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는 코 위를 덮은 수건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두 시, 그때를 넘어갈 즈음엔 2주에 한 번씩 광활한 먼지 폭풍이 분다. 눈을 뜰 수도, 입을 벌릴 수도 없다. 그것이 먼지인지,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의 잔해일지는 모른다. 그걸 알만한 과학자는 이미 모두 죽은 지 오래다. 혹은 이 지구 어딘가에 있을 쉘터에 존재하던가. 세상이 멸망한지도 벌써 1년 째다. 모종의 이유로 세상 사람들을 어느 순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핸드폰의 전파는 형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터지지 않았고 다른 전자 기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유통기한이 긴 통조림 몇 개와 2L의 물 몇 병.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며 꿈에서 깨어나길 바랐다. 사실은 어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의 실험용 쥐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려했다. 그 시간이 점차 지나고, 다른 집의 문을 똑똑 두들기며 텅 빈 집 안에 '실례합니다' 따위의 인사를 반복했다. 세상에 혼자 남아 총으로 자기의 머리를 쏘는 주인공은 되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결심하기 전에, 총구를 입안으로 밀어 넣기 전에 우선 다른 사람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2241년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저 멀리서 다가오는 먼지 폭풍을 발견하고는 가장 가까운 빈 집으로 들어갔다. 먼지에 뒤덮여 있어도 눈에 띌 만큼 밝은 빨간색의 지붕에, 아담하게 꾸며놓은 문가는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들게 했다. 이 집엔 아마 좋은 사람들이 살았을 거야.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린 문을 닫고 집의 내부로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고요하기만 하다. 나무판자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른다. 코를 막던 천을 내리고, 눈에 썼던 고글도 벗었다. 모자도 한쪽에 함께 벗어두고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처음 집에 들어갈 때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누군가 있을지도 몰라 아주 조심히 들어갔었다. 귀도 기울이고, 벽돌도 던져보고. 바를 정(正)자를 써가며 그런 집의 수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백 개를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잘 세지 않았다. 멸망과 멸망이 아닌 두 가지의 가설 중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전자 쪽이었다. 세상이 멸망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녀야 할지. 바깥보단 먼지가 덜 쌓인 소파 쪽으로 향해 털썩 앉았다. 머리카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고요한 집의 일부가 되기 위해 소리를 죽였다. 책상 위에 다리를 뻗으려는 순간, 노란색 형광펜이 잔뜩 쳐진 전단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 돌봄 아이를 입양해 보세요! 집안일도, 심부름도, 공부도 잘하는 어린 로봇입니다! 심지어 간편하게 건강 진단도 가능합니다! 단돈 ... ]


40년 전 즘이었던가,  인류는 생각하는 로봇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었다. 2000년대 부터 생각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 노력이 지금에서야 결실을 맺어 점차 상용화 되기 시작했었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은 그 로봇들이 점차 많이 담당하게 되었다. 가격을 막 설명하려는 부분이 찢겨 나간 전단지를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아무리 닫힌 실내라지만 바람 속에 섞여 들어오는 먼지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작은 먼지가 전단지를 따라 일렁이듯이 움직였다. 

전단지엔 [커스텀 가능: 외모, 나이, 성별, 체중, 키 / 커스텀 불가능: 성격, 말투, 생식기능... ] 라고 쓰여있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이나 자녀의 또래 친구를 위한 사람들을 겨냥한 상품이었는지 연신 아이, 또래, 교육과 같은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거지? 아들이나. 이런 로봇들은 다 어떻게 되었으려나. 그동안 몇몇을 보긴 했지만, 모두 모래바람에 뒤덮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기계 부품의 모든 틈새에 먼지가 꼈는지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우수수 먼지바람이 일었다. 배터리도 없는 로봇은 금방 전원이 꺼져버렸지만. 솔직한 감상으로는 살아있는 로봇이라도 있으면 했다. 로봇이 살아있다니, 꽤 웃긴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세상에 남은 게 나 혼자는 아니라고,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네들이야 정말로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로봇이니까. 


"말도 안 되지."


한숨을 쉬며 전단지를 잘 접어 비행기 모양을 만들어 아무 곳으로나 휙, 날려 보냈다. 모서리 한쪽이 뜯겨 있던 전단지는 비행기로 만들어도 그 결함을 숨길 수 없었다. 날개 한 쪽이 뜯겨나간 비행기라니. 그 답게 1초도 날지 못하고 나풀거리다 결국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 정말이지. 무릎을 집고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을 살피러 걸음을 옮겼다. 어디에 음식이 있을 텐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먼지가 쌓인 냉장고의 손잡이를 당기면, 그 안에 썩은 음식물들의 냄새가 훅 끼친다. 으. 콜록거리며 문을 다시 닫고는 집 안의 찬장을 살폈다. 그 안의 접시가 찬장 문에 기대져 있었는지 문을 열자 유리그릇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 어..,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익숙하지 않은 데시벨의 크기에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이제는 쓰레기가 된 하얀 접시 조각들을 발로 밀어 구석에 쑤셔넣는다. 꼭 물어뜯은 베개를 이불 밑에 숨겨놓는 멍청한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이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미안해요. 아무도 듣지 않을 사과를 괜히 중얼거렸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지는 걸 멈추고 뒤를 돌았다. 


"..."


이화우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니, 아마 저 바닥 끝까지 떨어졌다가 0.001초만에 다시 붙은게 틀림없었다. 눈 앞에 서 있는 검은색 머리의 젊은 청년은 새까만 동공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실내는 여전히 적막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모래 폭풍 덕분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겨우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호흡 소리가 묻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제 숨으로 그 적막을 꺨 뻔 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앞의 사내 아이의 머리 부터 발끝까지 시선으로 훑었다. 불쾌한 골짜기. 이화우는 그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동시에 상대가 지금껏 숨 한 번 내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슴이 미묘하게 들썩이는 것도, 입이 벌려지는 것도 없었다. 자신의 뒤에는 깨뜨린 그릇이, 앞에는 미묘한 게 서있었다. 로봇인가? 사람인가? 어정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안녕."


