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신규가입으로 번호까지 바꾼(번호를 알려 줘야 할 사람이 가족 외엔 한 손에 꼽아서 지호는 또 조금 울었다) 에이폰에 다시 실금이 몇 개 가고, 등짝에 엄마의 손자국이 스무 번쯤 새겨졌다 사라질 무렵. 1년의 휴학 뒤 자발적 아싸를 자처하며 작년 2학기에 국문과 과목만 수두룩하게 듣던 지호는 결국 (노력이 가상하다며) 복수전공 신청 요건을 만족하고 2학년 1학기, 스물두 살을 맞이했다.


'이게, 이렇게 한번에 이런다고는 안 하셨잖아요. 선녀니임.'


신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하루가 끝난 뒤 헐레벌떡 눈물을 질질 흘리며 ("또 울어! 또 울어어어!! 또 구 씨네 딸내미 정신줄 놨다는 소리 듣게!!!!"라는 언니의 악다구니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와 서랍 깊숙이 가족들 몰래 숨겨놓은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냥 다시 보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고요.'

'그것도 전부 다.'


코로 방울을 불며 히엥흐엉엉 하고 있던 지호는 문을 열고 들어온 언니의 발길질에 하찮게 나동그라졌다.



2.1.


결국 피하고 피해도 경제학과라는 주전공을 버릴 수 없었기에, 이번 학기에는 경제학과 2학년 전필들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야! 구지호! 여기!"

"쉬이이잇! 이름 크게 부르지 말라구 했자나…!"

"하여간 찐따 중에 제일 체면 차려."

"너는 그냥 가만히 옆에 앉아 있어도 눈에 띄니까. 제발…!"

"이해가 안 가네."

"도진, 너 같은 인싸가 내 맘을 어떻게 알겠어…."


갈색머리를 한 장신의 여자, 영문과 3학년 도진은 이해가 1도 안 간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지호는 옆에서 이래서 "E들은…." 투덜거리며 mbti 맹신론자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진은 깨톡을 하다가 "으응?" 하며 미간을 좁히고선 지호의 어깨를 툭툭툭 쳤다.


"야, 야, 구지호. 구지호. 오늘 점심 때 피자 먹을래?"

"피, 피자?"

"왜? 인싸 같은 음식이라 막 먹으면 두드러기 나냐?"

"아니거든…? 어디서?"

"그, 어디야. 미대 쪽 잔디밭."

"너무 인싸 같은 장손데…."

"야. 먹자~! 나 하와이안 먹기 싫은데 얜 계속 하와이안만 시키자고 할 거란 말이야."

"히익. 다, 다, 다."

"어 다정이랑 먹는 거야. 우리 꼬마 이름 다다 아니거든."

"…나 걔 무섭단 말이야아."


잔뜩 겁을 집어먹고 울상을 짓고 있는 지호에 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리곤 지호 쪽으로 의자를 돌리고 앉아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아! 너보다 10cm 넘게 작고 2살이나 어린 애가 뭐가 무서워?"

"으앙."

"니가 먹고 싶은 피자 시켜 줄게. 어차피 오후 쉅도 같이 들어야 하잖아. 너랑 나랑."

"그래서 걔가 나 잡아먹으려고 한단 말이야…. 마치 너 뺏어간 경제학과를 상징하는 것처럼…."

"야. 한 번 그런 것 가지고…? 그리고 아니. 걔랑 밥을 이번 학기에만 세 번은 같이 먹었는데. 이제 와서?!"

"…흐엥."




"구질호네. 안녕."

"야! 내 친구한테 인사 그따구로 하지 말랬지."

"뭐 어때 귀엽잖아. 친구들도 구질호라고 부른다며."

"으, 으응."

"니가 그러니까 얘가 너 무서워서 싫다잖아!"

"뭐?"

"시, 싫다고는 안 했어…!"


지호는 어버버하면서도 손은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잼잼을 하고 있었다. 다정은 큰 눈을 부릅뜨고 지호의 동그란 눈을 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눈을 또르르 굴리며 옆으로 피한 건 지호였다.


"괜찮게 생겼는데. 디게 찌질해."

"야! 말넘심!"

"별다줄이야. 칭찬해 줬는데 왜 그래?!"

"으응. 나 괜찮게 생겼어……?"

"이 얼빠가 쭈그러져 있던 너한테 말 건 거 보면 말 다 했지."

"누굴 보고 얼빠라는 거야!?"

"너. 도진."

