누웠던 커크가 존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벌떡 일어난다. 아닌 게 아니라 존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있었다. 커크는 제가 잘못들은 게 아닌지 존에게 물었다.

 

 

“존? 여보세요?”

-... 미안해. 그냥... 그냥 전화한 거야. 괜찮아.

“존, 제발 말해줘. 무슨 일이야. 내가 갈까?”

 

 

분명히 존이 울고 있었다. 커크는 앞뒤 안 재고 침대를 박차고 나와 아무데나 널브러져 있는 바지를 주워 입고 셔츠에 팔을 꿰어 넣으며 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나 옷 다 입었어. 30분이면 도착해.”

-오, 아냐, 짐, 오지 마, 괜찮아. 진짜로.

“기다려, 금방 갈게.”

 

 

 

정말 괜찮을 거였으면 존이 저에게 전화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지, 혹시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커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글이 해도해도 너무 안 풀리거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거나, 혹은.... 칼과의 관계에 관련된 것일지도 몰랐다. 커크는 아주 잠깐,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지금 이 걱정되는 기분 속에 기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살짝 스쳐지나간 걸 깨닫고 스스로를 경멸했다. 그러나 경멸의 시간도 잠시였다. 커크는 우선 존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해 뛰다시피 내려가 차의 시동을 걸었고 바로 출발했다.

 

 

 

 

 

 

 

 

 

 

 

 

 

정신없이 달려 30분 거리를 20분 만에 주파한 커크가 차를 칼과 존의 집 차고 앞에 대강 대고 뛰어내려 현관문을 두들긴다. 그동안 커크는 존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고, 잠시 후 존이 문을 열고 나왔다.

 

역시 존은 울고 있었다. 커크는 빨갛게 젖은 존의 눈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존의 어깨를 잡고 안색을 살폈다.

 

 

 

“존, 무슨 일이야? 응?”

“...... 짐..”

 

 

 

커크는 울먹이며 제 이름을 부르는 존에게서 진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커크는 입술을 깨물고 우선 존을 집 안으로 들였다. 커크가 이끄는 대로 집으로 들어온 존은 비틀대며 거실의 소파 위로 쓰러지듯 앉았다. 커크는 거실의 커피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술병과 잔을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저랑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후론 존이 술을 안 먹는다고 칼에게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존, 제발, 무슨 일 있는 거야? 얘기해줘, 걱정된다고.”

“..... ..... 짐, 존나 멍청한 소리인 건 알겠는데...... 너무 외로워.”

“....... 그게 왜 멍청한 소리야.”

“칼이 답장을 안 해..... 그리고 전화도 안 받아...”

 

 

커크가 아, 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다행이 아주 큰 일이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오늘 무슨 수술이 있거나 한 거 아니고?”

“그치만.... 그치마안...”

 

 

존의 눈에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커크는 허둥지둥 존에게로 다가가 존을 안아주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존은 술기운이 더해져 어린 애처럼 히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칼이... 흑... 3일째 집에 안 들어온 거 알아, 짐? 수술이 길어져서... 병원에서 자고, 또 근무일이 돌아오고, 또 수술이 있었대. 그리고 이제는... 흐윽... 흑, 전화도 안 받아.”

 

 

커크는 최근 칼과 연락을 주고받은 게 없어 뭐라 말해야할지 몰랐다. 연인에게도 제대로 연락할 시간이 없었는데 하물며 저에게 뭘 말했을 리가 없어, 커크는 그저 존을 다독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아마 존이 언뜻 말하기를 계속 글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스트레스에 술에 칼과의 상황이 문제겠거니, 커크는 짐작했다. 하지만 커크는 칼을 잘 알았다. 칼이 얼마나 존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아는 커크는, 존에게 오해할 필요 없으며 칼이 시간이 나는 대로 당장 전화를 할 거라고 존을 달랠 생각이었다.

 

 

 

 

그러나, 존에 대한 걱정으로 마구 밟아 달려온 탓에, 그리고 품 안에 존을 안고 있는 탓에... 그의 심장이 벌컥벌컥 뛰기 시작했고, 커크의 판단력이 흐려진다. 커크는 웬일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저 존을 계속 제 품 안에 껴안고, 술기운과 울음으로 빨갛게 된 눈가에 입을 맞추고, 아래의 입술로 입을 옮겨, 존을.....

 

 

 

“........... 짐..”

 

 

 

 

커크가 아무 말 없이 존을 바라보자, 존이 울음을 멈추고 코를 훌쩍이며 커크를 마주 바라본다. 커크는, 지금 왠지 존이 저를 밀어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커크의 턱이 잠시 떨렸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존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흐읍....”