병신같이 말을 왜 더듬는담.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는 아이 앞에서 슬며시 몸을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가 그대로 돌아간다. 여전히 동공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는 터였다. 이 정도면 사실 장르가 공포 영화였던 거 아닐까? 두근거리는 제 심장 박동이 들릴 지경이었다. 진정해, 진정해.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다시 말을 걸려 입을 열었다.


"사람이야?"


검은 동공은 눈꺼풀이 닫힐 때마다 깜빡, 깜빡 거리면서 사라졌다. 그 움직임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상대의 매끄러운 피부와 붉은 입술은 아마 이 지구 위에 남은 사람 중 가장 생기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내 이름은 전살별이야."

"..."

"안녕. 네 이름은 뭐야?"

"나, 나, 나는 이화우."

"너와 가족이 되어서 정말 좋아."


살별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화우는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까 비행기로 접어 날렸던 그 전단지에서 등장했던 로봇이 여기 앞에 있는 사람인듯, 아니 로봇인듯 싶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이 머리색과 키, 특징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정한 로봇. 지나치게 정교해서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사람과 많이 만나지는 않았는지 어색하게 흘러가는 대화에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머리와 어깨에 다 먼지가 내려앉아있는 걸 봐선 이 집안에서 움직이고 다녔던 것도 아닌 것 같고. 아마 아까 유리를 깨는 소리에 작동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화우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주었다. 머리에 있는 먼지도. 자신과 꽤 비슷한 키였다. 


"난 네 가족이 아니야. 네 가족은 아마..."


죽었을걸. 그 말을 하기가 괜히 조심스러웠다. 아까 깨져버린 유리 그릇이 생각났다.


"아냐, 눈을 떠서 처음 보는 사람이 가족이야. 새끼 오리처럼."

"..."

"내 가족이 될 사람의 성은 전이였는데, 너는 이 씨네. 하긴, 가족들이어도 이름이 다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로봇 맞지?"

"이화우. 나는 로봇이고, 너는 인간이야. 우린 가족이고."


다시 한 번 말해줘?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네 표정에 이화우는 더 의문을 표할 수 없었다. 일단 이리와. 앉자. 네 손목을 잡고 소파로 함께 가 나란히 앉았다. 자신을 처음 본다고 했으니 아마 이 집에 살던 가족은 한 번 켜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 틀림 없었다. 죽었다기 보단 사라졌다고 표현하는게 맞겠지만. 지나오는 길에 썩어가는 시체도, 이미 다 썩어서 뼈만 남은 것들도 없었으니. 옆에 앉은 전살별의 검은 동공이 다시 자신을 향했다. 


"샛별이는?"

"샛별? 그게 누구야?"

"내 누나. 원래 입력되어 있는 가족."


진짜 사람 같이 생겨서 그런 말을 하니까 되게 묘했다. 살별과 샛별, 이름이 비슷한 걸 보면 형제이거나 남매일지도 몰랐다. 아이 로봇이라고 했으니까. 지금의 살별은 앳되지만 고등학생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샛별도 그럴 것이다. 대답 대신 다시 몸을 일으켜 사진을 찾으려 아무 서랍장이나 뒤적였다. 너는 그새 내 뒤를 쫓아와 내가 하는 모양을 가만 보고 있었다. 그게 꼭 감시당하는 것 같기도 해서 저 안 쪽 깊숙한 곳까지는 못 뒤지고 설렁설렁 그런 척만 했다. 그러다 현관 바로 옆에 가족 사진처럼 보이는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있다. 가족. 사진을 벽에서 떼어내 먼지를 후, 불어냈다. 우리 가족이라니까. 살별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제 옆으로 다가와 머리를 붙였다. 바람으로 떼어내지지 않은 먼지를 손으로 문질러 치웠다. 단란하게 앉아있는 성인 여자와 남자, 그리고 머리가 긴 꼬마 소녀가 앉아있었다. 아마 어릴 때 사진이었던 건지 지금의 살별보다 훨씬 앳되다. 그 사진을 살별의 얼굴 옆에 대고 번갈아 바라봤다. 


"너랑 똑같이 생겼다."

"샛별. 우리 누나야. 쌍둥이 누나."

"그럼 나는 뭐야? 형? 동생?"

"너는 이화우."

"가족에는 각자 역할이 있잖아. 이름말고, 역할."

"아직 미정이야. 입력된게 없어. 그러니까 너는 이화우야."

"..."

"화우야."


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음성을 들은 적은 몇 일 만일까?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진 그저 지나치는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화우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화우, 너 얼굴이 빨개. 열 나? 어디 아파? 걱정하는 목소리로 네가 물었다. 아, 아냐. 괜찮아. 다시 가서 앉자. 다시 네 손목을 끌고 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심장이 여전히 쿵쿵 뛰었다. 아까는 놀람으로, 지금은 정의내리지 못할 오묘한 느낌으로. 내가 사람을 너무 보고싶어해서 환각을 보고 있는건가? 손목을 놓으면 네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짓 입술을 꾹 깨물며 네 손목을 타고 내려가 손을 깍지껴 잡았다. 네 손은 적당히 따뜻했고 적당히 서늘했다. 부드럽게 마주 잡아오는 그 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봤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증거. 로봇이라도 괜찮다는 생각. 세상에는 네가 로봇임을 아는 사람은 저 빼고 아무도 없었다. 물론, 로봇임을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0이겠지만. 내가 너를 인간으로 보고 인간 취급을 한다면, 우리 둘은 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 둘이 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그리고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니까. 아무도 모를 우리만의 명명식을 하자. 이제부터 너는 사람이고, 우린 가족이며, 세상에 어쩌면 살아있을 사람을 찾으러가기 위한 나의 동반자. 혹은 살아있는 사람이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 내 전살별. 잡은 손을 더 꽉 쥐며 입을 열었다.


