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부터 자매네가 와서 같이 지내고 있다. 1인가구로 살아온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몸은 착실히 익숙해졌나 보다. 식기류가 4인 세트인데 막상 한 끼 차려 먹어 보면, 다음 끼니 때 쓸 게 없어 버겁다. 설거지를 매번 부지런히 해야 한다. 물론 그러지 않고 미루지만.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빨래통을 보면, 속옷이나 양말, 옷의 비율보다 수건 비율이 확연히 늘었다. 기존의 패턴대로 돌리면 쓸 만한 수건이 몇 없다. 가뜩이나 겨울은 마르는 시간이 여름의 배로 걸리므로 빨래 타이밍을 잘 재야 한다. 또 쓰레기통도 그렇고, 바닥 청소도, 물 끓이는 횟수도 그렇다. 스스로를 챙기는 것의 3배로 움직여야 하고 뭘하든 그만큼 손이 커져야 한다. 휴.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다. 나 외에 타인(가족이지만)의 몫까지 책임지는 일. 본가에서는 나름 가장 노릇을 하고 집안일을 도맡다시피 했는데 혼자 사니 규모가 줄었다. 1인분으로.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1인분 노릇을 한다는 건 어떤 걸까? 나를 잘 먹이고 잘 살리는 일? 내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주변을 정돈하는 일? 어영부영 살아지는 대로 살다 보니 이렇게 살긴 하는데 노릇을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느덧 그것들은 내 몸에 착 붙었다. 컨디션에 따라 느슨하고 팽팽해지는 주기가 생길 뿐, 나름대로 날 잘 먹이고 정돈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1인분 노릇은 끝난 거 아닌가?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라는 책에서는 '개전제품'을 언급하며 1인 용품을 설명한다. 

개전제품은 가정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생산된 기존의 가전제품이 아닌, 개인이 혼자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가전제품을 뜻한다. 그런데 밥솥이든 커피포트든 1인가구용이라고 해서 정말로 1인용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대개가 1.5인용이었다. (p.7)

즉 최소한의 여분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1인분의 삶에 필요한 여분은 어느 정도일까. 난 그게 최대 3인까지 가능하다고 봤다. 주로 가족, 지인에 한정해 우리 집에 묵고 가는 경우로.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인원에 더해 붙어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걸 알아챘다. 


2.5단계라 어딜 나가지 못하는 상황, 재택근무가 가능한 상황, 프리랜서로 가끔 외출하는 상황이 맞물리니 온종일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하며 지내게 되는 거다. 기사로 보던 가족 간의 갈등이나 불편함이 조금씩 체감되면서 거리가 간절했다. 그나마 다행은 방이 여러 개라 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단 점이다. 집을 구할 때만 해도 누군가를 재울 목적이었지 분리할 목적은 아니었는데, 의도와 다른 지점에서 좋은 점을 발견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잠자는 방이 아닌 다른 방에 나름의 작업공간이 꾸려졌다. 베란다로 통하는 길목이라 다용도실로 쓴 게 아까울 정도로 적당했다. 크기도, 거리도, 집중도도. 역시 1인가구도 여력이 된다면 2룸 이상에 거주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 


며칠 뒤면 자매네는 돌아간다. 매번 있는 일인데도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일. 가족 곁을 떠나거나 가족이 곁을 떠나거나. 어제까지만 해도 내 시간과 공간이 절실해서 짜증 났는데 오늘은 슬슬 유해진다. 마지막을 알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인지. 그러니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편지를 쓰고 다음을 기약할 미소와 함께. 담백하게. 더불어 다음에는 밥을 먹든 일을 하든 같이 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같이 머무는 존재이지 똑같이 행동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이번의 아쉬움이라면 은연중에 품은 일심동체 마인드다. 며칠 맞춰주고 말 게 아니라면 각자의 영역과 패턴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고민해봐야겠다. 


ps. 자매랑 오락실 고전 게임을 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물론 다 같이 1000피스 퍼즐을 맞춘 일이나 죽마게임을 한 것도 잊지 못할 테고. 그나저나 스파이폴은 언제쯤...



하나 둘씩 튀는 불씨 속에 보이는 우리 추억 더 밝게 빛나고

우리만은 시간에 쫓겨 잊지는 말아요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고마운지


애매하고 모호한 삶 사이를 헤집어 사람을 기록으로 남겨요. 프리랜서 인터뷰어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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