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이 내 혈육한테 차인 썰 푼다

w. 뮤트




이설탕 인생 참 다사다난하다. 이동혁이 쏘아올린 작은 공... 기습뽀뽀 덕에 가뜩이나 고요할 날 없는 머릿속이 더 엉망진창 엉켜버려. 안 그래도 이제노 때문에 얼떨떨해 죽겠는데 이동혁이랑 멀어질까 봐 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말이야. 




아직도 선명한 그 장면을 이설탕은 아침 점심 저녁 새벽 꼬박 곱씹게 돼. 회상의 마무리는 새빨개진 얼굴로 주변에 있는 생명체 혹은 물건 팡팡 때리기. 침대 팡팡 책상 팡팡 소파 팡팡 이민형 팡팡. 이제노 앞에선 그럴 수 없으니 입술 앙 깨물고 조용히 스케치 망쳐버리기. 지우개로 벅벅 지우다가 종이 찢어먹고... 평가 시간에 멍때리기 등등.




이동혁 미쳤나 봐. 어떻게 뽀뽀를 해? 이설탕은 오소소 소름이 돋는 팔뚝을 벅벅 문질러. 걔 혹시 귀신인 거 아냐? 어떻게 딱 뽀뽀를 하네 마네 김소금이랑 이야기 나눈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런 망측하고 앙큼한 짓을 해버리냐고. 덕분에 이설탕 아주 제대로 열병 앓아버려. 떠날 준비하던 감기의 온도가 확 올라갔거든. 세상에. 입술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감촉을 겨우 있었을 즈음엔 기다렸다는 듯 이동혁의 목소리가 맴돌아서 죽을 거 같애.




내가 약 좀 먹였어




미친 거 아냐 진짜. 미친. 미친 놈. 미쳤어... 뽀뽀가 언제부터 약이었냐고. 잘도 그런 말을 했겠다. 이게 만약 친구가 해준 이야기였다면 온갖 질색팔색 리액션 다 하면서 난리부르스 떨었겠지만 당사자라 그럴 정신이 없다. 설렜거든. 온 몸이 오그라드는데 또 설레버려서. 그래서 이설탕 혼란스러워. 이 낯선 감정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꽁꽁 숨어있었던 건지 감도 안 잡혀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 입맞춤.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게 돼. 이제노한테 슬슬 기우는 것 같던 마음을 확 잡아올렸거든. 덕분에 완벽한 수평이 돼버린 지금, 이설탕은 긴 추억여행에 빠져. 지금껏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순간들. 가볍게 스쳐지나간 우정과 의리의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해. 짧았던 일주일 연애로 시작된 둘의 인연. 대부분은 티격태격 시비 걸고 정색하던 장면들이야. 열심히 쥐어짜낸 그 기억들이 이동혁한테는 좀 많이 다른 의미였을 거 같기도 해. 그래서 이설탕은 기분이 좀 새롭다. 




이제껏 이설탕은 참 조용히 짝사랑을 이어왔어. 어떤 작은 순간에 꽂혀 시작한 짝사랑의 과정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 좀 봐달라고 티내는 건 영 적성에 안 맞았고... 훗날 사귈 수 있을 거란 전제는 아예 없었기에 좋은 우정다지기로 포장하기 딱 좋았어. 사실 짝사랑이라는 게 될 것도 안 될 것처럼 보이고 그렇잖아. 그냥 이렇게 좋아하다 말겠지 다른 남자가 나타나겠지... 지금이 이제노일 뿐인 거고 나중에 대학 가서는 더 멋진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겠지 하면서.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단 말이 처음으로 와닿았다. 어떻게 보면 이제노를 좋아하는 마음이 확 불타게 된 원인이 본인이야. 전까지는 잘만 지내다가 왜 갑자기 눈물 콧물 다 쏟냐고? 늘 그랬듯 흘린 소금이 얘기에 이제노가 귀엽다고 받아쳐줬을 뿐인데. 그냥 대꾸해준 거라고 생각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 혼자 삽질하고 넘겨 짚고 문드러지는 속으로 밤마다 울어재끼고. 내가 이제노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고? 이렇게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고? 이걸 깨닫게 된 시점은 약 2년 째 지속 중이던 짝사랑의 끝자락. 에어컨 핑핑 돌아가는 미술학원에서였어.




어쩌면 조용하게 지났을지도 모를 감정을 끄집어낸 걸 수도. 귀엽단 말 그냥 했을 수도 있잖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더라면 상황은 좀 많이 달라졌을 거 같아. 그럼 이제노를 좋아하는 본인을 이동혁한테 들킬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럼 이동혁도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마음을 보였을까 싶기도 해. 




그러니까,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인물들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제노가 이동혁이 본인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을까? 이설탕이든 이제노든 이동혁이든 혼자서 해낸 건 없다는 뜻이야. 김소금과 이민형과 나재민까지... 빛나는 조연들이 없었다면 서툴고 뜨거운 짝사랑을 불태울 일이 없었을 거 같아. 




그렇다면 이건 운명이다. 난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고 흔들리다 결국 뜨거운 사랑을 쟁취하게 될 반짝반짝 빛나는 주인공이구나. 약간 사랑스럽고 황당한... 결론이 내려지게 돼.