"살별아."


왜? 손의 피부 만큼이나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살별의 모습이 화우는 좋았다. 친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언젠가 그 말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이 멸망하고, 여기에 남은건 너와 나 둘 뿐이고, 너를 만든 네 가족은 다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그 이야기를 네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미루고 미뤘던 인정을 해야만 했다. 정말로 혼자 남아버렸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그게 아니라고 빌었고, 또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그 인정은 어려웠다. 그래도 언젠가 너와 단 둘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인정할 수 있겠지. 그 날은 하루 종일 손을 잡고 있었다. 멸망을 제외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나가서 사람들을 찾아 다닐거라는 말과, 우리가 먹어야하는 음식들,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도 되는지, 바깥의 모래폭풍을 어떻게 피해야하는지··· 이 이야기를 네가 다 이해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야기의 끝이 되어갈 때 즈음에 지루하단 표정을 짓는 걸 보고 황급히 마무리했으니까. 내 소중한 친구, 가족, 전살별. 한 번 마음의 벽을 넘느라 브레이크가 고장났는지, 나는 정말로 네가 좋기만 했다.




그 뒤는 너와 함께 온종일 붙어다녔다. 처음에는 식사도 같이 했다. 식사라고 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토마토 캔 수프를 불에 데우고 함께 먹었다. 몇 번 같이 먹었으나 네가 '속이 이상해'라고 하며 먹기를 거부해 그 때부터 권하지는 않았다. 기계 부품이 고장나 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까. 그 생각이 들고 나서야 집을 뒤질 떄 기계와 안드로이드에 관한 책이 있기를 빌었다. 혹시 몰라 드라이버와 나사도 가방에 넣었다. 이것저것 쓸모없는 것을 넣고 다니느라 어깨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어느날은 네가 제 가방을 들어보더니 뭘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다니냐며 한 번 뒤집어 엎기도 했다. '이런 건 버려. 멍청한 이화우.' 내가 저런 말을 앞에서 너무 많이 했나? 나쁜 말은 배우면 안되는데. 인간들 욕 좀 했다고 그걸 금방 배워서 써먹는 너를 보고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났다. 쇳덩어리 몇 개는 버리고 몇 개는 다시 가방에 넣는 걸 보며 물었다. 그건 왜 다시 넣어? 귀찮은 듯한 손길로 가방을 내밀며 네가 대답했다. 이건 나중에 필요할지도 몰라. 말없이 가방을 다시 메고 걸음을 계속 옮겼다. 우리 중에 그런게 필요할 사람은 너 밖에 없을텐데, 네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걸 배려해주는 건지. 그 날 밤은 왠지 모르게 복잡한 마음이 들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너도 생각이 많은지,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가는 점점 드물어지고 풀냄새가 가득해졌다. 그러다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잘 곳은 마땅치 않아 들판에 담요같은 낡은 천을 깔고 그 위에 함께 앉았다. 아침에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더니, 밤에는 그 태양 빛에 숨어있던 별들이 엄청 잔뜩거렸다. 별. 네 이름도 그랬지. 살별의 별도 아마 그 의미일 것이다. 옆에 앉았으니 맞잡았던 손을 잠깐 놓고 제 무릎을 둥그렇게 팔로 끌어안았다. 


"이화우. 너 표정 관리 좀 해. 진짜 머리가 멍청해진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그리고 누가 그렇게 나쁜말 배우래?"

"다 너가 이야기한 거잖아. 멍청하다, 바보같다, 씨발, 나쁜놈, 개새끼."

"그래도 예쁜 말은 더 많이 해줬잖아."

"예쁜 말 뭐?"

"살별아, 살별아, 살별아."

"..."

"왜? 너무 오글거리나?"

"가끔 넌 너무 지나쳐."


대화의 끝은 결국 킥킥 거리는 둘의 웃음이었다. 네 어깨에 머리를 조금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반짝거리는 저 별들은 모두 어디서 온 걸까. 너도 저기 멀리 있는 예쁜 별을 닮았다고 하면 웃을까. 네게 입력된 누나라고 하던 샛별도 사실은 별의 종류고, 그러니 너도 예쁜 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화우."

"응?"

"내가 네 이름 뜻을 곰곰히 생각해봤어."

"내 이름 뜻?"

"응. 꽃 화(花)에 비 우(雨)야?"

"아마 그럴 걸. 똑똑한데?"

"그럼 꽃비네. 네 다른 이름."


꽃잎이 내리는 비라는 건지. 사람 이름은 보통 뜻이 있다고 하니까 아마 아닐 확률이 높겠지만, 왠지 너 다운 말이라는 생각에 작게 소리내 웃었다. 왜 웃어? 내가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샐쭉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살별을 보고 따라 웃어버리고 만다. 


"별 예쁘지. 살별아."

"그러게. 넌 하늘 보는 거 좋아하더라."

"예전부터 그랬어. 그리고 밤하늘엔 별도 많잖아."

"..."

"내 생각엔 살별이란 이름 뜻도 비슷할 것 같아. 샛별이란 이름도 별 종류 잖아. 그치."

"마냥 멍청하지는 않네."

"너 아직도 그 소리야?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했더니."

"장난이야. 꽃비야."

"... 그렇게 부르면 부끄러워."

"난 너 얼굴 빨개질 때가 좋더라."

"나도 그럼 너 별이라고 부를래. 별아, 이렇게."