"하도 구석탱이에서 쭈그러져 있으니까 나같이 복전이나 부전 하는 앤 줄 알아서 말 건 거라고, 내가 말했지!"

"안 예뻤음 존나 쳐다도 안 봤을 거면서. 뚫린 입이라고 잘 씨부리네."

"야이씨!!"

"싸, 싸우지 마아!"

"안 싸워. 애정표현 중이야."


다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호의 볼따구를 찔렀다. 도진 취향과는 달랐지만(빈말로도 똑똑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똑부러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허연데 눈썹도 진하고 눈도 동그래서 비종프리제 같이 멀쩡하게 생겼는데. 세상 찌질하고 모자랐다. 진의 수업이 끝나고 함께 밥을 먹고선 신나게 손을 흔들면서 가는데 한 학번 후배들에게 커피를 10잔을 뜯기고 있는 걸 구출(?)해 낸 인연이었다. 자신에게 좀 더 감사해도 될 것 같은데 무섭다니 어이가 없었다. 


"뭐, 사람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에 경외심을 느끼지."

"으응. 맞아."

"야. 무슨 경외심. 돌았냐고. 구지호 넌 저기에 왜 말을 맞춰 주고 앉았어."

"여하간 난 구질호 너 꽤 맘에 드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 물지 않아요. 우리 애 광견병 예방접종도…. 아악!!!"


진은 다정에게 밟힌 발을 붙들고 뛰어다녔다. 지호는 저것도 애정표현인가 싶어 사시나무처럼 옆에서 떨고 있었다. "예방접종 했어도 물리면 아플 것 같은데. 진아." 꽁알거리다가 다정이 노려보자 입을 앙 다물었다.  


"요새도 삥뜯겨?"

"아이. 그거는 삥을 뜯긴 게 아니라…."

"뭐 어장관리라도 한 거야?"

"아니이. 선배니까…."

"두세 명은 너가 누군지도 모르는 눈치던데."

"응…. 보니까 둘은 다른 과래…."

"이자카야 알바도 목소리 작아서 짤렸다며."

"응……. 진아. 피자 언제 와…?"


눈을 또르르 피하며 자신을 찾는 지호에 진은 그만 괴롭히라며 다정을 떼어내서 한 팔로 안았다. 피차 게이다로 걸러진 사이라 이런 면은 눈치를 볼 필요없었지만, 지호는 레즈가 아니라 일반적인 커플이라고 하더라도 솔로 앞에서 저러는 건 조금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입밖으론 내지 못했지만. 



2.2.


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선 오물오물 얌전히 하와이안 피자를 먹고 있는 지호와 달리 다정과 진은 사랑과 전쟁을 찍으며 피자를 먹고 있었다. 지호는 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피자며 피클을 안 흘리며 잘 싸우는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교정을 바라보았다. 미대 근처라서 그런지 야작에 쩔어 있는 미대생들이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런 옷은 어떻게 입고 벗는 걸까? 쉬할 때 불편하겠당.', '우왕. 저 언니 예쁘당.' 따위의 허랑방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뭉탱이로 걸어가던 여자들 중 한 명과 눈이 딱 마주쳤다. 

'왜, 왜 보는 거지.'

예체능답게 잿빛으로 물든 단발머리의 여자는 귀에 피어싱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 화려한 머리나 악세서리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이목구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이 익은…. 


"찰싹!"


피자를 오물거리고 있는 얼굴에서 더러운 천쪼가리가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진의 멱살을 잡고 있던 다정은 기겁을 했고 진 역시 눈이 동그래져서 걸레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야 이 개새끼야!!!!"

"어으어엉?!"

"개새끼? 개새끼 상이긴 한데 개새끼라고 불릴 짓을 했어?"

"뭐? 얘가? 개새끼?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 멍멍이 아니여요."

"구지호잖아. 구질구질 구지호! 백방대 경제학과!!"

"와. 완전 너잖아?"

"…설, 설마."


여자는 다짜고짜 성질을 버럭버럭 내며 성큼성큼 걸어왔고 여자를 알아본 지호는 가방을 들고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여자가 지근거리에 도달하자마자 바로 줄행랑을 쳤다. 




꼴이 엉망진창이 된 채 오후 수업 강의실 구석에 구겨져 있던 지호는 의자끄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이 튀어올랐다. 진은 가지가지 한다며 오만상을 쓰고선 책과 노트, 필기구를 건넸다. 


"너는 무슨 헨젤과 그레텔이냐? 가방을 들거면 똑바로 들어야지 에코백을 거꾸로 들고. 야 그러기가 더 힘들어!"