대박사건 야 이제노 나 완전 대상 삘이야 어떡해?




빠르게 다가온 월미도 실기대회. 완성작 제출하고 나오자마자 미리 나와있는 이제노한테 달려간 이설탕은 들뜬 목소리로 덧붙여. 연습했던 거보다 훨씬 잘 나왔어. 아 미쳤다 이여주. 미술학원 애증의 짝꿍이자 라이벌 이제노랑 단 둘이서 가는 거라 이설탕 평소보다 더 높은 텐션으로 얘기해. 정신이 딴데 가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제발 받아

ㅋㅋㅋ 제발이 왜케 열받지? 절대 받을 일 없다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ㅡㅡ

그럼 꼭 받아 여주야

.. 으 열받아 열받아 여주라고 부르지 마 너 왜 갑자기 다정하게 부르냐?! 슬러시도 막 사주면서? ㅡㅡ

ㅋㅋ 먹고 열 좀 식히라고

야 나 파인애플 맛 ㅎㅎ 너는 무슨 맛 먹을 거야? 환타 맛 먹으면 안 돼? 나눠 먹으면 딱인데

난 저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

ㅋㅋ 그렇게 쳐다보지 마

왜 ㅡㅡ

나 그런 눈빛에 약해 강아지 같은 거

오케 강쥐가 얼마나 돈 많이 드는 동물인지 보여준다 각오해라 니




오전 열 시부터 시작된 대회를 마무리 후 바로 옆 월미테마파크로 건너온 이설탕과 이제노. 사실 얘네의 본론은 여기였어. 실기대회는 작년에 워낙 많이 나갔던 터라 큰 의의를 두지 않는 중. 게다가 고2 여름특강 시작하면 선배들이랑 수업 강도가 비슷해져서 대회는 일절 안 나가는 게 얘네 학원의 룰이거든. 근데 이번 껀 꽤 명성이 있는 대회라 원장이 몇 명만 차출해서 보낸 거. 그래서 이설탕은 아이디어 스케치 한 번 더 보는 것 대신 테마파크에 뭐가 재밌는지 검색하는 걸 택했고.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이 엄청 많았어. 쨍쨍한 날씨에 답답했는지 겉에 입은 셔츠 벗어서 어깨에 대충 걸친 이제노, 반대쪽 어깨에 닿을 듯 말듯 있는 이설탕 슬쩍 바라봐. 아까부터 뭘 그렇게 쳐다보나 했더니 새로운 간식이 레이더에 들어온 듯해. 




야 나 저거...

손에 들린 것부터 해결해 

이거는... 너가 먹으면 되잖아

나더러 짬처리를 하라고?

ㅋㅋㅋ 하

ㅋㅋ 장난이야 내가 먹을 거임

배불러?

ㅋㅋ 응;; 근데 와플 먹을 배는 있음 진심

줘 내가 먹을게

엥 진짜? 입 닿았는데 이거..

뭐 어때 감기 나았다며

아니 그렇기는 한데.. 




한 손에는 파인애플 슬러시, 한 손에는 두 입 먹은 핫도그를 쥐고 있는 이설탕. 흥미를 잃은 본인 핫도그 대신 먹어준다는 이제노에 약간 민망한 듯 눈알 굴려. 이거 완전 남친이 해주는 행위. 깔끔 오지게 떨 것 같은 이제노가 그런다니까 약간 기분 이상해. 하지만 와플이 눈에 들어온 걸 어떡한담. 본인 꺼 슥 뺏어서 꽤 큰 핫도그를 두 입에 나눠서 먹는 이제노를 보며 이설탕 와... 하면서 감탄해. 그러자 이제노 헛웃음을 흘리면서 생수 원샷하는데 그래도 목이 좀 막혔는지 슬러시도 슬쩍 가져가.   




이거도 안 먹을 거지 내가 다 먹는다

어 어어 땡큐 와 근데 너 대박 잘 먹는다 근데 약간 맛 없게 먹어서 감점

ㅋㅋ 와플이 끝이야 너  

엥 그럼 저녁은...? 안 먹을 거야?

그니까 저녁 맛있게 먹으려면 참으라고 이제 대신 안 먹어줄 거니까

ㅋㅋㅋ 야 너 방금 나 귀찮다고 생각했지 얘 뭔데 다 사놓고 안 먹지? 지 돈 아니라고 막 쓰나 막 이런 생각했지

솔직하게 말해?

응 누나는 너가 뭐래도 타격이 없다~ 알잖아 언제나 강인한 여성

귀여운데

.... 뭐? ㅡㅡ...