기댄 네 어깨에 제 뺨을 부볐다. 그러면 다정한 손길로 제 머리를 쓸어주는 네가 있다. 별아, 하고 부르면 꽃비야, 하고 대답해주는 네가 있었다. 이제 주구장창 맨날 그 이름만 부르는거 아냐? / 그러면 어때. 내가 너 말고 누구를 불러. 우린 심지어 가족이잖아. / 알았으니까 나만 불러. 그런 실없는 대화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밤이었지만 따뜻한 별빛 아래 둘이 오순도순 앉아 대화를 나눴다. 나는 네가 좋았고, 감히 추측하건대 너도 내가 좋은 것 같았다. 틱틱거리면서 손은 내내 붙잡고 있어줬으니까. 브레이크가 고장난 애정을 너는 기꺼워 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사랑은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사랑을 정의하자면 네가 내 사랑인 것 같았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담과 하와처럼. 둘 중에 마음에 드는 걸 네가 먼저 고르고, 남는걸 제가 하겠지만. 아마 이 말을 하면 너는 또 바보같다며 웃을 것이다. 가족이든, 사랑이든, 이 관계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괜찮을 것이다. 우리 둘은 그 정의할 필요조차 없는 사이였으니까. 둘만이 존재하는, 그런 사이. 무엇으로 명명하든 괜찮은 사이였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너와 함께 자주 밤하늘을 구경하고는 했다. 실없는 농담과, 낄낄거리는 웃음과 함께.




또 한 차례 먼지 폭풍이 불었다. 이번엔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숲으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가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곤충도, 뱀 같은 것도 없어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잠깐 쉬어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하필이면 우거진 나무 때문에 등 뒤까지 다가오던 모래 폭풍을 발견하는 것도 늦었다. 일단은 모래 폭풍에서 도망치려 손을 잡은 채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별아, 나 잘 따라와.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아도 계속 들어오는 먼지와 모래에 연신 콜록거리다 세찬 바람에 네 손을 놓치고 말았다. 

별아! 

네 이름을 부르느라 벌린 입안에 꺼슬거리는 알갱이들이 가득 들어찼다. 제 목소리가 너에게 닿았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응답 없이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와 모래를 밟을 때마다 나는 퍼석 거리는 소리 뿐이었으니··· 피맛이 날 정도로 기침을 하며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눈을 뜰 수도 없어서 널 찾을 수도 없었다. 별아, 별아··· 떨리는 목소리로 너를 불러도 너는 내 손을 다시 잡아주지 않았다. 어디갔어. 다시 혼자 남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이리도 끔찍했던가?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는 너와 같은 존재를 소망했지만, 너를 손에 쥐고 나니 네가 없어지는 건 아주 끔찍해 시간이 제발 멈추기를 바랄 정도였다. 사람의 광폭함은 그 대상이 사람일 때 드러난다. 위협이나 협박이 닿는 대상이어야 화를 내고, 소리라도 치지만 살별을 찾기 위해 이화우가 넘어야 하는 산은 자연이었다. 이 끔찍한 모래 폭풍. 그 광활한 자연을 넘어야할 때 찾아오는 것은 광폭함이 아닌 무력함이었다. 시야도, 냄새도, 소리도 어느 것 하나 너를 찾을 수 없으니 화우는 자신의 발목에 감겨대는 모래가 꼭 무력감 같았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는 없었기에 너를 찾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역으로 걷는다.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그 공기만큼의 알갱이들에 폐부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여간다. 숨을 쉬어도 숨이 가빴다. 그 때, 발에 무언가가 채인다.

탁.

눈을 꾹 감은채 바닥으로 손을 내려 더듬거렸다. 사람이라기엔 차고, 무생물이라기엔 부드러웠다. 별아···. 입을 벌려 더이상 나오지 않는 소리를 내뱉으려 애썼다. 몇 번을 힘없이 콜록였다.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아 그 여파로 신체적인 피로가 몰려오는지 눈이 감겼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모래바람에 나쁜 게 들어있었을까, 정말로. 그래도 너를 찾았으니 다행이야. 네가 자신을 꺠워주겠지. 혼자였으면 절대 눈을 감지 않았을 테지만. 아니, 혼자였으면 모래 바람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너와 함꼐 한 시간들은 아주 좋았고, 네 피부처럼 부드러웠으며, 밤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반짝였으니까. 나는 너를 찾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별아, 나 두고 가지마. 나 좀 꺠워줘···. 누군가 나를 감싸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꿈이었을까.



"이화우."


익숙한 네 음성이 들리자 눈을 번쩍 떴다. 눈이 뻑뻑해 한 번 감았다 뜨는 것만으로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몸을 일으키면 모래가 우수수 제 몸에서 떨어졌다. 콜록, 콜록, 폐가 뽑힐 것 같은 기침을 연신 해댔다. 입 안에 남겨진 모래 알갱이들을 겨우 뱉어낸다. 체액이 나오는 모든 샘이 뻑뻑해져 있었다.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에 주변을 더듬거려 네 손을 잡았다. 자신이 손을 마주 잡는 네 손을 꼭 잡고, 눈을 비벼 시야를 확보했다. 꺼끌거리는 먼지 알갱이 들이 안구 뒤 쪽에서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포기하고 머리와 옷의 먼지를 털어냈을 때 즈음에야, 겨우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아."


자신의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거칠었다. 폐 안 쪽에서 모래 알갱이가 계속 나오듯이 아무래 뱉어내도 혓바닥 뒤쪽이 거슬렸다. 꺼슬거렸고. 너는 이 먼지 폭풍에 없었던 사람처럼 깨끗했다. 내가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네가 멀쩡하다는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숨을 들이키다 먼지에 다시 사레가 걸려 몇 번을 콜록였다. 기침을 너무 한 탓에 비린 쇠 맛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착각인가. 숨을 고르고 있는데 다시 네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아. 거기서 날 찾겠다고 되돌아오면 어떡해?"

