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처럼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십팔 년 제 인생에서 '유니콘이 산다.' 던가 '옆 동네의 빈 상가에 자정만 되면 귀신이 나온다더라.' 같은 루머에 불과했어요. 입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냐며 혀를 차고는 했죠. 아스팔트 위로 열기가 솟구치고 타오른 공기에 아지랑이조차 그루브를 타던 무더위가 내린 한여름. 우리 집에는 고작 선풍기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은행은 달랐죠. 그 안은 사방에 달린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로 가득 차 있었잖아요. 저는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 안에서 주르륵 살갗을 타고 흘러내려 결국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땀방울을 식히고 싶었고 한여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채 팔을 슥슥 쓸어내리는 사치도 누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제 나와 같이 당신이 작년 겨울 고등학교 이 학년이면 지옥까지 일 년이라며 비웃듯 선물해준 갈색 가죽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서 당신이 근무하고 있을 은행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네요. 은행은 학교에서 도보로 걸어 고작 오 분 거리였어요. 땀을 말리기 위해 땀을 내는 격이라니!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 그건가? 아, 이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아아, 아니에요. 다자이 씨. 잠시만요. 앉아 보세요. 아직 안 끝났거든요. 그러니까요. 그래서요. 결론적으로 제가 다자이 씨에게 마법처럼 사랑을 느낀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면요. 달려 이 분이었고, 저는 무한한 이 분을 꾸역꾸역 참아 가까스로 은행 앞에 도착했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왔느냐며,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날아올 쿠니키다 씨의 꾸중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물러설 수는 없었어요. 눌러주세요, 하고 세로로 적힌 버튼을 지그시 누르자 반투명한 문이 열리고 안으로부터 냉기가 사아아 다리부터 적시기 시작했죠. 한참을 거기 서 있다가 뒤에 서 있던 사람이 학생, 안 들어가요? 하고 물어오기에 놀란 토끼처럼 아뇨, 아뇨아뇨아뇨아뇨! 하고 번쩍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들어갔죠. 그때였어요. 그때였다니까요, 웃지 마세요. 웃으시면 안 돼요! 어김없이 출입구 옆쪽의 대기실 소파에 앉아 두리번두리번 다자이 씨를 찾고 있는데 퍽 하고 파일을 누군가 머리 위로 올렸죠. 머리에 실린 무게감을 보아하니 퍽 두꺼운 파일인 듯싶었어요. 소리만 있고 통증이 없는 이유가 정확하게 설명됐죠.  누군지 알겠다, 이건 다자이 씨다.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할 분들은 사실… 은행 안에 굉장히 많긴 했지만. 그래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이건 다자이 씨야! 그 순간이었어요.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눈을 감고 조곤조곤 속삭이는 모습이 아기 천사가 따로 없노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하얀색 와이셔츠 위로 갈색 카디건을 걸치고, 가방을 팔 안으로 끼워 넣은 나카지마가 머잖아 하얗고 긴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들었는데 다자이 씨가 보였어요. 다자이 씨의 흰 얼굴이 보였고요, 다자이 씨의 밤색 눈동자가 보였고, 다자이 씨의 붉은 입술이 보였고, 다자이 씨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보였어요. 그때였어요. 내가 왜 이 사람을 진즉 사랑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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