귀엽다고 이것 저것 다 사놓고 다른 거 먹고 싶어서 눈치 보는 거

.....;

ㅋㅋ 타격 없다며




당했다.. 분하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약간 민망 머쓱해진 이설탕은 이제노 툭 쳐. 뽀뽀에 잊고 있었던 엄청난 사실. 이제노 나 좋아하지. 그것도 엄청 좋아하는 거 같지. 막 툭툭 서스럼 없이 저런 말 뱉고 강아지 같다 그러고. 근데 또 딱히 막 귀여워 죽겠는 리액션은 아니라 황당해.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 오늘 내내 햇빛이 거슬렸는지 가끔 미간 좁히고 표정 굳히고 있어서 얘 화났나 싶다가도, 대뜸 뭐 타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뭘 갖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선호도 조사하며 지갑 여는 모습이 딱 정석의 썸남 같기도 했어. 둘의 텐션은 평소에도 좀 달랐어. 근데 다른 온도로 자신에게 맞춰주고 있는 이제노가 좀 멋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설탕은 약간... 심통이 나. 왜? 뭐가 서운해서. 이보다 더 잘해 줄 수 없을 거 같은데. 왜... 왜지. 무슨 기분인지 본인 조차도 알 수 없어서 떨떠름하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이설탕은 심란해진 표정으로 입술 꾹 닫아. 그리고 방금 만들어서 따끈한 와플 손에 쥐어주는 이제노 힐끗 보고는 괜히 흥이다; 도도한 표정으로 휙 앞장 서서 걷는다.




그러다 다시 나란히 걷는 둘. 와플을 딱 반 정도 먹어치웠을 쯤 이설탕이 이제노한테 체크카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해.




너가 간식 다 사줬으니까 누나가 저녁 쏠게 나 엄마한테 용돈 받음 이민형한텐 삼만 원 뜯었어 대박이지

니 형 좀 불쌍해

ㅋㅋ 야 뭐 먹을래?

오늘은 내가 살게 다음에 너가 사

다음에 언제 이런 식으로 나 빚쟁이 만들어서 협박할라고 그러지 너? 배려의 아이콘 완전 다정의 아이콘 돈 많고 무심한 듯 다정한 고딩인 척 하면서 사실은...

ㅋㅋ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한번 계속 해봐

;;ㅋㅋㅋ 없음 내 최대 약점임 알맹이가 없어

그래서 귀엽다는 거야 니가

아!!! 자꾸 귀엽다고 할래?;; ㅡㅡ

ㅋㅋ 반응을 하지 마 놀리고 싶어지잖아

어쩌라고 언젠 안 놀렸냐? 맨날 시비 걸었으면서 참나 내가 말빨이 좋아진 이유에 너가 아주 큰 공을 기여했거든? 맨날 지 좀 이겨보라면서 도발하고

느낌이 다르지 않나 그거랑은

뭐가 달라~~ 약 오르는 건 똑같은데

애정이 달라

... 허

야 너 입술에 크림

.. 뭐 ㅡㅡ 또 어쩔

ㅋㅋ 진짜야 묻었어

그래? 어디?

윗입술 오른쪽 아니 너한테서 오른쪽




이설탕 본인 입술 안으로 말아서 열심히 핥아. 그러다 옆에서 웃참하려고 괜히 딴데 보면서 인상 쓰는 이제노 발견하고 팔꿈치로 복부 툭 친다. 야 너 휴지 있어? 없어. 아씨 끈적한데. 사과잼 때문에 끈적해진 입주변과 손에 두리번대던 이설탕, 멀지 않은 곳에 화장실 발견해.




나 화장실 갔다올게 씻어야겠어

가방 주고 가 저기 앉아 있을게

엉? 응 땡큐




이설탕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이랑 소중한 와플 맡긴 후 화장실로 달려가. 바이킹 한 번 더 타야 되는데. 관람차는 어떡하지. 탈까 말까. 저녁 먹으려면 빨리 나가야 되는데. 그런 생각하며 손 벅벅 입술 주변까지 야무지게 닦고 손등으로 물기 툭툭 없애. 그러다 헐 내 핸드폰; 어딨지; 온 몸을 뒤지다가 아 이제노 하면서 터벅터벅 나오는 폼이 여간 여유로운 게 아냐.




이제노!




그냥 한 번 불러봐. 안 들렸는지 미동도 없는 이제노를 가만히 쳐다본다. 화단 블럭에 몸 기대듯 앉아서 길쭉한 기럭지 자랑하는 이제노에 이설탕 본인도 모르게 고개 끄덕여. 그 앞을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십 명인데도 눈에 띄는 자태에 괜히 어깨 으쓱거려지고. 잘 키웠군. 잘 자랐어. 




대회도 무사히 마쳤겠다, 용돈도 두둑히 받았고. 좀 덥기는 해도 황홀할 정도로 맑은 하늘에 기분은 마냥 좋아. 지금까지 분위기도 괜찮았잖아. 어떻게 보면 이것도 데이트라고 하면 데이트라서 먼저 손 덥썩 잡아도 전혀 문제 없을 것 같은 상황. 그럴 기회는 수도 없이 찾아왔지만 이설탕은 계속 묘한 거리를 두고 있었어. 물론 이동혁 때문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이는 바람에. 




이설탕 잠시 멍때려. 저기 있는 이제노를 보고 있자니 문득 과거 어떤 장면과 겹쳐졌거든. 불시에 찾아온 어느 기억은 보다 세밀하게 무언가를 되짚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법.




어? 이제노? 대박

뭐야

너가 왜 여기 있어?