"왜 타박이야."

"너는 인간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네가 잡고 있던거, 나 아니었어."

"뭐?"

"내가 아니라, 거기 죽어있던 로봇이었어."


그 말에 화우는 자신이 잡고 있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어, 이 팔은 네 거 맞는데. 단정한 손톱과 조금은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자신의 손을 꽉 잡아오는 이 익숙한 감촉과 무게감은 틀림없이 네 손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자신의 표정을 눈치챈건지 별이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타박했다.


"아니, 이거 말고. 그 로봇은 이미 모래에 파묻힌지 오래야. 일어나, 꽃비야. 어서."

"넌 날 어떻게 찾았는데?"

"너 바보야? 난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니까. 먼지 쯤은 아무런 문제도 안돼."

"그..래?"

"그래. 일어나. 가자."


네가 잡아끄는 대로 이화우는 몸을 일으켰다. 화우는 로봇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니, 아는 게 거의 무방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네가 잡아끄는 손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네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까 모래 폭풍에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먼지 알갱이가 하나 없지. 물론 제가 잡고 있었다던 죽은 그 로봇같은 모양으로 네가 발견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아까는 너를 잃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은 죽은 너를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저를 일으켜주느라 네 바짓단에 잔뜩 묻어있는 모래에 시선이 닿는다. 아, 아마 신발에도 잔뜩 들어찼을 것이다. 자신의 발이 따끔거렸기 때문에. 털어내고 싶은데, 너는 잠시 멈추는 것이라도 허용하지 못하겠다는듯 걸음을 옮겼다. 왜 그러지. 언뜻 보면 화난 것 같은데, 잠깐 발이 꼬여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주는 네 얼굴과 손길은 다정해서 그저 고개를 갸웃이고 말았다. 우선은 아무데나 들어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 모래 폭풍 탓인지 다섯걸음마다 기침 한 번이 꼭 따라왔으니까. 덩달아 정상적으로 호흡하는게 어려워 별이의 팔을 붙잡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어야 했다. 망할 모래. 

움직이는게 조금 더뎠지만, 그래도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하나를 겨우 발견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삐그덕, 열리는 문은 여전히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듯 모래 알갱이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 조금의 먼지에 화우는 다시 콜록였고, 너는 그것이 몹시 맘에 안든다는듯 자신을 보았다. 네가 밀치듯이 자신을 소파에 앉혔다. 너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 별아."

"인간은 약해."

"..."

"인간은 약하다고. 알아들어, 이화우?"

"그래, 근데 그게 왜."

"다신 저런 먼지 폭풍에 쓰러지지마. 너가 파묻힐 거 내가 겨우 구해냈다고."

"널 잃어버릴 뻔 했는데 어떡해, 그럼."

"바보. 바보 이화우. 너보다 내가 너 더 잘 찾아."

"그래도, 그래도 너가 나 못 찾으면 어떡해?"

"..."

"만약에 내가 그렇게 가버려서, 네가 모래 폭풍에 파묻히면!"


둘은 얼마간 서로 말이 없었다. 이화우는 자신이 감정을 서툴게 표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네가 걱정이 돼 어쩔 줄 모르는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또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가 로봇이고, 네 말이 다 맞지만. 그래도 너는 내가 지켜주고 싶단 말이야. 너는 내가 괜한 화를 내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평상시와 같은 표정과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혼란스러운듯 싶었다. 아니면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 기다리고 있는걸까? 가끔 인간은 때로 의지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해버리고 만다는 걸 네가 알고 있을까. 네 바짓단에 가득한 모래 알알들을 노려보다가 작게 기침 한 번을 더 했다. 꼭 무어라 말을 덧붙여야할 것 같아서, 이화우는 늦기 전에 진심을 꺼내기로 했다.


"... 걱정되니까. 나는 너보다 강하진 않겠지만, 약하지도 않아. 다 괜찮아."

"..."

"화내서 미안. 다음부터 절대 네 손 안놓을게."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네게 이야기를 하면, 늘 그렇듯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체온을 가진 손이 제 손을 부드럽게 감싸쥔다. 네가 정말로 사람이었다면 제 고함에 따라 소리를 쳤을지도 몰랐다. 네가 정말로 사람이었다면, 그 모래 폭풍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네가 로봇인게 지금만큼은 신에게 감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신이시여, 하늘의 별을 닮은 이 아이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게 해주세요. 네 손을 마주 움켜 잡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가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행동은 지금까지의 여정을 계속 떠나자는 의미였을 테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뒤는 아주 조심스러운 여정이었다. 절대 다시 모래 폭풍 속에 빠지지 않도록, 시야를 좁게하는 고산지대는 최대한 피해다니고 넓은 평야로 다녔다. 산을 꼭 지나야하면 제일 가까운 빈 집에 들어가 모래 폭풍이 지나가기를 며칠을 기다리고 나서야 움직였다. 들어간 모든 집은 텅 비어있었다. 정말로 멸망인가 보지, 세상에 너와 나를 빼고는. 우리는 어느 날엔 별 이야기 없이 침묵하며 반나절을 걷다가, 또 어느 날엔 단 일초라도 쉬지 않고 말하려 연신 떠들어대곤 했다. 바깥에 소리라고는 휑하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 밖에 없어서 잠들었다 일어나는 순간까지, 아니 눈꺼풀이 깜빡이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소음의 근원지였다. 가끔 자신은 기침을 했고, 너는 내 등을 두들겨주었다. 목에 간지러운게 낀 듯 거슬리는게 아마 그 때의 일 때문이겠지. 별 다른 증상은 없어 걱정할만한 건 없었지만, 문제는 기침의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 기침했다면 그 다음주는 두 번, 그 다음주는 다섯번, 또 그 다음주는, 다음달은, 하루에 한 번씩···.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 건 너와 내가 모두 눈치챈 사실이었다. 기침약을 얻으면 좋을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암묵적으로 약국처럼 보이는 곳은 꼭 들려 주인 없는 물건을 도둑질했고, 그 약은 정말로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약이 다 떨어졌을 떄 즈음일까, 우리의 여정의 목적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람 찾기야 원래 자신의 목적이었고 너는 그런 내 희망에 어울려주고 있었던 것 뿐이니 아마 내 목적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그런 희망 앞에 우리는 당장 필요한 내 약에 신경을 써야했고, 너는 그런 상황에도 말 없이 함께해주었다. 때로 콘돔을 꺼내 풍선 크게 불기 대회를 열고는 했지만. 정말로 웃겼지. 나는 폐활량이 딸려 조금밖에 불지 못했는데, 너는 네 얼굴보다도 크게 불었다. 투닥거리다가 그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놓치면 푸쉬식,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어딘가로 떨어졌었다. 그 장면을 보고 한참 낄낄 웃었었다. 결국 밖이 깜깜해질때까지 웃느라 그 약국에서 하룻밤을 묵었었어야했다. 항상 들고다니던 침낭을 적당한 자리에 깔고 둘이 누워 잠에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네가 달력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화우야, 저게 뭐야?"

