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에 오메가버스에 시간선이 왔다갔다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꼬리가 복슬복슬한 오이카와는 식육목 개과의 여우 수인이다. 겨울에는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을 자랑하지만 봄에는 나무들 사이에 숨기 좋도록 반들반들하게 털갈이를 했다.

봄이 온다.

오이카와는 겨우내 웅크려 있던 굴에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 어제는 굴에 누워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봄에 듣는 첫 개구리 소리는, 누워서 들으면 한 해가 느긋하고 서서 들으면 바쁘게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이카와는 검은 털에 코를 박고 그르릉 울었다. 올 한해도 오이카와는 게으르고 느긋하게 보낼 모양이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새끼를 쳐볼까.

그의 짝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오이카와는 벌써 금년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이가 늘어난다면 굴은 더욱 비좁아질 거였다. 오이카와는 제 굴이 좋았지만 다른 굴을 찾을 생각도 있었다. 겨우내 눈밭을 굴러다니다 벼랑 끝에서 본 커다란 굴도 괜찮았다. 입구가 넓고 폭은 좁았다. 호랑이가 사용했던 모양인지 노랗고 까만 털이 굴러다녔다. 다른 짐승들이야 본능적으로 호랑이 냄새를 피한다지만 오이카와는 아니었다.

“와카쨩~!”

데굴데굴 굴 안으로 향한 오이카와는 푹신한 털을 깔고 앉았다. 그르릉. 겨우 내 종종 듣던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손으로 그를 꾹꾹 눌렀다. 잠에 취한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직이야?”

겨울을 내내 기다렸는데.

잠에 취한 곰은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았다. 오이카와는 폭, 한숨을 쉬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까만 가죽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이젠 익숙해진 오이카와의 침상이었다. 꼬리에 코를 박은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봄이 조금 더 가까이 오면.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날 거였다. 오이카와는 그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었다.




*      *      *




포유류 식육목 곰과의 수인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불곰에 속하면서도 암녹색이 도는 털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미야기 일대의 우시지마 가문 수인들이 그렇듯, 그는 거대한 몸집과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성정이 드센 편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그의 굴을 사용하던 불곰의 목을 틀어쥔 이후 수인들은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외롭다.

착실하게 꿀을 모으고 식량을 비축하면서도 우시지마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성년이 되어 우시지마는 가문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굴을 떠날 것을 종용받았다. 그는 무리의 수컷이었고 우시지마 가문의 다음 가주였다. 미야기에서 그들이 터를 잡기 위해서는 가주가 잘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울까.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눈을 도로 감았다. 텅 빈 굴이 지워졌다. 겨울잠은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깊게 잠드는 건 아니었다. 다만 우시지마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잠에 빠져들었다. 움직임을 제하고 몸을 웅크려 봄을 기다리다보면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굴 안,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와 처음 만났다. 하얀 눈이 내리치는 날, 눈처럼 하얀 여우를.

 



*      *      *




사실 어떤 여우라도 제정신인 상태로는 곰의 굴에 들어가지 않을 거였다. 그것도 동네에 흉폭하다는 소문이 쫙 돌았던 우시지마 가문의 굴에는. 오이카와가 곰의 굴에 들어간 건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다. 그래, 피치 못할 사정. 하얀 눈밭에서 먹이를 찾던 오이카와는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몸이 다치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 물론 한 시간이나 쫓던 토끼는 놓치고 말았지만, 거세지기 시작한 눈밭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오이카와씨가 운이 좋긴 하지.

허리에 손을 얹은 오이카와는 숨을 골랐다. 여우의 모습으로 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해도 오이카와는 반은 인간으로, 평범한 짐승에 비해 체력이 좋은 만큼 더 먹어야 견딜 수 있었다.

배가 고팠다.