공부하려고 왔지 너는




김소금과 시험 공부하기 위해 갔던 도서관. 거기서 이제노를 만났잖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날이기도 해. 설레는 맘으로 쪽지도 주고 받았고 대뜸 맘에도 없는 소리를 날려버려서 지독하게 후회해야만 했던. 엎드려서 자는 김소금을 바라보는 이제노를, 그리고 시원한 음료 가득 품에 안고 바라만 봐야 했던 자신을 떠올려. 그땐 참 끝이 안 보였었는데. 평생 이제노만 좋아하다 밤낮을 울며 긴 세월을 다 보낼 것만 같은 마음에 아득하기만 했었다. 




너 내가 김여주랑 사귀면 어떨 것 같아

..... 어?

싫어?




내가 도와줄까

.. 김여주 얘기하는 거야?

그럴래?




솔직히 말하면 후회 중이야 내가 너무 성급하게 감정을 드러낸 거 같아서 그건 할 말 없어 내 잘못이야

.....

미안해 헷갈리게 해서




사귀자 

.....

대답은 방학 끝날 때 들을게




그런데 호떡 뒤집히듯 관계를 달라졌어. 방향을 알기 힘든 열여덟의 감정선.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설탕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해. 그동안은 열어본 적 없는 길. 이유는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의문 때문이야. 왜 이렇게 아쉬운 건지. 왜 이렇게 서운한 건지. 왜? 왜일까.




뭐냐 우산 너무 큰데

날 담으려면 커야지




이제노와 김소금을 먼저 보낸 후 이동혁과 피방에서 죽치고 있었던 날. 이동혁은 이설탕의 우산을 보고는 툭 그런 말을 던졌어. 이설탕은 태연하게 상황을 넘겼지만 사실은 얼마나 심란했어. 눈치껏 빠져준 대가로 받은 것 같은 그 커다란 우산을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듯 보다가 울컥 쏟아지는 미운 마음에 죄 없는 우산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우산을 볼 때마다 이제노가 자꾸 생각났지만 그 우산 때문에 깔깔 웃기도 했었잖아. 




야!!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아 뭐하는데 뒤질래? 빨리 우산 내놔 아 ㅋㅋㅋ

그니까 왜 까불어

ㅋㅋ 아 이동혁 ㅋㅋㅋ ㅡㅡ ㅋㅋㅋ

ㅋㅋㅋ 행복하냐

ㅋㅋㅋ 제발 ㅠㅠㅠㅠ




쏟아지는 빗속에 우산도 없이 서있던 이설탕과 이동혁. 그땐 진짜로 이동혁이 미친 줄 알았어. 본인 우산이 고장났다고 하질 않나 굳이 굳이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질 않나. 덕분에 착잡하고 씁쓸했던 마음이 빗물에 조금은 씻겨지긴 했어. 이제노에게 우산을 돌려줄 때도 괜찮았던 걸 보면.




.... 아




그래. 그때부터였나 봐. 이제노도 나도. 




이후 이설탕은 입술 깨문 채 이제노한테 다가가. 뭘 그렇게 오래 걸렸냐는 눈빛에 어깨 으쓱하고는 시선 피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 연다.




야 이제노 있잖아

어 갈까

아니 잠깐만

그때... 나한테 우산 빌려준 날 기억나?

언제?

소금이랑 나랑 놀다가 비 엄청 쏟아졌었는데 그때 너가 데리러 왔어 우산 두 개 들고

아.. 어 기억나 왜

ㅋㅋ 그때 너가 나 우산 빌려줬잖아 

그 우산 커서 진짜 좋았어 새거 같던데

새거 맞아 그쯤에 새로 산 거라

.. 그래? 왜?

음.. 글쎄 

빨리 생각해 봐 ㅡㅡ

ㅋㅋ 몰라 그냥 산 건데

.. 내가 그랬었잖아 너랑 우산 같이 쓰고 학원 간 날 막 덩치도 크면서 우산 좀 큰 거 들고 다니지 뭐냐고 시비 걸었잖아

.. 아 




그제서야 뭔가 기억난 듯 이제노가 고개 끄덕이면서 덧붙여.




너 나랑 어깨 닿을까 봐 비 다 맞으면서 걷길래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산 거야?

기억도 했고 신경도 쓰였고

그랬구나

아니야 걍 생각 났어 

.. 갑자기? 

너무 덥잖아 ㅡㅡ 비 좀 내렸으면 좋겠어서

.. 실내로 들어가자 내가 괜찮은 곳 찾았어




빠릿한 놈. 이제노 어깨 툭 건들고는 가방 메고 씩씩하게 걷는 이설탕. 그런 이설탕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던 이제노는 이렇게 말해. 이설탕 손 잡으면서.




그쪽 아니야 이쪽

야... 너...

길 잃을까 봐 그래 사람 많잖아

.... 참나 잠깐 잡는 거야 그럼 

싫은데

ㅋㅋ ㅡㅡ 야.......

장난이야 심각해지지 마




그렇게 각자 나름의 무거움을 안은 채 걷는다. 둘 속도 모르고 뜨겁게 발광하는 해를 피하기 위해서.