"저거? 달력. 너도 알텐데, 왜?"

"아니, 그거 말고. 저기 그려진 거. 저게 바다 맞지?"


네가 기리킨 달력에는 하와이처럼 보이는 풍경이 사진으로 찍힌 6월의 달력이었다. 야자수가 그려져있고, 파도가 치는 그런 모습이 담겨있었다. 내내 그 달력에 시선이 머무는 네 둥그런 머리통을 보았다. 별이는 바다를 직접 본 적이 없겠구나. 너와 함께 손을 잡고 바다를 보러가면 좋을텐데. 같이 헤엄을 쳐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 상어를 발견한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소득이겠지. 잠깐, 내가 물리려나? 분명 굶주린 상어일것이다. 그런 덧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낄낄 웃었다.


"너 내 말에 대답은 안하고..."

"아, 미안. 바다를 가서 상어를 발견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럼 너가 죽잖아, 멍청아."

"그래도. 걔도 마지막 상어, 우리도 마지막 인간이면 걔가 우리를 함부로 물진 않지않을까?"

"상어 말도 하겠다, 이제?"

"욱쉡렛뗏. 아임 샤크. 유노?"

"아, 진짜, 이화우."


하지말라며 제 팔을 툭, 미는 네 손길에 낄낄 웃었다. 너도 따라 웃었고, 나는 네 손을 잡았다.


"우리 바다 가자."

"갑자기?"

"바다는 바다 냄새가 있어. 조개도 있고, 별도 엄청 더 잘보일거야. 바다 보고싶지 않아?"

"보고 싶어. 그런데 나는 못들어가."

"괜찮아. 바다가 무서울 수도 있지. 그럼 내가 바다에서 걸을게, 너가 모래 위에서 걸어."

"그럴까?"

"아니면 내가 널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려서 걸어도 되고. 어느 쪽이 좋아?"

"절대 싫어, 이화우."

알았어. 네 이야기에 웃음으로 수긍했다. 바다에는 이런 게 있고, 저런 게 있고.., 냄새와 온도, 습기 같은 것들을 네게 이야기했다. 영과 일로 이루어진 데이터 속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을. 바다에서 실컷 헤엄치다보면 모래가 온 몸 곳곳에 들어간다며, 그러니까 깨끗이 씻어줘야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아마도 네게는 필요 없겠지만. 그 날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꿈뻑 잠이 들었다.




그 날부터 우리는 동 쪽으로 향했다. 요새 사람들은 나침반을 쓰지 않아서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해가 뜨는 곳은 동쪽이란 사실은 알고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일몰과 일출을 함께하며 방향을 정했다. 태양빛을 쫓아가는 여행이었다. 눈이 부셔서 그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또다른 목적지가 하나 생겼다는 것을 제외하면 늘상 같은 여정이었다. 중간에 마트와 약국을 들리고, 모래 폭풍의 기세가 보이면 집에 숨어들어 잠을 잤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화우의 기침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완화 없는 악화. 약으로 눌러두던 기침은 약이 들지 않자 무서운 속도로 빈도수가 늘어났다. 반나절은 종일 걷곤 했으나 이제는 3시간에 한 번씩 쉬어가야 할 판이었다. 별아, 잠깐만···. 네 손을 잡고 쪼그려 앉아 터질것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때에도 너는 내 등을 토닥여주기만 했다. 자신이 그 기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 너도 그냥 넘어가주는 눈치였다. 그것이 뭇내 고마워 어느날은 잠에 들기 직전에 네게 고맙다는 말을 속삭였다. 하필이면 그 때 바람 때문에 유리창이 덜컹이는 바람에, 그 말을 네가 들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 바람은 모래 폭풍의 전조였다. 그러니 그닥 달가운 게 아니었고, 마치 몸과 마음을 긴장하라는 신호와 같았다. 그러나 며칠을 해가 뜨는 쪽으로 걸었을까, 이제는 공기 중에 습기와 짠 내가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람이 서쪽으로 불을 때는 그 내음이 더 심해졌다.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는 비린내가 난다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별로 맘에 안드는 눈치였지만, 내가 계속 신나서 조잘거리니 너는 마지 못해 넘어가주는 듯 했다. 그 냄새 때문인지 그 날 밤은 너무 설레서 너를 새벽까지 내내 붙잡고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게장 이야기와 서핑 이야기, 조개 구이와 폭죽, 우리가 처음 바다를 가자고 이야기한 날 채 못다한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너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가도 어느새 자라며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쭉 밀었다. 