"아. 고마워…."

"하여간. 뭐야? 아까는 전여친? 구질호. 구질구질한 줄 알았는데 오올~~ 제버업~~~"

"아, 아니야……."

"그럼 뭔데?"

"…아마 옛날 과외 학생…."

"허? 과외하다가 뭐 애 팼냐? 왜 과외순이가 눈에 불을 켜고 따라와?"

"아냐…."

"그럼 걔 찼어?!"

"…반대야."

"미성년자한테 차였다고??"

"으우…. 말하자면 길어…."

"그건 니가 요약을 존나 못 하고 TMI까지 줄줄이 말해요 하니까 그렇지."

"으아아아악! 다정아. 여기는 왜애?!"

"궁금해서. 호기심은 지적인 인간이 타고난 숙명 같은 거야."

"이 미친 계집애가 너랑 걔 사이를 알아야 공부가 손에 잡히겠다잖아."

"게이트 판 같아. 존나 흥미진진."

"허엉.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며느은…."


지호는 분위기를 잡으며 처연한 눈빛으로 대학에 막 합격해 첫 과외를 시작했던 그 때를 떠올렸다. 




그건 내가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어….

-그냥 몇 년도라고 하면 되잖아. 꼭 그딴식으로 말해야 돼? 

-아 좀 닥치고 들으면 입에 가시가 돋냐?

우리 언니가 자기가 하던 영어과외를 남친이랑 여행 간다고 나한테 물려 줬거든. 아, 우리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인데 S대 화생공 다녀. 키는 나보다 작은데 성격은 엄청 더러워.

-그런 게 TMI라는 거야. 누가 궁금하대?

미안…. 아무튼 그래서 마침 합격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거든. 그…. 내가 친구가 많지는 않아서. 그냥 만화책 보고 넷플러스 보고 하면서(KTX 타고 가면서 봐도 친구 없게 생겼다고 말하려는 다정의 입을 진이 틀어막았다). 옆 동네기도 하고 엄마가 맨날 집에 누워 있다가 곰팡이 피겠다고 구박해서 하기로 했어.

-시급이 얼마였어?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궁금하잖아. 넌 안 궁금해?

달에 50만 원인가 그랬어. 아무튼 간에…. 

-시급 물었잖아!

-아 일주일에 두 시간씩 두 번 했겠지.

-그럼 2.5네. 쏠쏠한데. 언니가 꽤 똑똑했나 봐. keep going.

으, 으응. 시급도 꽤 세서 하기로 하고 이제 과외를 하러 갔는데. 예고 다니는 고3이었어. 언니한테 오래 배워서 그런지 곧잘 하더라고. 근데 막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게 너무 예쁘고 귀여운 거야.

- 도진.

- ? 왜.

- 미안. 내가 너한테 얼빠라고 해서. 얘가 더 심하네.

아,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라…. 나름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구…!


"잉?"

"응? 왜?"

"그러고 왔어요?"

"응. 왜…? 이상해…?"

"아니. 샘 센스야 하루이틀된 문젠 아니니까 괜찮은데. 안 추워?"

"응? 아. 쪼끔…."

"쪼끔 같은 소리 하네. 영하에 봄잠바가 웬일이야. 진짜 답다."


내가 좀 얇은 잠바를 입고 과외를 갔었거든. 그날이 한 영하 10도쯤 됐나? 암튼 엄청 엄청 추웠어. 근데 우리 언니가 자기 거 드라이 맡겼다고 내 패딩을 입고 가서. 그랬더니 하얀이가….

- 하얀이가 누군데.

- 아 국어영역 9등급이냐? 과외순이 이름이겠지!

맞아. 이름 되게 예쁘지?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예뻤어. 아무튼 걔가 방에 들어가더니 목도리를 꺼내오는 거야!


"이거 하고 가요. 얼어 죽을 일 있어?"

"이, 이거? 내가 해도 돼…?"

"흡연자 아니죠? 이도 잘 닦고?"

"응! 응! 치과 선생님한테 맨날 치석 하나도 없다고 칭찬받아! 스케일링도 저저번주에 받았어! 볼래?"

"아 극혐. 뭐래. 진짜."

"…진짜 해도 돼?"

"아 몇 번을 말해요. 우리 집에 과외하러 왔다가 얼어 죽으면 찜찜하니까~ 하라고. 근데 꼭 돌려 줘야 된다?!! 내가 아끼는 거니까!!"