빠르게 시간을 돌려보자. 개학 당일 아침에 제대로 늦잠 자고 일어난 이설탕은 정신없이 등교 준비해. 대충 앞머리만 감고 교복도 막 껴입고. 왜 나 안 깨웠냐고 이민형 방 쾅! 열었는데 이미 떠난 후였다. 부모님 동반여행 가셔서 며칠 안 계시거든. 배신자. 완전 배신자. 잔뜩 뿔난 얼굴로 중얼거린 이설탕은 덜 마른 앞머리 탁탁 털면서 신발 구겨 신어. 지각 면하려면 전력질주해서 이번에 오는 버스 타야 되거든.




가까스로 1분 남기고 교실에 입성 성공한 이설탕. 거칠게 숨 몰아쉬면서 김소금 옆에 털썩 앉아. 와 대박. 나 오늘 신기록 세웠어. 살면서 그렇게 빨리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민형 욕 시작해. 엄마 아빠도 없는데 자기만 두고 갔다며. 완전 배신배신 개배신자라고. 그러자 김소금 킥킥 웃으면서 이민형이랑 한 카톡 보여줘. 




 



와 ㅡㅡ 뭐임?! 무슨 찬물을 끼얹어 나 완전 보송보송하게 일어났는데?!!! 

ㅋㅋㅋ 그래도 세이프해서 다행이다 

긍까 내 소중한 오백 원 털릴 뻔 했네 근데 무슨 고생? 김소금~!!! 너 내 뒷담 깠지 왜 저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ㅋㅋ 약~~간 ㅎㅎㅎㅎ

뭐시라? 일루와

악ㅋㅋㅋ




이설탕한테 헤드락 걸려도 그저 좋다고 웃는 김소금. 설탕 민형이 오빠가 오늘 점심에 축구한다고 심심하면 나와서 구경하래. 같이 가줄 거지? 엉 당빠. 가서 뻑큐 날려줄 거임. 그러면서 본인 핸드폰 카톡 창 열고 혈육한테 <배신자에겐 죽음 뿐> 이거 날려놓고 엎드려. 다행히 1교시는 자습이라 여유가 있었다. 




근데 여주야 너 오늘 앞머리만 감았지ㅋㅋ

아 헐 티 나?

뭔가 앞머리만 되게 보송보송해 

미친 잠만 나 화장실 점 다녀올게

같이 가까?

놉 언니 조용히 단장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삼ㅋ




쏜살같이 화장실로 달려가서 물 찔끔 손에 묻힌 후 이리저리 만져보는 이설탕. 하씨 오늘부터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모범생 하려고 했는데 머리 땜에 망한 거 같애. 그 핑계로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 이설탕, 휘파람 불면서 화장실 나오는데 코 앞에서 이제노랑 마주친다. 순간 움찔한 이설탕 인사할 타이밍 놓쳐서 가만히 바보처럼 있으니까 이제노가 먼저 말 걸어.




인사도 안 하냐

ㅋㅋ... 하려고 했는데? 야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 놀래켜? ㅡㅡ

튀어나온 건 너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ㅋㅋㅋ ㅡㅡ....

ㅋㅋ 늦잠 잤냐

엉 그래서 앞머리만 감아서 꼬라지가 이런 거야 시비 사양할게? 




둘에겐 좀 많은 일이 있었다. 때는 약 2주 전 월미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붉은 노을을 등지고 걷던 도중 이제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어.




이여주

어?

방학 끝날 때까지 기다려도 되는 거지 나

... 응 너가 원하면...

.....

근데 대답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 같애 미안해




그 말을 하는데 어렵지는 않았어.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좀 의연함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노 역시 이설탕의 반응을 예상한 듯 한참 말이 없었어. 그리곤 이런 물음을 던졌다.




.. 내가 좀 일찍 왔으면 그럼 달라졌을 거 같아?

응 아마 나 너 많이 좋아했거든 

.....

후회하라고 하는 말 아니야 나 너한테 지금 나쁜 감정 하나도 없고.. 여전히 좋은 친구야 너는 진심으로 그리고...

말해

아까부터 자꾸 너한테 좀 서운하더라? 그게 왜 그런 건가 싶었는데... 너가 좀만 더 일찍 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

.. 이동혁이 좋아졌어?

....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확실하진 않아 근데.. 응 그런 거 같아  




이설탕이 이유 모를 서운함과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었어. 각자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솔직하고 섬세했다면 진작 잘 만났을 텐데 하는 마음. 이설탕도 본인의 짝사랑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고... 이제노도 먼 길을 돌아서 오느라 틈을 내줬잖아. 그 덕에 이설탕은 많이 아팠고. 근데 그게 이제노를 좋아하는 마음이 열을 내서 아픈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야. 천천히 마음을 덜어내는 중이었나 봐. 조금씩 떨어지는 살점에 잠깐 시큰시큰 통증을 앓았던 거지. 




물론 이동혁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몰라본 채 이제노를 만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개입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들이었기에 이설탕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마음을 알아챘어. 이동혁한테 가야겠다! 이런 마음이 아니라 이제 이제노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 어느새 차분하게 식은 마음이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없다는 걸 자각한 거야. 그게 너무 속상해서... 이설탕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엉엉 울었다. 열렬했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니까.




