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트윈파파_w. 제철망개



지민의 부모님은 4주 훈련이 끝나고 뵈었던 게 마지막이 되었다. 지민을 일찍 낳은 부모님은 40이 넘은 나이에 생긴 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두가 말렸지만 지민은 어린 여동생이 생긴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자대배치를 받은 지 한 계절이 지나가기도 전에 지민이 있던 부대로 부모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교통사고 였다. 그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제 혼자 서기 시작했다는 샐리의 소식을 듣고 지민은 정신을 바로 잡아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동생은 아무도 지켜줄 수가 없으니까.


지민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마당 딸린 넓은 집과 제법 많은 재산이 남았지만 입양을 보내라, 어디 맡겨라, 친척들의 간섭이 심했다. 평소에 왕래도 잦지 않던 친척들이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갖은 핑계를 대며 연락을 해왔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샐리를 맡았다. 육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지민은 한동안 친척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혼자 하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돌보았다는 이유로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판 남의 손을 타는 것보다 혈연관계가 낫다는 생각으로 어느 정도 대가를 지급했다. 잔병치레가 잦았던 샐리를 데리고 직접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지않았다면, 샐리가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사실을 지민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도움을 주겠다던 그들은 지민이 없을 때에는 샐리에게 밥조차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 지민은 그 날 닥치는 대로 집과 부동산을 헐값에 처분하고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정신없이 이사를 했다. 학업도 유지하지 못했다. 24시간 샐리에게 붙어 간호를 했고 육아는 전문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샐리의 건강이 호전되고 4살이 되어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날은 혼자서 하루 종일 울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샐리가 가여워서.



지민도 정국과 둘만의 만남에 대해 전혀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지민에게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더더욱 그랬다. 그동안 연애의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몇 년 간 이따금 고백을 받기도 했고 지민이 먼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지민이 처한 상황을 불편해 했다.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전부 받아들이기엔 힘들 것 같다고, 서로가 편하려면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전에 그만 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지민은 몇 차례를 그렇게 피어오르던 마음을 삼켰다. 샐리가 조금만 더 크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그런 마음도 다 접었다.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되겠지, 샐리만 잘 키우면, 나는 어떻게 되든 되겠지, 하고.


지민의 이야기를 듣던 정국은 입으로 들어가려던 삼겹살도 내려놓고 그래도 난 누나랑 형이라도 있는데, 지민씨는 정말 혼자였던 거냐며 가슴을 쳤다.


“다 지나간 얘기예요. 이제 그쪽 사람들이랑은 볼일도 없고.”

“아, 진짜!! 샐리가, 샐리가, 어후-!!”

“…그래도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좋은 분들 만났잖아요. 정국씨도 만났고.”

“아, 아하하!”

“전작가님도 만나고, 정민이도 만나고. 형님은 아직 못 뵈었지만, 분명히 좋은 분이시겠죠?”

“와-, 우리 남준형, 작살 나죠, 아, 아니, 작살이 아니라, 진짜 좋은 형이에요!!”

“정국씨 얘기만 들어도, 정말 좋은 분이실 것 같아요.”

“오늘 형이, 샐리 만난다고 엄청 기대했거든요?”

“샐리도 좋아할 거예요.”


정국의 리액션으로 무거웠던 공기가 걷히는 듯 했다. 잔에는 다시 와인이 채워지고 둘은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정국은 며칠 후면 또 촬영이라 오늘 고기를 먹고 나면 한동안은 먹을 수가 없다고 삼겹살을 두 개씩 집어 먹었다. 지민은 올해 연말에는 정희와 협업한 어른용 동화책이 출판될 거라는 소식을 전하며 남은 와인을 전부 정국의 잔에 따랐다. 지민의 폰에는 샐리를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정희의 메시지가 울렸고, 정국은 아쉬운 듯 잔에 담긴 와인을 쭉 비웠다.



지민의 집 근처에 다다른 둘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남준의 차를 기다렸다.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긴 했어도 저녁에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언제부터 달아오른 건지 미열이 들어찬 지민의 뺨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아까는 그렇게 신이 나서 떠들어 대던 정국도 단지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다지 입을 떼지 않았다. 술기운이 올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저, 지금 안 취했어요.”