여우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수인들 간에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해치는 일이 금기시 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끼와 여우의 사이가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토끼들은 자신들이 먹을 채소와 곡식을 정성껏 길러냈지만 여우들에게 팔지 않았다. 먼 길을 돌아 돼지 마을에서 곡식을 가져오는 일도 문제가 많았다. 더욱이 돼지 마을 사이에 있는 강을 건너는 다리가 끊어진 뒤에는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추수에 신경이 쏠린 초식과 수인들이 다리를 보수할 리 만무했다. 겨울이 되면 강은 어차피 얼어붙을 테고, 봄이 되어 보수해도 늦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속이 타들어 간 건 여우들뿐이었다. 곰은 느긋하게 제 굴을 채웠고 여우와 돼지는 잔뜩 거둬들인 곡식으로 집을 채웠다. 건넛마을에서 물자를 조달하려던 생각이 틀어졌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아이와 노인에게 먹을 걸 몰아주고 나니 젊은 여우들은 숲을 쏘다녀야 했다. 갈색 여우들은 겨울 사냥에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눈밭에서 들킬게 훤했기 때문이었다.

미야기는 눈이 내리는 곳, 여우들은 서로 주둥이에 꼬리를 말고 잠을 청했다.

오이카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다. 몸집이 클수록 굶주림은 심했다. 오이카와는 개중에서도 가장 크기가 큰 여우였다. 처음 보는 수인은 그가 늑대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오이카와는 주둥이를 쭉 찢고 개처럼 웃었다. 컹컹 거리는 소리가 높았다.

배고파.

허리에 손을 얹은 오이카와가 생각했다. 곰은 굴을 가득 채우고 잠에 들었다. 밖은 눈이 휘몰아쳤다. 수인들 끼리 죽이지 않는다는 협약은 암묵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되는 규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 것. 굴에 저장한 양식을 빼앗지 말 것.

밖은 눈이 휘몰아쳤다. 오이카와는 고민에 빠졌다. 잠에 취한 곰이 얼마나 흉폭한 지는 세상 모든 수인이 다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수인 회의가 모두가 행복한 여름에 개최될까. 잠시 고민하던 오이카와는 얼굴을 쓸어 내렸다. 사실 지금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차라리 푹 잠이나 들어 있어라.”

살금살금, 여우의 모습으로 변한 오이카와는 굴 안으로 향했다. 숨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숨소리는 오이카와가 다가갈수록 가늘어졌다.

“우시지마.”

길쭉한 주둥이를 통해 나온 목소리는 개의 컹컹 짖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역시 이 모습으로 말하면, 잠깐 머리를 굴리던 오이카와는 다시 자세를 낮춰 그를 불렀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곰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우시지마 가문의 차기 가주,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이름.

“…….”

좋아, 차라리 안 깨어나는 게 나아!

오이카와는 한숨을 푹 쉬고 그의 곁에 몸을 말았다. 겨울이 깊어 다행이었다. 둥그렇게 몸을 만 오이카와는 꼬리털에 코를 파묻었다. 눈이 가물가물 했다. 커다란 곰은 숨을 죽인 채 잠들어 있었다.

눈이 그치면.

오이카와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꼬리에 코를 파묻었다. 잠들어 있다곤 해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곁에 있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눈에 언 발이 천천히 녹았다. 고롱고롱 숨을 골던 오이카와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저 하나뿐임을 깨달았다.

“…설마.”

눈을 깜박이던 오이카와는 시선을 들었다. 제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깥은 하얗게 눈이 내렸다. 달빛이 굴 안에 비쳐 앞을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곱아드는 발끝으로 땅을 움켜쥐었다. 피가 얼어붙었다. 느리지만 확실히 진득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겨우내 잠들어 있을 거라 여겼던 곰이, 눈을 뜨고 있었다.











-to be continue


렞님은 말이죠 ㅠㅠㅠㅠ 이제 늙어서 하루만에 끝나지 않아.....



레즐리Lesely Christmas=체리크렉Cherry Crack 마약처럼 중독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iss, 크리스마스라고 불리고 싶었던 라스트네임은 잊혀진 지 오래. with all my XO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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