그날 이후로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둘은 여전히 같은 학원 같은 공간 옆자리 혹은 앞뒤로 앉아서 그림을 그렸고 대화를 나눴고 매점을 같이 갔고. 확 어색했다가 미친 듯 불편했다가 다시 조금 괜찮아졌다가 친구처럼 편했다가. 




너네 담임쌤 교실 들어가던데 

헐 진짜? 

빨리 들어가

어어 야 학원에서 봐!   




그대로 교실 뒷문으로 달리던 이설탕, 문 열기 전 이제노의 뒷모습을 슬쩍 봐. 긴 복도를 걷는 걸음은 언제나처럼 태연하고 듬직해. 잠시 입술을 깨문 이설탕은 조용히 교실로 들어간다. 표정을 볼 수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이제 어떡하지? 




새롭고 또 새로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고민에 빠진 이설탕은 쉬는 시간 내내 끙끙 머리를 부여잡아. 이동혁한테 뭐라도 답을 해줘야 될 것 같은데. 그때 냅다 입술 박고 도망친 것에 대해 책임을 물고 싶은데! 맘만 앞서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냥 가서 다짜고짜 뽀뽀사건 언급해버려? 살벌하게 확 따져? 하지만 그런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의 신중을 기울여. 그리고 그 고민은 수학 이동수업을 위해 김소금이랑 사이 좋게 팔짱 끼고 복도를 걷던 그때, 단번에 해결된다. 




아 뭐래ㅋㅋ 아 맞다 야 이동혁 너 과외 한다고 했지

어 왜

나도 껴주면 안 돼? 이대 일로 하면 더 싸잖아

나 따라오려면 빡셀 텐데? ㅋㅋ 

ㅋㅋㅋ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빨랑 연락처 줘 안 그럼 나 그냥 학원 다녀야 돼 

고민 좀 

아 뭔 고민이야

형한테도 물어봐야 되고 야 그리고,....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




낯선 여자애와 가까운 거리에서 친근하게 대화하는 이동혁을 목격해버렸거든. 헐 동혁 하이! 김소금이 인사하자 여자애한테 팔뚝 얻어 맞아주던 이동혁 부자연스럽게 그 인사 받아. 그리고 이설탕이랑 정면으로 눈 마주쳐. 




But 냉큼 시선 피한 이동혁 여자애랑 본격적으로 대화 나눈다. 야 너 어디 사는데. 물론 김소금 옆에 있는 누구 때문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이설탕은 충격의 도가니. 빠직 1000. 그래서 보란 듯이 흥칫뿡 하면서 이동혁 옆 휙 지나간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이동혁은 뒤늦게 곤란한 듯 한숨 삼켜내. 




.....




덕분에 수업 내내 이설탕은 분노를 잠재우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 아니 지가 먼저 인사를 해야지. 왜 나한테 아는 척 안 해? 내 앞에서 과외 얘기를 허 참나. 어디 사는지는 왜 물어봐? 진짜로 같이 과외하려고? 그거 되게 늦게 하던데. 그럼 그 늦은 시간까지 그 여자애랑 같이 있겠다는 거야? 




... 설마 나 들으라고 그런 건가? 관심 없는 거 티내려고? 설마 실수였나?? 충동적으로 입술을 부딪혔는데 후회막심이라 내 반응 떠본 거고? 이 미친 나쁜 쓰레기 새끼!!!!!!!!




꼬리의 꼬리를 문 걱정은 이설탕 성질 돋구는데 성공했다. 입술 훔쳐가놓고 뻔뻔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동혁의 죄를 물으리라 다짐해. 







점심시간 되자마자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하다 던진 살벌한 경고이자 통보. 길게 기다리고 할 것도 없이 오늘 결판을 지어야겠어. 




이렇게 빠른 전개를 원한 건 아니야. 나도 너의 기습 뽀뽀에 어느정도 호감을 표하는 바이다, 라는 마음을 정말 넌지시 아주 은근슬쩍 흘려주고 몇 주든 몇 달이든 지켜볼 생각이었거든. 근데 이동혁이 협조를 안 하잖아. 완전 괘씸하게 복도 한가운데에서, 저랑 마주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분명 했을 텐데 말이지. 이건 그냥 싸우자는 거잖아? 그럼 싸워줘야지. 이제노 이길 자신은 없었는데 이동혁은 진짜 있거든. 완전 있거든.




지옥의 7교시와 자습, 그리고 석식... 그리고 또 야자. 오늘따라 느려터진 학교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달려간 이설탕은 비장한 표정으로 교환일기 챙겨. 이동혁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 너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심란하고 복잡했는지 이거 읽고 어디 한 번 느껴봐. 평생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돼 이거는. 용서 안 해줄 건데? 완전 바보멍청이 나쁜쓰레기 같은 자식 ㅡㅡ. 엄마한테는 잠깐 소금이 만나서 문제집만 전해주고 온다고 한 뒤 현관문 열어. 엘베 계기판 뚫어져라 보는 눈빛이 약간 초조하다. 올라타는 발걸음도 조급해. 카톡 답장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확인도 안 했다. 사실 떨려서 안 한 거.