이제 기침도 잘 안하네. 자. 얼른. / 어, 진짜네? 완전 타이밍 굿이다. 별아. 그치. / 이제 아프지마. 같이 평생 다니자며. 바다 보고, 다음엔 갯벌도 데려가줘. 거기도 가보고 싶어. / 당연하지. 

···우리는 어느 새 잘 때조차 손을 잡고 있었다. 



한 이틀을 더 움직였을까, 그제서야 저 지평선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처음엔 너보다 내가 더 신나 네 등짝을 막 치며 펄쩍펄쩍 뛰었다. 별아, 저거봐, 바다야! 너는 유난을 떠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네 시선이 내내 바다 쪽으로 가있는 걸 보고 너도 꽤 설레여한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 날은 바다의 짠 내음을 그대로 가져다주듯 거친 바람이 불었다. 모래 폭풍이 올려나봐. 우리 둘다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네가 내 손을 잡고 가까운 인가로 이끌었다. 

그 날 밤은 요란하게 바람이 불었다. 유리창은 덜컹이고 문에 매달려있던 작은 종은 너무 거센 바람에 소리도 못내고 나무 문에 바짝 붙어 있기만 했다. 그래도 우리 둘은 곤히 잠에 들었다. 아니, 나만 들어있었다. 너도 잘 수 있는지, 자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잠에 들어야 하니까. 나는 네가 로봇인걸 알지만, 정말로 사람같았고, 또 내가 널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가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한날한시는 아니더라도 우리 중 누군가 혼자서 쓸쓸하게 너무 오래 살지는 않을테니까. 주님, 제 소원 하나를 들어주시려거든, 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 혼자 남아있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 소원을 빌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아침, 이화우는 갑자기 시작된 기침과 함께 피를 한움큼 뱉어내고 만다. 자신의 손에서 출렁거리는 검붉은 피를 보고, 이화우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그리고 어젯 밤 시끄럽게 창문을 두들기던 모래 폭풍은 언제 그랬냐는듯 고요하기만 했다.




"너 아침에 어디갔었어? 옆에 없길래."

"아, 물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서."

"...너 거짓말하면 다 티나는 거 알지, 이화우."

"아닌데? 아닌데?"

"..."

"진짜 아니니까 나 좀 믿어."

"별 일 없는거지?"

"응, 당연하지."


우리는, 아니 나는 네 손을 잡고 다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나절을 걸었을 때 즈음에야 몇십미터 앞에 하얀 모래 사장이 보이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설레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네 손목을 쥐고 그대로 모래 사장으로 달렸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폐가 터질 것 같았고 이마에선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모래를 밟으면 발이 움푹, 들어갔다. 그제서야 멈춰 서서 눈 앞에 보이는 광활한 바다를 바라봤다. 허억, 헉.., 그 거친 숨소리를 다 집어삼킬만큼 파도치는 소리가 컸다. 우리는 말 없이 눈 앞의 바다를 응시했다. 넓고, 어둡고, 깊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바다. 이화우는 네 손을 잡고 들어가는 걸 꾹 참았다. 별아···. 네 이름을 부르며 네게로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바다에 시선이 못박혀있는 네가 보였다. 마음에 들어? / 응. 바로 따라붙는 대답에 이화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숨이 겨우 진정되고 나면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네 손을 잡고 파도가 치는 경계에 섰다.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파도가 무서운지 너는 아주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파도가 모래에 진한 자국을 만들어내는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서서 경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파도가 제 발목을 간지럽게 스치고 지나간다. 


"아, 바다 냄새. 진짜 좋다."

"..."

"너도 같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들어가고 싶어. 바닷물도 만져보고 싶어."

"그런데 파도 때문에 무서워?"


너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면서 또 설레여하는 모습이 섞여있는 그 얼굴이 꼭 어린아이같아 또 웃음을 터뜨렸다. 왜 자꾸 웃어, 이화우! 그 타박을 들으며 걸음을 멈췄다. 네가 가지 못하는 곳이면, 내가 들어갈게. 무슨 소리냐며 의문을 품은 네 눈빛이 제게로 향했다. 파도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금방 다녀올게. 네 손을 도닥이며 놓아주었다. 전살별은 불안한 눈빛을 하면서 제 손을 다시 잡아챈다.


"어디가. 나 두고 가지 말랬지."

"금방 다녀오는거야. 10초만 세고 있어. 금방 갔다올게."

"다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응. 10초만. 별아. 응? 10초만."