“네, 저도요.”

“취해서 하는 말 아니구요, 지민씨랑 만나고 싶어요.”

“오늘부터 만나는 거 아니었어요?”

“…에?”

“저 혼자 설레발 쳤네요.”

“아, 아니!! 아닌데요!!”

“흐흐….”

“아, 가오 죽네.”

“큭큭, 근데 정민이랑 샐리는요?”

“애들은 살날이 구만리라 괜찮아요. 우리가 더 급해요.”

“아하하.”


둘은 어색하게 웃다가 말이 없어졌다. 이런 달짝지근한 분위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대충 키스할 타이밍이라는 건 감지를 하고 있었다. 근데 키스를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오늘 혀 쓰는 건 좀 오바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국은 뻣뻣하게 1cm씩 지민의 얼굴로 다가갔다. 실낱같은 공기층 사이에서 달싹거리던 입술의 추진이 멈추었다가 정국은 소리 없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지민에게 입을 맞췄다. 그 무게감에 지민이 뒤로 조금 밀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 순간 지민은 내가 키스를 몇 년 만에 했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국의 첫 키스 감상은 역시 예상대로 지민의 쿠션감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




“정민아, 가만히 있어야지.”

“아, 고모부, 빨리 빨리!!”

“다 왔어, 조금만. 정민이가 얌전해야 빨리 가지.”

“샐리 기다린다고!! 빨리!!”


정민이는 출발부터 차 뒷좌석에 앉지도 않은 채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남준이 제발 앉으라고 빌고 결국은 차에서 내려 벨트를 채워야 했다. 그래도 정민이는 정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남준을 다그쳤다. 정민이의 난장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정희가 보이고 나서야 제동이 걸렸다. 정확히는 정희의 맞은편에 앉아 실뜨기를 하고 있는, 발간 입술이 도톰하게 솟아오른 샐리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고나서다.


샐리에 대한 남준의 첫 인상은, 친구 부부의 자녀나 가끔 정민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행사에 갔을 때 봤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얌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매일 같이 살을 부비고 사는 정민이는 어른 셋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고집과 심통과 체력을 가졌는데 그런 애가 샐리만 나타나면 흉내를 내는 건지 그저 좋아서 그러는 건지 같은 행동을 하려 하는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샐리는 정희에게 남준을 소개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배꼽 쯤 되는 위치에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남준은 살면서 받아 본 인사 중에서도 최고로 예의바른 인사라고 생각했다.


“정민아, 스테이크 더 먹을래?”

“…아, 웅…, 샐리는….”

“샐리랑 나눠먹으면 되잖아.”

“그… 럴까.”

“샐리야, 정민이랑 나눠 먹을까?”

“네.”


먹성 좋은 정민이에게 어린이 정식으로 나오는 함박스테이크의 양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남준은 진작 눈치를 채고 한 덩어리를 추가로 주문했고 정민이는 역시 모자랐던 건지 남준이 잘라주는 스테이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원래라면 손부터 들이밀고 온 얼굴에 소스를 묻혀가며 먹었을 텐데, 정말 신기하게도 샐리의 옆에 앉은 정민이는 닦달 한 번 하는 법이 없었다. 식사시간이 이렇게 평온했던 적이 있었던가, 남준은 정희가 왜 요즘 입에 샐리를 달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샐리야,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네. 음… 남준… 뭐라고 불러요?”

“어… 삼촌?”

“남준 삼촌.”

“다음에 또 봐.”

“네, 다음에, 오빠도 같이요.”

“그래. 그러자.”


아파트 입구에서 샐리를 기다리는 지민과 남준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샐리와 다르지 않은 얌전한 인상한 인상이었다. 피는 못 속이겠네. 남준은 집에 가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조카를 겨우 떼어 냈고 마찬가지로 집에 가기 아쉬워하는 처남의 등을 툭툭 쳤다.


잠자리에 누운 남준은 정희에게 왜 요즘 당신이 그렇게 샐리에게 빠진 건지 알겠다며 샐리와 만나고부터 내내 간질거렸던 명치를 쓰다듬었다.







***


남듀니 옆에 누운 정희에게 빙의..(나페스 다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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