나 왜 이래?....;




후. 하. 계속 해서 한숨 내쉬는 이설탕. 터질 것 같은 심장에 당황스러워. 안 돼. 포커페이스 찾아. 완전 카리스마 있게 경고 날려준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올 거거든. 대충 정리한 대본대로 읊으려면 차분하고 이성적인 텐션은 필수야. 




필수인데.... 그네에 앉았다가 미끄럼틀 툭툭 발로 쳤다가. 시소에 엉덩이 슬쩍 댔다가 냉큼 일어나서 정처없이 걷다가. 그러다 21시 58분인 거 확인 후에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멈춰 서.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자 생각하며 방향 트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여. 뛰어온 건지 약간 숨 거칠게 내쉬면서 다가오는 이동혁을 보자마자 사고회로가 정지되고 만 이설탕... 




뭐야... 왜, 왜 모자 썼냐 너?

모자? 모자가 왜 하, 

아니 학생이 무슨 모자를 써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학주도 안 할 것 같은 말을 내뱉고 만다. 이동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약간 헛웃음을 흘리면서 이래.




혹시 벌점 주려고 부른 거? 복장 단속을 갑자기

;...ㅋㅋ 뭐래 ㅡㅡ 야 너 늦었잖아

열 신데 딱 나 안 늦으려고 엄청 뛰었는데 숨 헐떡이는 거 안 보여?

... 몇 초 기다렸을 걸

좀 봐줘 나 오늘 과외 있는 날이라 빼는데 애먹었어

어? 과외? 오늘 과외 있었어? 몇 시에....?

아홉 시 오십 분

야; 말을 하지!

말을... 했지 근데 너가 카톡을 안 봤어 아직도 1 안 사라졌던데

헐 미안; 




똥줄 좀 태울 심산으로 일부러 확인 안 했는데 그거까진 생각을 못 한 거. 갑자기 미안한 마음 우르르 밀려온 이설탕, 난감한 듯 입술 깨물면서 물어. 야 나 땜에 과외 뺀 거야? 안 혼났어? 뭘 혼나 나 형한테 예쁨 받아서 괜찮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표정이 진짜로 괜찮아 보여서 이설탕 안도의 한숨 내쉰다. 




근데 왜 나오라고 한 거야

아니.. 우리 

... 할 말 있잖아 ㅡㅡ 아냐?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나 없는데

... 와 너 진짜 완전.........




이설탕 진짜 실망했단 눈빛으로 눈썹 휙 내려간 채 이동혁 쳐다봐. 그러자 이동혁 단호한 목소리로 이런다.




나 그거 후회 안 해

그게 뭔데 제대로 언급해

.. 뽀뽀

.. 아니; 야 후회랑 사과는 별개의 일이지 ㅡㅡ

사과를 왜 해 그럼 내가 잘못한 거 인정하는 꼴 되는 건데 너 나한테 사과 받으려고 부른 거였어?

... 아니....? 그거는.... 

나 너한테 까일 각오하고 사고친 거라 미안하단 말은 못 해 쓰레기 취급해도 상관 없어 감당할게 

야 너가 무슨 쓰레기냐?;; 너 쓰레기 아니거든?

ㅋㅋ 뭐?




에휴. 멋지게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엔 글러먹은 거 같아. 이동혁 얼굴 보니까 그게 안 돼. 한껏 화난 척... 이 아니라 분명 아까 학교에 있을 때만 해도 화났거든? 서운하고 어이없고 밉고 막 온갖 감정 다 몰아쳤는데 지금은 그냥 딱 하나야. 절대로 느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낯선 감정. 달달한 설렘만이 밤공기에 섞여버린다.




.. 야 

어 여주야

... 니 모자 왜 썼냐고 하씨 각도가 안 나오는데

아니 아까부터 왜 자꾸 모자를... 




그러다 이동혁 눈빛 날카로워져. 은근슬쩍 입술로 시선 내려가는 이설탕의 눈동자 확인한 후에는 표정이 바뀐다. 이설탕한테 카톡 받자마자 올 것이 왔다 싶었어. 오늘 아주 제대로 까이고 정리하려고 일부러 과외까지 뺀 거였거든. 근데... 어째 예상했던 분위기랑 다르잖아. 본인이 그렇게도 바랬던 전개로 흘러가고 있는 거 같아.




ㅋㅋ 여주야

혹시 복수하고 싶었어?

무슨 복수 ㅡㅡ

ㅋㅋ 아.. 오반데 존나 귀여운데

뭐래?;;;; 알아듣게 얘기해 

알겠어 모자 벗을게 다시 해

아니 뭘 하라는 거야 어이 없어..... 




그러면서 이동혁 모자 벗어. 약간 부슬부슬한 머리 털어만지고는 뻔뻔하게 이설탕 쳐다본다.  




ㅋㅋㅋㅋ 안 해? 

뭘 안 해? ㅡㅡ;;;;

얘랑 볼 일 있었던 거 아냐? (입술 톡톡)

;;; 미쳤나 도랐나 참나 꺼지세요... 