너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눈으로 제 손을 놓아주었다. 착하다, 전살별. 네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고는 천천히 바닷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 끝까지 물이 차는 깊은 곳으로 가면 네가 기겁을 할테니 적당히 얕은 곳에 앉아 온 몸을 바닷 물에 적셨다. 아무래도 몸 구석구석에 들어간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야하는 건 제 쪽인 것 같았다. 파도에 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머리까지 적시기 위해 고개를 바닷 물 속으로 쳐박으면, 저 멀리 동화책에서만 봤던 예쁜 뿔소라 하나가 있다. 별이에게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은 뿔소라. 화우는 옆으로 몸을 슬금슬금 움직여 그 뿔소라를 가져왔다. 네게 깜짝 선물로 줄 셈이라 바지 주머니 속에 숨기고 앉았던 몸을 일으켜 네게 다가갔다. 와중에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 바닷물을 한가득 떠 네게 내밀어주었다. 별이는 그 냄새를 맡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비려···."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에 담아왔던 물은 손틈새로 빠져 결국 텅 비어버리고 만다. 결국 웃고는 주머니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네게 내밀었다. 자. 바다에서 주워온 거야. 이게 뭐냐고 묻는 네게 말 없이 뿔소라를 네 귓가에 가져다 주었다. 들려? 파도소리. 사람들은 이걸 귀에 대면 파도 소리가 들린대. 근데 나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제 손위를 덮어잡고 소라를 조금 더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는 너를 본다. 눈 감아봐. 네게 작게 속삭이면 살별은 제 눈을 바라봤다가 서서히 눈을 감는다. 내 손 위를 덮어 잡은 네 손은 따뜻했다. 어쩌면 뜨겁기도 한 것 같았다. 뜨거운 네 손이 좋았고, 눈감은 네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이화우는 눈을 아주 질끈 감고 네게 아주 충동적이고, 로맨틱하지 않게 바닷물 맛이 나는 키스를 했다. 혀를 섞지 않고 입술만 맞댔다. 너는 깜짝 놀라 눈을 떴고, 네가 반응이 없자 슬며시 눈을 뜬 이화우는 너와 시선이 마주치면 되레 깜짝 놀라 입술을 떼어냈다. 부끄러워 하며 입을 떼어내면 너는 이것도 비린 맛이 난다며 작은 불평을 했다. 투정과도 같은 음성이었다. 그럼 우리 그 맛이 안날 때까지 키스할까. 살별은 긍정하는 말대신 눈을 감아주었고, 우리 둘은 그 곳에 오래오래 서서 네게서도 짠 바닷내음이 날 때까지 입을 맞췄다. 

호흡이 줄어들어 이화우는 연신 헐떡였고 너는 내게 산소를 주려는듯 호흡을 불어넣어주었다. 서툴게 혀를 얽고 타액을 나눠 삼켰으며 네가 주는 단 호흡을 받아 먹었다. 숨이 가빠져 가슴팍이 연신 들썩일 때 즈음에야 - 물론 헐떡이는 건 이화우 혼자였다. - 그것이 못내 웃겨 입술을 떼어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웃어버린다. 


"왜 웃어?"

"좋아서."


아까 하지 못한 대답이 떠올랐다. 왜 자꾸 웃냐는 말. 그래, 그 말의 대답은 아마 좋아서 였나 보다.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다시 네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우리는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잠깐 입을 맞추고, 또 그게 부끄러워 금세 입을 뗴어낸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네가 이제는 비린 게 괜찮을 것 같다고 해줬을 때 이화우는 왠지 정말로 조금 부끄러웠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질 떄 즈음에 화우와 살별은 수평선이 보이는 방파제 앞 쪽에 앉아 너무 춥지 않을 만큼의 모닥불을 켰다. 하늘이 맑아 비가 오진 않을 것 같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댄채 앉아 따뜻한 불을 쬐었다. 별과 바다, 그 두가지는 환상적이었다. 내 옆에 있는 별도, 저 하늘위에 있는 별도. 가만히 네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너도 자연스레 제 머리위로 따라 기댄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그 고요한 침묵을 즐겼다. 아니, 이제는 바람 소리가 없어도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또다른 소음이 되었다. 바다에 와보니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소음의 근원지가 아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묘한 안도감이 일었다. 한 사람이 영원히 침묵에 남아있지 않아도 될 지도 모른다는 안도감. 우리의 기억 속에 언제나 있을 파도 소리와, 파도의 기억 속에 언제나 있을 우리. 네 손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고, 여전히 네 손은 따뜻했다.


"별아."

"응, 꽃비야."

"좋아해."

"...나도."

"...뭐야? 부끄럽다. 왜 먼저 말 안해줬어?"

"넌 수줍음이 많아서 부끄러워할까봐 그랬지. 고백도 안하고 키스부터 갈기는 놈이 어딨냐?"

"키스 갈긴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방법이 다 있어, 임마. 순진한 이화우는 모르는 방법."

"내가 뭐가 순진해."

"너 순진해."

"아니거든?"

"아니긴. 바보 이화우."


우리 둘은 늘상 그렇듯이 투닥거리며 웃었다. 웃으며 투닥거렸고. 붙잡은 손은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화우는 오늘 아침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네 손이 계속 뜨거웠다는 사실도. 감기인가? 감기여야 할텐데. 반짝이는 별빛 아래에서 별이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몹시 좋았다. 이런 순간을 살 줄 알았다면 그 동안의 모든 시간이 괴롭고 슬프지는 않았을 텐데. 네가 없더라도, 너를 기다리며 행복했을 텐데. 그래도 가장 행복한 이런 순간에 그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깨뜨렸다간, 또 네게 한 소리를 듣고 말테니까 그저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놓았다. 언젠가 할 날이 오겠지. 밤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신문지와 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저 불은 언젠가 꺼질텐데, 꺼지면 네가 추울 텐데···. 네 어깨에 기대 꾸벅꾸벅 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너와 함께 있을 미래와 지금, 그리고 언젠가 북극에도 가보고, 언젠가 남극에도 가보고. 전 세계를 돌아서 아무도 없다면, 혹은 중간에 지치기라도 한다면, 따뜻하게 생긴 집에서 우리 둘이 살림을 꾸리자. 함께 있기만 해도 행복할거야. 그렇지? 화우는 눈을 감은 채 반쯤 잠든채로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왜 대답이 없어, 별아···. 그렇게 입을 움직이면 네가 용케 알아들은 듯 제 손을 꽉 쥐어준다. 네 손이 따뜻해서 좋아. 사랑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하필이면 파도가 철썩, 하고 강하게 친다. 네가 들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쏠려오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화우는 결국 의식의 끊을 놓았다. 


" 바보 이화우. "


그 말을 화우가 들었을지는, 끝끝내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사실 엄청난걸 쓰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길어져서 ^^... 많은 것을 담고 싶었지만 내 글 구성이 따라주지 않는다... 화우는 죽었고 별이는 열린 결말(?) 모래 폭풍 떔에 뒤진거지 머 ㅎㅎ 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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