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단자







소호당의 후원에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가득찼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어린시절 대련을 할 때 쓰던 목검으로 아침 나절내내 쉬지않고 합을 맞추고 있었다. 탁 탁. 경쾌하게 그리고 빠르게 연달아 검이 부딪쳤다. 긴 목검을 든 이연에 반해 이랑은 어린아이 팔뚝만한 짧은 목검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짧고 빠르게 이연의 목과 빈틈이 생기는 복부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사해팔방 제일 가는 4대 산신인 이연의 검술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이연의 가르침을 받아 군더더기 없는 이랑의 대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휘날리는 옷자락과 검을 휘두르는 둘의 몸짓은 한 장의 화폭 같았다.


가솔들은 모두 손을 놓고 소호당 담벼락에 붙어 이들의 모습을 보는 중이었다. 손에 땀을 쥐는 대련에 모두들 저고리 앞섬을 꽉 움켜쥐거나 양손을 붙든 채 숨을 삼키거나 안도하며 뱉기를 반복했다. 제일 앞에 선 단아는 이연과 이랑 둘 중 누가 승기를 가져가는지보다는 그저 두 팔을 들어 소리없이 환호하거나 손뼉을 치기 바빴다. 수오는 바삐 그 둘의 주위를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돌아다니며 이연이 이랑을 공격하려 들 때마다 위협적으로 컹컹 거리며 짖었다. 이랑이 이연을 정신없이 공격하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엉덩이랑 추켜올린채로 이랑을 응원하듯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얕은 이랑의 발재간을 피한 이연은 크게 몸을 돌아 그대로 두 손으로 검자루를 움켜쥐고 온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이연의 일격을 막아내느라 한껏 몸이 낮춰진 이랑은 짧은 목검 두개를 급하게 교차시켜 잡아 이연의 검을 버텨냈다. 팔꿈치까지 찌르르하고 통증히 고스란히 전해져 이랑은 가쁜 숨을 내뱉었다. 받아치지 못하고 애써 버티는 게 다인지라 벌벌 떨리는 제 손을 무시하려 애썼다. 이랑은 신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동생한테 꼭 이겨야 속이 시원하겠어?”

“전장이었으면 벌써 목이 베여 그 말도 하지 못했겠지.”

“에이씨. 진짜 이렇게까지 할 거야? 보는 눈도 많은데?”


이랑은 흘끔 담벼락 위로 드문드문 올라오는 식솔들을 쳐다보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 더더욱 이렇게 해야지. 형님의 품위라는 것이 있기 않느냐.”

“그놈의 얼어죽을 놈의 품위는 무슨. 어떻게든 동생 이겨 먹으려고 하는 산신이면서.”



힘껏 이연의 검을 밀어낸 이랑은 팔소매로 땀이 흥건한 얼굴을 대충 훔치고는 다시 자세를 다잡았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는 동안, 이연은 여유있게 검은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은 허리뒷춤에 갖다대기까지 했다. 전력을 다하라더니 정작 본인은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 모습에 약이 오른 이랑은 기습적으로 이연에게 달려들어 왼손에 든 검으로 이연의 검을 튕겨내고 오른손으로 든 검으로 정확하게 이연의 목덜미에 찔러넣었다. 둥그스름한 목검의 끝이 이연의 목덜미에 가볍게 톡 닿았다. 명백한 이랑의 한 방이었다. 기세등등해진 이랑이 환하게 웃는 순간, 이연은 아우의 옷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어?”


당황한 이랑이 주춤하는 순간 이연의 주먹이 이랑의 배를 가격했다. 앓는 소리조차 내뱉지못한 이랑은 배를 움켜쥔 채 두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연은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목도를 가볍게 아래 위로 흔들며 크게 원을 그렸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다시 자세를 잡는데 여전히 옆으로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린 이랑이 몸을 옹송그리고 일어나질 않았다. 벌떡 일어나고도 남을텐데 조금 세게 힘이 들어갔나? 이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제야 걱정이 되는 듯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랑아?”


조금 힘이 가했던걸까. 앓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아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펴보던 이연은 이랑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쓰다듬고있던 손바닥이 시커먼 털로 뒤덮이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죽은 척 얌전히 돌바닥에 누워있던 수오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아무렇지 않게 몸을 털고 일어났다. 어쩐지 제가 이길 것 같을 때마다 죽어라고 짖어대던 녀석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싶더라니.


“놀랐어? 진짜 아파서 울 뻔 했어.”


제 바로 등 뒤에서 개구진 이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무지게 목검 두개를 옆구리와 목에 하나씩 바짝 갖다댄 랑이 조잘조잘 신이 나 떠들었다. 믿었던 아우와 성가신 개에게 속아버린 이연은 심기가 거슬렸다. 안 본 사이에 이랑은 요괴다운 잔재주가 늘어있었다. 후, 하고 입바람을 불어 성가시게 흘러내린 앞머리칼을 넘긴 이연은 입술을 앙 다물고 제 허리춤에 꽂혀져있던 부채살이 빨간 부채를 꺼내들었다. 


그대로 몸을 빙그르르 돌려 올려치듯 베어올리자 붉은 섬광과 함께 이랑의 목검이 댕강하고 잘려나갔다. 이연의 일격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만 이랑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황망히 잘려져나간 제 목검을 쳐다보았다. 이랑이 제 형님의 등을 한 번, 제 발치에 나뒹구는 목검을 한 번 번갈아 보더니 빽하니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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