사실 이설탕은 이동혁에게 간파 당했다. 시나리오의 엔딩으로 구상한 내용은 이거였어. 복수 겸 대답으로 뽀뽀 갈기고 도망가기. 그리고 이후엔 진짜 애타게 연락도 안 받아주고 학교에서도 요리조리 피해다닐 생각이었어. 몰라 이유는 딱히 없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근데 망함. 이동혁은 눈치가 너무 빠르고 이설탕은 요즘 너무 쉽게 예상 가능한 뻔한 여자가 돼버렸잖아. 자존심 상한 이설탕 인상 팍 쓰고 괜히 먼 곳만 바라봐. 되는 게 없네... 조졌네. 




씁 오빠 기다리는 거 안 보이냐

.. 무슨 지가 오빠야 아깐 내 눈치보더니 갑자기 태세전환 완전 개얼탱 없네 지가 무슨 참나... 극혐 글고 무슨 씁이냐 씁은 훈장님인 줄... 취업 그쪽으로 알아보시길..

ㅋㅋㅋ 미치겠다

미치겠는 사람은 나죠 참..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하 아!!! 시바 망했다ㅋㅋ....ㅋㅋㅋ... 야 그냥 가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과외까지 빼고 왔는데 뭘 나중이야 오늘 담판 지어

나 지금 진짜 도망 가고 싶은 거 꾹 참고 있어 나 걍 간다?

어어 안 되지 그거는




이동혁 어림도 없다는 듯 이설탕 앞 가로막고서 입꼬리 올려. 그 얼굴 뚫어져라 보던 이설탕은 조용히 절망한다. 가증스럽고 오글거리고 개짜증나야 마땅한 지금의 상황이 왜!!! 왜...!!!! 왜 설레는 것이며 왜 이동혁의 베일 것 같은 턱선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며 도톰한 입술은 또ㅏ#82!@@$ 왜 잘생긴 거 같냐고.... 얘 왜 이렇게 잘생겼지? 밤에 봐서 그런가 더 깊어 보이는 눈빛에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것인가. 




... 야 이동혁

감기 안 걸렸어?

멀쩡했지 나는

진짜로?

진짜로 

.. 나 완전 독한 감기였는데

.. 사실 약간 아프긴 했어 근데 금방 낫던데 누구 생각하니까

;; 

근데 이건 뭐야 뭘 들고 온 거야 교환일기?




이설탕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면서 교환일기 건네. 집 가서 한 번 읽어보라며... 너 없는 동안 많이 쌓였다며 작게 중얼거리니까 이동혁 웃음 참으면서 이런다. 




쪽팔려서 그런 거야 아님 연기하는 거야 보니까 후자 같은데 넌 복수가 그렇게 하고 싶냐 ㅋㅋ

..... 몰라 ㅡㅡ

딱 말해 모르는 척 해줘 아님 내가 할까

.... 너가 해줘

ㅋㅋ 아 야 안아도 돼? 아 이건 좀 그런가? 

허; ㅡㅡ 야 뽀뽀하고 도망친 놈이 무슨 안아도 돼? 장난하냐?

어 억울했어~

ㅋㅋ 꺼져.... 빨리 하기나 해....




머뭇대는 표정과 그렇지 않은 말로 재촉하자 이동혁 웃으면서 이설탕 볼 감싸. 딱 한 번만 해줄 거야 애기? 애기라는 말에 욱하고 올라온 분노 가까스로 가라앉힌 후 얌전하게 고개 끄덕이는 이설탕. 그러면서 틈을 노린다. 이동혁이 다가오려는 순간 빠르게 멱살 잡고 먼저 뽀뽀해버려. 




야,

메롱 ㅗ




순간에 당해버린 이동혁이 당황한 듯 얼어붙자 이설탕 이때다..! 하면서 빠르게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 잡히면 좃된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려. 근데 뭐... 결국 금방 잡혀서 이마랑 눈이랑 코랑 볼이랑 입술에 도장 찐하게 새김 당해. 이후로 둘은 썸만 두 달을 더 탔다는 후문... 












💓

이설탕의 짝사랑은 훅 꽂혀와 

번쩍대는 섬광을 피웠고 


🌳 

이제노의 짝사랑은 더디게 자라지만 

견고한 나무의 기둥 같았으며 


🎨 

이동혁의 짝사랑은 미약하기 물들이지만 

하얀 도화지를 만나 

절대 지워지지 않는 완벽한 그림을 완성했다.







 







1부 완결....(๓˙ ₋ ˙๓)

2부는 소금외전 약3편 설탕외전 약...(모름

완결까지 같이 달려줘서 고마워요 

나 이거 완결낼줄 몰랏음 쭈압 사랑해..

제노파들 할 말... 많지요? 미안해요...ㅠㅠ


후기 쓸 거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여기 댓 or 쪽 or 푸슝 암거나~~

없으면 내가 알아서 쓸게 할말 많거든

설탕이가 쓴 교환일기도 후기에 넣을게요

설탕외전 에피도 받을 거니까 많관부!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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