 

 

 

깜짝 놀란 존이 버둥거렸지만 커크를 전력적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개를 틀고 입을 벌려 커크의 키스를 맞이했다. 커크는 뇌가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는 한 팔로는 존의 어깨를 휘감아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존의 뺨을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 존의 손이 미약하게 커크의 가슴을 짚었지만, 여전히 그 손에 힘은 없었다.

 

 

 

커크는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누구와의 키스도 이렇게 달콤하지 않았다. 술 냄새가 지독한 키스가 이렇게도 기분이 좋을 줄은, 커크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존이 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커크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이 느껴졌다. 죄책감과 쾌락, 기대감이 한데 뒤섞여 쏟아져 들어오는 감정과 기분의 홍수 속에서 그는 더욱 깊이, 진하게 존의 입 안을 헤집었다.

 

 

 

“하아, 흣, 짐...”

 

 

 

얼마나 지났을까, 존이 간신히 고개를 틀어 커크에게서 떨어진다. 그러나 커크는 여전히 존을 꽉 끌어안은 채였다. 존은 커크의 새파란 눈이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술기운에 잠식된 뇌는 안타깝게도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다. 그는 제가 외로울 때 저를 챙겨주고, 달려와준 커크를.... 밀어낼 수 없었다.

 

 

 

“존.”

“......”

“싫으면 지금 말해줘.”

 

 

 

그러면 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

 

 

 

커크가 가라앉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존은 그 목소리에서 깊은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존의 몸이 뜨거워졌다- 너무나 바쁜 연인 탓에 성적인 접촉은커녕 키스도 안 한지 오래였다. 존은 외로웠고, 제대로 취했고, 커크는 명백히 그에게 숨길 수 없는 감정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존은 갈증이 났다. 그래서 존은 커크에게 다시 키스를 퍼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커크는 존을 끌어안은 채로 일어났다. 덩달아 커크의 허리에 두 다리를 감고 매달린 존은 제 허리와 엉덩이를 움켜쥐는 커크의 손을 느끼며 계속 그와 입을 맞추었다. 커크는 존을 칼과 존의 침실로 데리고 가 제 친구와 그의 연인의 침대에 그 연인을 눕히고, 그 위로 올라탔다. 커크의 입술이 존의 온 몸 구석구석을 짓누르듯 입을 맞출 때마다 존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야한 신음을 흘려댔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커크는 존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 남성과의 섹스는 처음이었지만 커크에게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게 커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또 당연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커크는 존이 그를 거부했다면 절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존은 몸을 발그레하게 붉힌 채 할딱이며 커크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못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커크에겐 눈앞의 존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 아프면 말해.”

 

 

커크의 상냥하지만 색정적인 목소리에, 존이 커크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커크는 존의 젖은 눈가에 입을 맞추며 서서히 존의 안으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흑, 으읏, 짐, 아아....”

 

 

 

존이 몸을 비틀며 교성을 질러댄다. 커크는 이러다 아래가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며 제 아래를 꼭 죄어오는 뜨겁고 좁은 곳에 계속 해서 삽입을 시도했다. 한참 후에, 드디어 존이 커크의 아래를 다 품었고, 커크는 눈을 감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커크가 움직이기에 한결 편해졌다. 커크는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이는 와중에도 존의 뺨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존의 신음소리가 한층 더 높아져 갔다. 그러나 그 달콤한 교성이 울음 섞인 소리로 변하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존?”

“..... ...흑...”

“제기랄, 존, 울지 마, 울지 마...”

 

 

 

커크가 바로 허릿짓을 멈추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존의 뺨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존은 결국 흐느끼며 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들어와 버렸어... 어떡해... 어떡해.... 짐, 나 어떡해... 네가.. 들어와 버렸어...”

 

 

 

커크는 마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려 퍼지는 기분을 느꼈다. 곧바로 제 것을 빼낸 커크가 미안하다고 수도 없이 속삭이며 땀에 촉촉이 젖은 존을 끌어안고 계속 입을 맞추었지만 존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존이 승낙했다고 하더라도, 존은 술에 진탕 취한 채였다. 커크는 존의 흐느낌에 제정신이 돌아왔고, 비참할 정도의 죄책감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존을 취해서는 안 됐다. 커크는 비이성적이었던 자신에게 욕설을 지껄이며 존을 더 꽉 끌어안고 끊임없이 사과했다.

 

 

 

“나는 칼이 없으면 안 돼, 난... 나는....”

 

 

커크는 마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혹시라도 존이 저를 받아준 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혼자 설렜던 제 자신이 정말 창피했다. 하지만 존을 탓할 수는 없었다. 커크는, 자신이 이렇게 일을 꼬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정을 배신한 죄책감에, 그리고... 존에게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달은 탓에, 커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존은 여전히 흐느끼며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존을 놀라게 해주기 위해 연락도 없이 일찍 퇴근한 칼은 열린 문 틈 사이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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