"으앙. 진짜? 니가 아끼는 거 말고 다른 거 빌려 조…."


- 그때도 진짜 한결같네. 너는.

그래? 그런 말 많이 들어. 고마워…!

- 칭찬 아닌데.

- …킵고잉. 킵고잉. 이제 우리 안 끼어들게.

응? 거의 다 끝났어. 하얀이가 인상을 빡 쓰고서 목도리를 돌돌 감아 주더라고.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쳐다 봤지.


"빙구 같은 소리 그만 하고 빨리 가. 나 잘 거야."

"고마어. 꼭 빨아서 돌려 줄게…!"

"…안 빨아도 돼."

"응어?"

"안 빨아도 되니까 잃어 버리지나 말고 돌려 줘. 어디 또 칠렐레 팔렐레 흘리지 말고."

"쌤 물건 흘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 아니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 버스에 우산 두고 내려서 쫄딱 젖어서 와 놓곤."

"아니이. 그거는…. 힝."


옷 매무새 다듬어 주고 등을 떠미는데 너무 착하고 귀엽더라고. 수면바지도 귀엽고 쪼꼬만 발가락도 귀엽고. 사과머리도 귀엽고. 그때 완전히 치여 버렸지.



2.3.


"…? 겨우 그거?"


감회가 새롭다는 듯 감동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호와 달리 다정의 얼굴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어?"

"지금 영하 10도에 겨우 목도리 하나 빌려 줬다고 반했다고?"

"너무 착하지 않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거래. 목도리도 알록달록 해서 진짜 귀여웠어! 어떻게 생긴 거였냐면…."

"이거 완전 또라이 금사빠 아니야?"


이 와중에 목도리를 검색해서 보여 주려는 지호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황망한 표정을 짓는 다정에 진은 워워 하며 허리를 안아 튀어나가려는 걸 말렸다. 그렇지만 진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금사빠라니…. 그냥 자각하는 한 가지 계기였을 뿐이지…."

"미성년자를? 너 내 도진한테도 설렌 거 아니야?!"

"아, 아니야. 그런 적 없어어…."

"왜 안 설레! 얼어 죽지 말라고 구명줄로 목도리 주는 애보다 얘가 못하다는 거야?!"

"아 또 왜 얘기가 거기로 튀어…. 그래서. 왜, 어떻게 차였는데?"

"…편지를 써 가지고 가서 줬는데…."

"러브레터? 요즘 세상에?"

"아니. 뭘 믿고 여자애, 그것도 과외학생한테?!"

"읽어 보겠다더니…."

"보겠다더니?"

"…아무 연락 없이 과외를 짤려써…."

"허얼."


미성년자, 과외 학생의 작고 하찮은 친절에 사랑에 빠져서는 홀로 폭주한 결말치고는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보다 깔끔하지만 비참한 결말에 지호는 다시 코끝이 시큰해졌고, 진과 다정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싫었나 봐…."

"아니. 뭐 백번 양보해서 싫을 순 있고 찰 수도 있는데."


잠자코 다정만 말리던 진이 질의할 게 있다는 듯 오른손을 들고서 말했고 '싫다', '차이다'라는 말에 이미 베인 지호는 심장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따흐흑."

"뭘 했다고 개새끼 소리까지 들어? 그건 난 좀 모르겠네."

"…목도리를 안 돌려 줘서 그런가 봐…."

"뭐어?!"

"재작년 겨울에 언니 통해서 연락 왔었거든…. 목도리 왜 안 주냐고…."

"뭐?! 근데 왜 안 줬어?"

"…억이라서."

"뭐? 목소리 존나 모기만해."

"추억이라서…. 보고 울기라도 하고 싶어서…."

"세상 구질구질한 데다가 도둑질까지?!"

"아, 아니야아! 잃어 버린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언니 통해서 돈도 보냈단 말이야아…!! 안 받았대서 돌려받았지만…."

"1. 레즈인 것도 불쾌한데, 2.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고백을 했고, 3. 좋아하는 목도리까지 쌔벼갔다? 좀 최악이긴 하네."


다정의 결론에 지호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포옥 묻었다. 어떻게 해. 이제 미대쪽으로는 얼씬도 안 해야겠어. 그래. 어차피 그쪽 안 가도 돼…! 상경대랑 문과대만 다니면 되지. 

회피형 인간 구지호는 손톱을 옴뇸뇸 깨물면서도 그렇게 대책 없이 속 편하게 생각했다. 두 건물 모두, 정확하게 똑같은 이유로 불편하기 짝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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